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레벨로 회귀한 무신 30화>
* * *
배틀넷 아카데미를 향한 등굣길은 학교 입구에서부터 순탄치 않았다.
“……어떻게 오셨습니까?”
정문에서부터 경비원에게 가로막힌 경차.
경비원이 의심 가득한 눈빛으로 차를 바라봤다.
“저, 여기 학생이에요.”
“아, 윤세아 님이시군요. 이 차는 DB에 등록되어 있지 않은데, 등록하시겠습니까?”
“네.”
“알겠습니다. 지나가십시오.”
윤세아가 학생증을 보여 주자, 경비원은 자동차의 번호를 등록한 후 들여보내 줬지만.
“허, 아카데미에 웬 로닝이람?”
“윤세아잖아. 그 아가씨가 진짜 망하긴 망한 거 같더라고. 근데 옆엔 누구지?”
“그 삼촌 있잖아. 쌍검상 부순 사람.”
“아~!”
열려 있는 차창 뒤로 경비원들끼리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삼촌, 이리로 가면 돼.”
필시 윤세아의 귓가에도 저 말이 들렸을 테지만.
그녀는 못 들은 체 싱긋 웃으며, 성지한을 아카데미의 지하 주차장으로 안내했다.
지하 주차장은 소드 팰리스의 지하 주차장만큼이나 넓었다.
차 한 대 한 대를 세울 수 있는 공간도 매우 넓었고, 간혹 서 있는 차들은 모두 최고급 외제 차였다.
시쳇말로 강남에 국산 차보다 외제 차가 많이 굴러다닌다고는 하지만.
‘국산 차가 하나도 없군.’
오히려 주변의 차가 모조리 외제 차다 보니 주차장을 달리는 이 차가 더 눈에 띌 지경이었다.
“저기…… 엘리베이터 옆쪽에 세우자.”
“17번?”
“응, 평소 여기서 주차했거든.”
지하 1층 주차장, 엘리베이터 옆쪽에 있는 곳이었다.
끼익-
차를 세운 성지한은 대수롭지 않은 투로 물었다.
“수업은 몇 시에 끝나?”
“음…… 3시쯤? 데리러 오게?”
“그 정도면 여기 있어도 되겠네. 배틀넷 한 판 하고 있지 뭐.”
“에이, 집에 가. 불편하잖아. 점심은 어쩌려고.”
배틀넷 게임 한 판 하고, 삼단전에 대해 좀 더 궁리하다보면 시간이야 금방 지나갈 터.
성지한은 자신을 걱정스럽게 쳐다보는 윤세아를 향해 손을 휘휘 내저어 보였다.
“제 걱정은 마십쇼, 아가씨.”
“그래도…….”
성지한이 여기서 기다려 주지 않는다면, 윤세아 성격상 버스를 타고 돌아오겠지.
그럼 굳이 오늘 아침에 데려다준 의미가 없어진다.
“연락해.”
“으휴, 진짜…….”
도저히 설득이 될 것 같지 않자, 윤세아는 고개를 설레설레 저으며 차에서 나왔다.
그렇게 세아가 엘리베이터를 타기 위해 자동문을 지나려 할 때.
스으으윽-
성지한이 주차한 곳 옆자리에 최고급 세단이 멈추더니, 웬 우락부락한 덩치의 중년 남성이 튀어나왔다.
“어이! 감히 어디에 그딴 똥차를 세워!”
다짜고짜 고성을 질러 대는 그는, 운전기사라고 하기에는 너무나도 험상궂은 인상이었다.
“여기가 어딘 줄 알고! 당장 차 빼!”
이게 윤세아가 말한 트러블인가.
‘뒤에서 비웃는 정도는 있을 거라 생각했지만, 이렇게 대놓고 시비를 걸 줄은 몰랐네.’
성지한은 저 말에 굳이 대꾸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대신 검지로 중년 남성의 입을 가리킬 뿐.
“어서 나오지 못해? 이 차에 탄 분이 누구…… 읍!?”
순간, 운전기사의 입이 뻣뻣하게 굳었다.
성지한의 포스 때문이었다.
비록 배틀넷의 능력치가 현실 세계에서는 약하게 적용된다고 해도, 공간을 지배하는 포스의 힘은 한 사람의 입을 다물게 하기에는 충분했다.
“읍, 으읍…….”
