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레벨로 회귀한 무신 34화>
* * *
검은 독수리 길드.
이곳은 10대 길드 안에는 들지 못하지만, 꽤 상위권에 속하는 명성 높은 길드였다.
그리고 강남 에어리어 1 플레이어로 들어온 검은 독수리 파티원들은 차후 진지하게 프로를 목표로 할 만큼 촉망받는 이들이었다.
하지만 그들에게도.
‘백만 GP…….’
‘시, 십억을?’
10억이라는 돈은 너무 컸다.
‘시청자 미션에는 장난을 칠 수 없어. 돈이 없으면 저렇게 걸질 못한다. 십억은…… 진짜야.’
꿀꺽.
워리어는 자신도 모르게 침을 삼켰다.
10억.
아무리 길드 내 유망주라고 해도, 브론즈 계약을 맺고 있는 그로서는 엄두도 내지 못할 금액이었다.
물론 그가 이대로 승승장구해서 골드 리그까지 올라간다면 그때는 저 거액도 충분히 벌 만한 액수로 느껴질 테지만.
‘……골드까지 가는 건 쉽지 않아.’
워리어는 생각했다.
몇 개월을 강남 에어리어에서 굴러 본 결과, 프로의 벽은 쉽지 않았다.
애초에 최상급의 기프트를 지녔으면 10대 길드에 들어갔지, 그 아랫급인 검은 독수리 길드에 가입하진 않았을 것이다.
재능은 있지만 진짜들 사이에서는 어중간한 사람.
워리어는 자신이 그런 부류라고 자평했다.
그런 자신이, 실버 승급전을 통과한다 해도 과연 골드의 벽을 넘을 수 있을까?
아니.
‘지금 자살하면, 평판이 좀 떨어질지 몰라도…….’
10억이란 돈은 그래도 될 힘을 지니고 있었다.
‘혹시 몰라. 생각보다 평판이 많이 안 떨어질 수도 있어.’
워리어도 성지한의 채널을 몇 번 봐 왔기에, 채널 안의 기류를 알고 있었다.
성지한의 상태창을 보고 싶어서 1등이 안 되길 바라는 사람들이 상당히 많았지 않나.
그가 놀라운 힘을 보여 주면 보여 줄수록 그의 능력을 궁금해하는 사람들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그러니 여기서 자살을 한다고 해도, 욕 좀 먹다 말겠지.
‘그래, 죽자!’
워리어는 주위를 살폈다.
그의 눈에 동료 길드원들이 수상쩍은 행동을 하는 게 보였다.
궁수는 화살을 하나 꺼내, 슬그머니 자신의 목으로 가져가고 있고.
마법사는 몬스터도 없는데 주문을 외우려는 준비를 하고 있었다.
워리어의 마음이 다급해졌다.
‘이놈들도…… 검왕가한테 미션을 받은 거야!’
미친놈들 같으니라고.
셋 다 10억씩 미션을 걸어 버린 건가?
그럼 다 같이 죽으면, 돈은 누가 받는 거지?
‘……어떻게 될지 모르니, 내가 먼저 죽어야 해.’
굳게 결심한 워리어가 검 끝을 자신의 목으로 돌렸다.
배틀넷을 하면서 자살을 할 줄은 꿈에도 몰랐지만.
어차피 게임 안에서의 일이다.
죽어서 빨리 미션을 클리어해야…….
휙!
“엇……!”
힘차게 목을 찌르려던 검이 목울대 바로 앞에서 멈췄다.
‘우, 움직이지 않아?’
이제 조금만 더 깊숙이 찌르면 되는데……!
온몸이 미지의 힘에 의해 억압되어 움직이지를 않았다.
그리고.
“역시.”
앞에서 걸어가고 있던 성지한이, 어느새 뒤를 돌아본 채 입가에 차가운 웃음을 머금고 있었다.
저벅저벅-
발자국 소리가 천둥처럼 크게 들려온다.
워리어는 눈동자를 돌려 주변을 훑었다.
자신뿐만이 아니라, 길드원 모두가 완전히 억눌려서 움직이질 못하고 있었다.
‘염동력……! 이런 일이 있을까 대비한 건가!?’
지금 생각해 보니 마음에 걸리는 점이 있었다.
성지한의 힘이라면 그냥 혼자서 게임을 진행하며 길을 미리 뚫어 놓아도 됐는데, 그는 굳이 파티원들과 멀리 떨어지려고 하지 않았다.
적을 상대할 때도 일정 거리는 꼭 유지하는 모습이었지.
그때만 해도 자신들을 지켜 주기 위해 그런 줄 알았는데…….
‘우리를 감시하기 위해서였어!’
생각이 거기까지 닿자,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할 거면 진작 하시지.”
툭, 툭툭.
성지한의 손가락이 워리어의 몸 이곳저곳을 두들겼다.
두터운 갑옷이 종잇장처럼 꿰뚫리고.
“어…….”
순간, 워리어는 몸의 자유를 잃어 버렸다.
아니. 정확히는 얼굴과 목만 움직일 수 있었다.
