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레벨로 회귀한 무신 9화>
* * *
-과거에는, 성물의 가격이 참 쌌죠.
성녀는 옛날을 추억했다.
-성물이랍시고 아이템 등급은 높았는데, 막상 능력치는 좋지 않았거든요.
-그랬나?
-네. 그래도 지구 튜토리얼이 최초로 시작된 2010년에는 무언가 비밀이 있겠거니 하며 가격이 비쌌지만…….
성녀는 두 손을 펴며 말했다.
-10년이 지난 이후에도 성물의 비밀이 풀리지 않자, 가격은 하한가를 쳤죠.
-그래서? 본론으로 들어가지.
-성격도 급하긴. 성물 수집 히스토리부터 알려 드리려 했는데.
그녀는 입을 삐죽이더니, 성지한이 원하는 본론으로 들어갔다.
-성물 중에, 외계의 성물이 있어요.
-안다.
-그걸 붙잡은 채로 기도하면서 신성력을 집중하다 보면, 거기서 ‘외계의 신을 이해했다.’면서 신성력을 얻을 수 있었답니다.
-……그게 끝?
-네. 꼭, 외계의 성물이어야 해요. 그리고 꽤 오랜 시간 성물만 붙잡고 있어야 해요.
-생각보다 쉬운 조건 같은데, 왜 널리 안 알려졌는지 모르겠군.
-서포터 입장에선 외계의 성물을 굳이 사용할 필요가 없거든요. 기독교나 불교 등 지구의 종교에서 전해지는 성물은 서포터에게 직접적인 신성력 보너스를 주는데. 외계의 성물은 그런 게 없으니까요.
성녀는 그러면서 고개를 살짝 갸웃했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 보면 저만 이 방법을 아는 것 같지는 않았어요. 꾸준히 외계의 성물을 구매하시는 분이 있었거든요.
-그래?
-네. 2019년 이후로는 사라졌지만.
그때만 해도, 그녀의 말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하지만 성지한은 매형의 펜트하우스를 뒤지는 과정에서 그녀가 말하는 또 다른 구매자가 누군지 알 수 있었다.
‘누나였어.’
성지한의 누나, 성지아.
그녀도 한국의 서포터 중, 정점에 이른 클래스.
‘성녀’였다.
그리고 그녀는 2019년에 한국에서 일어난 거대한 ‘사고’를 막기 위해, 자신을 희생했으니.
미국의 성녀가 말한 것처럼, 2019년 이후로 구매가 사라진 시기와 시간상 일치했다.
‘그리고…… 누나의 방 창고에서 외계의 성물이 무더기로 발견되었지.’
매형의 펜트하우스를 탐사했을 때.
성지한은 누나 성지아가 쓰던 구역 창고에서 외계의 성물이 쌓여 있는 걸 발견했다.
그리고 대부분의 아이템은.
[외계의 성물이었던 것 (F급)]
-외계의 성물이었지만, 신성력이 사라져 쓸모없는 물건입니다.
이런 식으로 아이템 설명이 적혀 있었다.
하지만 몇몇 아이템은, 다른 것들과는 달리 F급이 아니었다.
‘일례로 이것이 있지.’ 퍽! 퍽!
성지한은 철봉으로 좀비 머리를 깨부수며, 이 아이템의 설명을 떠올렸다.
[외계의 성물 - 철봉 (E급)]
-단단한 내구도가 장점인 무기.
-외계의 성직자들은 이단의 머리를 후려치며 신앙심을 다집니다.
아이템 설명대로, 이단의 머리를 후려치며 신앙심을 다져야 하기 때문일까.
이 아이템은 신성력이 흡수당하지 않은 채, 누나의 창고에 그대로 있었다.
그리고 성지한이 좀비의 머리를 부술 때마다.
[외계의 신앙에 대한 이해도가 깊어집니다.]
[신성력이 소폭 오릅니다.]
