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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레벨로 회귀한 무신-20화 (20/583)

<2레벨로 회귀한 무신 20화>

500억.

그 말에, 경매장의 열기는 찬물을 끼얹은 듯 차갑게 식었다.

‘저 배틀넷 커넥터가 신품이 20억쯤 할 텐데.’

‘예전 검왕 위상이었으면 물건에 프리미엄이라도 붙겠지만. 지금은 그저 중고나 다름없건만.’

‘데이터가 좀 탐나기는 해도. 그게 500억씩이나? 허…… 어처구니가 없군.’

‘경매는 의미가 없겠어.’

신자위대의 다케다 카즈오가 500억을 거론한 순간, 경매는 이미 끝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사회자가 성지한에게 물어보자,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뚜벅뚜벅 앞으로 걸어왔다.

“용건이 있으면, 그냥 여기서 하시죠.”

“죄송하지만, 50억 엔의 조건에는 독대도 포함되어 있습니다만…….”

다케다 카즈오는 과도할 정도로 고개를 숙이며 두 손을 비볐지만.

태도와는 달리, 그 말에 담긴 의미는 확실했다.

500억 받고 싶으면, 독대해라.

그러면서 입꼬리를 슬쩍 올리는 것이. ‘네가 이 제안을 받지 않고 배기겠어?’ 라고 비웃는 것 같았다.

성지한은 그 모습을 보며, 피식했다.

“그럼 거절하겠습니다.”

“하하, 예예. 당연히 그럼 독대를…… 예?”

손을 비비던 다케다 카즈오가 놀라 굽신거림을 멈추었다.

그는 자신이 잘못 들은 건 아닌지, 혼란스러워하다가.

“저…… 죄송하지만 한 번 더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제가 한국말이 익숙지 않아, 잘못 들은 것 같아서…….”

다시 허리를 굽신거리며 대답을 청했다.

“조건에 독대가 포함되어 있으면 그 돈, 안 받겠다고요.”

“……성지한 씨. 죄송하지만, 이 돈은 당신의 것이 아닙니다. 어디까지나 검왕께서 따님이신 윤세아 님께 드리는 금액이지요.”

어차피 이 500억, 네 것도 아닌데 왜 나서느냐.

다케다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사라졌다.

“그렇지 않습니까? 윤세아 님.”

“…….”

“50억 엔…… 저 같은 샐러리맨은 버는 거 한 푼도 쓰지 않고 평생 모아도 도달할 수 없는 액수입니다. 지금 삼촌께서 무슨 생각으로 저러는지는 모르겠지만, 실제로 돈을 받는 윤세아 님께서 냉정히 판단해 보십시오. 정말로 이 돈. 삼촌분의 말만 듣고 포기할 수 있겠습니까?”

500억이면 다케다의 말대로 천문학적인 금액이다.

성지한의 채널에서 경매 진행 상황을 지켜보는 시청자들도, 저 말에는 어느 정도 공감을 했다.

-거절하기에는, 너무나도 많은 돈이었다…….

-오늘 방송 종료 각인가요.

-그럴 듯. 어차피 저거 조카가 받을 돈인데, 삼촌이 초를 치는 꼴을 두고 보겠어?

-소드 팰리스 기부하고도, 윤세아는 잘만 먹고살겠네.

-아직 기부가 결정된 것은 아닙니다! 검왕께선 돌아오실 거예요!

-미친, 지금 저 일본 대머리가 검왕 대리로 나온 걸 보고도 그 소리가 나오냐.

“전…….”

윤세아는 성지한을 잠시 바라보았다.

왜 그가 독대를 거부하는지는 짐작할 수 없었지만, 다케다에게 말할 답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

“삼촌을 믿어요. 그러니 삼촌과 말씀 나눠 주세요.”

“허, 허어…… 그렇습니까.”

다케다는 한숨을 쉬더니, 굽신거리던 몸을 똑바로 세웠다.

