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레벨로 회귀한 무신 17화>
성좌.
하나의 별을 대표하는 절대자이며, 배틀넷에서 신적인 존재로 군림하는 이들이다.
‘성좌에 대해서는 전생에도 많이 알려지질 않았지.’
배틀넷의 튜토리얼 시기가 끝난 후, 모든 플레이어의 상태창에는 성좌 칸이 추가되었지만.
정작 성좌에게 후원을 받는 플레이어는 전무하다시피 했다.
최소 다이아 리그 이상 플레이어 중에서도 뛰어난 능력을 갖춘 이만이 성좌의 선택을 받았다.
‘지구인이 후원받지 못한 이유는 간단했다.’
2020년에 배틀넷의 튜토리얼이 끝난 이후 개막한 스페이스 리그.
거기서 지구인이 거둔 성적이 처참했던 것이다.
‘강등을 거듭하다 망할 별이라고 생각한 거지.’
그리고 어쩌다 성좌가 후원한다고 붙어도, 그다지 질이 좋지는 못했다.
그들이 주는 능력만큼 페널티도 엄청나서, 많은 이들이 성좌들의 농간에 큰 피해를 입었다.
성좌의 후원은 명실상부한 양날의 검이었다.
하지만 성지한은 양날의 검을 다룰 준비가 되어 있었으니.
그에게 성좌의 후원은 많을수록 좋았다.
‘성좌의 자리 하나는 이미 생각해 둔 게 있지만…… 분명히 업적 상점에서 성좌 슬롯을 늘리는 것도 팔 거야.’
지금까지 보아 온 업적 상점의 물건들을 떠올려 보면, 가능성은 매우 높았다.
그렇다면, 성좌 ‘그림자 여왕’의 흥미라는 보상.
노릴 만했다.
‘다만, 조건이 까다롭다.’
콜로세움의 관중들의 수가 문제였다.
그나마 콜로세움의 크기가 넓어 띄엄띄엄 앉은 이들이 대다수라 헷갈리진 않겠지만, 그 수만 해도 1,000명은 넘어 보였다.
성지한은 관중석에 앉았던 엘프들을 떠올렸다.
‘흰 엘프들이 검은 엘프들의 시중을 받고 있었지.’
표면적으로 보면, 상하 관계가 확실했다.
하지만 성좌의 이름이 ‘그림자 여왕’인 것이 마음에 걸렸다.
보이는 것과는 달리 검은 엘프 중에 여왕이 숨어 있을 수도 있으니까.
‘거기에, 관객석에 있는 엘프를 도발하라니.’
서바이벌 맵의 끝.
콜로세움 경기장의 경계에는 강력한 배리어가 둘러져 있었다.
브론즈 수준의 힘으로는 그 배리어를 뚫고 관객석의 엘프를 도발하기란 불가능한 일.
그런 제약은 무력을 지닌 성지한에게도 해당되었다.
“흠.”
로그아웃을 하고 집으로 돌아온 성지한이 곰곰이 생각에 잠겨 있을 즈음.
“삼촌! 신기록 세운 거 축하해!”
조카 윤세아가 방에서 나와, 성지한을 축하했다.
“신기록?”
“서바이벌 10킬 말이야! 진짜 대단했어!”
윤세아는 마치 자신의 일인 양 신이 나서 방방 뛰고 있었다.
“아. 그거. 보고 있었구나.”
“당연하지! 와. 근데 사람 많더라. 시청자 없을 줄 알고 내가 1호가 되려고 들어갔는데, 1,000명이나 넘는 사람들이 보고 있었어.”
“그래? 생각보다 많이 봤네.”
“어. 나중에는 사람이 점점 늘더니, 3,000명이 넘었다니까!”
브론즈 방송에 3,000명.
골드급 방송의 평균 시청자가 대략 2,000명인 걸 감안하면 윤세아가 호들갑을 떨 만큼 대단한 수치였지만, 정작 성지한의 반응은 담담했다.
