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레벨로 회귀한 무신 25화>
* * *
소드 팰리스 빌딩 옆 건물에 있는, 일본 무역 상사 한국 지부 사무실.
평소에는 철문으로 굳게 닫혀 있는 이 사무실은, 실제론 신자위대의 한국 지부로 쓰이고 있었다.
소드 팰리스 옆에 신자위대의 지부가 세워진 이유는 간단했다.
검왕 윤세진을 영입하기 위해서.
때문에 지금에 이르러 쓸모가 없어진 이 사무실은.
“쩝…… 쩝…….”
영입부장, 다케다 카즈오의 개인 공간으로 변해 있었다.
모니터가 8개가 가지런히 놓인 커다란 책상.
다케다는 그 위에 쌓인 햄버거를 순식간에 먹어 치우면서, 불만스러운 눈으로 성지한의 활약상을 지켜보았다.
“성 상. 벌써 이렇게 두각을 나타내면…… 한국이 아니라 다른 나라에서 영입 제안이 들어올지도 모른다고요.”
성지한이 홀로 좀비를 쓸어버리는 모습.
아무리 브론즈라지만, 그의 미래 가치가 일반 플레이어와는 격이 다르다는 걸 보여 주는 장면이었다.
비록 리그에서 활동한 지 얼마 되지 않아, 크게 주목을 받지 못하고 있다지만.
계속해서 저런 말도 안 되는 장면이 연출되면, 실버로 승급하기도 전에 주변이 시끄러워질 게 분명했다.
‘그전에 어떻게든 성 상을 채 가야 하는데…….’
다케다는 미간을 찌푸렸다.
그냥 돈으로 승부하는 거라면, 신자위대 측도 어디에 꿀리지 않았지만.
성지한은 그냥 돈만 가지고 영입할 수 있는 유형이 아니었다.
그를 일본으로 이적시키기 위해서는, ‘특별한’ 수단이 필요했다.
그러려면…….
‘상부의 허가가 떨어져야 하지요.’
하나, 보수적인 신자위대 상층부는 다케다의 호소에도 허가를 내려 주지 않았다.
상부를 설득할 확실한 근거가 있어야 했다.
‘그게 바로 상태창.’
성지한이 보여 주는 무용에, 특별할 게 분명한 상태창 자료를 더하면 신자위대의 상층부도 설득이 가능할 터.
쪼옵- 쪼옵-
다케다는 빨대로 콜라를 들이켜며, 차분히 계획을 짜기 시작했다.
‘그래…… 분명 브론즈의 디펜스 맵은 크리스탈을 지키는 거였죠.’
탑의 가운데에 떠 있는 크리스탈.
그걸 지키는 게 디펜스 맵의 최우선적인 목표였다.
그리고 이건, 팀원이 부수는 것도 가능하지.
탁. 타타타탁!
다케다가 먹을 것을 손에서 놓고, 빠르게 키보드를 두들기기 시작했다.
성지한만을 보고 있는 8개의 모니터 중 하나가 다른 사람을 비췄다.
[‘검왕가 898’이 ‘규규혁이’ 채널에 입장했습니다.]
다케다의 부계정.
‘검왕가 898’이 마법사 김규혁의 채널에 들어갔다.
-김규혁 님! 검왕 님을 거스른 성지한 저놈이 저렇게 잘나가는 꼴을 볼 수가 없습니다!
다케다는 공작을 시작했다.
* * *
‘하. 이 미친놈…… 졸라 세네.’
김규혁은 혼자 무쌍을 찍고 있는 성지한을 보며 입이 썼다.
분명히 같은 브론즈인데, 도대체 저건 뭐란 말인가.
“병신 게임, 밸런스 개똥이네…….”
김규혁은 그렇게 중얼거리면서 시선을 돌렸다.
저 꼴 보기 싫은 인간이 활약하는 모습 따윈 더 이상 보고 싶지 않았다.
“크으으으으~ 아름답다…… 아름다워!”
옆에서 두 손을 꼭 모으고 있는 BJ금빛을 징그럽다는 듯이 바라본 김규혁은.
탑 전방에서 등을 돌려, 천천히 크리스탈 쪽으로 걸어갔다.