윤세아를 통해 한 번 흔들어 보려고 했는데, 저들의 공고한 유대 관계만 확인시켜 준 꼴이 되었다.

-이간질 실패했죠?

-쯧쯧, 애가 어리네. 사회 생활 해 보면 500억이 아니라 1억만 줘도 독대 백 번은 할 텐데.

-검왕 딸이잖아.

-윤세아 님!! 성지한을 믿는다니요! 검왕가에서 엄. 중. 경. 고. 합니다! 계속해서 성지한에게 홀려 있다면, 저희는 당신을 검왕의 딸로 인정하지 않을 것입니다!

-검왕가 리얼 돌았네. 갓.중.경.고 소오름…….

채팅창이 난리가 나고 있다는 사실은 모른 채.

성지한은 윤세아를 향해 잘했다고 고개를 한 번 끄덕이고는, 다시 다케다를 쳐다보았다.

“세아도 이리 말하니. 하실 말씀이 있으면 독대가 아니라, 이 자리에서 해 주시죠.”

“허 참…… 왜 그리 독대를 거부하시는지. 저는 그쪽 입장을 생각해서 이렇게 말씀드리는 겁니다만.”

“괜찮습니다.”

500억을 받기 위해, 신자위대의 영입부장과 독대한다?

이건 그다지 좋은 그림이 아니었다.

저들 사이에서 무슨 말이 나올지 가늠이 안 된다.

아비는 여자에 팔리더니, 딸은 돈에 팔렸다는 비난이 나올지도 몰랐다.

물론 그 정도 비난쯤 솔직히 감수해도 될 만큼 500억이란 돈은 그만큼 어마어마하긴 했지만.

‘돈에 아쉽지 않을 때는 결국 온다.’

성지한이 이대로 쭉 플레이어로서 성장하다 보면, 결국 돈은 다 따라오게 되어 있다.

전생에서도 그런 순간이 찾아왔었고, 이번에는 그 순간이 더욱 빨리 찾아올 것이다.

그리고.

‘저 다케다라는 사람…… 꺼림칙해.’

정확히는, 신자위대의 영입부장이라는 직책이 마음에 걸렸다.

‘미국 망명 시기 때 들었었지. 미 정부에서 신자위대 영입부장을 입국 금지했다고.’

신자위대에는 미국의 유망주를 그렇게 쏙쏙 빼 가는 영입부장이 있어서, 미 정부 차원에서 입국을 불허했다고 했다.

그러면서 참으로 이상하다고 덧붙였지.

인종이고 성별이고 상관없이. 이상하게 그 대머리 영입 부장만 관여하면 다 홀린 듯이 일본으로 갔다고.

분명히 그에겐 특이한 기프트가 있을 거라고.

조심해서 나쁠 거 없었다.

“으으음…… 생각이 바뀌실 것 같지는 않군요.”

다케다는 잠시 고민하던 기색이더니, 다시 손바닥을 비볐다.

“휴휴, 알겠습니다. 성 상, 윤 상. 제가 졌습니다. 저 물건들, 50억 엔에 구매하는 건 그대로 진행하겠습니다…….”

-헐.

-뭐임.

-그냥 줘? 50억 엔?

“사실 그 돈은 검왕께서 주시라고 한 돈이니까요. 독대와는 관련 없이, 드릴 건 드려야죠.”

그 말에, 채팅창이 폭발했다.

-와, 왜놈 새끼 애초에 독대는 조건에 없었구만!

-이래서 쪽바리 놈들이랑 협상하면 안 된다니까!

-역시 자나 깨나 대머리 조심!

-일본은 욕하되 대머리 비하는 멈춰 주세요!!!!!

-여러분도 언제든지 머리가 빠질 수 있습니다!

다케다가 품에서 종이를 꺼냈다.

“그럼 원래는 독대해서 말씀드리려고 했지만, 한사코 거부하시니 여기서 검왕 이토 님의 말씀을 대신 전하겠습니다.”

-검왕 님의 전언?

