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레벨로 회귀한 무신 12화>
‘윤세진……!’
지금껏 연기였던 성지한은, 통화를 듣고 진심으로 이를 갈았다.
사랑 때문에 자식마저 버린 비정한 새끼.
그가 윤세아에게 한 통보를 옆에서 들으니, 분노가 치솟았다.
‘예전에는 이런 내용인 줄 몰랐다.’
당시 성지한은 자신을 추스르기 바빠서, 윤세아에게 신경을 쓰지 못했기에 이 통화가 생생하게 기록되어 있는 줄은 몰랐다.
-와…… 무친놈…… 무친놈…….
-검왕 이거 완전 개새끼네?
-일본으로 튄 게 고작 여자 때문이었어?
사람들은 대부분 이 통화 내용을 듣고, 같이 분개했지만.
-아닙니다. 이건 가짜입니다!
-검왕께서. 그러실. 리가. 없습니다.
-검왕가가 보증해요!
검왕의 팬클럽, 검왕가 소속의 팬들은 애써 이 현실을 부정했다.
‘검왕가. 저 암덩어리들.’
배틀튜브에 대해서 서투른 척하던 성지한.
하지만 그의 눈은, 순식간에 올라오는 채팅창의 글을 모조리 훑고 있었다.
이 녹취록을 듣고도, 검왕이 그럴 리가 없다고 실드를 치는 사람들은 대부분 검왕의 팬클럽.
‘저것들이 결국 세아를…….’
성지한은 과거에 벌어졌던 끔찍한 일을 잠시 생각하다가, 지금 카메라 앞에 놓인 상황을 상기하며 표정 관리를 다시 했다.
“이렇듯, 검왕 윤세진은 확실히 자신의 의사를 저희에게 표현했습니다.”
“……네. 맞아요.”
성지한의 말에, 한 박자 늦게 대답하는 윤세아.
그녀의 표정은 애써 흔들림이 없었다.
하나 슬픔을 잊으려는 듯한 처연한 표정이 오히려 시청자들의 마음을 자극했다.
-딸은 무죄다.
-어허. 딸이 뭐냐. 세아 님은 어쨌든 무죄다.
-미친 새끼들…….
-지금 얼굴이 중요해?
물오른 윤세아의 외모로 인해 의견이 갈린 채팅창.
그 혼란상을 잠시 지켜보던 성지한은, 드디어 오늘 배틀튜브의 중계를 시작한 본 목적을 꺼냈다.
“이렇듯, 저희도 그제 매형에게 일방적으로 이를 통보받았습니다만…….”
“저는 아버지의 이러한 돌출 행동에 대해서, 책임을 통감합니다. 딸로서, 제가 처신을 잘못한…… 거겠죠.”
윤세아의 목소리가 잠시 멈추더니.
그녀가 잠시 카메라의 렌즈 앞에서 얼굴을 돌렸다.
감정이 북받치는 모습.
사람들은 잠깐 드러난 그녀의 침묵을, 아무도 탓하지 않았다.
저 모습, 연기일까 진심일까.
성지한은 착잡한 마음으로 그녀를 불렀다.
“세아야.”
그러자, 다시 얼굴을 렌즈 앞으로 원위치시키는 윤세아.
그녀는 붉어진 눈시울로 말문을 열었다.
“아버지는…… 저에게 소드 팰리스를 물려주신다고 했지만. 저는 도저히 이를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저희는 이 자리에서 선언하고자 합니다.”
“검왕 윤세진이 제게 남겨 준 이 빌딩, 소드 팰리스를 국가에 기부하겠습니다.”
-헐…….
-소드 팰리스를……?
소드 팰리스를 국가에 기부한다는 소식에, 채팅창에 술렁임이 감돌았다.
소드 팰리스.
강남 한복판에 지어진, 67층짜리 주상복합 빌딩.
그 가치는 어마어마해서, 3대가 아니라 10대가 떵떵거리며 살아도 부족하지 않을 건물이었다.
그걸, 국가에 기부한다니?
-미쳤나?
-저 애. 검왕 딸 사칭한 거 아니야?
-소드 팰리스를 기부한다니…….
-그 정도면 조 단위 아님?