“소, 손발이…….”
방금 전과는 완전히 다른 느낌.
아까는 강력한 외부의 힘에 의해 억지로 짓눌려 있었다면 지금은 몸이 아예 말을 듣질 않았다.
‘이, 이건!’
워리어는 그제야 워리어 클래스의 상위 직업, ‘무림인’이 펼치는 수법을 떠올랐다.
‘설마 점혈…….’
챙그랑-
검과 방패가 볼품없는 소리를 내며, 워리어가 힘없이 쓰러졌다.
사지불수가 된 건 워리어뿐만이 아니었다.
“아……!”
“왜, 왜 이러세요!”
겨우 움직이는 목을 돌려 뒤를 돌아보니.
나머지 길드원 두 명도 실 풀린 꼭두각시처럼 무력하게 쓰러지고 있었다.
그들을 차가운 시선으로 내려다보던 성지한이 한마디를 툭 내뱉었다.
“10억이 그리도 갖고 싶었나?”
“어, 어떻게 그걸…….”
워리어가 놀라 반문했다.
설사 미리 대비를 했다 해도, 어떻게 금액까지 특정할 수가 있지?
“알려 주는 사람이 있었거든.”
성지한의 시선이 허공을 향했다.
정확히는.
[BJ금빛이 10,000GP를 후원했습니다.]
[성지한 님! 저 길드원들이 10억 받고 자살하려고 해요! 조심하세요!]
그의 시야 한구석에 뜬 후원 메시지를.
* * *
방금 전.
-지한 님, 저! 지한 님 편집자! 편집자 하고 싶어요!
-괜찮아요.
성지한에게 단칼에 거절당한 이후.
‘아아…….’
BJ금빛은 이틀 동안 방송도 거른 채, 축 처져 있었다.
“지한 님과 함께 방송을 만들어 나가면, 배틀튜브의 전설의 레전드로 남을 수 있을 텐데…… 이렇게 기회가 사라지다니요.”
그에게는 꿈이 있었다.
배틀튜브의 최고가 되겠다는 꿈이.
비록 지금은 트롤 짓이나 하며 심해 탐험 콘텐츠나 하고 있는 신세지만.
언젠가는 방송인으로서 최고가 되겠다!
그게 BJ금빛이 지니고 있는 원대한 야망이었다.
‘하지만 저 혼자만으론 무리예요.’
BJ금빛은 자신의 한계를 잘 알고 있었다.
외모도 괜찮고, 기프트도 A급이지만 그것만으로는 배틀튜브에서 최고가 되기에는 부족했다.
검왕 같은 초일류의 플레이어만이 배틀튜브의 정상에 군림할 수 있었으니까.
‘그 가능성을 성지한 님에게서 봤는데…… 이대로 놓치다니…….’
우울하다.
우울해-!
그렇게 BJ금빛이 한숨을 쉬며 침대를 뒹굴고 있을 때.
띠링!
-성지한 님이 방송을 시작했습니다.
핸드폰에서 알람이 울렸다.
“으잉? 이 시간에?”
BJ금빛이 화들짝 놀란 눈으로 시계를 바라보았다.
이른 아침.
모두 회사에 출근하거나 학교에 등교하느라 시청자 수가 가장 적을 시간대가 아닌가.
이런 똥 같은 때에 방송을 하다니!
“아, 이러니까 제가 옆에서 조언을 드려야 하는데……!”
BJ금빛은 그렇게 한탄하면서도, 호다닥 성지한 채널에 입장했다.
어느새 15레벨이 되어 던전 맵에 들어서 있는 성지한.
그는 여느 때와 다름없이 압도적인 힘으로 던전을 공략하고 있었다.
게임 자체는 너무나도 스무스하게 흘러갔다.
‘이대로라면 1등을 하시겠군요. 문제만 없다면…….’
BJ금빛은 불현듯 예전, 김규혁의 트롤링이 떠올랐다.
그때도 검왕가의 사주가 있었지.
‘저 사람들 채널도 한번 들어가 볼까요.’
BJ금빛의 표정이 여느 때와 달리 침착하게 가라앉았다.
그렇게 성지한 채널은 핸드폰으로 보고.
컴퓨터로는 다른 사람들의 채널에 하나씩 접속하여 지켜보던 어느 순간.
검은 독수리 길드원들의 채널에 검왕가 아이디를 쓰는 사람들이 갑자기 들이닥쳤다.
[지금 당장 자살하여 성지한의 1등을 저지하라.]
보상 : GP 1,000,000
터무니없는 보상이었다.
‘백만 GP라니. 말도 안 돼!’
BJ금빛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단순히 검왕가 사람들의 원한 맺힌 후원이라고 하기엔 과도한 액수였다.
무엇보다 파티원들의 채널에 동시다발적으로 들어온 건, 누가 봐도 수상쩍은 일이었다.
‘일단 스샷을 찍고…….’
BJ금빛이 눈을 반짝였다.
성지한에게 이 사실을 하루빨리 알려야 한다.
