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레벨로 회귀한 무신 23화>
* * *
[브론즈 리그 - 강남 에어리어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이번 미션은 디펜스입니다.]
집으로 돌아온 성지한은, 양복을 입은 상태로 그대로 게임에 접속했다.
‘이번엔 좀비 미션인가.’
탑 위로 올라오는 좀비를 막으면서, 다섯 팀이 남을 때까지 생존하는 미션.
업적 퀘스트 창엔 저번에 깨지 못했던 연계 퀘스트가 여전히 떠 있었다.
[연계 퀘스트 - 좀비의 근원지 (1)]
좀비를 홀로 1,000마리 제압하라.
보상 - 업적 포인트 3,000
* 클리어 시, 좀비의 근원지 (2)로 퀘스트가 이어집니다.
‘그때는 불가능했지만, 이제는 쉽게 깰 수 있어.’ 저번 플레이 때는 레벨도 무력도 낮은 상태였지만, 이제는 능력치도 크게 성장했고, 또 다른 유니크 스탯 포스도 얻은 상황이다.
이 정도 힘이면, 탑 아래 내려가서 좀비들을 혼자 쓸어버릴 수 있었다.
거기에 이 맵에 딱 맞는 아이템도 준비해 뒀다.
“인벤토리.”
성지한은 인벤토리를 열어, 그 안에 담긴 무기를 소환했다.
그의 오른손에, 사람만 한 크기의 커다란 도가 모습을 드러냈다.
외계의 성물 - 우르크 신관의 참마도 (C급)
우르크 신관이 신의 제단에 제물을 바칠 때 사용하는 도.
생물의 배를 가르는 데는 으뜸입니다.
신성력이 10이 되었을 때.
[이제부터는 C등급 이상의 성물에서만, 신성력을 흡수할 수 있습니다.]
이런 메시지를 받고, 테스트를 위해 구매한 물건.
‘과연 외계의 성물에서 신성력을 흡수해도, 포스가 오를까?’
신성력과 마력이 합친 유니크 스탯 포스.
신성력을 흡수하면 혹시 포스도 성장하는지 알아보기 위해, 성지한은 큰맘 먹고 GP를 다 털어서 C등급 무기를 구입했다.
‘크긴 크군.’
C급임에도, 가격이 그리 비싸지 않다 싶더니.
우르크 신관의 참마도는 인간이 쓰기에는 너무 크고, 무거운 물건이었다.
왜 많은 워리어 클래스가 외면했는지 알 만한 참마도.
휭. 휭.
‘쓸 만하네.’
그렇지만 그런 무기도 성지한의 손에 들어오자, 나무막대기처럼 가볍게 회전했다.
무력이 포스와 연계되니 더욱 강력해져서, 이를 가능케 했다.
‘준비가 다 되었으니, 지금 당장이라도 내려가고 싶지만.’
팀원이 모두 소환되어야, 시작되는 디펜스 맵.
성지한은 나머지 팀원을 기다리며 배틀튜브 방송을 켰다.
-오? 성지한 게임 시작했다
-경매장 갔다 오자마자 바로 플레이야? 양복이네.
-킹스맨 ㄷㄷㄷㄷ
-저 인간 원래 저럼. 예전엔 추리닝 입고 게임함.
방송이 시작되자마자 들어오는 시청자들.
검왕의 경매가 끝나고 얼마 되지 않아서일까.
방송 시작한 지 얼마 되었다고.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유입되고 있었다.
게임이 시작되지 않아, 차단이 풀려 있는 채팅 창.
성지한은 이를 둘러보며 분위기를 파악했다.
-좀비 맵이네?
-경매장에서 드러난 힘…… 여기서도 보여 주겠지?
-조금 전 인사드렸던 스카우터 김진환입니다. 오늘 보여 주신 염동력 정말 인상 깊었습니다. 아까 말씀을 길게 못 나누게 되어서 아쉬웠습니다. 쪽지함을 좀 열어 주실 수 있을까요?
‘분위기 나쁘지 않군.’