-검왕가의 일원으로 말씀드립니다. 세아 님. 당신은 속고 계신 겁니다. 옆에 있는 남자를 조심하십시오. 그놈이 사기꾼입니다.
사람들이 이런 반응을 보이는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
소드 팰리스.
그 건물의 가치도 매우 뛰어나기는 했지만.
그걸 기부하겠다는 건, 검왕이 한국에 절대 오지 않을 거라는 확신을 드러낸 거나 다름없었으니까.
팬클럽 검왕가의 사람들은 더 반응이 격렬해서, 성지한을 매도하는 글로 채팅방을 도배하다시피 했다.
차마 검왕의 딸 윤세아를 공격할 수 없었던 것이다.
‘저것들은 종교 집단이야.’
그것도, 광신에 가까운 종교 집단.
성지한은 저들에 대해서는 일단 무시하기로 했다.
어차피 사상이 바뀔 집단이 아니니, 저들의 비위를 맞출 필요는 그 어디에도 없었다.
지금은 조카 윤세아에게 생겨날 사람들의 적의를 미리 없애 놓는 게 최우선이었다.
‘어차피 빼앗기는 건물, 조금 더 사느니 나라에 넘기는 게 낫지.’
지금은 아깝다는 생각이 들 수 있어도, 검왕 윤세진이 일본에서 본격적으로 활약하면 문제는 달라진다.
검왕뿐만이 아니라, 그의 유산을 받은 윤세아도 전 국민의 분노에 직면하게 될 테니.
그런 상황이 닥치는 것을 미연에 방지하는 게 중요했다.
‘이깟 건물은 플레이어로 성공하면 얼마든지 다시 구입할 수 있어.’
사냥개로 굴렀던 성지한조차도 배틀넷의 막바지, 최후의 10국만 남았을 적엔 뉴욕 한복판에 이보다 더 큰 건물에서 살았다.
아무리 아메리칸 퍼스트 길드에서 2등 시민 취급당했다고 해도, 물질적인 혜택은 부족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리고.
‘검왕가…… 이들의 적의는 온전히 내가 받아야겠지.’
검왕 팬클럽, 검왕가.
검왕이 일본의 국가대표로 나와서 한국을 침몰시키자, 대부분의 사람들은 여기서 탈퇴했지만.
소수는 남아서, 더 극성적인 광팬으로 변했다.
그들은 처음에는 검왕의 핏줄인 윤세아를 옹호하는 듯싶다가, 나중에는 완전히 흑화해 버린다.
-딸이 처신을 잘못해서 검왕께서 나라를 버리셨어.
-윤세아가 죽어야 검왕께서 오신다!
윤세아에게 참혹한 일을 벌일 정도로.
저번 생에는 이를 지켜볼 수밖에 없었지만.
이제는 아니었다.
‘그래. 이참에 확실하게, 검왕가의 적의를 내게로 돌리자.’
뚜벅. 뚜벅.
성지한은 설치해 둔 카메라 앞으로 걸어가더니, 이를 그대로 들었다.
“삼촌……?”
갑자기 카메라 위치를 옮기는 성지한의 돌발 행동에 윤세아가 연기 톤에서 벗어나 의문을 던졌다.
-어?
-어디 가는 거임?
시청자들도 덩달아서 어딜 가는지 궁금해했다.
성지한은 그들의 의문에 답하지 않은 채, 뚜벅뚜벅 걸음을 계속했다.
그리고 그의 발걸음이 멈춘 곳은 펜트하우스의 정원이자 소드 팰리스의 옥상이었다.
그곳에는, 두 검이 교차해 있는 거대한 금빛 형상이 놓여 있었다.
“삼촌? 여긴 왜…….”
“세아야, 그리고 여러분. 이 구조물이 뭔지 아십니까?”
“그야…… 쌍검상이잖아. 소드 팰리스의 상징이고.”
-크…… 언제 봐도 가슴이 웅장해지네.
-와! 쌍검상 아시는구나! 검왕가의 일원으로 말하자면, 이 쌍검상은 우리 지고하신 검왕님께서 소드 팰리스를 세울 때 직접 디자인하신 기념물임! 주 재질은 스테인리스지만, 일부는 무려! 18K 금으로 제작되어 포인트를 줬고, 일부는 노르딕 골드 아니냐고 하지만 실제론 세계금협회에서 공인한…….
