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레벨로 회귀한 무신 42화>
* * *
[이번 미션은 서바이벌입니다.]
둥! 둥!
콜로세움 맵의 개전을 알리는 북소리가 울려 퍼지자, 성지한은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서바이벌, 디펜스, 던전으로 나뉘어지는 모드 중 운 좋게 서바이벌에 걸린 것이다.
‘세아에게 들은 이야기를 검증해 볼 수 있겠군.’
-아~~~ 서바이벌 걸렸누
-ㅋㅋㅋㅋ볼 것도 없겠네. 또 학살 쇼잖아
-이젠 그 재미로 보는 거 아니었냐?
-ㄹㅇ검왕한테 처발린 것도 #&$^같은데 요즘 이거 보면서 스트레스 푼다
서바이벌 맵이 걸리자, 시청자들은 당연히 성지한이 1등을 할 거라고 확신했다.
물론 디펜스나 던전도 여태껏 성지한이 1등을 차지해 오기는 했지만.
두 맵은 그래도 혹시나 하는 변수라도 있다면, 서바이벌 맵은 이변이랄 게 없었으니까.
그래서일까.
시청자들은 곧 시작할 게임의 결과보다는, 오늘 터진 이슈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성지한 한일전 얘기했었음?
-개처발린 거 뭐하러 말하겠냐ㅡㅡ
-아 빨리 다이아 달고 정의구현 좀!!!!!!
-브론즈따리한테 정의구현ㅇㅈㄹ ㅋㅋㅋ 지금 성지한 배틀넷 들어온 지 한 달도 안 됐구만 -성지한이 검왕보다 브론즈 기록 좋거든?
-브론즈 기록ㅋㅋㄲㄱㅋㅋ 이딴걸로 비비려고하네
한일전 참패에 관한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검왕의 인터뷰에 대해서 흘러갔다.
-검왕 인터뷰 실화냐? 딸 없다고 하는 거 보고 개소름-이젠 광기까지 느껴지던데;;
-ㄹㅇ 원래 사람이 그렇게 싸가지가 없었음?
-감히!!!! 검왕님을 모욕하다니!!!!!
-검왕님은 개뿔 그냥 이토 새끼지
-??? : 이토 새끼라니! 고소시마쓰! PDF도 따리마셍!!!!
-ㅋㅋㅋㅋ 폰왕가 잘치누
-근데 오늘 경기 보고도 검왕가에 남아 있는 사람들 다 털렸겠는데?
-응~ 이 방에 있어~
경기 시작 전, 무수히 올라오는 채팅을 훑어본 성지한은 검왕가의 분탕이 확연하게 줄었다는 걸 체감할 수 있었다.
확실히 검왕이 광복절에 한국을 쳐부수는 모습은, 아직까지도 미련을 갖고 있던 이들에게 확실한 충격이 된 듯했다.
‘채팅방 분위기도 나쁘지 않아.’
진작에 쌍검상을 부수면서 선을 명확히 그은 데다, 이토 스스로도 딸이 없다고 이야기해서 그런지.
저번 생이었다면 매국노의 가족, 매국노의 딸 운운하며 비난을 쏟아 냈을 사람들이 지금은 윤세아에 대해 동정적인 뉘앙스로 이야기하고 있었다.
‘물론 이 채널의 구독자들은 나에게 기본적으로 우호적인 사람들이 많아서 그런 편이겠지만…….’
그래도 저번 생에 비하면 대중의 분위기가 하늘과 땅 차이였다.
성지한은 이런 반응에 만족해하며, 입을 열었다.
“이토에 대해서는 방송에서 언급하지 않겠습니다. 어차피 남남이니까요. 다만, 아직도 그놈에게 기대를 가진 분이 계신다면 빨리 정신 차리셨으면 좋겠네요.”
말하면서도 알고 있았다.
이런 상황에서도 남아 있는 검왕의 팬들이라면, 이런 말을 듣는다고 정신을 차릴 수 없다는 걸.
그럼에도 굳이 이렇게 말한 이유는.
‘검왕가가 날 증오해야 하니까.’
검왕가의 어그로를 꾸준히 자기 쪽으로 관리하기 위해서였다.
-그런 말한다고 들을 애들이 아닌데?
-ㄹㅇ우리 엄마 진성 검왕간데 미치겠음... ㅅㅂ검왕이 쌍검 휘두르는데 환호하더라니까???? 우리나라 쳐부순다고 꺆꺆대다가 아빠랑 싸움-싸울 만하네ㄷㄷㄷㄷ-우리 집은 아빠가 그래서 나랑 싸웠는데ㅋㅋㅋㅋ 검왕에 미친 사람들 어디에나 있는듯
검왕이 한국 대표팀을 박살 냈는데도, 그의 활약에 환호하는 케이스가 은근히 많았다.
미래를 알고 있는 성지한으로서는 어처구니가 없었지만…….
