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레벨로 회귀한 무신 32화>
* * *
다음 날 아침.
“역시 이 차가 편해.”
윤세아가 안전벨트를 매고는 씩 웃었다.
“어제 탄 외제차도 좋지 않았어?”
“당연히 차는 좋았는데, 희수가 자꾸 ‘세아야~ 이제 어떻게 하니’이러면서 걱정해 주는데…… 그 걱정 자체가 좀 껄끄럽달까. 별로 그런 거, 듣고 싶지 않은데 말이야…….”
성지한은 윤세아의 말이 무슨 의미인지 알 것 같았다.
남들은 걱정해 준다고 하면서 ‘어떻게 해~ 어떻게 해~’ 말하지만.
정작 받아들이는 사람 입장에서는 그다지 위안도 되지 않고, 오히려 놀리는 건가 싶을 때가 있지.
“역시, 그냥 이 차 타고 다니자.”
“에이. 그래도 굳이 태워 준다는데 안 탈 필욘 없잖아? 괜찮아…… 응?”
한창 말을 하던 윤세아의 눈이 살짝 커졌다.
성지한이 어제 주차했던 17번 자리.
거기에는 웬 화려한 스포츠카가 주차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곧 차문이 열리더니.
“오셨습니까.”
양복을 차려입은, 키가 큰 여성.
이하연의 보디가드, 임가영이 차에서 나와 성지한 쪽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저분, 이성 부장님 보디가드 아니야?”
“그러네? 여기 있어. 내가 나가 볼게.”
“나도, 나도 갈래!”
눈을 반짝이는 모습을 보아하니 말을 들을 생각이 없어 보였다.
살짝 고개를 끄덕인 성지한은 차를 옆자리에 주차한 후, 밖으로 나섰다.
“어머. 성지한 님!”
성지한 일행이 나오자, 스포츠카의 조수석 문이 열리며 화사한 미모를 뽐내는 이하연이 걸어 나왔다.
“이런 데서 뵙네요.”
“절 기다리고 계셨습니까?”
“어머, 기다리긴요. 우연의 일치랍니다. 제가 여기 졸업생이라서 은사님 뵈러 왔거든요.”
“이런 이른 아침예요?”
“인사는 아침에 드려야죠. 호호, 윤세아 님도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부장님!”
나름 화기애애하게 대화를 나누는 두 일행.
“그러고 보니 세아 양, 아카데미 학생회장이시던데…… 저랑 인연이 깊네요.”
“네? 어떤 면에서요?”
“저도 아카데미 4대 학생회장이었거든요.”
“아~ 그렇군요~.”
노골적인 너스레로 들렸는지, 세아의 말투가 국어책으로 변했다.
한편, 다시 성지한에게로 시선을 돌린 이하연은 본론을 꺼냈다.
“이렇게 만난 것도 인연인데…… 커피 한잔 어떠세요?”
“저랑요?”
“네.”
“은사님 뵌다면서요.”
“어머, 지금 생각해 보니 아침에 바쁘실 것 같아서요. 마침 아카데미에 괜찮은 카페가 있기도 하고요.”
“뭐…… 그러죠.”
성지한은 선선히 고개를 끄덕였다.
용건이야 뻔할 뻔 자다.
‘원래 다른 길드 사람이라면 단칼에 거절했겠지만…….’
‘제로’의 유력 후보인 이하연과는 인연을 유지할 필요가 있었다.
“삼촌, 부장님이랑 커피 마시러 갈 거야?”
“응, 그러려고.”
“알았어. 그럼 같이 올라가자.”
성지한은 고개를 끄덕이며, 이하연 일행과 함께 엘리베이터를 탔다.
* * *
배틀넷 아카데미의 카페테리아.
아침 시간에는 거의 이용하는 사람이 없는 이 장소에는 평소보다 많은 사람들이 자리에 앉아 있었다.
정갈한 양복을 차려입은 그들은, 누가 봐도 사회인이었다.
“엇…… 성지한이다!”
“옆엔 이성의 이하연 부장 아니야?”
성지한과 이하연이 카페테리아에 들어서자, 웅성거리는 사람들.
둘의 정체를 한눈에 알아본 그들은 각 길드에서 파견된 스카우트 팀이었다.
‘학생 전용 주차장에서 올라왔어.’
‘이하연 부장도 아카데미 출신이었나?’
