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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레벨로 회귀한 무신-37화 (37/583)

<2레벨로 회귀한 무신 37화>

무명신공無名神功.

삼재무극三才武極.

선인지로仙人指路.

선인지로.

신선이 길을 가리킨다는 뜻으로, 삼재의 천지인 중 찌르기인 인人에 해당하는 기본 초식이었다.

‘지금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속도.’

그러니 기본 초식 중 선인지로를 선택한 것은 지극히 이 상황에 걸맞은 판단이었다.

화르르르!

봉황시가 시위를 아직 떠나지 않았음에도, 황금의 기마상은 벌써부터 불길에 뒤덮여 있었다.

감히 측정할 수 없는 어마어마한 화력.

검의 목표로 삼았던 활은 불의 장막에 가려져 보이지 않는 상태였다.

‘어중간해서는 이 장막을 뚫지 못한다.’

플래시 골렘을 베었을 때와는 달리, 보다 정교하고 보다 빨라야 했다.

그야말로 일점관통一點貫通.

‘그러기 위해서는…….’

상단전을 열어, 검의 궤적을 그려 낸다.

올곧게 뻗은 일직선의 검로.

그 끝이 목표로 하는 건, 화살을 지탱하는 활대였다.

중단전을 열어, 길을 터 낸다.

시야를 가리던 불길 속에, 작은 점이 생겨났다.

자신이 그린 검의 궤적이 펼쳐지기 위한 공간이었다.

그리고 마지막.

하단전을 열어, 검을 실제로 뻗는다.

열린 길을 따라 움직일 뿐인 검, 선인지로.

삼재三才의 인人에 해당하는 이 초식은 거창한 움직임 따윈 없었다.

제삼자가 보기에는, 단지 검 끝이 잠깐 흔들려 보였을 뿐이었으니까.

하지만.

그 한 번의 흔들림에 발출된 검기는 일반인은 상상도 못할 위력을 품고 있었다.

찰나의 시간.

성지한의 검에서 쏘아진 한 줄기 검기가 봉황시가 피워 올린 화염의 중심부를 꿰뚫고.

콰직!

화살을 얹던 거대한 활대를 부수며.

화살을 메긴 시위를 반으로 깔끔하게 갈랐다.

[으음……!]

정복자의 상에서 탄성이 흘러나왔다.

성지한이 내보인 극한에 다다른 찌르기.

그것이 노린 목표는 궁시를 막는 최적의 대상이었다.

활 없이는, 화살을 쏠 수 없는 법이기에.

슈우우우…….

봉황시에서 타오르던 열기가 순식간에 가라앉으며 공동 내부의 온도가 서서히 식어 갔다.

새하얀 연기를 피워 올리는 화살을 일별한 정복자의 상이 흐뭇한 눈빛으로 성지한을 바라봤다.

[약탈자여. 이름이 무엇인가?]

“성지한.”

[성지한…… 성지한. 훌륭하다. 고절한 검사로구나.]

팍!

그의 손에서 화살이 떠나, 성지한의 발 앞에 꽂혔다.

[내게 최상의 예를 보였으니, 이제 봉황시는 네 것이다.]

[정복자의 인정을 받았습니다.]

[지하 7층의 시험이 면제됩니다.]

메시지를 확인한 성지한의 눈이 가늘어졌다.

“면제?”

[그대는 이미 나에게 진정한 예를 표했으니. 다음부터는 도굴꾼의 예를 보이지 말라.]

그 말을 끝으로, 정복자의 상이 서서히 흩어져 갔다.

[차후에는 이런 곳이 아닌, 더 좋은 전장에서 만나길 고대하지.]

“……그래.”

배틀넷의 맵에는 수많은 전장이 있으니, 인연이 된다면 다시 만날지도 모르겠지.

성지한은 그리 생각하며, 사라져 가는 정복자의 상을 잠시 지켜보았다.

*   *   *

-어…… 대체 뭐 한 거임?