-그런 게 있었어?

모두가 그의 입을 바라보았다.

“세아야, 소드 팰리스를 기부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왜 그런 짓을 했는지 안타깝구나. 이것이 내가 주는 마지막 유산이니. 이것이면 부족하게나마 생활할 수 있을 것이다.”

큼큼.

여기까지 읽고는, 잠시 목을 가다듬던 다케다는 마지막 문구를 유독 강조하며 힘 있게 읽었다.

“그리고 이것으로 부녀의 인연은 끝났으니, 다음을 기대하지는 말거라…… 라고 하셨습니다.”

“다음은…… 기대하지 말라고.”

이거 먹고 그만 떨어지라는 말인가.

성지한의 얼굴이 싸늘하게 변했다.

“예예, 이걸 보시면…….”

다케다는 단상에 올라와 종이를 가져다주었고, 어느새 성지한의 옆으로 다가온 윤세아는 무표정한 얼굴로 말했다.

“아빠 글씨 맞네.”

“……그래.”

500억.

대부분의 사람에게는 천문학적인 돈이다.

하지만 세계 랭킹 3위, 워리어 랭킹 1위의 검왕이라면 사실 큰 금액이 아니다.

일본의 신자위대에서, 한 달에 받는 급여만 해도 저거보다 많을 것이다.

‘근데 이걸 주고, 부녀의 연을 끊겠다고?’

저번에 한국 뜰 때는 그래도, 딸에게는 미안하다 말이라도 하더니.

지금은 이거 줄 테니 연을 끊겠다고 당당히 이야기하는군.

그래도 매형이라는 인간이 옆에서 볼 때는 딸을 상당히 아끼고, 이렇게까지 쓰레기는 아니었는데.

성지한은 이제 화가 나기보다는.

‘기프트 경국지색. 정말로 사실인가.’

예전에 박윤식이 말했던 풍문.

SSS급 기프트, 경국지색이 정말로 존재하는지 의심이 짙어졌다.

“하하…….”

한편, 윤세아는 편지를 보며, 메마른 웃음을 천천히 내뱉었다.

“다케다 씨.”

“예예.”

“이토 님에게, 마지막 유산 잘 쓰겠다고. 그리고 말씀에 따라 부녀의 연도 기꺼이 끊겠다고 전해 주세요.”

찌익, 찌익.

성지한의 손에 있던 종이를 빼 와서, 갈기갈기 찢어 버렸다.

“그럼, 삼촌. 돌아갈까?”

윤세아의 표정은 변화 없이 생긋 웃고 있는 모습이었다.

하나. 그녀의 미소가, 진짜 미소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아, 맞다. 이거, 쓰레기지…… 쓰레기 땅바닥에 버리면 안 되는데…….”

윤세아는 그러다가 땅바닥에 떨어진 종잇조각을 보고. 무릎을 굽혀 주우려고 했지만.

종이를 향해 뻗은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아버지의 글씨가 써진, 종잇조각을 줍는 것 자체에 몸이 거부감을 느끼고 있었다.

‘…….’

성지한은 그걸 보고, 바닥으로 손을 뻗었다.

“가만 둬. 내가 처리할 테니.”

둥둥.

찢어진 종잇조각이 허공으로 두둥실 떠오른다.

포스.

신성력과 마력이 합쳐, 공간을 지배하는 절대적인 힘.

그것이 게임이 아니라, 현실에서 종잇조각을 띄우기 위해 처음 사용되었다.

-뭐야? 저거?

-성지한이 지금 뭐 하는 거야?

-쟤 전사 아님?

-마법사…… 라기엔 주문을 말 안 했는데?

그리고 방송을 통해 이를 지켜보던 시청자들은 혼란에 빠졌다.

성지한이 지금껏 보여 준 모습은, 강력한 워리어 클래스 그 자체였는데.

지금 보이는 광경은 전혀 뜻밖이었다.

-기프트가 염동력 같은 건가?

