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레벨로 회귀한 무신-10화 (10/583)

<2레벨로 회귀한 무신 10화>

*   *   *

로그아웃한 성지한은 머리를 긁었다.

임가영이 번호를 달라고 할 때, 떠오른 것은 미국에서 사용하던 번호였다.

한국에서 쓰던 핸드폰 번호는 기억이 가물가물했다.

어떻게든 연락하고자 하면, 반대로 성지한이 전화번호를 물어봐도 되었겠지만.

‘어차피 지금은 길드에 가입할 것도 아니니까.’

목마른 사람이 우물 판다고.

성지한은 굳이 임가영의 번호를 얻을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그보다.

‘보상이 기대되는군.’

세계 랭킹 7위일 때는, 한 게임에서 1등이 되어도 경험치가 쥐똥만큼 올랐지만.

확실히 브론즈 저렙 구간에서는 성장하는 맛이 있었다.

성지한은 시스템의 메시지창을 바라보았다.

[한정 퀘스트 - ‘10개의 탑에서 1등을 달성하라.’를 클리어하였습니다.]

[업적 포인트를 1,000 획득합니다.]

[디펜스 게임에서 1등을 기록했습니다.]

[1등 보상으로 경험치와 GP 획득 증가량이 50% 상승합니다.]

[레벨이 2 올랐습니다.]

[GP 1,500을 획득합니다.]

튜토리얼 때처럼 큰 성장은 못했지만, 그래도 1등 보상 자체는 쏠쏠했다.

거기에 신성력도 얻고, GP(Game Point)마저 획득했으니, 1판의 게임을 끝낸 것치고는 수확이 상당했다.

‘이렇게만 한다면, 게임을 얼마 안 해도 승급전에 갈 수 있겠군.’

배틀넷 게임에서의 1등 보상은 어마어마하다.

보상 자체가 큰 데다, 거기서 50% 상승의 효과까지 있었으니.

성지한의 생각대로 계속 1등만 한다면, 한 달도 되지 않아서 승급전에 도전할 수 있는 25레벨이 될 터.

‘뭐, 게임 구조가 그렇게 만만하지는 않지만.’

이렇게 게임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면, 필연적으로 다음 매칭 상대는 더 높은 레벨의 플레이어와 만나게 된다.

그렇게 되면 지금처럼 연속 1등 행진이 힘들어질 공산이 컸다.

배틀넷에서의 레벨 차이는, 상당히 크게 작용하니까.

‘그래도 브론즈에선 질 것 같지는 않아.’

연속 1등을 기록하면서 브론즈 리그를 마친다면.

이것도 나름의 기록이니, 추가 업적 포인트를 얻지 않을까?

그렇게 매 게임마다 1등을 노려야겠다고 결심한 성지한은 배틀넷 마켓을 열었다.

‘보상으로 받은 GP로는 성물을…….’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마켓을 닫았다.

아무리 2020년엔 성물의 가격이 싸다고 했지만, 그래도 1,500GP로 살 수 있는 성물은 없었던 것이다.

F급 성물도 최소 3,000이상의 GP를 요구했다.

‘……방이나 더 뒤져야겠군.’

2레벨이 올라 얻은 잔여 포인트로 무력을 찍은 이후.

성지한은 차분히 집안을 탐색하기로 마음먹었다.

이 드넓은 펜트하우스에는 아직도 살펴보지 못한 공간이 많았다.

‘그럼 가 볼까.’

방에서 나온 성지한은 누나의 방으로 가기 위해 거실 방향을 향했다.

강남의 고층 주상복합 빌딩.

그중 맨 꼭대기를 자기 집으로 개조한 펜트하우스가 바로 윤세진의 집인지라, 꽤 오래 걷고 나서야 거실을 지나칠 수 있었다.

그리고 스쳐 지나가던 거실에서, 소파 쪽 벽에 걸린 가족사진이 그의 눈에 다시금 띄었다.