‘눈 돌아간 놈들을 어쩌겠어.’
당연하게도, 모든 사람들을 설득할 수는 없다.
미친놈들은 그러려니 할 뿐.
성지한은 화제를 전환하기 위해, 박수를 쳤다.
“자. 그럼 검왕 이야기는 여기까지 하고. 오늘부터는 서바이벌 맵에서 새로운 도전을 시작해 보겠습니다.”
-새로운 도전?
-서바이벌인데 더 할 게 있냐???
“예. 일명…… 배리어 깨기라고 하죠.”
-배리어?? 설마ㅋㅋㅋㅋㅋㅋ
-관중석에 있는 그 배리어 말하는 거임?
고개를 끄덕인 성지한은 방금 전 윤세아에게 들은 이야기를 떠올렸다.
* * *
-그림자 여왕의 후보군은 원래 두 명이었어.
기본적으로, 콜로세움의 관객석엔 여러 엘프들이 랜덤으로 소환된다.
엘프들이 다크 엘프에게 시중을 받는 것은 대부분 비슷했지만, 각자의 생김새는 매 게임마다 조금의 차이가 있었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단 세 명의 엘프만은 매 게임에 똑같은 모습으로 나왔다.
첫째로는, 통칭 ‘여왕 엘프’.
대부분의 엘프들은 다크 엘프를 한두 명 정도 거느리고 시중을 받았지만.
이 여왕 엘프만은 무려 네 명의 다크 엘프를 거느리고 다녔다.
-이 여왕 엘프는…… 그 어떤 엘프보다 화려하게 치장했어. 그림자 여왕이라는 단서에서, ‘여왕’에 걸맞다고 봐.
콜로세움의 북쪽의 정중앙에서, 권태롭다는 자세로 앉아 있는 여왕 엘프.
그게 윤세아가 꼽은 첫 번째 후보였다.
-그리고 다음 후보는 찾기 쉬워. 관계가 역전되어 있거든.
관계의 역전.
엘프들은 기본적으로 다크 엘프의 시중을 받고 있었지만.
단 한 명의 다크 엘프는 특이하게 흰 엘프 둘의 시중을 받으며 상석에 앉아 있었다.
-이 다크 엘프는 콜로세움의 남쪽에 있어. 아까 말한 여왕 엘프처럼, 남쪽의 정중앙이야.
여왕 엘프의 방향과 위치가 완벽히 대칭되는 다크 엘프.
-이 다크 엘프도 그림자 여왕 후보라고 생각해. 아까의 여왕 엘프와는 달리, ‘그림자’ 쪽에 포커스가 맞춰진 편이긴 하지만…….
북쪽의 여왕 엘프와, 관계가 역전된 남쪽의 다크 엘프.
이들은 모든 서바이벌 게임에서 동일하게 나와서, 이종족 직캠러들에게 가장 많이 찍히는 대상이었다.
이제는 인터넷에서도 심심치 않게 짤방으로 돌아다닐 정도였으니까.
-그치만 이 정도는 조금만 검색해도 나오는 사실이고…… 혹시 특이한 게 없나 찾아봤거든?
윤세아는 배틀튜버의 영상을 수없이 돌려 본 끝에.
저 둘 말고도 특이한 대상을 더 찾을 수 있었다.
-엘프들 중…… 검은 눈을 하고 있는 다크 엘프가 있어.
검은 눈의 다크엘프.
엘프 중, 흑안은 드물기는 했지만 없는 편은 아니었다.
하지만 윤세아가 지칭하는 검은 눈의 다크 엘프는 궤를 달리하는 생김새를 하고 있었다.
그저 홍채만 검은 것이 아니라, 흰자위까지 시커먼 다크 엘프였던 것이다.
-모습은 매번 달라. 머리 길이도 그때그때 다르고, 아름다울 때도, 못생길 때도 있어.
성지한이 비디오들을 확인해 보니, 아니나 다를까.
관중석 맨 뒤의 다크 엘프 하나가 눈 전체가 시커멓게 물든 채 관중석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것도 게임이 시작된 뒤 5분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모든 경기에서.
-이 다크 엘프는 관중석 맨 뒤에 있다는 것만 빼곤 위치가 랜덤이야. 하지만 특이한 점이 있는데…… 항상 그 게임의 1등과 시선이 정면으로 마주치는 곳에 있더라고.
-……그게 무슨 소리지?
-처음에 플레이어가 소환되었을 때 있잖아. 그 게임의 1등이 되는 플레이어와, 눈이 마주치는 방향에 흑안의 다크 엘프가 있어.
성지한은 그 말을 듣고 당황스러움을 감출 수 없었다.
그 게임의 1등이라니?
1등이 누가 될 줄 알고 맞은편에 위치한단 말인가.
아니, 애초에…….
-녹화된 게임에서 그것까지 다 찾아본 거야?
-응. 이 정도는 돼야 조사라 할 수 있잖아?