-보고도 모르겠누ㄷㄷㄷㄷ 빠른 모션은 자동으로 슬로우 비디오 적용되지 않냐??

-기세가 장난 아니었는데…… 갑자기???

시청자들은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도저히 감을 잡지 못하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선인지로는 속도도 속도지만 일점을 노리기 위한 특성상 매우 은밀한 무공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배틀넷에서 배려를 해 주고 있다지만, 일반인으로선 파악하기 힘들 수밖에 없었다.

한편.

정복자의 상을 배웅한 성지한은 만족스러운 미소를 짓고 있었다.

‘이번에는 힘의 수발이 보다 자유로웠군.’

예전에 무공을 펼쳤을 때에 비하면 상당히 발전된 결과였다.

처음 무공을 사용했을 때는 힘의 발출이 자유롭지 않아 섬천뢰보는 대지에 잔여 전류를 남겼고, 태산압정은 대지마저 갈랐지만.

이번에 시전한 선인지로는 그때에 비해 더 나아진 성취로 사용할 수 있었다.

‘이렇게 기본 초식을 자유롭게 다루게 된다면 상위의 무공 초식도 사용할 수 있겠지.’

그렇게 성지한이 무공에 대한 생각을 마칠 즈음.

시야 한쪽에서 채팅이 물밀 듯이 올라오는 것이 보였다.

-와. 근데 던전 맵 저렇게 깨면 자살 쇼도 안 통하겠네 -다케 쨩~~ 어쩐다냐?

-여러분…… 다케 쨩이 한 거 아니에욧! (???????) 저 같은 샐러리맨이 돈이 어디 있어서…….

-조용하더니 이제야 나왔누!!!

-이미 다 들켰다

-3억 엔이나 있으면 백수로 살지 왜 일하나요 ??? 왜 이역만리까지 와서 고생이란 고생은 하고 있겠어욧! 성 상…… 제발 믿어 주세요!!! ( ? ^ ? )

-일본 사람이 이역만리ㅇㅈㄹ ㅋㅋㅋㅋㅋㅋ

채팅 내용 자체는 실없었지만, 다케다는 자신에게 쏠린 자살 청탁 혐의를 완강히 부정하고 있었다.

심증은 있지만, 확실한 물증은 없는 상황.

‘하지만…… 굳이 다케다를 멀리할 필요는 없다.’

지금 당장은 채널의 발전을 위한 불쏘시개 역할이 필요하니까.

다만, 나중을 대비하기 위해서라도 확실한 증거를 잡긴 해야겠지.

‘마침 할 일이 떠올랐군.’

성지한은 눈앞에 꽂혀 있는 봉황시를 뽑아 직접 휘둘러 보았다.

부웅- 부웅-

‘꽤 무게가 나가는군.’

약간의 무게감이 있다는 것만 빼면 완벽한 창이었다.

그마저도 시간을 들여 적응한다면 당분간 주무기를 걱정할 필요는 없어 보였다.

‘바로 써 볼까.’

성지한은 주변을 둘러보았다.

이미 봉황시의 불길에 잠겨 탈락한 아처와는 달리, 워리어는 아무래도 직업적인 특성 때문인지 아직도 목숨을 부지하고 있었다.

스윽-

성지한이 워리어를 향해 창을 겨누자, 워리어의 눈이 절망에 휩싸였다.

‘아, 안 돼……!’

비록 10억은 놓쳤을지라도, 이대로 무임승차하는 줄 알았건만.

눈앞의 남자는, 조금의 이득도 허용하지 않았다.

“동료를 따라가라.”

푸욱!

성지한의 새 무기, 봉황시가 워리어의 몸을 무정히 꿰뚫었다.

*   *   *

배틀넷 아카데미의 카페테리아.

번쩍!

게임을 마친 성지한이 모습을 드러냈다.

오른손에는 한 자루의 창과 같은 거대한 화살, 봉황시를 든 채.