스카우터가 쓴 것 같은 채팅이 많기는 했지만.
전생이라면 지금 시기에 친일파라고 도배되었을 채팅 창이, 나름 분위기가 괜찮았다.
-성 상~ 화이팅! 이에요♥ 다케쨩, 후원을 쏠 준비가 되어 있답니다.♡♥ 쪽지 함만 좀……!
-쪽발이 ㄲㅈ
-귀여운 척 씨발 멈춰!
-한국 사람들 말 너무 험하게 해요. 히잉.
다케다의 채팅이 거슬리기는 했지만.
그래도 워낙 많은 사람들이 채팅을 쳐서 그런지, 그의 것은 금방 넘어갔다.
-아까 명함 찢은 거 어떻게 한 거예요?
-대체 무슨 능력임? 님들 짐작 감?
-모름.
-염동력 같은 걸 끼얹나?
대부분의 시청자가 궁금해하는 것은 성지한이 선보였던 능력이었다.
단순히 명함을 찢는 퍼포먼스였음에도, 배틀넷 클래스 내에서는 규격 외의 힘이었기에.
일반 시청자뿐만 아니라 스카우터들도 촉각을 곤두세우며 성지한을 지켜보고 있었다.
‘지금쯤 내기 하나 걸어야겠군.’
성지한은 채널의 구독자를 확인했다.
12,000여 명.
경매장 때 독점 중계를 해서 그런지, 구독자가 예전보다 4천여 명 이상 늘어나 있었다.
이에 따라, 업적 퀘스트도 하나 클리어 된 상태였다.
[채널의 구독자가 10,000명이 넘었습니다.]
[일반 업적, ‘구독자 모집 (1)’을 클리어 했습니다.]
[업적 포인트 1,000을 보상으로 획득합니다.]
‘이제부터는 구독자를 늘리기는 쉽지 않겠지.’
지금까지는 워낙 세간의 이목이 집중되는 사건의 중심에 서 있었으니, 그 부수적인 효과로 구독자가 빠르게 늘었지만…….
성지한은 기본적으로 브론즈 플레이어.
세상의 관심에서 빗겨 나 있는 최하위 리거였다.
물론, 성지한이 지닌 가능성은 독보적이니 금방 상위 리그에 가서 구독자를 늘릴 수는 있겠지만…….
‘그때까지 넋 놓고 기다리느니, 여기서 할 일을 최대한 한다.’
성지한은 어그로가 많이 끌린 현 상황을 이용하기로 했다.
“반갑습니다. 여러분.”
그는 채팅을 보면서 가볍게 인사했다.
-오, 성지한 채팅 본다!
-지금은 게임 시작 안 해서 그런 듯?
-안녕하세요!
-ㅎㅇㅎㅇ~~
“채팅을 쭉 살펴보니, 제 능력에 대해 궁금하신 분이 많으신 것 같습니다.”
-공. 개. 해.
-상태창 공. 개. 해.
-성 상~♡♥ 다케쨩, 상태창을 보게 되면 후원, 또 하고 싶어질지도…….
-저 일본 놈은 왜 이렇게 한글을 역하게 잘 치냐;
-저도 일만 GP 후원하겠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상태창을 공개하면 GP를 후원한다고 했지만, 성지한은 여유롭게 웃으며 흘려넘겼다.
대신.
“상태창 공개는…… 죄송하지만 하지 않을 겁니다.”
-에이
-김새누
-공개해공개해공개해공개해공개해공개해공개해공개해공개해공개해
-火火火火火火火火火火火火火
열화와 같은 성원에 성지한이 곰곰이 생각하더니 검지손가락을 펴며 말했다.
“대신 조건을 걸죠. 구독자 이십만이 되면 공개하겠습니다.”
-이십만 장난까나;
-이건 안 하겠다는 거네.
-좀 해라 좀!
-성 상…… ♡♥ 그냥 오만 GP 후원할 테니 저만 살짝 보여 주세욧!!! ^오^
구독자 20만이라는 이야기에 급격하게 험악해지는 여론.