관중석에 있는 특이한 엘프를 찾는 것으로 모자라서.
검은 눈동자가 누구를 바라보는지 일일이 대조하다니.
‘심심해하지 말라고 가볍게 일을 부탁했을 뿐인데…… 맡기길 잘했군.’
학생회장답게, 조사도 대충하는 법이 없었다.
성지한은 정보를 정리했다.
‘단편적으로만 생각하면 남북의 엘프가 첫 번째 후보지만…….’
남북, 흑백의 여왕 엘프.
그들은 누가 봐도 자신이 우두머리라는 존재감을 내뿜고 있었다.
둘 중 누가 그림자 여왕이라고 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정도.
‘단순한 퀘스트였다면, 둘 중 하나가 여왕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어떨 때는 단순히 생각하는 게 정답인 경우도 많았으니까.
하지만 이번엔 무려 에픽 퀘스트였다.
퀘스트의 등급도 등급이었지만, 보상이 워낙 컸다.
브론즈에서 주어진 퀘스트임에도 보상이 무려 업적 포인트 5만에, 성좌의 흥미였으니.
그런 걸 고려해 본다면, 저렇게 대놓고 보여 주는 상대보다는, 흑안의 엘프가 그림자 여왕일지도 몰랐다.
‘흑안의 다크 엘프를 직접 봐야겠군.’
성지한은 소환된 자리에서, 관중석을 바라보았다.
당연히, 이 게임의 1등은 자신일 테니까.
그가 바라보는 방향은 동북쪽.
상당히 먼 거리였지만, 무력이 일취월장한 그의 시야에는 엘프들의 모습이 생생히 들어왔다.
그런데.
‘관중석 맨 위는…… 보이지 않는군.’
관중석의 맨 위층은 마치 안개라도 낀 양, 뿌옇게 변해 보이질 않았다.
자신의 시야를 차단하다니. 의도적인 일일까?
성지한의 입가에 웃음이 맺혔다.
‘가까이 가 봐야겠어.’
게임이 시작되고.
채팅창을 닫은 성지한은 곧바로 봉황시를 꼬나쥐고 달리기를 시작했다.
“으헉!”
“서, 성지한이다……!”
그가 달리는 쪽에 서 있던 플레이어들은, 성지한을 보자마자 몸을 피하려 했지만.
촤아아악!
봉황시의 촉은 그런 플레이어들을 간단히 꿰뚫었다.
“시…… 시바알……! 재수도 없지…….”
“조졌다…….”
브론즈리그 강남 1 에어리어에서 서바이벌 맵을 하는 플레이어들에게 있어, 이제 성지한은 그냥 자연 재해로 취급받고 있었다.
무조건 대항하지 말고, 피해야 하는.
그저 자기한테 오지 않기만을 바라면서, 멀찌기 튀어야 하는 괴물 중의 괴물.
성지한의 킬 수가 순식간에 늘어 갔다.
3에서 5, 5에서 10…….
플레이어들은 쥐 죽은 듯이 움츠렸다.
‘저 미친 괴물 새끼!’
‘여기는 오지 마…… 여기는 오지 말라고!’
‘전능하신 우리 구주시여 영원한 빛으로 날 보호하소서 거룩하신 지혜로 날 이끄시고…….’
아무리 배틀넷이 밸런스 따윈 없는 게임이라곤 하지만, 이건 너무 심하지 않나.
제발 좀 빨리 25레벨 찍고, 제발 좀 빨리 승급해서 다신 보지 말자!
이게 현재 게임에 참여하는 모든 유저들의 공통적인 생각이었다.
한편.
성지한은 가볍게 10킬을 달성한 이후, 공격을 멈췄다.
‘10킬이면 됐겠지.’
통계상 10킬이면 1등 확정이나 다름없으니, 더 이상의 학살은 필요 없었다.
오히려 여기서 너무 많이 죽였다가는, 게임이 일찍 끝날 우려가 있기도 했고.
“쿠르르…… 인! 간! 멈춰랏!”
동북쪽에 다다르자, 한 우르크 무리가 혼자 달려오는 성지한을 막아서려 했지만.
콰직!
성지한은 대꾸도 하지 않고, 우르크들의 머리를 가볍게 짓밟아 주었다.
순식간에 터져 나가는 머리.
성지한은 징검다리 건너듯, 우르크 무리의 머리를 발판 삼아 뛰어다녔다.
“쿠어……?”
순식간에 머리통이 사라진 동료들을 보고, 어안이 벙벙해진 우르크 대장.
하나 그는 곧, 성지한이 감히 범접할 수 없는 상대임을 알고 슬금슬금 몸을 피했다.
몬스터로 분류된 적마저 피하는 성지한.
그는 서바이벌 맵의 재앙과도 같은 존재였다.
‘이제 보이는군.’
그렇게 맵에 끝에 도달한 성지한은 배리어 너머로 원래 목표였던 흑안의 다크 엘프를 발견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