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레벨로 회귀한 무신 21화>
-아까 그거…… 뭐냐?
-이번엔 마법은 확실히 아닌데.
-현실에서 어떻게 저런 힘을 낼 수 있지?
-성지한, 분명히 예전에는 권기를 썼잖아?
-대체 무슨 기프트를 지닌 거야?
플레이어의 능력은 현실에서 제약을 받는다.
적게는 50퍼센트에서, 많게는 90퍼센트까지.
이를 알고 있는 사람들에게 있어, 성지한이 보여 준 포스의 힘은 충격적이었다.
‘현실에서도 명함을 십 초 만에 가루로 만들어 버린 저 힘…….’
‘인 게임에서는, 상대의 장기를 단숨에 터뜨릴 수도 있다.’
‘아니, 굳이 터뜨리지 않더라도. 구멍만 뚫으면 치명상이 될 거야.’
경매에 참여했던 10대 길드의 관계자들은 성지한이 내보인 힘을 보며 머리를 굴렸다.
브론즈 리거 성지한.
그가 지금껏 리그에서 놀라운 성적을 내고는 있었지만, 검왕의 처남이라는 리스크 때문에 선뜻 영입 제안을 망설이고 있었는데.
저 특이한 능력은 이런 리스크를 감수해도 될 정도로 매력적이었다.
‘성지한, 그가 아무리 상태창을 공개하지 않은 브론즈라고 해도…….’
‘지금까지의 성적도 좋고, 특수한 능력도 있어. 꼭 영입해야 해.’
경매 물건보다, 오히려 경매를 하러 온 성지한을 탐내게 된 길드 관계자들.
하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몸이 달은 사람은.
‘저 힘은…… 진짜야.’
바로 눈앞에서 명함을 찢긴 다케다였다.
-캬, 세계 4위 길드. 신자위대 영입 팀장이 브론즈한테 까였죠?
-대머리 빡쳤다.
시뻘게진 얼굴로 땀을 비 오듯이 쏟아 내는 다케다.
카메라에 담긴 뒷모습만 보면, 성지한에게 명함이 무참히 찢긴 것에 분노하는 것 같았지만.
“아아아…….”
실상은 아니었다.
그는 성지한이 명함을 가루로 만드는 걸 보며, 더없이 환호하고 있었다.
‘종이를 띄운 것만 아니라, 완전히 갈아 버리다니.’
불가사의한 힘을 발휘한 그 모습에서, 대박의 기운이 물씬 풍겨져 왔다.
‘성지한…… 당신은 제가, 저희 일본이 꼭 영입할 겁니다.’
다케다의 눈이 욕망으로 번득거렸다.
‘어떻게든 독대 자리를 만들죠. 그러면, 당신을 가질 수 있을 겁니다…… 흐흐.’
한 번만 자리를 만들 수 있다면, 그도 충분히 일본의 손아귀에 넣을 수 있다.
다케다는 그렇게 자신했다.
그러려면, 일단 그의 호감을 사야겠지.
히죽히죽.
뒤돌아서서, 단상 아래 자리로 돌아가는 다케다를 보고 성지한 채널에서 채팅이 주르륵 올라왔다.
-으으, 저놈 얼굴 표정이 왜 저래?
-개변태 같음…….
-저거 좀 치워라.
-추한 건 다 모아 놨네요…….
다케다가 입가에 음침한 미소를 지으며 내려오는 것이 카메라에 포착되자.
이때만큼은 채팅창의 모두가 대동단결했다.
하지만 그렇게 잠시나마 평화로워졌던 성지한 채널의 채팅방은…….
[★☆다케쨩☆★이 10000GP를 후원했습니다.]
[성 상~~ 오늘 뵙게 돼서 반가웠습니다. ^ω^; 다음에는 꼭 한 번 1:1로 얼굴 뵈어요. ★☆! 쪽지 함 차단 풀어 주시면 더 후원 드리겠습니당……! 당신의 영원한 팬. 다케쨩♥]
‘다케쨩’이 후원 메시지를 보내자 다시 아수라장이 되었다.
-다케쨩? 설마…….
-아까 그 대머리야?
-와, 천만 원을 쏘네.
-이 채널 최초의 후원 메시지를 일본인이 보내다니.
-이 아재 메시지 왜 저럼. 개소름…….
성지한도 후원을 받고는, 걸음을 잠시 멈췄다.
일반인들이 성지한 채널에서 채팅을 치는 건 차단해 놔서 그의 눈에 보이지 않았지만.
후원 메시지는 볼 수 있었기에, 그도 다케다가 10,000GP를 쏘면서 쓴 메시지를 볼 수 있었다.
[10,000GP를 후원 받았습니다.]
[일반 업적, ‘든든한 서포트 (1)’ 을 클리어 했습니다.]
[업적 포인트 1000을 보상으로 획득합니다.]
GP도 얻고, 업적 포인트까지 획득했다.