성지한이 펼치는 힘의 정체에 대해 갑론을박이 이어졌다.

“파이어.”

성지한이 가볍게 한마디를 내뱉자, 종이가 모조리 타더니 재가 되어 사라졌다.

그리고 그걸 본 사람들은, 하나의 결론을 도출해 낼 수 있었다.

-파이어라니. 마법사다!

-성지한이 마법사라고?

-서바이벌에서 십 킬 달성한 인간이 메이지 클래스라니……!

자신의 상태창을 공개하지 않았던 성지한.

그가 디펜스 게임에서 서포터로 참여한 걸 보지 못한 시청자들은, 성지한이 당연히 워리어일 줄 알았는데.

‘파이어’ 마법을 쓰며 메이지 클래스임이 밝혀지자, 채팅 창은 아수라장이 되었다.

“이러면 쓰레기, 걱정 없겠지?”

“……삼촌.”

종이에서 피어난 불길을 보고 멍한 눈에 초점이 다시 생긴 윤세아.

그녀는 아까보다, 한결 밝은 표정으로 물었다.

“파이어라니. 마법사였어?”

“그건 아직 비밀이야.”

“어…… 나한테도?”

성지한은 피식 웃으며, 카메라를 바라보았다.

“내 채널 구독자가 20만을 달성하면, 밝힐 거거든.”

배틀튜브의 성지한 채널은 조회 수는 높았지만. 채널에 구독 버튼을 누른 구독자는 별로 없었다.

애초에 검왕 관련 뉴스로, 어그로를 잔뜩 끌어서 조회 수가 올라간 거였으니까.

이번 기회에 구독자 업적도 완료해야지.

성지한은 그리 생각하며, 카메라에서 시선을 뗐다.

“오오…… 이건 대체 무슨. 성 상, 워리어 클래스가 아니셨습니까? 거기에 이 힘은…….”

그리고 이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던 다케다는, 흥분으로 얼굴이 시뻘게져 있었다.

신자위대의 영입부장 다케다 카즈오.

일본 최고 길드의 영입부장까지 오른 자답게, 그는 성지한이 내보인 힘에서 일반 시청자들이 보지 못한 부분을 파악한 것이다.

“성 상!”

품을 뒤지더니, 성지한에게 고개를 푹 숙이며 명함을 건네는 다케다.

“꼭, 꼭 한 번만 이쪽으로 연락해 주십시오. 제가 신자위대 영입장의 권한으로, 최고의 대우를 약속드리겠습니다!”

“…….”

성지한은 명함을 묵묵히 바라보더니, 검지를 쑥 들어 올렸다.

그러자 다케다의 손에서 명함이 저절로 두둥실 떠오르더니, 성지한의 검지 위에서 빙글빙글 돌아갔다.

그리고 곧.

찌익.

명함이 찢기는 소리가 한 차례 들리더니.

찌익. 찌익. 찌익…….

“아…….”

순식간에 명함은 갈기갈기 찢겨 나가고, 잘린 종잇조각은 또다시 분해되기를 반복했다.

결국은 가루가 되고, 허공에서 사라져 버린 명함.

10초.

명함이 먼지가 되어 사라지기까지 걸린 시간은, 단 10초였다.

“…….”

웅성웅성.

방금 전까지만 하더라도 찬물을 끼얹은 것처럼 조용하던 경매장이 웅성거리는 소리가 퍼져 나갔다.

마법을 사용하지 않고, 순수한 포스의 힘만으로 사라져 버린 명함.

현실 세계에서는 게임과 달리 힘을 사용하는 데, 제약이 있다는 걸 고려한다면, 이건 명백히, 브론즈가 지녔다고 하기에는 규격 외의 힘이었다.

“이게 제 대답입니다.”

성지한이 그 말을 끝으로 등을 돌리자.

다케다는 얼굴이 시뻘게진 채 온몸을 부르르 떨었고, 그 뒷모습을, 카메라는 빠짐없이 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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