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레벨로 회귀한 무신 41화>
* * *
한 시간 후.
한일전은 성지한의 예측대로 끝이 났다.
1:3.
2, 3, 4경기의 MVP 역시 모두 검왕이 차지한 채 종료된 것이다.
GP의 정산은 배틀넷답게 바로 이뤄졌다.
한순간에 37배의 초대박을 터뜨려 버린 성지한이 빙긋 웃으며 핸드폰을 들어 보였다.
“자. 돈이 잘 복사되었지?”
“후우우…… 내 피와 땀과 눈물이…….”
일본 3:0 완승을 걸었다가 월급을 날려 버린 마시드는 울 것 같은 얼굴이 되어 있었다.
“그걸로 오브 샀다고 생각해.”
성지한은 배틀넷 마켓을 열어 장바구니에 넣었던 아라크네의 오브를 주문했다.
그러자 50만 GP가 연기처럼 사라지며, 아라크네의 오브가 인벤토리로 들어왔다.
“자.”
성지한이 5억짜리 아이템을 꺼내, 마시드에게 던져 주었다.
“어…… 어!”
마시드가 오브를 받더니 믿기지 않는 듯한 얼굴이 되었다.
그리고는 신줏단지 모시듯 발치에 내려놓고는, 눈을 부릅떴다.
아라크네의 오브.
축구공과 같은 크기에, 재질도 비슷한 이 물건을.
SSS급 기프트, ‘축구의 신’이 축구공으로 인식한 것이다.
“인식된다! 축구공으로 인식된다고! 기프트가, 이걸 받아들여!”
“잘됐군.”
“지, 진짜 될 줄이야…… 정말 이거. 내가 받아도 되는 건가? 되…… 되는 거지?”
“안 뺏어 간다. 계약했잖아.”
“아.”
“그리고 그걸 써 보는 건 레벨을 내리고 클래스 체인지한 뒤 써먹는 게 낫지 않겠어?”
“그, 그래야겠군.”
곧바로 트래핑을 해 보려던 마시드가 머쓱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오브를 인벤토리 안에 소중히 갈무리했다.
“정말로 될 줄이야…….”
마시드의 눈은 한껏 젖어 있었다.
내심 기대는 하고 있었지만, 진짜 실현될 줄은 몰랐으니까.
누구는 똑같은 SSS급 기프트를 받아, 저렇게 국가대표 경기에서 활약하고 다니는데.
자신은 축구공이나 차면서 브론즈를 전전하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이제는…… 다르다!’
2010년, 축구계의 슈퍼스타로 군림하던 때처럼.
이번에는 이 배틀넷에서, 최고가 될 것이다.
한 번 정상에 올라섰던 사내의 의지가 다시 활활 불타올랐다.
“정말로…… 고맙다.”
“이 정도 가지고 뭘.”
이 정도라니.
마시드는 성지한의 스마트폰을 확인하면서, 그가 배당받은 GP도 볼 수 있었다.
‘그가 이번 베팅으로 얻은 GP는 400만 GP였지.’
아라크네의 오브가 50만 GP였으니, 성지한은 베팅으로 얻은 거액 중 1/8을 떼 준 격이었다.
이제 얼굴 두 번 본 사이밖에 안 되는 자신을 위해.
그뿐인가.
그는 자신이 최고가 될 거라고 확신하며, 높이 대우해 주었다.
축구 교실 일과 함께 막노동을 전전하며, 자존감이 크게 떨어진 그에게는.
그의 존중이 크게 와 닿았다.
‘……지한. 이 은혜는 백 배, 천 배로 돌려주겠다.’
이날, 디에고 마시드가 느낀 고마움은 성지한의 예상을 한참 뛰어넘고 있었다.
10년간의 방황과 고난에, 마침표를 찍어 주었으니까.
‘네 기대에 부합하겠다. 그래서…… 꼭 네게 보답하겠다.’
한낱 계약으로 묶느니, 마음을 얻겠다는 성지한의 목적이 완벽하게 부합하는 순간이었다.