그러려면 후원 메시지를 보내야겠지.
성지한이 책정해 놓은 최소 후원 금액은 10,000GP.
무려 천만 원이 필요했지만.
‘괜찮아.’
한때 골드리거였던 BJ금빛이 아닌가.
그에게는 1,000만 원보다, 자신의 꿈을 이뤄 줄 성지한의 신뢰를 얻는 것이 더 중요했다.
그의 손가락이 다급히 움직였다.
[성지한 님! 저 길드원들이 10억 받고 자살하려고 해요! 조심하세요!]
이는 다케다, 윤세아를 이은 성지한 채널의 세 번째 후원 메시지였다.
* * *
성지한은 예전 디펜스 게임 당시, 배신한 김규혁에게 자초지종을 들었을 때 살짝 개운치 않은 느낌을 받았다.
‘크리스털을 부수는 데, 5천만 원을 건다?’
5천만 원.
그것도 검왕가 팬들이 십시일반으로 모아 만든 금액도 아니었다.
검왕가 898이라는 큰손이 한 번에 투척한 미션 금액이었다.
아무리 검왕에 대한 팬심이 남다르다 할지라도 쉽게 납득이 갈 만한 일이 아니었다.
‘……오히려 나한테 쌍욕을 하라고 시킨 검왕가 놈이 더 팬 같았지.’
다만, 의심스러운 정황이 있어도 단 한 번의 케이스로는 속단하긴 일렀다.
진짜 그냥 팬심이 워낙 두텁고 돈이 남아 돌아서 5천만 원을 투척할 수도 있을 테니까.
하지만.
BJ금빛이 메시지로 알려 준 10억이란 금액은 선을 넘었다.
“여러분, 이상하죠?”
게임 중, 채팅을 막아 둔 성지한이었지만 그는 얼마든지 시청자들을 향해 말을 걸 수 있었다.
“5천만 원일 때는 그럴 수도 있다 생각했습니다. ‘그’ 검왕가니까. 큰손이 후원할 수도 있겠다 싶었죠.”
-ㅇㅇ5천은 뭐…….
-금빛이 성지한 죽이라는 미션 받았을 때도 몇천 모였을걸?
-근데 그건 검왕가 애들이 몰려가서 모인 거잖아. 한 명이 후원한 거랑은 좀 다르지 않나?
-킹정하는 부분.
“하지만 10억은 이야기가 다릅니다. 정확히는…….”
성지한의 손가락이 세 플레이어를 한 번씩 가리켰다.
“30억이죠.”
-에이 30억은 선 넘었지
-성지한 한 번 엿 먹이려고 30억을 태운다? 아무리 검왕가라도 그렇게 돈#&^%하는 미친놈이 어디 있음?
-재벌 2세?
-응~ 재벌들 검왕 손절했어~
한때는 검왕의 팬을 자처하던 재벌들이 많았지만.
그가 일본으로 간 이후에는 모두 그와의 친분을 과시하던 게시글을 삭제하고 광고를 내리는 등 선을 긋는 행동을 보여 주고 있었다.
여론은 시간이 지날수록 검왕을 혐오하게 될 테니, 괜히 불똥이 튀기 전에 얼른 손절한 것이다.
-그럼 누구임?
-검왕가 아냐?
-걔들이 모여서 돈 모은 것도 아니고 저건 한 방에 투척한 건데?
5천만 원도 아니고, 30억.
아무리 검왕가라고 해도, 이건 말도 안 되는 액수였다.
“이건 단순히 검왕가가 한 일이라고 볼 수 없죠. 그보다 더 큰 세력. 30억이란 돈을 겨우 이런 일에 투척할 만큼 자금력이 막강하면서. 제 상태창을 어떻게든 보고 싶어 하는 집단…….”
흐음.
성지한은 짐짓 턱을 매만지며 고민했다.
“과연 누굴까요?”
성지한이 나열한 조건에 걸맞은 상대.
성지한이나 시청자들이나 왠지 한 사람이 떠올랐다.
-어…… 설마?
-다케쨩?????
-신자위대 돈 졸라 많잖아.
-맞음! 맨날 쪽지함 열어 달라~ 상태창 공개해라~ 하고. 수상하다!!!!
-아냐, 중국일 수도 있어.
-중국은 무슨, 천조국이지!
갑론을박이 펼쳐지는 채팅창.
성지한은 잠깐 뜸을 들이다가, 선언했다.
“제가 내건 조건을 수정하겠습니다.”
-조건?
-상태창 공개 조건 말하는 건가?
-1등 공약 폐지하누
-아, , , , 그냥, , , 공개하지, , , 그거, , , 비싼척하네!
-비싼 척이 아니라 쟤 ㄹㅇ비쌈
이번 기회에 1등을 계속하겠다는 공약을 폐지하겠다는 건가?
시청자들이 그렇게 예상을 하고 있을 때.
“구독자 20만을…….”
성지한은 그들의 예측과는 달리.
“100만으로 수정하지요.”
구독자 숫자를 늘려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