그 모습을 본 스카우터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헉…… 저, 저거!”

“전리품이 아니라 장비였어?!”

배틀넷 게임의 4가지 모드 중, 던전은 유용하게 쓰이는 보조 아이템부터 온갖 장비 아이템까지 획득할 수 있는 모드다.

때문에 성지한이 물건을 들고 나오는 것도 크게 이상한 일이 아니었지만, 스카우터들이 놀란 부분은 다른 부분에 있었다.

‘브론즈 던전에서 장비가 나온다고……? 한 번도 못 들어 봤어!’

‘정복자의 황릉은 끽해야 금괴 한두 개가 GP로 환산될 뿐 아니었나?’

그 흔한 보조 아이템도 나오지 않는 터라, 오죽하면 ‘찌질이’의 황릉으로 불리는 던전이 아니던가.

한데, 이번에 성지한이 가지고 나온 봉황시는 뭐란 말인가.

‘적어도…… A급이다!’

겉모습만 봐도 알 수 있었다.

금빛과 은빛이 교차하며 빛나고 있는 창끝.

그것이 풍기는 예기는 멀리서 이를 지켜보는 스카우터들의 등골도 서늘하게 만들 정도였으니까.

“인벤토리.”

성지한은 봉황시를 인벤토리에 집어넣고, 다시 자리에 앉았다.

달그락. 달그락.

이하연에게 보란 듯이, 플라스틱 컵 안 얼음을 흔들어 보이는 성지한.

다사다난했지만, 게임 시간 자체는 오래 걸리지 않았기에, 얼음은 정말 반쯤 녹은 상태로 아직 형태를 유지하고 있었다.

이하연이 허탈한 눈으로 성지한을 바라봤다.

“……진짜, 얼음 녹기 전에 오셨네요.”

“예. 약속은 지키는 타입이라.”

쭈욱-

한차례 커피를 들이킨 성지한이 이하연을 바라보며 빙긋 웃었다.

“근데 우리 부장님은 어떤 타입인지 궁금하군요. 약속을 지키시는지. 아니면 한 입으로 두말하는지.”

지금껏, 성지한 앞에서 화사한 미소만을 지어 오던 이하연이었지만.

“……어머나. 이런 우연이. 저도. 마찬가지. 랍니다. 약속을 철저히…… 지키는 타입이거든요.”

이번만큼은, 애써 억지로 웃음을 지어 보였다.

“상태창.”

자신의 상태창을 소환한 이하연.

그녀는 그걸 보며 잠시 표정을 굳히다…….

‘으으…….’

상태창 우측 하단에 있는 공개 버튼을 눌렀다.

“자! 봐요. 봐!”

능력치 평균 9.5의 준수한 재능을 지닌 이하연.

“혹시 오해할까 봐 말씀드리는 건데.”

그녀는 상태창을 들어 보이며 불퉁해진 얼굴로 말했다.

“저, 거짓말은 안 했어요. 서포팅 기프트 따위. 없는 거나 마찬가지니까.”

[기프트 - 육성 (등급 A)]

-서포팅 기프트입니다. 다른 플레이어가 빠르게 성장할 수 있도록 돕습니다.

“…….”

성지한의 눈빛이 깊어졌다.

드디어 확신할 수 있었다.

‘이하연…… 네가 제로가 맞구나.’

찬란한 재능 덕에 이민자임에도 아메리칸 퍼스트 길드의 2군 길드장으로 군림하던 제로.

그녀가 이하연이라는 것을, 눈으로 확인한 것이다.

성지한의 입가에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씨익-

“……참 너무하시네요. 아무리 그래도 면전에서 그렇게 비웃으시다니.”

“아뇨. 좋아서 웃은 겁니다.”

스윽-

성지한은 핸드폰을 내밀었다.

“번호 좀 주시죠. 이하연 씨.”

“어…… 음.”