성지한은 다시금 곰곰이 생각하더니, ‘이거 좋다!’하는 표정을 지었다.
“그럼 여기에 더해서, 제가 차후 진행될 모든 배틀넷 게임에서 1등이 되지 못했을 때라면 어떤가요?”
-?
-????
-????????
뇌정지가 온 시청자들이 갈고리를 날리는 사이.
성지한이 확언하듯 말했다.
“그땐 확실히 공개하도록 하겠습니다. 인정?”
앞으로 매 게임마다 1등이 되지 못하면, 그때 상태창을 공개하겠다는 이야기.
채팅창이 일제히 비웃음으로 도배되기 시작했다.
-ㅋㅋㅋㅋㅋ 연승도 아니고 1등? ㅋㅋㅋㅋㅋㅋ
-1등이 뉘 집 개 이름인 줄 아나 ㅋㅋㅋㅋ
-허언으로 맨든 어그로…… 이건 굉장히 귀하네욬ㅋㅋㅋㅋ-연속 1등 했다고 뵈는 게 없누
배틀넷에서의 1등.
그것은 아무리 뛰어난 플레이어라도, 함부로 장담할 수 없는 것이었다.
게임 자체의 승리야, 상위 50퍼센트 안에 들면 되니 운보다는 실력으로 갈리는 경우가 많았지만.
1등은 실력도 실력이지만, 운이 따라 줘야 했다.
-저런 소리 하다가 트롤 만나고 바~로 피눈물 흘리쥬?
-ㄹㅇㅋㅋ
-이번 게임도 팀 게임이잖아? 바로 만날 듯
번쩍! 번쩍!
그렇게 성지한의 선언이 한창 가십거리로 씹히고 있을 즈음.
디펜스 맵에서 동료가 될 플레이어들이 하나둘씩 모습을 드러냈다.
“금하~!!!! 반갑습니다~ 여러분! BJ 금빛입니다. 오늘도 여러분과 함께하는, 심해 탐험 시작합니다요! 오늘은 방송이 좀 늦었죠? 경매장 좀 보느라…… 엇…… 성, 성지한 님!?”
워리어 클래스로는, 서바이벌에서 만났던 BJ 금빛이 나왔고.
“켁…… 서, 성지한…….”
메이지 클래스로는 성지한에게 디펜스 맵에서 된통 당했던 김규혁이.
“…….”
아처 클래스로는.
툭. 툭.
말없이 축구공을 리프팅하고 있는 긴 수염의 외국 남성이 모습을 드러냈다.
-????
-실화냐?
그 뒤로, 채팅창은 폭발했다.
* * *
-오늘 레전드 찍누ㅋㅋㅋㅋㅋㅋㅋㅋ
-강남 리그 3대 진상 총집합ㅋㅋㅋㅋㅋㅋㅋ
-어딜 또 1등 하려고! 커어어엍!!!
-어림도 없다! 아아아아암!!!
-마! 이게 바로 K-배틀넷이다!
오만한 성지한의 선언을 깨부수기 위해, 배틀넷이 정의 구현이라도 한 것일까.
성지한의 팀원으로 소환된 플레이어의 면면은 화려하기 그지없었다.
이른바 브론즈 리그 강남 3대 진상.
유명세에 미친 남자, BJ금빛.
강약약강의 마법사, 김규혁.
그리고…….
-축. 구. 의. 신.
-디에고 마시드!
-화살 대신 축구공 쏘는 아처의 귀감!
디에고 마시드.
팀전 최악의 플레이어로 손꼽히는 아처.
무려 원거리 딜러라는 포지션임에도, 넣으라는 딜은 안 넣고 축구공만 날려 대는 희대의 트롤러다.
그의 플레이 패턴은 단순하다.
인벤토리 10칸에 넣은 축구공을 날려 대다가, 10개의 축구공을 전부 소모하면 가만히 서 있다가 죽었다.
다른 브론즈리그에서 저런 플레이어가 있다면 그냥 예능으로 저러나 싶을지도 모른다.