이런 메시지가 계속 떠오르고 있었다.
특히 강력한 블러드 좀비를 상대할 때는.
[성물이 끔찍한 이단을 만나 기뻐합니다.]
[성물의 본래 용도에 맞게, 신성력이 스스로 일어납니다.]
낮은 신성력 수치를 가진 성지한에게 신성력의 운용을 깨우치게 해 주고 있었다.
‘어떤 면에서는 기를 일으키는 것과 비슷하군.’
물론 기를 일으키는 것과 신성력의 운용은 시작점이 달랐다.
기는 하단전에서부터 시작한다면, 신성력은 머리에서부터 손으로 뻗어 나가는 느낌이었다.
어쨌든, 둘 다 하나의 기운.
신성력의 인도를 한 번 받고 난 이후, 성지한은 자연스럽게 신성력을 무기로 발현할 수 있게 되었다.
빡!
또 다른 블러드 좀비의 머리가 박살이 나고, 백색 성화聖火로 불타올랐다.
레벨 6 브론즈 플레이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도 압도적인 무용.
백이 넘는 좀비를 더 잡고, 10마리의 블러드 좀비 머리마저 터뜨리자.
[외계의 신앙에 대해, 완전히 이해합니다.]
[신성력이 1 오릅니다.]
[‘외계의 성물 - 철봉’의 등급이 F급으로 하락합니다.]
철봉의 신성력이 흡수되며, 등급이 내려갔다.
무기의 용도에 맞게 이단의 대가리를 깨부쉈으니, 외계의 신앙을 이해했다고 본 것이었다.
‘F급이라도 쓸 만하군.’
성물에 담긴 신성력만 사라졌을 뿐.
철봉의 단단함은 여전했다.
‘이제 신성력은 최대한 아끼면서 싸운다.’
수많은 동료의 머리가 터져 나갔음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돌진해 오는 좀비.
퍽! 퍽! 퍽!
일반 좀비에게는 굳이 신성력을 사용하지 않고, 머리를 때려 부쉈다.
치이이익-!
좀비들 사이에서 연기가 피어오른다 싶으면, 블러드 좀비를 대비하며 신성력을 철봉에 일으켰다.
완벽한 힘의 분배를 통해, 한 발자국도 물러나지 않고 좀비를 모조리 때려잡는 성지한.
“와. 미쳤어…….”
궁수는 그의 뒷모습을 하염없이 쳐다보았다.
장판파의 장비가 저럴까.
봉의 움직임.
소름 끼치도록 정확하게, 좀비의 머리를 차례차례 타격했다.
마치 그에게는 좀비의 모든 움직임이 모조리 파악되는 것 같았다.
한편, 임가영은 전사의 관점에서 성지한의 힘에 더욱 놀라고 있었다.
‘……힘의 조절이 완벽해.’
일반 좀비일 때는 신성력을 발현하지 않고.
블러드 좀비일 때만, 머리를 깨부수기 직전에 신성력을 사용하며 힘을 아끼는 모습.
임가영도 브론즈였지만, 워낙 뛰어난 기프트 덕에 검기劍氣를 다룰 수 있었기 때문에.
저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알고 있었다.
‘……아가씨의 말씀대로. 콜로세움에서 저자와 안 만난 게 운이 좋았어.’
성지한.
그의 무력은 독보적이었다.
좀비의 머리를 수박 깨부수듯이 파괴해 버리는 철봉.
‘저걸 나라고, 피할 수 있을까?’
임가영은 자신이 없었다.
그렇게 성지한 혼자서 무쌍을 찍은 지, 수십 여 분이 지나자.
게임에 변화가 일어났다.
“오. 다, 다른 탑이 벌써 탈락했어요! 꼴찌는 아니다! 꼴찌는 아니야!”
궁수는 스코어보드를 확인하며 기뻐했다.
430킬을 기록하고, 최하위를 기록한 10등 탑.
