<2레벨로 회귀한 무신 43화>
‘저게 그 엘프인가.’
흑안의 다크 엘프.
흰자위는 하나도 없이, 오로지 시커멓게 물든 눈은 등골을 오싹하게 만들 정도로 섬뜩해 보였다.
‘과연…… 범상치 않아 보이는군.’
다만, 생김새 자체는 평범했다. 물론 엘프들의 기준에서는.
관중석에 앉아 있는 여타 엘프들과 비슷하게 아름다울 뿐이었다.
“어디…….”
성지한은 봉황시의 촉을 배리어에 겨누었다.
경기장과 관중석을 완전히 가로막는 거대한 배리어.
지금은 비록 브론즈에 불과하지만, 전생에서 최강의 자리에 있었던 성지한이었기에 이 배리어가 얼마나 단단한지는 충분히 알 수 있었다.
‘이 정도면 플래티넘…… 아니, 다이아리그 서포터가 만든 배리어와 비슷할 정도다.’
다이아리그.
그곳은 오늘 국가대표 경기에 참가했던 서포터들이 속해 있는 최고 등급의 리그였다.
아무리 성지한이 브론즈 리그의 생태계를 파괴하며 홀로 독보적인 힘을 보여 준다고는 하지만.
리그 등급이 한두 단계 차이도 아니고, 네 단계나 차이 나는 다이아는 수준이 너무 높은 세계였다.
하지만.
‘그러기에, 도전할 가치가 있지.’
성지한은 그토록 강력한 장애물을 앞두면서도 입가에 즐거운 미소를 지었다.
하단전의 내공이 솟아오르고.
중단전과 상단전의 힘이 봉황시에 모여들었다.
화르르르-!
그러자 화살의 끝에, 새하얀 불꽃이 피어올랐다.
정복자의 동상이 활시위를 당겼을 때처럼.
봉황시가 성지한의 기를 받아 막대한 화력을 내뿜었다.
‘이걸 던지면, 배리어는 확실히 뚫을 수 있겠지.’
5회의 발사 한계가 있는 봉황시.
그런 조건이 있는 만큼, 화살을 던졌을 때의 위력은 절륜하다.
아무리 저 배리어가 다이아급의 방어력을 자랑하고 있더라도, 화살로 사용되는 봉황시의 불길은 저 배리어를 뚫어 낼 수 있으리라.
하지만.
‘지금은 일단 창으로 쓴다.’
무명신공無名神功
삼재무극三才武極
선인지로仙人指路
극한의 찌르기, 선인지로.
삼재의 법은 원래 검법에서 시작되었지만, 극한의 경지에 이른 삼재무극은 그 어떤 무기에서도 자유롭게 펼칠 수 있었다.
성지한이 들고 있는 봉황시도 마찬가지였다.
원래의 쓰임새는 화살이나, 그 크기로 인해 창으로도 사용할 수 있었으니.
콰앙!
불길을 머금은 봉황시가 배리어와 그대로 충돌했다.
치이이이익-
일점을 노린 촉끝에서부터 연기 같은 오라가 피어오르며 힘 싸움을 시작했다.
새하얀 불길이 푸른빛 보호막을 밀어내기 위해, 온 힘을 다하고 있었지만.
역시 다이아급 배리어를 뚫기에는 무리였다.
-ㅋㅋㅋ 역시 안 되네
-ㅅㅂ이거지!!! 이거 뚫으면 선 오지게 넘는 거지
-응~ 이미 선 졸라 넘었음~
-그래도 배리어를 뚫는 건 심하잖냐
-ㅇㅇ아무리 똥망겜이라도 말이 안 됨.
시청자들은 성지한의 창이 배리어에 막히는 걸 보곤 그래도 배틀넷이 최소한의 양심이 있다고 생각했다.
성지한이 아무리 플래시 골렘을 단칼에 베고, 정복자상의 인정을 받았다지만.
그래도 그건 어디까지나 게임 내에서 나온 보스급 몬스터를 이긴 거였으니까.