결과만 놓고 보면, 일거양득이라고 할 수 있었지만.
‘내 채널 첫 번째 후원이 다케쨩, 아니 다케다라니…….’
성지한의 미간이 미미하게 찌푸려졌다.
이런 최초의 후원은 두고두고 기록에 남는다.
특히 성지한처럼 세계 1위 랭커를 노리는 플레이어에게는 더더욱.
‘한도를 좀 낮춰 둘걸.’
성지한은 이 날 처음으로 자신의 행동을 후회했다.
* * *
경매가 끝나고.
“성지한 씨, 저는 터틀 길드 소속 스카우터 김진환입니다. 잠시 이야기 좀 가능하실까요?”
“성지한 씨.”
“아까의 모습, 감명 깊었습니다.”
원래는 윤세진의 물건을 사려 했던 경매 참여자들이, 일제히 그에게로 몰려들었다.
조금 전 명함을 가루로 만들어 버린 퍼포먼스에 감명을 받아, 성지한을 영입하려는 사람들.
그들 중에는 10대 길드의 스카우터도 있었으며, 꽤 유명한 플레이어도 있었다.
만약 다른 브론즈 플레이어가 이런 상황에 놓인다면, 흥분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지만.
‘길드에 가입할 생각은 없는데, 성가시군.’
성지한은 귀찮기만 했다.
그래도 이들에게는 아까 전, 다케다를 대할 때처럼 매몰차게 거절할 수는 없었다.
“감사합니다.”
“보시다시피, 제가 아직은 좀 혼란스러운 상태라 길드 가입은 좀…….”
성지한은 부드럽게 길드 가입을 거절하려고 애를 썼다.
“어.”
그리고 박윤식에게서 카메라를 받아 온 윤세아는 그 광경을 보더니, 속으로 살짝 웃음을 지었다.
삼촌의 저 표정.
애써 예의 바른 청년의 얼굴을 하고는 있었지만, 실상은 귀찮아 죽으려고 하는 게 눈에 보였다.
‘내가 도와줘야지, 안 되겠어.’
그녀는 금방 침울한 표정을 지은 채. 성지한에게로 다가갔다.
“삼촌…….”
말꼬리를 흐리며 약간 울먹이는 얼굴.
성지한은 그 모습을 보자, 화들짝 놀라며 그녀에게 다가갔다.
“세아야, 왜. 무슨 일 있어?”
“삼촌, 나…… 오늘 너무 힘들어. 이만 집에 가면 안 될까?”
그러면서 살짝 윙크를 하는 윤세아.
성지한은 그녀가 연기를 하고 있다는 것을 눈치채고, 입가에 슬쩍 미소를 짓더니, 금방 그 연기에 화답했다.
“그래? 스카우터분들, 죄송합니다만. 조카가 오늘 컨디션이 많이 안 좋은 것 같습니다.”
“그, 그렇군요.”
“오늘 일이 많았으니…….”
“예, 그러니 말씀은 다음 기회에 또 듣겠습니다. 죄송합니다.”
급히 인사를 한 성지한은, 얼른 윤세아를 데리고 이벤트 홀에서 나왔다.
“삼촌, 나 잘했지? 삼촌 귀찮아하는 얼굴이라서, 내가 특별히 연기 좀 했어.”
“……그래, 잘했다.”
그는 윤세아의 울먹이던 얼굴을 떠올렸다.
연기라 하기에는, 감정이 과하지 않고 절제된 흐느낌을 보여서 그런가.
윤세아가 윙크를 하기 전만 해도, 정말로 무슨 일이 일어난 건가 싶었다.
‘연기…… 겠지.’
성지한은 윤세아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래도, 걱정했다.”
“……참 나. 걱정이 과해. 이래 봬도 학교에서 학생회장까지 한 몸이라고.”
머리를 쓰다듬는 손을,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올려다보는 윤세아.
하지만 손 치우라는 소리는 하지 않았다.
“삼촌 조심해. 여자가 눈물 조금 글썽이면 금방 넘어갈 거 같으니까.”
“걱정하지 마. 삼촌 여심 마스터했단다.”
“흥, 집에서 배틀넷만 봤으면서…… 게임으로 배운 거는 안 쳐줘요.”
그러면서 둘이 사이좋게 엘리베이터로 걸어가고 있을 때.
또각또각.
엘리베이터 앞에 서 있던 두 명의 여자가 그들에게 다가왔다.
“두 분, 사이가 정말 좋으세요.”
“……?”
화려한 미모의 여성과, 그 뒤를 따르는 키가 큰 여성 보디가드.
성지한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저 중 한 명은, 익히 아는 얼굴이었으니까.
‘임가영이 이 시절에는 보디가드를 하고 있었군.’
윤세아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물었다.
“……누구세요?”
“안녕하세요. 윤세아 님. 그리고 성지한 님. 저는 이성 길드 인사과의 이하연 부장입니다.”
“부장님…… 이시라고요?”