전생의 기록에 비하면 이 수치는 새발의 피였으니까.
“근데 사람들이 GP 후원하고 싶어 하던데. 삼촌이 후원 완전히 차단해서 아쉬워하더라.”
“그래?”
예전의 습관대로 방송 설정을 바꿔 버려서 그런가.
후원을 완전히 차단한 상태였나 보다.
저번 생에서는 GP가 여유로웠으니, 전투 중 자꾸 뜨는 후원 메시지가 거슬려서 꺼 버렸지만.
‘지금은 상황이 달라.’
현재는 GP 한두 푼이 중요할 때다.
더구나 하위 리그에서는 메시지 좀 뜬다고 이길 싸움을 지진 않을 테니.
“설정 다시 바꿔야겠다.”
“응. 그래도 삼촌 싸움에 방해될 수 있으니까…… 1만 이하 후원은 플레이어 눈에 안 보이게 해 버리자! 아, 1만은 너무 싼가? 한화로 천만 원이면 싼 거 맞지? 아닌가. 비싼 건가?”
윤세아는 고개를 갸웃하며 고민에 고민을 거듭했다.
검왕의 딸로서 돈 걱정 하나 없이 풍족하게 살아서 그런지, 금전관념이 덜 잡혀 있었다.
“1만 GP…… 그래. 브론즈니 어쩔 수 없겠네.”
그리고 성지한은 금전관념은 어느 정도 갖춰져 있었지만.
다른 상식이 어긋나 있었다.
‘겨우 1만 GP로 내 채널에서 후원 메시지를 올릴 수 있다니…… 싸도 너무 싸군.’
머리로는 자신이 지금 브론즈라는 걸 알고 있지만.
가슴으로는 세계 7위 시절의 기준을 아직 완전히 버리질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메시지가 너무 많이 쏟아지면 방해되긴 하는데.”
“그러게…… 5만이 좋을까?”
“아니, 그래도 일단 시작 단계니까. 겸손하게 가야지.”
쓸데없는 걱정을 하는 삼촌과 조카였다.
배틀넷 채널 설정을 바꾸는 성지한을 가만히 지켜보던 윤세아가 아차 하는 표정으로 물었다.
“근데 삼촌. 아까 무슨 생각하고 있었어? 고민하는 얼굴이었는데.”
“아. 그거? 관중석 엘프 중에 그림자 여왕을 찾으라는 퀘스트가 있어서.”
“퀘스트? 배틀넷에 그런 것도 있어?”
“10킬 달성하니 생기더라.”
조카의 의문에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답한 성지한.
배틀넷이란 게임이 원래 밝혀지지 않은 부분이 많았기에, 윤세아는 그렇겠거니 하며 수긍했다.
“음~ 그림자 여왕이라.”
“관중석에 엘프만 천 명쯤 되는 거 같은데, 어떻게 찾아야 할지 생각하고 있었어.”
“삼촌. 내가 도와줄까? 어차피 나 할 일도 없는데.”
“학교는 어쩌려고?”
“담임 선생님이 연락 오셨어. 이번 일 때문에, 학교 일주일 쉬어도 된다고.”
검왕 윤세진의 일본 귀화가 전국을 뒤흔드는 이슈라 그런지, 담임이 특별히 배려를 해 준 것 같았다.
“그래. 세아가 도와주면 나야 좋지.”
집에 있는 동안, 할 일 없이 지내면 괜히 안 좋은 생각만 들 테니까.
뭐라도 집중할 만한 일이 있으면 좋을 터.
성지한은 큰 기대를 하지 않은 채, 조카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좋아. 삼촌. 내가 그림자 여왕을 꼭 찾을 테니까. 나중에 나 부탁 하나만 들어줘.”
“부탁? 뭔데, 지금 말해 봐. 바로 들어줄 테니까.”
“에이. 바로 들어주면 성취감이 없잖아. 찾으면 들어 줘!”