* * *
소드 팰리스의 정문 앞.
마시드와 헤어지고 안으로 들어가려던 성지한의 눈이 가늘어졌다.
웬 기자들이 진을 치고 있던 것이다.
그때.
찰칵- 찰칵-!
플래시 소리가 사방에서 터져 나오며, 정문 앞에 들어오는 한 외제차에 기자들이 몰려들었다.
“윤세아 님! 오늘 경기에 대해 한 말씀만 해 주십시오!”
“혹시 검왕의 인터뷰는 보셨습니까?”
“검왕이 ‘자신에게는 딸이 없다’고 했는데, 이 말씀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뭐?’ 성지한은 얼른 기자들이 모인 곳으로 달려갔다.
“이, 이 사람들. 여기서 이러면 안 돼요!”
험상궂은 운전기사가 기자들을 어떻게든 막아서려 하고 있었지만.
“아저씨는 비켜!”
“윤세아 님! 한 마디만 해 주십시오!”
“윤세아 님!”
물량 공세에 장사 없는 법.
기자들의 파도는 순식간의 운전기사의 가드를 뚫어 냈고, 카메라맨들은 일제히 뒷좌석으로 포커스를 맞췄다.
경기 결과만 보고 TV를 껐기에 검왕이 인터뷰에서 무슨 망발을 저질렀는지는 듣지 못했지만, 기자들이 저렇게 난리법석을 피우는 걸 보면 뭔가 말을 하긴 한 모양이었다.
‘이것들이……!’
성지한이 손을 뻗어 기자들을 일제히 뒤로 물렸다.
현실 세계에서 힘이 제약을 받는다고 해도, 어느덧 21레벨이 되어 26이 된 포스의 힘은 장정 수십 명을 컨트롤할 수 정도로 성장했다.
“어, 어어?! 몸이 안 움직여!”
“이…… 이건…… 성지한이다!”
천둥벌거숭이처럼 날뛰던 기자들의 입이 닫혔다.
플레이어가 아닌 윤세아에 비하면, 성지한은 건드리기 까다로운 존재였으니까.
그렇게 기자들이 성지한 쪽을 바라보며, 잠시 눈치를 살피기도 잠시.
‘이렇게 기자들이 많은데. 이미지 관리, 해야겠지?’
‘후후…… 지가 어쩌겠어?’
“성지한 씨!”
“오늘 검왕의 인터뷰 보셨습니까!”
“인터뷰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답변 부탁드립니다!”
용감하게 성지한에게도 질문 세례를 퍼붓기 시작했다.
몸은 움직이지 않아도, 입은 움직였으니까.
“…….”
그런 기자들의 질문 공세에도, 성지한은 무시 일변도를 고수했다.
“가자. 세아야.”
“……응. 삼촌.”
뒷좌석에서 윤세아를 데리고 나온 성지한이 김희수를 향해 꾸벅 고개를 숙였다.
“희수 양, 세아 데려다주셔서 감사합니다. 욕보셨네요.”
“아, 아니에요.”
손사래를 치는 희수에게 윤세아 역시 미안한 기색이었다.
“희수야…… 정말 미안해. 기사님도 죄송해요, 괜히 오늘 태워 달라고 해서.”
“에이. 괜찮아! 기자님들이 너무하네 진짜. 내가 우리 쪽 기자님들한텐 나중에 한마디 할게!”
집안이 언론사 가문인 김희수.
그녀는 충분히 기자들에게 한마디 할 자격이 있었다.
“……그래. 고마워.”
윤세아는 김희수의 말을 듣고 슬쩍 웃으며 손을 흔들어 주었다.
그리고 몸을 돌려 기자들을 보았을 때는.
순식간에 냉막한 얼굴로 변해 있었다.
“기자님. 이렇게 모이셔서 죄송하지만…… 저도 답변드릴 게 없어요.”
“윤세아 님! 윤세아 님! 우웁…….”