“부장이라기엔 너무 어려 보이나요?”
“네…….”
“후후, 낙하산이라 그래요.”
윤세아의 반문에, 그녀는 아무렇지도 않게 자신을 낙하산이라고 표현했다.
이성 길드에 낙하산으로 들어갈 정도라면, 모기업 이성과 연관이 있다는 이야기.
이하연의 성씨가, 이성 재벌 가문의 이씨와 연관이 있을 거라는 건 어느 정도 유추할 수 있었다.
‘그런데…….’
성지한은 이하연의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TV에 나오는 웬만한 연예인보다도 아름다운 얼굴.
외모와 부, 사회적 지위까지 모두 손에 쥐고 있는 이하연은 행동에 자신감이 넘쳐흘렀다.
하지만, 성지한이 주목하는 건 그 자신감 넘치는 미모가 아니었다.
‘이 사람, 어디서 본 거 같은데.’
이하연.
기억 속에는 없는 이름이었고, 외모였지만, 이 자신만만한 태도와 목소리.
왠지 낯이 익었다.
이렇게 인상이 기억날 정도면, 미국 생활 시절 만난 사람일 텐데…….
‘누구지?’
한편.
성지한이 자신의 얼굴을 뚫어지게 바라보자, 이하연의 입가에 미소가 짙어졌다.
그녀는 찬찬히 입술을 떼어, 부드럽게 말했다.
“성지한 님, 조금 전의 활약, 정말 감명 깊게 지켜보았답니다. 특히 제가 예전 채널 구독자라서 그런지, 감회가 새로웠어요.”
“제 예전 채널 구독자였다고요?”
“네, 배틀넷 승부 예측을 하실 때부터 오랜 팬이었답니다. 성지한 님의 날카로운 판단력에 놀란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는데…… 그분이 이렇게 훌륭한 플레이어가 되셨을 줄은 상상도 못했어요.”
배틀넷 승부 예측사, 성 씨.
이 채널은 전생에서 성지한이 극한 상황으로 몰렸을 때, 그의 밥줄이 되어 준 채널이었다.
예측 성공 확률 62퍼센트라는, 기록적인 승률을 자랑하던 성지한.
그의 승부 예측을 보기 위해 사람들은 몰려들었고, 성지한은 이를 통해 다시 재기할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 시기에는, 이 채널에 대해 아는 사람이 거의 없을 텐데.’
승부 예측을 마니아 수준으로 좋아하지 않으면, 존재 자체도 모를 채널이다.
이걸 구독할 정도라…….
성지한은 문득 생각나는 사람이 하나 있었다.
도박을 그 누구보다도 좋아했지만, 매번 실패했던.
세상에서 몇 안 되는 희귀한 ‘기프트’를 가지고 있었던 여자를.
‘설마…….’
성지한은 이하연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아, 삼촌!”
윤세아가 옆에서 허리를 팔꿈치로 툭 치면서 눈치를 줬다.
조금 전만 해도 자기 입으로 여심 마스터라더니, 막상 왜 이렇게 정신을 못 차리는 거야.
“후후, 괜찮아요.”
이하연은 여유롭게 미소를 지으며 자신의 얼굴을 살짝 쓰다듬었다.
저 제스처, ‘그녀’와 똑같다.
‘한 번, 테스트해 볼 필요는 있겠군.’
성지한은 천천히 말문을 열었다.
“세상이 가능성으로 충만할 때, 그것을 무시하기란 힘든 일이다.”
“……네?”
대문호이자 도박 중독자이기도 한 도스토옙스키의 명언.
성지한이 갑자기 이를 말하자, 이하연의 미소가 순간 굳어졌다.
“이거, 이하연 님의 좌우명이죠?”
“어머…… 호호. 무슨 말씀을, 초면에 너무하시네요. 제가 무슨 도박 중독자도 아니고.”
이하연은 그 말을 듣고 애써 미소를 지었지만.
“……어떻게 아셨습니까.”
뒤편에 있던 임가영이 이하연을 지키듯, 앞에 섰다.
“아가씨가 맨날 하시는 말씀을, 어떻게 아셨습니까.”
“가영아, 아니야. 나 안 그랬어.”
“설마 당신…… 스토커입니까?”
“가. 영. 아…… 나 안 그랬다고.”
아가씨의 말은 귓등에도 듣지 않고, 성지한을 매서운 눈초리로 노려보는 임가영.
그걸 보며 성지한은 자신의 추측이 점점 맞아떨어지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아직 확신하기에는 이른 단계지만, 정말로 이하연이‘그녀’가 맞다면…….
성지한의 두 눈이 날카롭게 빛났다.
‘내 쪽에서, 꼭 영입해야 할 사람이다.’
매니저 제로.
이민자임에도 특이한 기프트로 인해, 아메리칸 퍼스트 길드의 2군 길드장까지 맡았던 여자.
성지한이 알고 있는 이하연은, 바로 독보적인 능력을 지니고 있는 제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