중년 남성은 입을 열려고 안간힘을 썼지만, 얼굴만 시뻘게질 뿐 턱은 접착제를 붙인 듯 꽉 붙어서 열리질 않았다.
거기에 움직이지 않는 건 입만이 아니었다.
‘모, 몸이 안 움직여!’
마치 콘크리트 속에 갇힌 듯, 그는 똑바로 선 상태 그대로 움직이지를 못했다.
한편 성지한은 태연한 얼굴로 윤세아에게 손을 흔들었다.
“가, 세아야.”
“삼촌…… 여기서 기다리지 말고 집에 가. 생각해 보니 학생회 일도 밀렸을 거 같거든. 언제 끝날지 몰라. 거기에 이렇게…….”
윤세아는 중년 남성을 힐끗 보더니, 그리 말했지만.
“이런 게 무슨 트러블이라고. 걱정 마, 알아서 할 테니까 끝날 때 연락 줘.”
“으휴…….”
전혀 갈 생각이 없어 보이는 성지한이었다.
윤세아가 한숨을 쉬고 이를 어찌하나 바라보고 있던 그때.
철컥-
세단의 뒷문이 열리며, 한 사람이 내렸다.
“무슨 일이죠?”
팔짱을 낀 채 나타나는 여학생.
키가 크고 삐쩍 마른 그녀는 도도하고 차가운 인상이었지만.
윤세아를 보자 금방 웃는 낯으로 다가왔다.
“어머. 세아야! 이제부터 학교 나오는 거야?”
“응. 오랜만이네, 희수야.”
윤세아는 그녀를 보고 손을 흔들어 인사했다.
김희수.
윤세아가 배틀넷 아카데미에 들어오고 나서부터 인연을 맺기 시작해서.
이제는 같이 학생회장 선거에 나가 부회장이 될 정도로, 절친한 사이였다.
“차 바뀌었네?”
“응. 저번에 타던 건 정비하기로 했거든. 근데 세아 넌…….”
김희수는 성지한이 몰고 온 경차를 힐끗 보더니,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예전 차들은 어디 가고. 왜 저런 차를……?”
“아. 아빠가 차도 다 팔아 버려서.”
“……헐. 진짜?”
윤세아가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이야기하자, 김희수가 안쓰럽다는 표정을 지었다.
“저런 차를 타고 통학이라니…… 아무래도 시선을 많이 끌 거 같은데. 하교 땐 나랑 같이 다닐래? 내가 소드 팰리스에 내려 줄게.”
“어, 그건 좀 미안한데…….”
“친구 사이에 뭘.”
김희수가 환하게 웃으며 말하자, 윤세아가 성지한을 쳐다보았다.
“삼촌. 어떻게 할까?”
굳이 친구가 귀갓길에 태워 준다는데, 거절할 필요는 없어 보이는 상황.
‘세아 친구들은 검왕이 일본으로 간 이후, 다 연을 끊었었는데…….’
검왕이라는 뒷배를 보고 윤세아랑 친해지려던 친구들은, 그가 일본으로 떠나자 다들 순식간에 멀어졌다.
펜트하우스에 종종 놀러 오던 여고생 무리들은, 더 이상 찾아오질 않았으며.
예전엔 친구 이야기를 자주 하던 윤세아도 어느 순간부터는 전혀 그들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다.
그런데, 지금 시기에 이렇게 친한 척을 하는 친구가 있었나?
‘조금 두고 봐야겠군.’
성지한은 그리 생각하며, 윤세아의 질문에 대답했다.
“나는 아무래도 괜찮아.”
“음…… 그럼 삼촌. 나 오늘은 희수 차 탈게! 삼촌도 여기서 계속 기다릴 순 없잖아.”
“그래. 알았어. 희수 양이라고 했나요? 잘 부탁드릴게요.”
성지한이 김희수에게 그리 이야기하자, 그녀는 환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세아 삼촌. 그런데, 저…….”
“……?”
“제 운전기사 좀, 풀어주실 수 있으세요?”
성지한의 방송을 본 것인지, 김희수는 그의 능력에 대해 알고 있는 듯했다.
딱.
성지한이 손가락을 튕기자, 옴짝달싹 못했던 기사가 털썩 주저앉았다.
“헉…… 헉…….”
몸이 풀린 데 안도하는 것도 잠시.
“아직도 똥차입니까?”
“아, 아닙니다!”