하나 이 배리어는 시스템이 서로 죽이라고 강제하는 요소인데, 이걸 깨는 게 말이 되겠나?
시청자들은 서바이벌 맵이 너무 시시하게 흘러가니, 성지한이 자기들을 위해서 색다른 도전을 한번 하나 보다 생각했다.
-에이 안 뚫린다니께?ㅋㅋㅋㅋ
-슬슬 노잼각 보이나
그렇기에, 성지한이 곧 포기할 거라 생각했지만…….
성지한은 아니었다.
‘가능하겠는데?’
성지한은 봉황시를 거두고 다시금 선인지로를 펼쳤다.
치이익-!
다시금 배리어에 불꽃이 피어올랐다.
노린 곳은 조금 전과 동일.
배리어는 아까보다, 살짝 움푹 들어가 있었다.
‘된다.’
쾅! 쾅! 콰앙! 쾅!
선인지로가 연속으로 펼쳐진다.
연이은 찌르기.
하단전의 내공이 급격히 사라지고.
상단전과 중단전의 힘도 금방 고갈되었지만…….
성지한의 연격은 갈수록 속도를 더해 갔다.
-???????????????
-뭐임? 몇 번 찌른 거임? 왜 속도가 빨라져?
-콰콰콰콰콰콰... 10번...?!
-그걸 또 세누
-13번임! 개빠름 미친;
그리고 14번째의 선인지로.
‘이게 마지막 내공.’
모든 단전의 힘을 모조리 끌어모은 찌르기에.
푸욱-!
보호막은 더 이상 버티질 못하고, 봉황시에 의해 꿰뚫리고 말았다.
물론, 뚫었다 하더라도 보호막 전체가 부서진 것은 아니었다.
단지 일점.
봉황시가 수없이 두드리던 그곳에만, 작게 구멍이 생겼을 뿐이었다.
하나.
그것만으로도 시청자들의 경악을 사기에는 충분했다.
-헐...
-진짜 뚫어? 이걸?
-와 이 정도면 대국적으로라도 빨리 실버 가야 한다.
-실버는 무슨ㅋㅋ 그냥 바로 골드 직행해도 될 거 같은데?
게임 시스템이 강제한 배리어를 어떻게 브론즈가 뚫을 수 있단 말인가.
시청자들은 경악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아쉬워했다.
-그래도 뚫린 구멍이 작긴 하다
-배리어 뚫고 엘프 만나보지는 못하겠네
-ㅋㅋㅋ진짜 그랬으면 바아아아로 구독자 떡상했쥬?
배리어를 뚫은 사실 자체는 놀라웠지만, 사람이 지나갈 수는 없는 크기.
이왕 뚫은 거, 좀 더 컸으면 관중석의 엘프에게 실제로 접근해 봤을 텐데.
시청자들은 그런 상황이 펼쳐지지 못함을 아쉬워했다.
한편.
성지한은 배리어를 꿰뚫었음에도 관중석의 엘프들이 별다른 관심이 없는 모습에 쓴웃음을 지었다.
‘이 정도로는 도발도 안 되나.’
특히 목표로 했던 검은 눈의 다크 엘프는 조금 전과 다를 바 없이, 똑같이 그 불길한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흠…….’
성지한은 창이 박혀 있는 배리어의 구멍을 바라보았다.
저 정도 크기면, 보호막의 차단 효과 없이 저 다크 엘프와 시선을 마주할 수 있겠지.
어차피 지금은 내공을 모두 소진했기에 뭘 할 수도 없었으니.
성지한은 구멍을 통해 직접 흑안의 엘프를 바라보자고 마음먹었다.
스윽-
봉황시를 빼자, 배리어가 순식간에 재생되려고 했지만.
성지한은 배리어가 메워지기 전에, 구멍을 통해 관중석 너머를 볼 수 있었다.
그리고.
‘이건……!’
성지한은, 회귀한 이후로 처음으로 등골이 오싹해짐을 느꼈다.