-노잼
-대깨검들 아는 게 나오면 발광하는 건 여전하네
-암튼, 쌍검상은 왜?
검왕이 직접 디자인했다는 소드 팰리스 빌딩의 상징.
성지한이 아련한 눈으로 쌍검상을 바라봤다.
“이건…… 우리 가족의 자부심이자 강남의 상징, 서울의 상징이었습니다.”
-ㄴㄴ대한민국의 상징임!
-검왕가의 일원으로서 경고합니다. 과거형으로 말씀하지 마시죠.
-지1랄 하지 마셈. 이토 새끼 일본으로 간 이상 저건 이제 흉물임.
-아 감성팔이 시작하네
“근데.”
성지한이 카메라를 윤세아에게 넘겼다.
“삼촌……?”
그리고는, 자세를 잡았다.
영락없는 정권 지르기의 자세였다.
-응??
-머임?? 대체 머임??
-설마 치려고?
-검왕가의 일원으로서 경고합니다! 불경스러운 태도, 그만두세요!
성지한이 윤세아의 손에 들린 카메라를 바라봤다.
그리고 전 국민을 향해 선언하듯 말했다.
“이젠 아니야.”
콰앙!
성지한의 전력이 담긴 주먹이 거대한 쌍검상을 후려쳤다.
그리고 다시 한번.
쾅!
-저…… 저……!
-이. 무슨. 참람한!
- $%^&/ 이게 무슨 짓입니까! 당장 멈춰!
-감히 쌍검의 수호를 망가뜨릴 생각입니까!
스트리밍 방의 채팅창이 난리가 났다.
특히 검왕가에 속한, 검왕의 극성 팬클럽 소속 팬들이 미쳐 날뛰었다.
그리고 이러한 광신도들의 원한은, 성지한이 원하는 바였다.
콰앙! 쾅! 쾅!
검왕가의 비명 섞인 댓글에도 불구하고, 성지한의 주먹은 멈출 줄 몰랐다.
또한 무력 12를 달성한 성지한의 주먹질은 금속으로 이루어진 쌍검상이라 할지라도 순식간에 찌그러트릴 만큼 강력해져 있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소드 팰리스의 상징, 옥상의 거대한 쌍검상이 처참하한 모습이 되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리고.
끼이이이이-
받침대가 되는 검 끝이 무너진 쌍검이, 성지한 쪽으로 기울었다.
거대한 구조물이 그대로 그를 깔아뭉개려는 상황.
“삼촌!”
윤세아가 놀라서 성지한을 구하기 위해 달려들려고 했지만.
툭.
무심히 뻗어 나간 성지한의 손이, 그 거대한 잔해를 가볍게 지탱했다.
“윤세진…… 아니, 이토 류헤이.”
성지한은 카메라를 바라보았다.
화면 속의 성지한은 지금까지, 주눅 들어 있던 것과는 완전히 정반대의 모습을 보여 주고 있었다.
여유로운 웃음과 넘치는 자신감.
“개인적으로, 이거 평소에 보기 거슬렸어. 좀 오글거렸거든. 이젠 꽤 볼만해진 것 같네.”
피식.
성지한의 입가에 깃든 미소가 짙어졌다.
그와 동시에, 쌍검을 지탱하는 그의 손이 하얀빛으로 물들었다.
-뭐야, 저거…….
-설마, 권기拳氣?
-아니, 색이 흰색인데? 신성력인가?
-무슨! 말도 안 돼. 브론즈가 어떻게 저걸 써?
기의 유형화.
워리어 클래스 중에서도, 적어도 실버에서 골드급은 올라야 시전 가능한 기술.
그걸, 갓 튜토리얼을 졸업한 브론즈가 카메라 앞에서 보여 주고 있었다.
그것도 새하얗게 물든 빛, 신성력을 이용해서.
‘신성력이나 기나 출발점만 다를 뿐, 써먹는 것은 비슷하지.’
푹!
그리고 그 하얀빛이 감도는 손은, ‘쌍검상이었던 것’ 안으로 파고 들어갔다.
이내 구조물에 순식간에 금이 급속도로 퍼져 나가며.
와르르르르-
수많은 조각으로 변해 무너져 내렸다.
“꼬우면 직접 오던가.”