‘하…… 언제 끝나나.’
이때만 해도, 그는 그저 성지한이 보기 싫었을 뿐 별생각이 없었다.
[검왕가 898이 100GP를 후원했습니다.]
[김규혁 님! 저희 검왕가의 미션, 받아 주십시오!]
하지만 시청자가 10명도 되지 않는, 그저 열어 놓기나 했던 그의 채널에 갑자기 후원 메시지가 뜨면서.
[검왕가 898님이 시청자 미션을 보냈습니다.]
[크리스탈을 부숴서, 성지한의 1등을 저지하라.]
보상 : GP 50,000
5만 GP 미션이 떡 하니 나타나기 전까진.
김규혁의 걸음걸이가 멈추었다.
‘……5만?’
5만 GP.
한화로 5천만 원.
겨우 크리스탈 하나 부수는 데, 5천만 원을 태운다고?
그뿐만이 아니었다.
-898님이 좌표 찍은 곳이 여긴가요?
-키야~ 역시 898님. 배포가 대단하세요.
-성지한 놈이 저렇게 날뛰는 거, 그대로 두고 볼 수는 없죠.
-저도 이 미션에 후원하겠습니다!
거기에 암전 상태나 다름없던 그의 채널에 검왕가의 메시지가 우수수 올라오더니.
미션에 걸린 GP가 조금씩 늘어나기 시작했다.
52,000, 53,000…….
종국에는 55,000까지 도달하자, 김규혁의 두 눈이 사정없이 흔들렸다.
‘검왕가 놈들이 미친 줄은 진작 알고 있었지만…… 이건 뭐…….’
[검왕가 898이 300GP를 후원했습니다.]
[김규혁 님. 빨리 행동해 주십시오! 다른 탑이 무너지면 자동으로 성지한 놈이 1등을 달성하게 됩니다!]
검왕가 898의 재촉에 김규혁이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진짜 이 인간, 성지한을 오지게 싫어하나 보네.’
‘이번엔 꼴등해도 스킬도 안 날리고…….’
‘당연히 콜 해야지! 저 새끼 때문에 스킬 날린 거 생각하면…….’
‘그래. 이 GP로 손해를 메꾸는 거야!’
55,000이란 GP는 과거의 기억을 왜곡시키는 데 충분한 금액이었다.
눈이 돌아가 버린 김규혁은 바로 행동을 개시했다.
[검왕luv124 님이 100GP를 후원했습니다.]
[크리스탈 부수기 전에, 성지한 놈 보이스 챗으로 오지게 욕 좀 해 주세요. 저 자식 기세등등한 게 꼴 보기 싫어 죽겠습니다.]
김규혁은 멀리 떨어져 있는 성지한을 바라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제 놈이 저기서 날 어쩌겠어?
“크크크큭.”
처음 소환되었을 때, 성지한을 보고 주눅들었던 마음은 온데간데없었다.
김규혁은 신나는 마음으로 크리스탈을 향해 다가갔다.
그리고 크리스탈이 마법 사정거리 안으로 들어왔을 때.
보이스 채팅을 켰다.
“성지한, 이 애미 애비 없는 새끼야.”
* * *
‘뭐지?’
갑자기 쌍욕을 들은 성지한은, 화가 나기보다는 황당했다.
트롤러 김규혁.
아까만 해도 얌전하게 있었는데, 이제 와서?
‘1,000킬 달성하려는 순간에 시비를 터는군.’
지금 달성한 킬 수는 920킬.
이제 곧 다음 퀘스트를 볼 수 있게 되는 중요한 순간에 왜 저러지?
슬슬 게임이 끝나 갈 것 같으니, 저번에 당했던 걸 앙갚음하려는 건가?
‘일단 무시하자.’
80킬은 금방 달성하니, 저깟 욕에 신경을 쓸 필요는 없었다.
다시 좀비 잡기에 열중하기 위해 보이스 채팅을 끄려던 성지한에게.
김규혁의 욕이 속사포처럼 날아들었다.
[고딩 조카한테 사기 치고 좋냐? 아니지, 애비가 걔 버리고 일본 간 이유가 니랑 놀아나서 그런 거 아니냐?]
