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레벨로 회귀한 무신 13화>
성지한의 방송이 끝난 다음 날.
[검왕이 일본을 간 것은 여자 때문?]
[검왕의 딸. 검왕의 유산을 기부하겠다고 선언!]
[소드 팰리스의 쌍검상, 처남에게 부서져.]
한국의 모든 뉴스에서는, 이 방송 관련 내용을 속보로 다뤘다.
‘역시 배틀튜브의 파급력이 굉장하군.’
검왕 윤세진을 다룬 내용이니만큼, 대중들의 관심은 어마어마했다.
[싫어요 5만 개를 수집했습니다.]
[일반 업적, ‘비록 세상이 그대를 미워할지라도 (3)’을 클리어했습니다.]
[업적 포인트 5,000을 보상으로 획득합니다.]
[좋아요 5만 개를 수집했습니다.]
[일반 업적, ‘사…… 사랑합니다 (3)’을 클리어했습니다.]
[업적 포인트 5,000을 보상으로 획득합니다.]
방송이 끝난 이후에도, 기사를 보고 배틀튜브에 남겨 둔 영상의 조회 수가 오르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이 누르는 좋아요와 싫어요를 통해, 일반 업적이 방송이 끝나고도 클리어가 되었다.
‘이번 방송으로 업적 포인트만 33,000이나 벌었군.’
게임에서 긴급 퀘스트를 깨며 깨작깨작 벌다가 한 번에 대량의 포인트를 획득해 버렸다.
‘이 기세면 좋아요, 싫어요, 10만 개까지 갈 수도 있겠어.’
기사를 보고 유입되는 시청자 숫자가 워낙 어마어마한 데다가.
[일본에서도 긴급 속보에 올라…….]
[일본 네티즌들, 검왕이 대체 누구한테 반한 것인지 의문스러워해…….]
검왕 윤세진이 귀화한 일본에서도 시청자가 유입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니, 10만 업적을 깨는 건 시간문제고, 그 이상까지 바라봐도 될 것 같았다.
“와. 진짜 난리도 아니네.”
윤세아는 폰으로 기사를 바라보며, 걱정스러운 어조로 말했다.
“근데 삼촌 욕이 엄청 많은데…… 당분간 뉴스 안 보는 게 낫지 않을까? 사람들 반응 장난 아니야.”
“후후…… 난 재밌는데?”
성지한은 피식 웃으며 댓글들을 바라보았다.
검왕가로 추정되는 사람들이 원색적인 쌍욕을 쏟아붓고 있었지만.
성지한은 오히려 기쁜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어그로가 윤세아가 아닌, 정확히 자신에게 끌린다는 방증이었으니까.
“그리고 검왕가 이 사람들이 내 핸드폰 번호는 어떻게 알았는지 문자가 계속 오고 있어.”
성지한은 그 말에 미간을 찌푸리며 생각했다.
‘이때만 해도 농담 삼아 국민의 반이 검왕가라고 했으니…… 폰 번호 털리는 건 당연한 건가.’
검왕 윤세진.
2010년을 기점으로 지구에서 모든 프로 스포츠가 사라진 현재.
그의 위상은 한국의 역대 모든 스포츠 스타를 합친 것보다 더 높았다.
배틀넷은 세계 유일의 프로 스포츠일 뿐만 아니라, 게임 내에서의 국가별 순위는 나라의 운명을 결정할 정도로 중요했으니까.
‘지옥 같던 동북아시아 리그에서, 한국이 그나마 순항했던 이유가 윤세진의 존재 때문이었지.’
배틀넷 동북아시아 리그.
한국, 일본, 러시아 동부, 중국 동부, 대만.
이 다섯 나라가 포함된 지역 리그는, 서유럽 리그와 더불어 세계에서 가장 경쟁이 치열한 것으로 유명했다.
거기서 한국이 잘 버틸 수 있었던 것은 전적으로 세계 랭킹 3위인 검왕 윤세진 덕분.
이런 위상 때문에 광화문 광장에 검왕의 동상도 세워야 한다고 국민 청원이 올라온 적이 있었으며, 실제로도 추진될 뻔했다.
검왕이 일본으로 가겠다고 기자 회견을 했음에도, 사람들이 미련을 놓지 못하는 이유에는 이런 배경이 깔려 있었다.
“검왕가 놈들. 문자에서 뭐래?”
“아버지 설득해 달라고 하면서…… 삼촌 믿지 말래. 사기꾼이라고.”
“머리가 단단히 깨지면 녹취록을 듣고도 그런 말이 나오는구나.”
“아무튼! 나야 당연히 삼촌을 믿는데…….”