“검왕이 인터뷰에서 분명히……! 읍읍……!”
윤세아의 말을 그냥 무시하고 질문을 던지던 기자는 입을 끝까지 열지 못했다.
“그만하시죠.”
성지한의 포스에 의해 입이 완전히 틀어막혀진 것이다.
“히이익…….”
그걸 본 김희수의 운전기사가 자신도 모르게 몸을 움츠렸다.
자기도 주차장에서 당해 보지 않았던가.
이대로라면 온몸이 마비될 것 같은, 끔찍한 경험이었다.
“인터뷰는 받지 않겠습니다. 마비는 제가 건물 안에 들어서면 풀어 드릴 테니, 잠시만 기다려 주시죠.”
“…….”
기자들은 대답할 수 없었다. 그저, 고개만 끄덕일 뿐.
“가자.”
“응, 삼촌.”
그렇게 기자들의 입과 발을 모조리 틀어막은 채.
성지한과 윤세아는 함께 소드 팰리스 안으로 들어섰다.
그리고, 차 안에서 스마트폰에서 검왕의 인터뷰를 본 김희수는.
“검왕이 이렇게 인터뷰를 했다고…….”
윤세아의 뒷모습을 힐끔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검왕이 진짜 딸을 버렸구나.
“우리 세아. 진짜 끝났네……?”
김희수의 입꼬리 한쪽이 슬며시 올라갔다.
* * *
“삼촌. 아빠…… 아니지. 검왕이 뭐라고 이야기했는지 들었어?”
이제는 마음을 완전히 정리하려고 하는 것일까.
윤세아는 이토 류헤이를 검왕으로 지칭했다.
“글쎄. 나도 모르겠네.”
성지한은 이에 대해 못 들은 척, 소드 팰리스의 펜트 하우스로 들어섰다.
GP도 예정대로 얻고, 마시드와 계약을 잘 체결했으니 모든 일이 순탄하게 풀릴 줄 알았는데.
그놈의 검왕이 대체 인터뷰에서 뭐라고 이야기했기에 기자들이 저리 난리인지 싶었다.
“TV에서는 또 나오겠지? 삼촌. 같이 보자.”
“그놈 인터뷰를, 굳이?”
“……그래도. 삼촌이랑 같이 보면 좀 낫지 않을까?”
꾸욱-
성지한의 옷자락을 잡은 윤세아의 손아귀에 힘이 들어갔다.
지금까지는 씩씩하게, 아버지의 일본 귀화 사태를 이겨 나가고 있던 그녀였지만.
오늘은.
오늘만큼은 평소와는 달리, 조금 약한 모습이었다.
“……그래. 보자.”
성지한은 거실로 걸어가, 소파에 털썩 앉았다.
소파 뒤에는, 부서진 검왕의 얼굴이 그대로 전시되어 있었다.
삑-!
거실 TV를 켜고, 채널을 돌려 봤다.
과연 수많은 채널에선, 오늘 있었던 검왕의 인터뷰를 조명하고 있는 중이었다.
그중에서 검왕이 맨 처음부터 인터뷰를 하는 채널에 들어서니, 한글 자막과 함께 인터뷰 내용이 드러났다.
=1경기에서는 대체 왜 그런 행동을 하신 겁니까?
검왕이 자살한 1경기.
이에 대한 질문이 가장 많았다.
검왕 이토 류헤이는 이에 대해 유창한 일본어로 답했다.
-일본 국가 대표팀과 처음으로 손발을 맞추다 보니, 어색한 점이 많았습니다. 이들과 제대로 합을 맞추기 위해서는 수많은 시행착오가 있을 거 같아, 극약 처방을 내렸습니다.
=그래서 자살을…….
-자살이라기보단 전술적인 쇼맨십이었다고 봐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일본 대표팀에는 이제 제가 합류했습니다. 당당한 동북아시아의 맹주로 발돋움할 전력이 된 것입니다. 그런데도 전술은 이전의 것을 따르고 있었죠.