이를 시작으로, 김규혁은 윤세아와 성지한을 엮으며 쌍욕을 일삼았다.
성지한이 채팅을 끄려고 하는 걸 이미 예측이라도 한 건지.
[검왕이 니네 뒹구는 거 보고 충격 받아서 일본 간 거 아냐? 더러운 새끼들~ 낄낄.]
거의 랩을 하듯이 욕을 쏟아 낸 김규혁.
성지한이 보이스 채팅을 끄자 더 이상의 욕은 나오지 않았지만.
그는 어느새 걸음을 멈춘 상태였다.
“…….”
자신에게 욕하는 건 괜찮다.
어차피 욕지거리야, 전생에서도 수도 없이 들어 왔으니까.
비난을 무시하는 법은, 오래전에 터득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조카를 건드리는 건 차원이 다른 문제였다.
그것도 자신과 엮어서, 더러운 소리를 일삼는 건 더더욱.
“…….”
잊고 싶었던 윤세아의 마지막이 떠올랐다.
검왕이 한국 대표 플레이어들을 학살하고, 한국을 리그 꼴찌로 만든 그날.
윤세아는 검왕가의 테러를 당했다.
그녀의 얼굴은 검왕가에 의해 갈기갈기 찢기고, 몸 곳곳에는 자상을 입었다.
그녀가 검왕에게 버림받은, 가장 큰 피해자임에도.
검왕이 한국을 짓밟은 데 있어서 이성적으로나 논리적으로나, 그녀의 잘못은 전혀 없었음에도.
광신도에게 이성적인 판단이 가능하면, 그건 광신이 아니었다.
‘……겨우 생명은 부지했지만.’
찢겨 나간 얼굴은, 현대 의학으로 되돌릴 수 없었다.
원래대로 돌아오려면 높은 등급의 서포터에게 케어를 받아야 했지만, 서포터들은 아무도 검왕의 딸인 그녀를 도와주려고 하지 않았다.
그래도 한 달여간의 입원 치료 끝에, 윤세아는 몸을 움직일 수는 있게 됐다.
서서, 천천히는 걸을 수는 있었다.
그리고…… 그녀가 그렇게 회복된 몸으로 한 첫 행동은.
‘자살이었다.’
회복되지 않은 몸을 애써 이끌고, 창밖으로 뛰어내린 윤세아.
그녀가 그런 극단적인 선택을 한 데에는, 많은 요인이 있었지만…….
성지한은 떠올렸다.
자살한 그녀가 남긴, 스마트폰을 켜자 나온 메시지들을.
그것은 검왕가가 남긴 욕설 문자였다.
-우리가 네 얼굴을 찢어 줬으니. 성지한도 너를 버릴 거야. 히. 히히. 히히히.
-그 더러운 몸을 더 이상 굴리지 못해서 어쩌니?
검왕가가 윤세아에게 테러를 가한 이후, 입원한 그녀에게 쏟아진 문자 폭탄.
지금 떠올린 것은 가장 수위가 낮은 것이었고.
차마 더러워서 기억 속에서 지워 버린 내용이 대부분이었다.
‘……그것이 극한 상황으로 몰린 세아에게, 마지막 트리거가 되었지.’
그리고 만약 윤세아가 지금 이 방송을 보고 있다면.
저 말도 들었을 터.
‘연계 퀘스트가 중요한 게 아니야.’
성지한은 등을 돌려 탑을 바라보았다.
거리는 꽤 멀리 떨어져 있었지만.
성지한의 시력은, 그 위의 모습도 샅샅이 담을 수 있었다.
그리고 그는 거기서 생각지도 못했던 광경을 보게 되었다.
크리스탈 앞에 다가선 김규혁이 파이어 볼을 생성한 것이다.
‘왜 갑자기 욕을 하나 했더니.’
크리스탈을 부수기 전에, 지른 거였나?
‘단순히 저번의 원한 때문인지. 부추긴 자가 있어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원인이 뭐가 되었든.
결론은 간단하다.
‘저놈을 죽인다.’
거리는 멀고.
마법사는 금방이라도 크리스탈을 부수려 한다.
지금처럼 돌진하는 것만으로는, 도저히 탑까지 닿을 수 없다.
단순한 뜀박질로는 시간이 부족하다.