윤세아는 양손으로 턱을 괴며 성지한을 올려다보았다.
“삼촌. 왜 이렇게 사람이 달라졌어?”
성지한은 피식 웃음을 지었다.
“예전엔 어땠길래?”
“그냥…… 뭐.”
“집에서 도박만 하던 한심한 인간이 왜 이렇게 바뀌었는지 궁금하니?”
“에이. 누가 우리 삼촌을 그렇게 봤다고. 난 그렇게 생각 안 했다? 헤헤.”
성지한은 이때의 자신을 떠올렸다.
당시의 자신은 평범한 그 나이대의 남성이었다.
누나나 매형이, 특별한 기프트를 타고 나서 이 배틀넷의 세계에서 승승장구했던 것과는 다르게.
그는 공부를 특출 나게 잘하지도, 그렇다고 플레이어로서 뛰어난 능력을 보이지도 않은 채.
그저 성공한 누나네와 같이 살며, 무위도식했다.
-동생아. 사업 하나 맡아 볼래?
집에서 맨날 뒹굴면서 배틀넷 승부 예측만 하는 성지한에게 성지아는 일을 시키려고 했지만.
-이게 내 천직이야.
성지한은 그렇게 대꾸하며, 집에서 놀고먹는 걸 반복했다.
그렇게 얘기할 수 있는 이유는 그에게 주어진 F급 기프트, 다른 플레이어를 잘 파악한다는 ‘방랑자의 눈’에 있었다.
꽤 높은 승부 예측 적중률은 당시의 그를 한량으로 만들기에 충분했으니까.
한심한 동생을 보며, 누나 성지아는 몇 번이고 한숨을 쉬었었다.
윤세아도 성지한의 이런 모습을 보고 자라 왔으니, 그가 얼마나 대책 없는 사람인지를 잘 알고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너무 달라졌으니 의아해할 만하지.’
하지만 그렇다고 모든 걸 밝힐 수는 없다.
‘무력 스탯의 존재 정도는 이야기할까. 어차피 나중엔 알려질 테니까.’
성지한이 그렇게 생각할 때.
삑- 삑- 삑-
벽면의 패드에서 알람 소리가 났다.
“누구지?”
“세아야. 앉아 있어.”
윤세아가 일어나려 하자, 성지한은 그녀를 만류했다.
“검왕가 놈들일 수도 있으니까.”
“아…….”
이 당시의 전생에선 검왕가를 비롯한 수많은 사람들이 벨튀를 비롯한 갖은 민폐를 자행했었지.
그래서 나중엔 전원을 차단해 버리기까지 했다.
‘미리 작업해 둬야겠군.’
그렇게 생각하면서 월 패드를 켠 성지한의 눈에, 양복 차림의 중년 남성이 비춰졌다.
어딘가 낯이 익은 얼굴이었다.
“누구시죠?”
[안녕하십니까. 배틀넷 관리국 소속 과장, 박윤식입니다.]
이름을 듣자, 성지한은 박윤식에 대해 기억이 났다.
‘이 사람, 좋은 사람이었지.’
검왕 윤세진이 한국에 있을 때만 해도, 뻔질나게 찾아오던 관리국장은 윤세진이 일본으로 떠난 후엔 귀신같이 발길을 끊었다.
대신 이 사람, 박윤식 과장만큼은 성지한과 윤세아의 상황을 안타깝게 여겨 그들의 편의를 많이 봐주었었다.
‘방송이 끝난 지 하루 만에 방문이라니. 참 빠르군.’
어차피 정부 측과도 나눠야 할 이야기가 있었다.
“들어오세요.”
성지한은 문을 열었다.
* * *
배틀넷 관리국 과장 박윤식은 성지한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사람이 달라졌어.’
관리국장을 따라서 소드 팰리스를 방문했을 때, 몇 번 본 적이 있다.
그의 기억에 남아 있는 성지한은 기본적으로는 방구석에 틀어박혀 있는 한량이었다.
관리국장도 똑같은 인상을 받았는지, 돌아가는 차 안에서 꽤나 흉을 봤었다.
-쯧쯧. 검왕님도 참…… 저런 쓰레기를 왜 집에 데리고 사는지 모르겠어. 그냥 적당히 방 하나 구해 주고 쫓아버리시지.
그렇게 성지한에 대한 인식은 잘난 매형과 누나를 만나서 호의호식하는 기생충,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하지만 어제의 방송도 그랬고.
“앉으시죠.”
지금 자신을 맞이하는 성지한의 모습은 예전과는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예전에 보았던 퀭한 모습과 달리, 여유로워 보였다.