저거, 10년 전에 찍은 사진이었나.

윤세진과 누나, 그리고 어린 조카가 해맑게 웃고 있는 액자에서, 윤세진의 얼굴만 부서져 있었다.

‘아예 도려내 버릴까.’

맨 처음에 부술 때는 능력치가 무력으로 바뀌기 전이라, 윤세진의 형상은 아직 남아 있었다.

성지한은 사진 앞으로 걸어갔다.

저 가족사진에서, 그의 얼굴을 흔적조차 남기고 싶지 않았다.

그때.

삑삑. 삑-

거실 너머, 현관에서 문을 여는 소리가 들려왔다.

“나 왔어~. 제주도 합숙, 나만 빨리 끝나 버렸네.”

높고 해맑은 목소리.

그 소리에, 성지한이 몸을 움찔했다.

“어. 삼촌…… 술. 그거 다 마신 거야?”

교복을 입은 소녀가 신발을 벗고, 거실로 뚜벅뚜벅 걸어왔다.

웃는 얼굴로 성지한을 바라보던 그녀는.

“어…….”

가족사진이 부서져 있는 걸 발견하고는, 얼른 그의 옆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삼촌.”

“……응?”

아빠의 사진이 부서져 있는 걸 발견한 조카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짓더니.

“왜 먼저 부쉈어.”

쾅!

순식간에 사진 속 윤세진의 얼굴을 그대로 부숴 버렸다.

“내가 할 거였는데.”

*   *   *

아빠의 얼굴을 사정없이 뭉개 버린 조카, 윤세아.

그녀를 바라보는 성지한의 시선은 반가움과 미안함이 뒤섞여 있었다.

‘세아…… 건강하구나.’

27세인 자신과는 9살 차이인, 18세의 윤세아.

그녀와는 어릴 적부터, 나이 터울이 좀 나는 오누이처럼 사이좋게 지내 왔다.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나서 1년도 채 지나지 않아 누나의 배가 불러 왔을 때는 진짜 황당했지.’

성지한의 부모님이 사고로 돌아가시고.

누나는 10살 차이 나는 동생을 떠맡은 채, 집안 살림을 책임지기 위해 여러 아르바이트를 뛰다가 윤세진을 만나게 되었다.

그와 불같은 사랑에 빠진 누나는, 20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아기를 가졌고.

그때 당시 윤세진도 책임을 지겠다며 조촐한 결혼식을 올리고 성지한의 집으로 들어왔다.

신혼집을 구할 돈도 없었으니, 남매가 물려받은 아파트로 온 것이다.

‘둘이 맞벌이로 일하느라, 내가 이 녀석을 많이 봤다.’

윤세아가 갓난아기 시절부터, 그녀를 많이 돌봐 오던 성지한.

그에게 윤세아는 각별한 존재였다.

‘……그런데. 과거의 나는 그녀를 챙기지 못했지.’

저번 생에서, 윤세아에게 벌어졌던 일은 끔찍했다.

떠올리기조차 싫은 그 기억.

‘다시는, 그러한 일이 벌어져서는 안 된다.’

윤세아를 먹먹한 눈으로 바라보던 성지한은 다시금 의지를 다졌다.

“삼촌? 왜 그래. 진지한 표정으로.”

“아니, 그냥. 잘했다고. 근데, 합숙은 어쩌고?”

성지한의 물음에 윤세아는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그제 난리가 났잖아? 그래서 선생님이 나 먼저 집에 가라고 보내 주셨어.”

“난리라면…… 기자 회견?”

“……응. 있잖아. 그제, 기자 회견 전에. 아빠한테 전화 왔어.”

“뭐라고 했어?”

“사랑에 빠졌대.”

사랑에 빠졌다…….

성지한은 그 말에 이를 갈았다.

하나밖에 없는 딸한테, 윤세진 그 인간은 그렇게 이야기한 건가.