무슨 부탁을 하려는 건지.
성지한은 의아해했지만, 담담히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 그림자 여왕을 찾으면, 뭐든지 들어 줄게.”
“좋아. 바로 찾아야지!”
그러며 다시 자기 방으로 뛰어 들어가는 윤세아였다.
‘활기차서 좋네.’
그 모습을 보고 피식 웃은 성지한은 자신의 방으로 들어갔다.
쉽게 풀리지 않을 에픽 퀘스트는 일단 나중으로 미루고.
이보다 먼저 해야 할 일이 있었다.
‘유니크 스탯.’
세계 랭킹 1위였던 배런의 유니크 스탯.
‘포스’를 얻어야 했다.
* * *
다음 날.
[외계의 성물에서 신성력을 흡수했습니다.]
[신성력이 10이 되었습니다.]
[이제부터는 C등급 이상의 성물에서만 신성력을 흡수할 수 있습니다.]
성지한은 성물 더미에서 몸을 일으켰다.
이제부터는 C등급에서만 신성력을 흡수할 수 있다는 메시지가 떴지만, 상관없었다.
드디어 칭호 효과를 제외한, 진정한 의미의 신성력 10이 되었으니까.
그는 펜트하우스 외곽에 자리한 수련실로 갔다.
검왕 윤세진이 자신의 검술을 실험하던 장소라 그런지, 수련실은 공간 전체가 충격을 흡수하는 특수 금속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파이어.”
메이지 클래스로 각성하고도, 단 한 번도 쓰지 않았던 기초 마법 파이어.
성지한은 그걸 게임이 아니라, 현실에서 처음 사용했다.
손바닥 중심에서 촛불처럼 작게 피어오르는 불꽃.
어린아이가 불어도 금방이라도 꺼질 듯, 불은 위태위태했다.
‘역시 마법사는 적성이 아니야.’
마력 5에, 현실에서는 능력이 반도 발휘되지 않는다는 페널티까지 더해지니 기초 마법의 출력이 무슨 라이터만도 못했다.
‘여기에 신성력을 더한다.’
성지한은 배런의 말을 떠올렸다.
-브론즈 때, 나는 좀비를 때려잡다 문득 이런 생각을 했지. 마법에 신성력을 부여해 보면 어떨까 하고 말야.
-마스터라서 가능한 방법이군요.
신성력은 서포터로 각성해야만 주어지는 능력치고.
마법은 메이지여야만 사용할 수 있다.
마법에 신성력을 부여하는 발상 자체는 누구나 할 수 있었지만, 이를 실현으로 옮길 수 있는 건 ‘내 상태창 2개’ 기프트를 지닌 배런밖에 없었다.
-그래. 내 위대한 기프트, 내 상태창 2개는 이런 발상을 바로 실현시켜 주었어. 나는 디펜스 맵에서 매번 승승장구했지. 그리고 능력치를 신성력과 마력에 1씩 균등하게 찍으며…….
술에 취해 있던 배런의 흐리멍텅한 눈동자는, 이때만큼은 초롱초롱했었다.
-그리고 신성력이 10이 된 그 순간! 오 마이 갓! 나에게, 유니크 스탯이 찾아왔지! 그래…… 나 배런의 트레이드마크, ‘포스’가!
포스.
마력과 신성력이 합쳐지며 나타난 새로운 유니크 스탯.
그것은 ‘공간’을 지배하는 절대적인 힘이었다.
배런의 포스는 지금의 성지한이 생각해도 엄청난 힘이었다.
‘배런이 컨트롤만 좋았다면, 진짜 랭킹 1위다운 모습을 보였겠지.’
다만, 그가 심각할 정도로 발컨이라는 게 인류에게는 불행이었을 뿐.
거기에 긴급 상황에서는 쉽게 당황하고, 힘의 조절을 실패해 아군에게 피해를 끼치기도 했지.
‘포스…… 내가 얻어 제대로 보여 주마, 배런.’