그리고 그 여유 속에는 알 수 없는 자신감이 보였다.
‘성지한. 그의 기프트는 F급일 텐데…… 특별한 능력이라도 생겼나 보군.’
박윤식은 집에 찾아오기 전, 미리 성지한에 대한 정보를 숙지하고 온 상태였다.
분명 정부 기록에는 그의 기프트가 F급이라고 알려져 있었는데.
그 유명한 강남 1 에어리어에서 튜토리얼 1등을 한 걸 보면, 뭔가 그에게 특별한 것이 있는 듯했다.
박윤식은 그 부분에 대해서는 나중에 파악해 보기로 하며, 말문을 열었다.
“어제의 방송은 저희 관리국에서도 충격적으로 지켜보았습니다. 검왕께서 나라를 위해 한 일이 많았지만 정부도 부족하게 대접하지는 않았다고 생각했는데…… 녹취록을 들으니, 검왕의 일본 귀화가 확실히 사실로 다가오더군요.”
성지한이 고개를 끄덕이자, 박윤식은 말을 이었다.
“특히 통화에서 거론된 ‘일본 여자’…… 그 사람에 대해선, 저희도 짐작이 가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네? 그게 누구죠!?”
옆에서 조용히 듣던 윤세아가 벌떡 일어나 묻자, 박윤식은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말했다.
“배틀넷 관리국은 우리나라뿐 아니라, 세계 각국의 플레이어의 정보도 수집합니다. 그중, 같은 동북아시아 리그에 포함되어 있는 나라는 더 면밀하게 정보를 수집하는 편이죠.”
“아무래도 그렇겠죠?”
“그렇게 일본 플레이어에 대해서 정보를 모으던 중, 하나의 풍문이 들려오더군요. 일본에 SSS급 기프트를 지닌 유저가 있다고요.”
“어? 일본은 SS급이 최고 아니었어요? 한 달 전만 해도 그걸로 서로 시비도 걸리고 그랬는데…….”
윤세아가 말한 양국 간의 시비는, 사실 코미디나 다름없는 일이긴 했다.
일본이 내뱉은 망발에 분노한 한국 배틀넷 유저들이 일본 인터넷 게시판에 ‘SSS급도 없는 찐따 나라’라고 놀린 건에 대해 일본 정부가 나서서 정식 항의를 해 온 것이었다.
한국의 자랑이었던 윤세진은 SSS급 기프트, ‘쌍검의 극의’를 지니고 있었고, 실제로 일본은 SSS급 유저가 없었기 때문이다.
“소문의 SSS급 기프트의 이름은…… ‘경국지색’이라고 하더군요.”
“……경국지색이요?”
나라를 기울게 한다는 아름다움을 뜻하는 경국지색.
그딴 기프트가 SSS급이라니!
윤세아는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냥 예쁜 것 가지고, SSS급을 받아요?”
“‘그냥’ 예쁜 게 아니니 문제지요. 사실…….”
박윤식은 살짝 윤세아의 눈치를 살피다, 말했다.
“검왕께서 여자가 없으셨던 건 아닙니다. 성지아 님께서 돌아가신 이후. 유명 여배우와도 여러 번 만남이 있고는 했지요. 관리국에서는 이게 매스컴에 드러나지 않도록, 프라이빗한 장소를 제공하기도 했습니다.”
“……그랬나요.”
윤세아가 다소 굳은 얼굴로 다시 소파에 앉자, 박윤식이 말을 이었다.
“그렇게 한국에서도 여러 여성분과 자유롭게 연애를 즐기고 계셨는데. 굳이 타국의 여자 때문에 귀화를 했으니…… 저희 관리국에서는 아무래도 소문의 경국지색이 검왕 귀화 작전에 투입된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SSS급 기프트, 경국지색을 지닌 여자.
성지한은 이 이야기를 듣고, 예전 기억을 떠올렸다.
‘예전에도 박윤식에게 이 이야기를 들었지만. 그녀의 정체는 끝까지 밝혀지지 않았지.’
한국이 멸망할 때까지도 검왕의 여인에 대해서는 알려지지 않았다. 그 이후에는, 검왕부터가 행적을 감춰 버렸었으니까.
“SSS급 기프트, 경국지색…….”
“그래도 저희는 희망을 놓지 않고, 검왕을 다시 설득해 보려고 합니다. 그래서 말인데. 정부 측에서 이번 기부와 관련해서 제안이 있습니다만.”
“뭐죠?”
“정부 측에서는 소드 팰리스를 기부받기보다는, 위탁하여 운영하려 합니다. 검왕께서 돌아오시면 다시 돌려 드려야 하니까 말이죠.”