험상궂은 운전기사는 몸을 바르르 떨며 얼른 뒤로 물러났다.
조금 전의 경험은 다시는 겪고 싶지 않은 것이었다.
* * *
세아와의 일을 뒤로하고 주차장을 빠져나오는 길.
‘집에 가면 바로 배틀넷을 실행해야겠군.’
현재 성지한의 목표는 8월 25일에 있는 8월 승급전이었다.
꾸준히 매 게임에서 1등을 찍는다면, 아슬아슬하게 25레벨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거기에 마시드와의 약속도 잡고, 서바이벌 맵 에픽 퀘스트에 대해서도 연구해야 했으니 할 일이 많았다.
위이이잉-!
아카데미 입구의 차단기가 열리고.
경비원들의 조소 어린 시선 속에서, 성지한의 경차가 빠져나갔다.
“햐, 배틀넷 아카데미에 저런 차를 끌고 오는 것도 대단하구만.”
“인스타 각이지, 뭐.”
찰칵.
한 경비원이 핸드폰을 들어 폰 카메라로 저 모습을 찍어 SNS에 올렸다.
별생각 없이 올린 사진이었지만.
-천하의 검왕 집안이 이렇게 몰락하다니…… 로닝 타고 통학할 생각을 하네.
└ 몰락해도 쟤, 500억 부잔데?
└ 경비원이 걱정할 클라스는 아닌 듯요
└ 그래도 배틀넷 아카데미에 로닝을 타고 가다니. 안 쪽팔린가 ㅋㅋㅋ순식간에 이 사진은 사람들의 시선을 모으며, 얼마 안 있어 기사로까지 나왔다.
그리고 이것은.
“성지한이 소드 팰리스 밖으로 나왔습니다.”
여러 길드 관계자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 * *
[배틀넷 아카데미를 통과하는 로닝. 그 안에 탄 사람은?]
이른 아침에 뜬 작은 포토 기사.
처음에는 사람들의 주목을 못 받나 싶더니, 그 안에 탄 사람이 성지한과 윤세아였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순식간에 세간의 화제가 되었다.
검왕 이슈는 아직도 한국을 크게 뒤흔들고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배틀넷 아카데미 한 학기 학비가 3억인데도 로닝 타는 클라쓰.
-아직도 신 자위대에서 입금 안 함? 웬 로닝이야.
-대현 그룹에서 협찬한 거 아님? 바이럴 쩌는데?
└옛날 모델을 협찬하겠냐?
단순히 가십거리로 삼는 대중들과는 달리, 이성 길드의 부장 이하연은 기사를 보며 눈을 빛냈다.
“가영아, 내일은 아침 일찍 아카데미 주차장에서 대기 타고 있어야겠어.”
“알겠습니다.”
성지한에게 번호를 달라고 하다가 무참히 까인 게 바로 어제였건만.
그럼에도 이하연은 주눅 들기는커녕 더 들이댈 생각이었다.
열 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 없다잖아?
‘빨리 남들이 채 가기 전에, 어떻게든 영입해야 해.’
이하연은 어제 성지한이 게임에서 보여 준 퍼포먼스를 떠올렸다.
혼자 탑 아래 내려가서 무쌍을 찍는 것으로 모자라서.
골드리거도 곤혹스러워하는 준보스 몬스터, 플래시 골렘을 일도양단하다니?
‘정말 미친 모습이었어…….’
도무지 믿기지 않는 활약에, 배틀넷 관련 커뮤니티에서는 이에 관련하여 뜨거운 논란이 일었다.
-저거…… 버프 받고 잡은 거죠?
-버프 받는 장면은 없었는데?
-에이, 버프 없이 저걸 어떻게 잡아요? 골드급 워리어도 혼자서는 잡기 힘들어하는데 -염동력으로 버프 받았을 듯
-아~ ㄹㅇ 이게 맞따
그렇게 성지한이 버프를 받았다, 안 받았다로 토론까지 벌어졌다가.
결론은 ‘성지한은 염동력으로 크리스털 버프를 받고 잡았다!’로 귀결된 상태였다.
아무리 밸런스 따위는 없는 게임이라고 하지만, 그래도 브론즈가 맨몸으로 플래시 골렘을 일도양단했다는 건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버프를 받았든 안 받았든, 플래시 골렘을 한 방에 처치했다는 게 중요하지.’
이하연은 성지한의 채널을 들어가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