뚫린 배리어 너머의 공간.
그곳은, 암흑이었다.
마치 흑안의 다크 엘프가 자신을 바라보던 검은 눈처럼, 빛 한 줌 없는 불길한 어둠이 그 안에 일렁이고 있었다.
‘저것이…… 배리어 너머의 실체였나.’
스으으으-
그리고 곧 배리어가 회복되자, 배리어 너머의 광경은 아까와 똑같은 관중석으로 변했다.
엘프가 다크 엘프에게 시중을 받고, 맨 뒷자리의 다크 엘프는 시커먼 눈으로 성지한을 바라보는 장면으로.
하나, 흑안의 엘프를 지켜보는 성지한은 등골에 식은땀이 흐르는 걸 느꼈다.
‘……저 힘은 예상외다.’
배리어 너머에서 보였던 어둠은, 브론즈의 시선이 아닌 회귀 전의 기준으로 봐도 소름 끼치게 강력한 힘이었다.
이 정도는 되어야, 성좌라 할 수 있는 건가.
* * *
-갑자기 왜 저럼?
-성지한 놀란 거 처음 보네ㅋㅋㅋㅋ
-뭐임!!! 뭐 본 거냐고!!!!
-배리어를 들추고 엘프를 엿보았지만...거기엔 오직...
-쉿!
성지한의 방송을 바라보고 있던 시청자들은 어리둥절해하고 있었다.
구멍 속을 들여다보던 성지한이 놀란 표정이 된 것만 봤을 뿐, 어둠을 인지하지는 못한 것이다.
저 미증유의 힘을 관측한 건, 오로지 성지한뿐이었다.
[생존자가 50명입니다.]
[서바이벌이 종료됩니다.]
메시지를 보는 성지한의 눈은 한껏 가라앉아 있었다.
‘나머지 방향도 테스트는 해 보겠지만…….’
남쪽과 북쪽.
누가 봐도 여왕 같은 두 엘프가 있는 방향에도 같은 시도를 해 보겠지만, 이미 성지한은 반쯤 확신하고 있는 상태였다.
흑안의 다크 엘프, 그리고 아까 보았던 그 어둠이야말로 성좌 ‘그림자 여왕’과 관계가 있다고.
[서바이벌 게임에서 1등을 기록했습니다.]
[레벨이 1 올랐습니다.]
[1등 보상으로, 경험치와 GP 획득 증가량이 50퍼센트 증가합니다.]
[GP 1,500을 획득합니다.]
성지한은 이제는 당연해진 시스템 메시지를 치워 버렸다.
‘3게임 만의 레벨 업이군.’
이제는 레벨도 20대로 들어서서 그런지, 레벨 업 속도가 더뎌진 상태.
‘이대론 부족해.’
무력 능력치를 올린 성지한은 주먹을 쥐었다 펴곤 한숨을 쉬었다.
처음으로 성장 속도에 불만이 생긴 탓이었다.
저 강렬한 어둠에 대항하기 위해서는, 그림자 여왕을 도발하기 위해서는 더 많은 힘이 필요했으니까.
그렇기에, 성지한은 지금껏 쌓아 왔던 업적 포인트를 드디어 쓰기로 마음먹었다.
‘지금까지 쌓은 업적 포인트는 75,200.’
게임 내 굵직굵직한 업적 퀘스트는 이미 다 깬 상태였지만.
[채널의 구독자가 50,000명이 넘었습니다.]
[일반 업적, ‘구독자 모집 (2)’을 클리어했습니다.]
[업적 포인트 3,000을 보상으로 획득합니다.]
16레벨에서 22레벨까지 게임을 진행하면서, 구독자 퀘스트를 비롯한 소소한 퀘스트도 깬 덕에 업적 포인트를 조금 더 쌓을 수 있었다.
‘이제 이걸 사용할 때다.’
성지한은 업적 상점을 열어, 5만 포인트를 소모해 상점 업그레이드를 진행했다.