성지한이 검왕의 상징을 완전하게 부수고, 카메라를 바라보며 손가락을 까딱거렸다.
반응은 극과 극이었다.
-지렸누.
-저게 브론즈의 힘이라고……?
-꺼어어어어억. 잘 부쉈다!
놀라고, 환호하는 이도 있었으며.
-미친…….
-씨1발 저 개$%^&!
-불경한! 검왕가가. 용서하지. 않을. 겁니다!
원색적인 비난을 퍼붓는 이도 있었다.
‘좋아.’
그리고 이 모든 반응은, 성지한이 의도한 것이었다.
세간의 관심.
환호와 저주. 경악과 질시.
이외 수많은 감정의 교차를, 기꺼이 홀로 받아 내기로 마음먹었으니까.
그 마음에 화답하듯, 성지한의 눈앞으로 수많은 메시지가 떠올랐다.
[동시 시청자가 5만 명이 모였습니다.]
[일반 업적, ‘시청자를 모집하라 (3)’ 를 클리어했습니다.]
[업적 포인트 5,000을 보상으로 획득합니다.]
[동시 시청자가 10만 명이 모였습니다.]
[일반 업적, ‘시청자를 모집하라 (4)’ 를 클리어했습니다.]
[업적 포인트 10,000을 보상으로 획득합니다.]
[싫어요 3만 개를 수집했습니다.]
[일반 업적, ‘비록 세상이 그대를 미워할지라도 (2)’를 클리어했습니다.]
[업적 포인트 3,000을 보상으로 획득합니다.]
[좋아요 1만 개를 수집했습니다.]
[일반 업적, ‘사…… 사랑합니다 (1)’를 클리어했습니다.]
[업적 포인트 1,000을 보상으로 획득합니다.]
[좋아요 3만 개를 수집했습니다.]
[일반 업적, ‘사…… 사랑합니다 (2)’를 클리어했습니다.]
[업적 포인트 3,000을 보상으로 획득합니다.]
지금의 수준으로는 도저히 깰 수 없는, 업적들.
하나 지금의 성지한의 관심은 다른 곳에 있었다.
그가 관심 있는 것은, 세간의 반응.
이번 방송에서, 어그로가 누구에게 끌렸는가.
그것이 제일 중요했다.
-패기 보소? 좋댓구나 먹어라.
-감히 소드 팰리스의 쌍검을 부수다니. 성지한……!
아니나 다를까.
채팅방의 화제는 온통 자신의 이름으로 도배되고 있었다.
성지한은 웃음을 지었다.
좋은 현상이었다.
‘너희들의 감정, 모두 나에게 쏟아 내라.’
잊고 싶었던 과거가 떠올랐다.
-세아는 대단하네. 삼촌은, 정말 지옥 같은데…….
옛날에 대중의 적의를 받고, 윤세아 앞에서 낙담한 얼굴로 이딴 소리나 지껄였을 때.
-삼촌…… 괜찮아. 내가. 있잖아. 내가 지켜 줄게.
자신보다 열 배는 욕을 더 먹던 9살 어린 조카에게, 이런 말을 들으며 위로받았던 것을.
해맑게 웃으며, 멀쩡해 보이는 그녀의 겉모습과는 달리.
그 속은 얼마나 상처받고, 썩어 문드러지고 있었는지, 그때의 자신은 전혀 파악하지 못했다.
‘하지만 이제는 아니다.’
그래.
이번 생은 다르다.
성지한은 카메라를 바라보았다.
“보시다시피, 소드 팰리스 빌딩의 기부 항목에 이 쌍검상은 제외해야겠네요.”
-아아아아악! 쌍검상이, 쌍검상이이이이!
-검왕님의 상징을……!
-대체, , 무슨, , , 짓을, , , 하는, , , , , 거야!
-검왕님께서 분노하셔서 다시 안 돌아오시면 어쩌려고!
그 말에, 채팅방은 검왕가의 화력으로 만신창이가 됐다.
성지한은 그걸 보고, 씨익 웃음을 지었다.
저들의 적의.
세아가 아니라, 온전히 자신에게 향하고 있는 것이 즐거웠다.
그는 카메라 앞에 고개를 푹 숙였다.
“그럼. 오늘 방송은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그리고 이 방송이 끝나자.
전국이 다시 한번 들끓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