이 거리를 좁히기 위해, 필요한 것은…….
‘무명신공無名神功.’
무력 30이 되지 않아, 익히지 못한 SSS급 스킬.
하지만 스킬 창에 없더라도 인생의 절반을 같이한 무공이었기에.
지금 지닌 모든 힘을 끌어올린다면.
흉내는 낼 수 있었다.
무명신공無名神功.
보법步法.
섬천뢰보(閃天雷步).
지지지직-
성지한의 발에 새하얀 뇌전이 피어오르고.
등을 돌린 성지한에게 다가오던 좀비들이 모조리 타올라 사라졌다.
하늘을 꿰뚫는 보법, 섬천뢰보.
하나, 전류가 가득 모인 성지한의 발은 무겁기만 했다.
스킬 창에 무명신공이 없어서일까.
뇌전을 피워 올릴 순 있으되, 자신을 번개로 화할 수는 없기 때문인가.
‘아니다.’
성지한은 피어올랐던 분노를 차갑게 담금질했다.
애초에 스킬 창에 없어서 사용하지 못했다면, 뇌전이 나타나진 않았을 것이다.
방법은, 분명히 있다.
지지지지직-!
뗄 수 없는 발을, 전력을 다해 들어 보려고 하자.
하단전의 기와 함께.
중단전과 상단전이 같이 반응했다.
신경이 곤두선 지금이라서, 미약하게 포착되는 움직임.
성지한은 거기서 실마리를 찾았다.
‘무명신공…… 하단전만을 활용하는 무공이 아니었나?’
이제껏 스킬을 통해 사용해서 그런지, 하단전으로 충분했는데.
성지한은 자신의 추측을, 몸으로 실현하기 위해.
포스를 완전히 끌어올렸다.
상단전, 중단전, 하단전.
삼단전의 힘이 일시에 모였다.
그리고 찰나의 순간, 몸이 가벼워짐을 느꼈다.
이것은 회귀 전, 스킬을 사용했을 때와 흡사한 감각이었다.
성지한은 이 순간, 확신을 가졌다.
‘가능하다.’
쿠르르르!!
성지한의 몸이 빛으로 변하고.
그가 서 있던 대지에서는 새하얀 전류가 드높게 치솟았다.
그리고 곧.
번쩍!
벼락이 탑을 내리쳤다.
* * *
[검왕가 898이 100GP를 후원했습니다.]
[김규혁 님. 빨리! 빨리 부수세요! 성지한이 곧 옵니다!]
보이스 채팅으로 한참을 욕하던 김규혁은 시청자의 후원에 슬슬 미션을 끝내야겠다고 생각했다.
‘다가와 봤자. 고놈이 이 거리에서 뭘…….’
솔직히 성지한이야 탑 아래 있으니, 고려 대상이 아니었지만.
“당신, 뭐 하는 겁니까!”
한참 성지한을 찍던 BJ금빛이 흉흉한 기세로 다가오자, 가장 중요한 시청자 미션을 클리어해야겠다고 마음먹은 것이다.
“흐흐…… 터져라!”
그렇게 미리 소환해 둔 김규혁의 파이어 볼이 화악- 날아가려 할 때.
펑!
갑자기 그의 파이어 볼이 허공에서 터져 나갔다.
“뭐, 뭐야!”
툭. 툭…….
갑자기 터진 파이어 볼 아래로, 웬 축구공이 시커멓게 그을린 채 떨어지고 있었다.
범인이 누군지는 뻔했다.
“마시드! 이 발싸개 새끼가!”
김규혁이 마시드를 보며 소리를 빽 지르자, 그는 태연한 얼굴로 가운데 손가락을 쭉 폈다.
“너. 애한테. 욕함.”
한국말 잘 모르는 척하더니.
이 자식, 잘만 알고 있잖아?
김규혁은 마음 같아서는 저 외국인 놈한테 본때를 보여 주고 싶었지만.
“씹…… 파이어 볼!”
일단 5,500만원이 걸린 미션을 깨기 위해, 다시 파이어 볼 주문을 외웠다.
그러나.
“김규혁.”
지금 여기서 들려서는 안 될 목소리가.
그의 귓가에 차갑게 내리꽂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