무수한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는 포스.
성지한은 자신이 이것을 손에 넣어, 무력과 함께 쌍두마차로 운용할 생각이었다.
‘……쉽게 되지는 않는군.’
하지만 ‘포스’는 쉽게 성지한에게 찾아오질 않았다.
배런의 말대로 신성력을 10으로 키워, 마법에 섞어 쓰고는 있었지만.
‘일단 잘 섞이지가 않아.’
신성력의 운용은 꽤 자유로운 반면, 마법은 서툴렀기 때문이다.
신성력을 넣으려다가 파이어가 사라지는 다반사에.
어쩌다가 성공해도, 오래 지속되지 않고 불이 꺼지는 등 성지한의 마법은 제 모습을 유지하지 못했다.
“흠. 마력을 올려야 하나.”
마력 스탯 5.
아무래도 플레이어 최하 수치니, 마법이 제대로 발현되지 않는 것 같았다.
어제의 서바이벌에서의 수확으로 2레벨이 상승해, 올리려면 올릴 수야 있었지만.
‘먼저 되는 데까지 노력해 보자.’
유니크 스탯이 될 포스에 직접 찍으면 모르되, 이 잔여 포인트를 마력에 찍는 건 너무나도 아까웠다.
‘오늘 하루는 게임 쉰다.’
성지한은 마음을 진득하게 먹고 재차 연습을 시작했다.
* * *
“후우…….”
아침부터 밤이 될 때까지.
성지한은 계속해서 신성력과 마법의 융합을 시도했지만, 뚜렷한 성과는 없었다.
‘그래도 뜻밖의 결과물은 있었지.’
마력 수치가 워낙 낮다 보니, 심장의 마력이 금방 고갈되어 연습이 불가능해졌을 때였다.
-내공을 사용해 볼까?
마력이 회복되기를 기다리던 성지한은 무력의 근원지인 하단전에서 기를 끌어오자고 생각했다.
브론즈 수준에서 가능한 방법은 아니었지만, 성지한의 풍부한 경험을 토대로 기를 운용한 결과.
하단전의 기를 끌어와, 심장에서 마력으로 바꾸는 작업은 어느 정도 성과를 보이고 있었다.
‘기의 손실이 크긴 하지만…….’
어차피 지금은 마법을 사용하는 게 중요하니까.
성지한은 기로 마력을 보충하며 또다시 기계적으로 마법을 사용했다.
“파이어.”
그리고 여기에 신성력을 섞어, 흩어지지 않게만 하면 되는데.
신성력이 들어서자, 마력이 부족했는지 촛불이 또다시 흔들리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내공을 더 불어넣자.’
내공도 이제 거의 고갈된 상태.
성지한은 이번에 실패하면 다른 방법을 모색하기로 하고, 하단전의 기운을 끌어올렸다.
그렇게 하단전의 내공과 심장의 마력, 머리의 신성력, 세 가지의 기운이 절묘하게 파이어에 모였다.
그때였다.
[삼단전三丹田의 기운을 일시적으로 합치는 데 성공했습니다.]
[상단전上丹田에 머무는 신성력. 중단전中丹田에 머무는 마력. 하단전下丹田에 머무는 내공은 서로 다른 성질의 힘이지만, 하나로 합쳐질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원래 얻으려는 포스와는 다른, 전혀 뜻밖의 시스템 메시지가 눈에 떠올랐다.
[삼단전三丹田의 통합을 시도하겠습니까?]
[경고 : 플레이어의 수준이 너무 낮아, 위험한 시도입니다. 생명에 지장이 갈 수 있습니다.]
튜토리얼 시기의 배틀넷에서 생명이 위험하다는 경고 메시지는 나온 적이 없었다.
성지한은 그것을 보고,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이렇게 경고 메시지가 나올 정도로 위험한 시도라면…….
‘성공했을 때 얻는 보상도 크다는 뜻.’
그는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삼단전을 통합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