이쪽은 478킬로 5등에 위치해 있었다.
“우리도 저분을 도와요! 킬 수 조금이라도 더 늘려야죠!”
궁수는 호들갑을 떨며, 시위에 화살을 멨다.
아까 성지한에게 뭐라고 할 때에 비하면 180도 달라진 태도.
5개의 탑이 탈락하면, 그다음 순위는 킬 수로 매겨지니, 얼른 좀비를 하나라도 더 죽여야 했다.
“참전해도 되겠습니까?”
임가영이 성지한에게 허락을 구하자, 그는 스코어보드를 바라보았다.
‘478…… 역시 1,000마리 제거는 무리겠군.’
1,000마리의 좀비를 제거하라는 연계 퀘스트.
혼자서 좀비를 쉴 새 없이 때려잡았음에도, 클리어하는 것은 시간상 무리였다.
‘레벨이 오르면 다른 탑의 경쟁자들도 강해진 상대가 매칭될 테니 좀 더 여유가 생기겠지.’
하지만 새로운 게임에서는, 지금처럼 트롤러 때문에 좀비 혼자 때려잡던 상황과는 다를 터.
‘역시…… 이 업적, 내려가서 깨야 하나?’
성지한은 좀비를 때려잡으며 탑 아래를 바라보았다.
탑에 올라오는 숫자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지천에 깔린 좀비들.
아무리 무력 스탯의 서포트가 있다지만, 지금은 무리였다.
‘나중에 더 성장해서 도전해야겠군.’
성지한은 일단 연계 퀘스트의 클리어를 뒤로 미루고, 임가영에게 대답했다.
“그렇게 하세요.”
“네!”
스르릉-
성지한의 허락이 떨어지자, 임가영이 힘차게 검을 뽑아 들었다.
서양식의 검이라기보다는, 중국의 한검에 가까운 외양.
그녀가 검을 꺼내자, 거기서 매화의 향기가 났다.
그리고 성지한은 그 향을 맡자, 그녀가 과거에 누군지 떠올릴 수 있었다.
‘임가영. 누군가 했더니…… 매화검이었나.’
매화검 임가영.
검왕 윤세진이 한국을 뜬 이후, 한국의 차기 워리어 클래스 대표로 각광받던 인물.
성지한이 뒤늦게 기프트를 각성하고, 무명신공을 얻으며 빠르게 성장하고 있을 무렵.
그녀는 이미 한국에서 손꼽히는 플레이어 중 한 명이었다.
‘……하지만 끝이 좋지는 못했지.’
한국이 멸망하는 원인이 된 동북아시아 리그 최종전에서, 그녀는 한국 대표로 참전했다가 전사했다.
일본의 톱 플레이어가 된, 검왕 윤세진의 손에 의해서.
‘이번엔 죽을 일이 없을 테니 나한테 고마워해야겠군.’
당연한 듯, 한국의 대표는 자신이 될 거라고 생각하는 성지한.
그는 그 생각에 합당한 무력을 선보이고 있었다.
“오오……! 2개의 탑이 더 탈락했습니다. 저희는 3등! 1등과의 격차는 좀비 10마리!”
궁수는 스코어보드를 띄워 둔 채, 신나서 소리를 질렀다.
나름 화살을 쏴 대고는 있지만, 지금은 거의 플레이어라기보다는 해설가 포지션이나 마찬가지였다.
성지한은 그 말을 듣고, 이제 승부수를 띄워야 할 때라고 판단했다.
“10마리면 곧 끝날 테니, 좀 무리해 보죠.”
“……?”
“포지션 고정 부탁합니다.”
여기서 어떻게 더 무리를 해?
임가영은 의아함이 들었지만, 일단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그럼, 갑니다.”
번쩍-!
철봉의 끝에, 새하얀빛이 눈부시게 피어올랐다.