“그 자식…… 그걸로 끝이냐?”

“……미안하고, 아빠를 이해해 달라곤 하지 않겠대. 그리고 날 데려갈 수는 없다고…….”

쾅!

성지한의 주먹이 앨범 속 윤세진의 파편을 부수고, 벽을 꿰뚫었다.

현실 세계에서는 배틀넷 안에 비해, 스탯의 힘을 반도 발휘하지 못하지만.

그럼에도 무력 12가 내 보이는 힘은 강력했다.

그 걸 본 윤세아의 눈이 크게 떠졌다.

“어…… 삼촌? 왜 이렇게 세졌어?”

“아. 미안. 화를 참지 못했네. 계속 말해 줘.”

“응. 대신 한국에 있는 재산 물려줄 테니까, 삼촌이랑 잘 살라고 하고 끊더라.”

“아. 진짜 개 쓰레기 새끼…….”

재산?

애초에 윤세진은 재산의 대부분을 정리하고 일본으로 튀었다.

항간에 윤세진이 다른 나라로 간다는 루머가 퍼진 이유도, 그가 길드 지분 등 여러 재산을 급히 정리해서였다.

그가 정리하지 않은 건 윤세아가 거주하는 이 빌딩, 소드 팰리스뿐.

‘하지만 이 빌딩도 나중엔 정부에 몰수당하지.’

윤세진이 일본으로 간 지 얼마 안 된 때에는, 정부도 그의 눈치를 봤다.

윤세진이 다시 한국에 돌아오도록 설득하기 위해, 그가 한국에 남긴 빌딩에 대해서는 별다른 액션을 취하지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윤세진이 일본 대표로 나와서 한국을 처참하게 짓밟은 이후로는, 국민 여론도 완전히 돌아섰다.

-와, 저 새끼 때문에 우리나라, 동아시아 리그 랭킹 꼴등이야.

-현대판 이완용이다.

-뭐? 이완용보다 더하지! 여자 하나에 눈 돌아가서 조국을 배신했는데!

그러면서 그들의 분노는 한국에 남은 가족들에게로 향했다.

-딸은 왜 한국에 남았지?

-저것도 수상해!

-거기에 윤세진이 남겨 놓은 소드 팰리스…… 그것도 다 국민 혈세로 그에게 지원한 거 아닌가?

-건물을 몰수해야 한다!

국민감정은 최악이었고, 윤세아의 신상은 대한민국 곳곳에 널리 퍼졌다.

개인 정보 보호법, 이런 건 윤세아에겐 해당하는 것이 아니었다.

국회는 이런 들끓는 국민의 분노에 발맞춰 한 법안을 통과시켰다.

국적을 포기한 플레이어에 대해, 면세 조치 박탈 및 세금 환수와 관련된 내용을 답은 법안이었다.

그리고 그 법안에 의해 국가는 건물을 몰수해 갔으며.

성지한과 윤세아는 집에서 쫓겨났다.

‘……지옥이었지.’

성지한도 이 일 때문에 과거에 전 국민에게 손가락질당했다.

그래도 그는 윤세진과 직접적인 혈연관계에 있지는 않았거니와, 누나 성지아의 업적이 있기에 조금 덜했다.

-그래도 저 사람은 성녀 성지아의 동생이야.

-맞아. 성지아 님은 북한의 던전 브레이크를 막고 돌아가셨잖아. 그런 분 동생까지 싸잡아서 욕하기는 그래.

-그래. 이토 놈과는 혈연관계가 아니잖아?

그렇게 따지면 윤세아도 성지아의 딸이었지만.

윤세아에게는 사람들의 잣대가 성녀의 딸이라기보다는 매국노의 딸로 자리매김했다.

‘……그딴 상황을 최대한 피해야 해.’

나라를 버린 건 빌어먹을 윤세진이지, 조카 윤세아가 아니니까.

그녀도 엄연한 피해자다.