[업적 상점이 LV.5로 올랐습니다.]
[이제부터 하위 업그레이드 항목의 제한이 LV.2까지 오릅니다.]
[‘성좌 슬롯 추가’ 품목이 추가됩니다.]
성지한은 주르륵 뜨는 시스템 메시지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성좌 슬롯 추가.
‘언젠가는 나올 줄 알았는데, 예상보다 일찍 나왔군.’
시스템 메시지가 추가적으로 떠올랐다.
[현재 지구는 튜토리얼 시즌입니다. ‘성좌 슬롯 추가’ 품목을 구매해도 상태창에 드러나지 않습니다.]
‘하긴 지금은 성좌란 개념 자체가 없으니까.’
성지한은 업그레이드된 상점을 열어 보았다.
[업적 상점 LV.5]
-업적 상점 업그레이드 - 100,000P
-상태창 확장 LV.1 - 10,000P
-클래스 슬롯 추가 LV.2 - 50,000P
-인벤토리 확장 LV.1 - 10,000P
-칭호 슬롯 추가 LV.1 - 10,000P
-긴급 복구(아이템) - 10,000P
-성좌 슬롯 추가 LV.1 - 50,000P
눈살이 절로 찌푸려지는 가격.
‘비싸다…….’
상점 레벨 5가 되자, 업적 포인트의 소모량이 크게 늘었다.
클래스 슬롯 추가 LV.2도 5만 포인트를 소모했으며, 성좌 슬롯 추가도 위의 항목들과는 달리 5만 포인트나 소모했다.
‘상점의 효과가 워낙 뛰어나니 이 정도 지불하는 건 당연하겠지.’
그래.
업적 상점은 시스템의 근간을 왜곡할 정도로 사기적인 효과를 지니지 않았던가?
성지한은 그렇게 납득하며, 직면한 문제인 ‘그림자 여왕에 대항할 힘’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일단 클래스를 추가하는 건 무리다.’
지금 지닌 업적 포인트는 25,200.
클래스를 하나 더 추가하려면 5만 포인트가 드는데, 경험상 승급할 때까지 나머지 포인트를 모을 것 같지는 않았다.
‘인벤토리나 상태창 확장도 쓸모없지.’
둘 다 있으면 좋지만, 막상 지금 당장 전력에 추가되는 부분은 없었다.
지금 업그레이드 가능한 품목에서 그나마 도움이 되는 것은…….
‘칭호.’
성지한은 지금 장착하고 있는 칭호를 살폈다.
[튜토리얼을 제패한 자 - 브론즈]
-튜토리얼에서 1등을 한 플레이어에게 부여되는 칭호
-브론즈리그 안에서, 모든 능력치 +1이 오르며, 경험치 증가 20퍼센트 효과가 적용됩니다.
기본 중의 기본인 칭호였지만, 그래도 상당히 쓸 만했다.
‘그리고 이제 25레벨이 되면…… 칭호를 하나 더 얻을 수 있다.’ 25레벨.
브론즈에서 도달할 수 있는 끝이자, 승급전이 가능한 레벨.
하나 단순히 브론즈 한계 레벨에 도달했다고 칭호가 주어지지는 않는다.
‘그러나 나는 다르지. 무력 30이 되니까.’
무력 30.
이는 무명신공을 얻기 위해 필요한 ‘조건’이었다.
그리고 여기서 성공적으로 무명신공을 획득한다면…….
‘[무신의 후계자]를 얻게 되지.’
칭호, [무신의 후계자].
그건 성지한이 저번 생에서 죽기 직전까지 사용하던 엄청난 성능의 칭호였다.
그걸 장착한다면, 전력에 큰 도움이 될 터.
성지한은 칭호 슬롯을 추가하기로 결심했다.
[칭호 슬롯 추가 LV.1이 구매했습니다.]
[업적 포인트가 10,000P 차감됩니다.]
그렇게 한차례 업적 포인트를 소모하고 났을 때.
똑똑-!
방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