성지한은 그 상태에서, 그대로 탑 아래로 떨어져 내렸다.
“허, 헉…… 12킬. 차이가 더 벌어집니다. 조금만 힘냅…… 엑……! 어, 어디 가세요!”
한참 해설에 열중하던 궁수는 성지한이 탑 아래로 떨어지자 경악했지만.
“어……? 키, 킬 수가……! 순식간에 킬 차이를 따라잡습니다! 이제 2등! 3킬만 더!”
곧 순식간에 늘어나는 킬 수에 입가에 미소를 감추지 못했다.
탑 아래 펼쳐진 좀비의 산을.
신성력으로 감긴 철봉이 그대로 태워 버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어차피 이제 끝. 모든 신성력을 쓸 때다.’
화르르르!
혜성처럼 길게 피어오르는 신성력이 좀비 무리를 손쉽게 찢어발기며, 온몸을 성화로 불태웠다.
그리고 불은 삽시간에 주변 좀비에게 옮겨 붙었으며.
치이이익-!
탑 위까지 쌓아 올라왔던 좀비의 산이 백색의 불길로 뒤덮이는 덴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이, 1등!!! 1등 됐습니다! 일등이라고요! 와, 씨! 이거 진짜…… 말이 돼? 서포터가?”
궁수는 믿기지 않은 듯, 덩실덩실 춤을 췄다.
당연히 꼴등이라고 생각했는데, 561킬로 1등이라니!
거기에 이 중, 550킬을 성지한이 해냈다.
‘진짜 나랑 같이 튜토리얼 했던 사람 맞아?’
그리고 임가영은 탑 아래의 광경을 보고, 허탈한 마음이 들었다.
외계의 게임, 배틀넷.
아무리 이게 똥 밸런스로 유명해도 정도가 있지.
실버급 플레이어라 할지라도 가능할까 싶은 모습을, 게임 두 판째인 플레이어가 선보이다니?
‘……게임 접을까.’
임가영은 지금, 여태껏 단 한 번도 겪지 못했던 벽을 이번에 처음 느끼고 있었다.
[5개의 탑이 탈락했습니다.]
[디펜스 게임 - 10개의 탑이 종료됩니다.]
번쩍.
게임이 종료되자, 탑 아래로 떨어졌던 성지한이 다시 위로 소환되었다.
좀비의 피가 옷에 잔뜩 묻긴 했지만, 몸은 멀쩡했다.
“와…… 정말 수고하셨어요! 덕분에 1등을 해 보네요! 드디어 10레벨 되겠네!”
신나게 소리치며 기계처럼 인사하곤 로그아웃하는 궁수.
망했다고 생각한 게임에서 1등을 하니, 잔뜩 흥분한 것 같았다.
“저기. 성지한 님.”
궁수가 사라지자, 얼른 성지한에게 다가가는 임가영.
아까의 낙담은 잊은 채, 그녀는 굳은 결심을 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로그아웃을 하려는 성지한이 임가영을 바라봤다.
“절 아십니까?”
“저…….”
그녀의 입술이 달싹였다.
저는 이성 길드의 임가영입니다.
길드에서 영입 의사를 타진하고자 연락을 드리고 싶으니, 연락드릴 전화번호 좀 알려 주실 수 있겠습니까?
그녀의 머릿속에서는 이렇게 할 말이 준비되어 있었지만.
“번, 번호 좀 주십시오.”
마음이 급해서일까.
서론 없이, 단도직입적으로 본론이 먼저 나와 버렸다.
“…….”
“아. 그게. 제가 이성 길드인데…… 영입 때문에…….”
“미안하지만. 제 번호가 기억이 안 나서요.”
“……네?”
“나중에 또 보면 그때 알려 드릴게요.”
자기 핸드폰 번호를 모른다고?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그러면서 로그아웃하는 성지한의 뒷모습을, 임가영은 멍하니 지켜보았다.
‘나, 까인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