“…….”
“그리고 이 펜트하우스에서는, 계속 사셨으면 합니다.”
기부하겠다는데도 안 받겠다는 정부 측 입장.
그걸 들은 윤세아는 의아한 듯 고개를 갸웃했지만.
옆에서 듣던 성지한은 피식 웃을 수밖에 없었다.
“윗분들, 어지간히도 욕먹기 싫은가 보군요.”
“…….”
“SSS급 이야기를 들으니 더 확실해지네요. 설득할 자신, 솔직히 없으시죠?”
“……힘들어 보이긴 합니다.”
“하지만 건물을 그대로 기부받는다면, 국민들 앞에서 ‘저희는 검왕을 설득할 수 없습니다.’ 라고 자인한 꼴이 될 터. 책임을 회피하겠다는 속셈이고요.”
성지한의 말에 박윤식은 소름이 돋았다.
현재 배틀넷 관리국은 빗발치는 항의 전화로 몸살을 앓고 있는 중이었다.
대략 ‘국민의 혈세’ 운운하며 정부는 검왕을 다시 모셔오지 않고 대체 뭘 하고 있냐는 호통들.
이런 판국에, 소드 팰리스 기부를 넙죽 받는다면 정부가 검왕을 포기했다는 꼴로 비춰질 수 있었다.
‘그렇게 되면, 안 그래도 저점을 찍은 지지율이 시궁창에 처박히겠지.’
어차피 검왕을 설득할 수 없다면, 국민이 먼저 그를 포기하게 해야 했다.
“그러고 보니, 이제 한일전이 한 달도 채 남지 않았죠?”
“…….”
“그때, 이토 류헤이로 이름을 바꾼 검왕이 나와서 우리나라를 깨부수면. 국민 여론이 검왕을 성토하는 것으로 흘러갈 테니, 그때까지는 소드 팰리스를 위탁 운영하겠다는 의미 아닙니까?”
성지한의 분석에, 박윤식의 등 뒤에 식은땀이 흘렀다.
그의 예측, 너무나도 정확하다.
그래도 그는 애써 입으로, 이를 부정했다.
“그렇지는, 않습니다. 저희는 최선을 다해 검왕을 설득할 것입니다.”
“좋아요. 그 입장, 이해합니다.”
성지한은 여유로운 얼굴로, 발을 꼬았다.
“저는 딱히 정부랑 척지고 싶은 생각이 없어요. 다만, 하나 조건이 있을 뿐입니다.”
“……무엇인지 들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이 펜트하우스에 계속 살아도 된다고 하셨죠?”
어느새 박윤식은 성지한의 페이스에 휘말려, 그의 말에 고개만 끄덕이고 있었다.
“저희는 정부의 입장을 수용할 테니, 그쪽에서도 작은 편의를 봐주셨으면 합니다.”
“어떤…… 편의 말씀이십니까?”
“간단해요.”
성지한은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검왕의 콜렉션을 좀 팔 테니, 경매 좀 주선해 주세요.”
“경매요?”
“예. 외국인도 입장할 수 있게 말이죠. 특히, 일본은 더더욱.”
“……설마!”
일본을 특정한 성지한의 이야기를 듣고.
박윤식은 눈을 부릅떴다.
설마 그가 팔려는 것은……!
“맞아요. 커넥터.”
통각 감소 수치 99%의 최고급 배틀넷 커넥터.
그냥 이 물건 시세만 해도 강남의 집값만큼 비싸지만.
이게 검왕의 것이라면, 그 가치는 프리미엄이 붙어 더욱 높아진다.
그리고 특히 검왕 윤세진은 이 물건을 지금껏 잘 사용해 왔고, 활동 데이터도 남아 있었으니까.
‘자신의 데이터를 남에게 넘기기 싫으면, 경매에 참여하겠지.’
실제로 과거에도 정부가 소드 팰리스를 몰수하고.
펜트하우스의 물건을 경매에 부쳤을 때, 주한일본대사가 이를 모두 사 갔지.
아마 윤세진 대신, 대사가 대리해서 구매한 것일 터.
“이거 팔 테니. 정부에서 보증해 주세요. 판매 대금은 세아 계좌로 넣어 주시고요. 그리고.”
성지한은 허공에 네모를 그렸다.
“이 경매는, 제 배틀넷 채널로 독점 생중계해 주셔야 합니다.”
꿩만 먹을 필요 있나.
알도 먹어야지.
업적 포인트를 벌 생각에, 성지한의 입가에 미소가 짙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