‘하…… 이성에서 성지한을 먼저 컨택했네.’
주차장에서부터 대기를 타서 성지한과 접촉하다니.
애초에 아카데미 출신이 아니면 전용 주차장을 갈 수가 없던 터라, 타 길드 스카우트 팀들은 아쉬움을 금치 못했다.
‘딜이 깨지길 기대해야지.’
‘그럼 다음엔 우리 쪽에서 바로 접촉한다.’
그저 둘의 대화가 잘 안 풀리기를 기대하며 조용히 커피를 마실 뿐.
이하연은 그런 그들을 둘러보더니, 피식 웃었다.
“어째 아카데미 카페테리아에 익숙한 사람들이 많네요.”
“저 사람들 말입니까?”
“네, 길드 스카우터들인데…… 다들 성지한 님을 뵈러 왔나 봐요.”
역시 주차장에서 대기 타길 잘했어.
이하연은 스스로의 선택이 탁월하다고 생각하며, 성지한과 빈자리에 앉았다.
“지한 님, 저 서운했어요.”
자리에 앉자마자 이하연은 눈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어느새 성지한을 부르는 호칭에는, ‘성’씨가 빠져 있었다.
“명함도 드렸는데, 연락도 안 주시고.”
“일이 바빠서 깜빡했습니다.”
“계속 지한 님 연락만 기다리면서, 밤에 잠도 못 잤다니까요? 여기, 다크서클 생긴 거 보세요.”
배시시 웃으며 잡티 하나 없이 깨끗한 얼굴을 들이대는 이하연.
그녀는 지금 영입계의 포식자나 다름없었다.
“다음에는 신경 쓰겠습니다.”
“아, 그리고 방송 볼 때. 축구공 차던 분에게는 연락처 알려 주시려 하시던데…… 이제는 기억이 나셨나요?”
“예. 그때 일 이후에 기억해 냈거든요.”
“그럼 저도 알려 주세요!”
그러면서 주위를 쓱 훑어본 이하연이 머리를 손으로 쓸어 넘기며, 성지한 쪽을 향해 귓가를 댔다.
“사람들 많으니. 저한테만 살짝요.”
은은한 향기가 풍겨왔다.
그런 이하연의 옆얼굴도 아름답기 그지없어서, 멀리서 이를 지켜보던 스카우터들도 넋을 잃을 정도였다.
‘진짜…… 작정했구나. 이하연 부장!’
‘저 얼굴이면 연예인이나 하지, 왜 이쪽 업계에 온 거냐!’
‘끝났네, 끝났어.’
하지만.
그런 스카우터들의 생각과 달리, 성지한은 과거를 추억했다.
‘제로랑 똑같은 향수네.’
거나하게 술에 취한 채 깽판을 부리던 제로의 모습이 선했다.
성지한은 이번 기회에 한번 떠 보기로 했다.
“번호, 알고 싶으세요?”
“그럼요!”
“그럼, 제 궁금증을 풀어 주시면 알려 드리겠습니다.”
“어떤 게 궁금하세요?”
“이하연 님의 기프트요.”
생글생글 웃던 이하연의 표정이 순간 굳더니, 몸을 뒤로 빼며 손사래를 쳤다.
“저…… 기프트 없어요. 있으면 프로 플레이어를 했겠죠.”
“그렇습니까?”
“네, 없어요. 정말로.”
“여기 학생회장이라고 하셨는데…….”
“그러게요. 학생회장까지 하면서 학교에 봉사했는데, 기프트 안 주더라고요. 너무하죠?”
“……알겠습니다. 실례했군요. 그래, 오늘 이렇게 찾아오신 용건이 있으시겠죠? 제 생각에는 영입 제안일 것 같은데.”
그 말에 이하연이 옆에 서 있던 임가영에게 눈짓했다.
그러자 임가영이 서류 봉투에서 종이를 꺼내 성지한에게 내밀었다.
“네, 저희는 성지한 님을 이성 길드로 모시고 싶어요. 그러기 위해 업계 최고 수준의 계약서를 준비했고요.”
자신만만한 목소리로 장담하는 이하연.
성지한은 계약서 내용을 훑어보았다. 계약서의 서두에는 한 단어가 큼직하게 박혀 있었다.
‘플래티넘리거급의 대우라.’
플래티넘리거.
포지션에 따라 국가 대표 후보가 될 수도 있는 플레이어로, 여기에 속한 플레이어는 프로 중에서도 상위권에 드는 선수라 할 수 있었다.