이하연은 성지한의 핸드폰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살면서 헌팅은 수도 없이 당해 본 그녀였지만, 이 사람같이 번호를 어디 맡겨 놓았었다는 것처럼 당당히 달라는 남자는 처음이었다.

“……저번에 드린 명함에 쓰여 있잖아요?”

그래서 한 번 튕겨 봤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가관이었다.

“아, 그거. 잃어버렸습니다.”

“허어어어.”

철옹성 같던 이하연의 표정 관리를 무너뜨리는 한마디였다.

‘내 명함이 어디 있는지도 모르면서. 갑자기 번호는 왜 달라는 거지?’

기프트를 보고 난 이후 완전히 뒤바뀐 태도.

이 쓸모없는 기프트가, 성지한의 관심을 끌 만한 요소라도 있는 건가?

이하연으로선 도저히 영문을 알 수 없었다.

‘……일단 할 건 해야지.’

휙!

이하연은 성지한의 핸드폰을 받아 번호를 입력했다.

[이하연 부장님♡]

거기에 남들이 보면 오해할 만한 이름으로 저장하기까지.

그리고 그 상태에서 통화까지 눌러, 성지한의 번호를 확실하게 확인했다.

‘그의 생각이 무엇이든, 기회가 왔을 때 번호는 얻어야 해.’

성지한은 자신이 유망주 따위가 아니라, 확실한 패라는 것을 스스로 증명해 냈다.

이렇게 돼 버린 이상, 성의 없는 헌팅이든 뭐든 확실히 점수를 따야 했다.

“자, 제 번호. 맞죠?”

“그렇군요.”

다시금 표정을 바꾸고 화사한 미소를 지으며 핸드폰을 들어 보이는 이하연이었다.

“그런데…… 정말 계약은 안 하실 건가요?”

“네. 공약대로 1등 뺏기면 그때 생각해 보겠습니다.”

그 말을 끝으로, 성지한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종종 연락드리겠습니다. 부장님께서도 은사님 보셔야죠.”

“아, 아아! 네, 맞네요! 시간이 어느새…… 들어가세요!”

그렇게 카페테리아를 나선 성지한은 곧바로 [이하연 부장님♡]으로 저장된 번호 이름을 [이하연=0]로 바꿨다.

그사이.

“서, 성지한 님! 시간 괜찮으십니까!”

“잠시만. 저희 말씀 좀……!”

카페테리아에서 대기하고 있던 스카우터들이 앞다투어 접근해 왔지만.

‘이제 볼일은 없다.’

성지한의 발이 대지를 박차자, 원래 거기 없었던 것처럼 완전히 사라져 버렸다.

다시금 패닉에 빠져 버린 스카우터들.

그 모습을 본 이하연은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역시 번호…… 확실히 얻길 잘했어.’

자기는 그래도 저렇게 닭 쫓던 개 꼴은 되지 않았으니까.

‘연락…… 내가 먼저 해야겠지?’

이런 게 을의 입장이란 건가.

내가 어쩌다 이렇게 된 건지.

이하연은 쓴웃음을 짓고는 임가영에게 말했다.

“가영아. 집에 가자.”

“은사님께 인사는…….”

“하겠니?”

*   *   *

우우우웅-

피곤한 몸을 이끌고 주차장으로 내려가던 이하연은 별안간 울려 퍼지는 진동음을 느끼고, 부랴부랴 핸드폰을 꺼냈다.

발신인은…….

“성지한?!”

내용은 충격적이었다.

[예전부터 제 구독자라고 하셨죠?]

[오랜만에 승부 예측, 하나 픽해 드리죠.]

[8.15 한일전 결과]

[1경기 : 한국 승 / MVP 이진욱]

[2, 3, 4경기 : 일본 승 / MVP 이토 류헤이]

[재미 보시길.]

“……뭐야, 이거?”

성지한이 그녀에게 보낸 첫 문자.

그건, 일주일 후에 있을 한일전의 승부 예측 결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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