-……방어 위주의 소극적 전술을 타파하고 최강의 팀에 걸맞는 전술을 써야 할 때가 왔기에, 어쩔 수 없이 제가 고육지책을 쓴 것입니다.
헛웃음이 나왔다.
승부 조작 때문에 자살한 주제에, 참 말은 잘한단 말이야.
=아~ 그러셨던 거군요. 그럼 2경기에 대해서 알아볼까요? 2경기는…….
인터뷰의 흐름은 이후의 세 경기를 조명했다.
검왕이 완벽하게 지배했던 세 개의 시합.
한국 대표팀이 완전히 짓밟혀 버린 그 경기를 복기하는 인터뷰에서.
검왕 이토 류헤이는 너무나 즐겁게 미소를 짓고 있었다.
-이런, 이런…… 한국은 역시 약하더군요.
=호오, 그렇습니까?
-예. 저희 일본의 정신처럼 완전히 화합하니, 한국 대표팀은 저희의 상대가 되지 않았습니다. 한국은 동북아시아 리그에서 가장 경쟁력이 떨어져 보였습니다.
=그렇다면…… 리그 최하위 국가가 한국이 될 것이라 전망하시는 겁니까?
-절대로 그렇습니다.
한때는 한국의 희망이었던 검왕 윤세진이.
이제는 이토 류헤이로 이름을 바꾼 채.
예전의 모국이 리그 꼴찌가 될 거라면서, 웃으며 인터뷰를 하고 있었다.
이걸 보고, 속이 끓지 않는 한국인이 얼마나 있을까.
성지한은 굳이 인터넷을 찾아보지 않아도, 여론의 반응을 알 것만 같았다.
그리고 마지막.
=한국에 남겨 두신 따님에 대해 여러 이슈가 나오고 있습니다. 이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일본 기자의 질문에, 검왕 이토 류헤이는 명확하게 답변했다.
-무슨 말씀이신지 모르겠군요.
-네?
-저한테, 딸은 없습니다.
-어…… 그건…….
-저, 이토 류헤이는 모든 것을 포기하고 일본에 귀화했습니다. 그런 제게, 딸은 없습니다.
검왕 이토 류헤이는 산뜻한 미소를 지으며, 그렇게 답했다.
나에게 딸은 없다고.
예전의 부인이고, 딸이고 모든 것을 포기했다고.
“저거였구나.”
그리고 그 인터뷰를 본 윤세아는.
검왕 못지않은 미소를 짓고 있었다.
“저래서 기자들이 달라붙었구나.”
“…….”
“저딴 인터뷰에 무슨 답을 하라고 달라붙는 건지. 참…… 징그러워. 그치?”
“그래. 신경 쓰지 마라. 더러운 새끼들이니까.”
그의 말에, 피식 웃음을 지은 윤세아가 성지한의 옷깃을 꽉 잡았다.
“삼촌. 나 부탁 하나 좀 해도 될까?”
“무슨 부탁?”
“저번에 서바이벌 맵 퀘스트의 실마리를 찾으면. 내 부탁 하나 들어 준다고 했잖아.”
서바이벌 맵 퀘스트.
그건 브론즈급 퀘스트를 모두 깬 성지한에게 있어, 마지막으로 남은 숙제였다.
[에픽 퀘스트]
-콜로세움 맵의 관객석에 위치한 그림자여왕을 찾고, 그녀를 도발하라.
-보상 : 업적 포인트 50,000.
-성좌 ‘그림자 여왕’의 흥미.
무려 성좌의 흥미를 얻을 수 있는, 브론즈에서 가장 어려운 난이도의 퀘스트.
그것을, 윤세아는 자신 있는 목소리로 거론했다.
“세아야, 실마리 안 찾아도 들어줄 건데?”
“에이~ 그러면 재미없잖아.”
윤세아는 힘없이 웃으며, 말을 꺼냈다.
“나…… 찾은 것 같아. 그…… ‘그림자 여왕’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