하나 하필 가장 진지하고, 치열한 강남 에어리어에서 저런다면?
그와 팀이 된 다른 플레이어들은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었다.
하지만.
성지한은 채팅 창에서 디에고 마시드의 이름을 보고는 눈을 번뜩였다.
‘마시드?’
아르헨티나의 톱 플레이어, 디에고 마시드.
그는 혼자서 아르헨티나의 리그 순위를 지탱하던 강력한 플레이어였다.
비록 최후의 10국에는 들지 못해, 결국 그도 전사해 버렸지만.
그럼에도 그만이 할 수 있는 독특한 플레이는 사후에도 명성이 높았다.
‘근데…… 그 사람은 메이지 클래스였는데?’
성지한은 예전에 보았던 마시드의 영상을 떠올리며 고개를 갸웃했다.
거기에 생긴 것도, 영상의 멀끔했던 모습과는 매우 달랐다.
얼굴은 길게 기른 수염 때문에 지저분했고, 몸도 핼쑥하게 말라 볼품이 없었다.
성지한이 물끄러미 마시드를 바라보고 있자니, 그가 고개를 들었다.
“나, 상관 마.”
어설픈 한국어를 꺼내더니, 다시 공을 차는 마시드.
이쯤 돼야 진상 타이틀을 받는 건가.
‘소통할 생각은 없어 보이는군.’
하나 굳이 대화할 의지가 없는 상대에게 시간을 쏟을 필요는 없지.
그에 대한 정보는 나중에 모아 보기로 하며, 성지한은 고개를 돌렸다.
“성지한 님! 여기서 이렇게 뵐 줄이야! 반가워요!”
BJ금빛은 여전히 흥분한 상태로 성지한에게 다가왔으며.
“…….”
마법사 김규혁은 또 여전히 탐탁지 않은 표정으로 서 있었다.
‘이 새끼랑 같이 게임을 하게 되다니.’
리그 선배로서 따끔한 충고 좀 했다고, 다짜고짜 탑 아래로 자신을 날려 버린 건방진 플레이어 성지한.
그때 날린 스킬을 생각하면 당장이라도 공격을 하고 싶었지만.
‘……똥이 무서워서 피하나. 더러워서 피하지.’
김규혁은 그렇게 정신 승리를 하면서, 오늘은 참기로 했다.
괜히 꼬장 부리고 덤비면, 죽는 건 자신이니까.
“여러분, 오늘 방송 대박이에요. 장안의 화제인 성지한 님과 같이 팀플레이를 할 뿐만 아니라. 어머나, 이렇게 강남 3대 진상이 한자리에 다 모이게 되다니……!”
“쳇, 강남 3대 진상. 그거 누가 만든 거야? 처음 그 말 만든 새끼 고소하고 싶네.”
“하하, 그러니까요. 어, 근데 김규혁 님은…… 마법사시죠?”
김규혁은 힐끗 BJ금빛을 쳐다보았다.
A급 장비로 도배된 BJ금빛.
함부로 무시할 만한 상대가 아니었다.
그의 입에서 자연스럽게 존댓말이 나왔다.
“……그렇습니다만.”
“이상하네요. 성지한 님도 분명히 메이지 클래스인 줄 알았는데…… 아까 방송에서 파이어를 쓰셔서.”
“저놈, 아니 저 사람. 저번에 저랑 같이 게임할 때는 서포터로 소환됐는데요?”
“헉! 정말요?? 성지한 님. 이게 대체 무슨…… 시청자들을 위해, 속 시원한 대답. 들려주실 수 있을까요?”
BJ금빛이 초롱초롱한 눈으로 성지한을 바라보았다.
대답을 기대하는 눈빛.
성지한은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그건 어렵겠군요. 채널에 내기를 건 게 있어서.”
“에이~ 그러지 마시고!”
“그것보다.”
성지한은 BJ 금빛의 취재를 끊고, 본론을 꺼냈다.
“저는 탑 아래로 내려갈 테니, 위쪽은 알아서 부탁할게요.”
“……으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