“후후…… 어떠신가요?”
이성 길드에서 제시하는 조건은 과연 이하연의 장담대로 어마어마한 액수였다.
이성과 계약하고 나면 돈 걱정은 영영 안 해도 될 정도로.
“와.”
옆에서 이를 힐끔 보던 임가영이 자신도 모르게 경악했다.
브론즈 플레이어에게 제시하기에는 너무나도 과한 계약이 아닌가?
‘……아가씨니까 가능한 조건이야.’
재벌가의 일원.
그야말로 이성 그룹의 ‘낙하산’ 부장이기에 가능한 제안이었다.
이러한 경악은 그들의 대화에 촉각을 곤두세우던 다른 스카우터들도 마찬가지였다.
‘플래티넘 계약이라고?! 미친 거 아니야?’
‘골드급 계약서도 힘들게 받아 왔는데…….’
‘진짜…… 끝났군.’
플래티넘이란 단어는 그만큼 엄청난 의미를 담고 있었다.
“지한 님, 저희 이성 길드는 지한 님과 좋은 파트너가 될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그리고 저희의 의지는 이 플래티넘 계약을 통해 충분히 드러났다고 자부합니다.”
“흐음.”
“지금껏 지한 님은 단 한 번도 1등을 놓쳐 보신 적이 없으셨습니다만…… 앞으로 15레벨이 되고 나면 길드가 필수적입니다. 1등 레이스를 지키기 위해선 더더욱 그렇죠. 저희가 지한 님의 1등을 지키기 위해 최고의 케어를 해 드리겠어요.”
성지한은 그 말에 싱긋 웃었다.
“우리 내기할까요?”
“……네? 무슨 내기요?”
“지금 당장, 길드 없이 게임을 해서.”
툭. 툭.
그가 손가락으로 계약서를 두드렸다.
“1등을 할지 말지를 두고 말이죠.”
“…….”
“제가 1등을 못하면, 이 계약 받아들이겠습니다. 대신.”
“대신?”
“1등을 한다면.”
성지한의 미소가 짙어졌다.
“이하연 님, 상태창 한 번 보여 주시죠?”
“……기프트 없다니까요.”
“하하, 그냥 보고 싶어서요.”
그녀가 제로인지 아닌지 확실하게 확인하기 위해서.
성지한은 제로가 가장 좋아하는 내기를 걸었다.
“1등이야 지금 밥 먹듯이 하시잖아요. 승산이…….”
“아뇨, 지금은 다르죠. 전 15레벨이 되었거든요.”
“네에에에? 벌써 15레벨이요?!”
이하연이 벌떡 일어나 경악성을 토했다.
도저히 믿지 못할 성장 속도가 아닌가.
반면, 성지한의 표정은 평온하기만 했다.
“아시다시피, 15레벨이 된 후 다음 게임은 무조건 던전이 걸리죠.”
경악도 잠시.
성지한의 행보를 떠올린 이하연은 ‘그럴 수도 있겠네.’하는 표정을 짓고는 다시 자리에 앉았다.
“……그렇다면 뭐, 좋아요. 저한테 손해 볼 건 없으니.”
져 봤자, 상태창 한 번 보여 주면 되는 내기.
이런 내기를 이하연이 굳이 거부할 필요가 없었다.
“그럼 내기 성립입니다.”
달그락-
성지한이 아이스 아메리카노가 담긴 컵을 내려놓았다.
“얼음이 녹기 전에 돌아오겠습니다.”
번쩍!
그 말을 끝으로, 성지한의 몸이 빛으로 변해 사라졌다.
그러자 이하연을 비롯해 이곳을 주목하던 스카우터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뭐, 뭐야! 배틀넷 커넥터 없이 접속한 거야?”
튜토리얼 시기.
배틀넷 커넥터 없이 게임 플레이를 하는 건 자살행위나 다름없다는 게 사람들의 상식이었다.
근데 이건…… 무슨 자신감이지?
이번 내기.
이하연 입장에서는 져도 리스크가 없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손톱을 깨물었다.
‘아, 아가씨…… 그러시면 안 되는데.’
그걸 본 임가영은 괜히 이하연의 징크스가 떠올라, 불안해졌다.
그리고 이내 둘은, 아니 카페 안의 모든 사람들은 저마다 배틀튜브에 접속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