과거의 끔찍한 일이 다시 재발하지 않도록, 전력을 다해야 했다.

일단은.

‘녀석을 지탱할 수 있는, 든든한 어른이 되어야 한다.’

과거의 성지한은 어렸다.

사람들의 비난에 힘들어하며 자신을 추스르기에도 바빴던지라 윤세아에게 신경을 쓰지 못했다.

그래서 지금처럼 윤세아가 언뜻 보기엔 태연하고, 씩씩하기까지 한 걸 보면서.

-세아는 대단하네. 삼촌은, 정말 지옥 같은데…….

이딴 소리나 지껄이고 있었다.

저렇게 해맑아 보이는 겉모습 속, 마음이 얼마나 썩어 들어가고 있었는지 안 것은.

모든 게 되돌릴 수 없이 끝나 버린 후였다.

하지만 이제는 다르다.

“세아야.”

“응. 삼촌.”

“난 언제나 네 편이다.”

“……뭐야. 갑자기.”

“지금까지는 내가 믿음직스럽지 못했겠지만…….”

2020년의 성지한.

그는 믿음직스러운 어른과는 거리가 멀었다.

기프트 ‘방랑자의 눈’을 통해 배틀넷 승부 예측을 하는 것 외에는 변변한 직업도 없었고.

집이고 차고, 다 매형과 누나가 사 준 것들을 받았다.

어린 윤세아의 눈에는, 삼촌이 그저 한량 백수로 보였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달라. 네게 믿음을 주는 어른이 될게. 그러니 너도…… 너무 혼자 삭이지 말고. 내게 의지해 줘.”

“……그.”

그 말에.

윤세아의 표정이 아주 잠깐, 변했다.

애써 해맑게 웃고 있는 입가는 잠시 일그러졌으며, 눈망울은 촉촉해졌다.

잠깐이지만, 울먹이려는 얼굴.

그렇지만.

“괜찮아. 나는.”

그 얼굴은 금방 사라지며, 윤세아는 슬쩍 웃었다.

“나야 당연히. 삼촌한테 의지하는걸.”

큰일을 당했음에도, 예전처럼 웃는 얼굴.

마치 정교한 가면을 쓰고 있는 것 같았다.

언제나 웃고 있는 가면을.

성지한은 그 모습을 보며, 쓰게 웃었다.

“……그래.”

지금, 말로서 믿어 달라고 한들 와닿지 않겠지.

거기에 아버지에게 버림받고 느낀 감정을, 다 토로할 수도 없겠지.

‘행동으로…… 차근차근 믿음을 얻자.’

웃는 얼굴 뒤에, 감정을 숨기는 조카가 마음을 좀 더 열 때까지.

성지한은 묵묵히 기다리기로 했다.

“그것보다 말이야.”

조금 전, 잠깐 드러난 표정의 변화는 신기루였던 것처럼, 윤세아는 해맑게 웃는 얼굴로 성지한에게 손가락을 쭉 뻗었다.

“오히려 삼촌이야말로! 이제는 내 집에 얹혀사니까 나한테 의지하는 거잖아.”

“이 집?”

“그래. 아빠, 그 인간이 한국의 재산은 물려준다고 했으니까 말이야. 이거도 주는 거겠지.”

성지한은 그 말에 집을 둘러보았다.

강남 한복판에, 너무나도 넓은 펜트하우스.

이 아래 건물 가격까지 다 따진다면, 윤세아야말로 우리나라에서 손꼽히는 부자다.

하지만.

“세아야. 거기에 대해서 할 말이 있는데.”

“뭐……? 삼촌이라면, 특별히 건물 반 정도는 나눠 줄 수 있어!”

피식.

이 거대한 건물을 반이나 떼 주다니, 참 착한 아이다.

하지만 성지한의 용건은 그게 아니었다.

“아니. 그게 아니라.”

“그럼?”

“이 건물. 나라에 기부하자.”

“……뭐?”

3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