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레벨로 회귀한 무신 8화>
부활하자마자 또다시 성지한에게 의해 탑 밖으로 떨어진 마법사, 김규혁.
“실드!”
두 번째 부활에서는, 지체없이 보호 마법을 사용했다.
‘서포터 주제에 힘은 좀 센 거 같지만. 그래 봤자 서포터!’
마법사 김규혁. 그는 자신의 마법을 믿었다.
애초에 그의 레벨은 15.
튜토리얼을 갓 깬 이들과 매칭될 수준이 아니었으니까.
그럼에도 이번 게임에 소환된 건 순전히 그가 지속적으로 꼬장을 부리고, 게임 패배를 야기하는 바람에 매칭 수준이 낮아진 탓이었다.
‘이 새끼. 제대로 조져 주겠어!’
그는 그렇게 실드를 펼친 상태에서.
“파이어…….”
곧바로 파이어 볼을 사용하며, 성지한을 통구이로 만들어 버리려고 했지만.
뿌드드득-
성지한의 손이 반투명한 실드를 스치자, 보호막이 계란 껍데기 깨지듯 순식간에 깨져 나갔다.
“으으응……?!”
“이번에 죽으면 한 번 남겠네.”
피식.
성지한은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경악하는 김규혁의 멱살을 움켜쥐었다.
“잠ㄲ…….”
“가라.”
휘이잉.
또다시 마법사의 몸이 허공을 날아 탑 아래로 추락했다.
으워어어어어-!
좀비들은 재차 먹잇감이 되고자 날아와 주는 마법사에게 감사의 환호를 날렸고.
콰직. 콰직!
듣기 거북한 소리가 다시금 울려 퍼졌다.
그리고 그 소리가 멈추자.
번쩍.
마지막으로 부활하게 된 김규혁이 발작하듯 소리쳤다.
“자, 잠깐잠깐! 잠깐만!”
이대로 죽으면, 꼴등 확정.
김규혁은 등골이 오싹했다.
‘꼴등 페널티는…… 너무 커!’
자신이 꼬장을 부리면 저쪽에서 알아서 굽히거나, 아니면 누가 말려 줘서 끝날 줄 알았지.
이렇게 저놈이 자신을 던져 버릴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
‘여기서 레벨이 또 떨어지면…….’
배틀넷은 게임 내에서 성적이 안 좋으면 레벨이 다운되는 시스템이다.
이렇게 패배로 인해 레벨이 내려가면, 당연한 수순으로 레벨 업 때 올린 능력치가 사라졌다.
물론 스탯이 떨어지는 거야, 다시 레벨 업을 해서 올리면 되니까 상관없었지만.
‘스킬이 사라진다고!’
스킬이 사라지는 게 문제였다.
스킬은 레벨 업만 하면 얻는 스탯보다 익히는 것이 더욱 까다로워서, 삭제 페널티가 능력치에 비해 널널했다.
때문에 스킬 터득에 필요한 최소 레벨 요구치보다 5레벨이 더 떨어졌을 정도가 되어야 삭제가 된다.
하나 문제는 김규혁의 경우였다.
‘지금 또 죽으면…… 무조건 삭제다.’
이번에 한 번 더 죽으면, 부활의 기회는 사라지고.
이 디펜스 게임에서 가장 먼저 죽은 전사자로 판정돼서 레벨 다운을 겪을 게 확실했다.
그럼 레벨이 14가 되어, 20레벨 때 배틀넷 마켓에서 거금을 들여 배운 스킬도 날아가 버린다.
‘이 새끼. 나중에 두고 보자.’
김규혁은 속으로는 그렇게 이를 갈면서도.
겉으로는 항복 의사를 내보였다.
“그래. 네 실력은 알겠어! 나한테 사과 안 해도 돼! 나도 이제 게임에 성실히 참여할게.”
“…….”
“나, 레벨 15다. 거기에 이 맵에서 가장 쓸모 있다는 화염 마법사지. 내가 제대로 캐리해 줄게.”
“오! 잘 생각하셨어요!”
둘의 분쟁을 초조하게 지켜보던 궁수는 화색이 되었다.
강남 3대 진상, 트롤러로 유명한 김규혁이 먼저 저렇게 굽히다니.
생각보다 일이 잘 풀려, 다행이었다.
‘……실버 승급전에 참여했던 사람이 레벨 15야?’
임가영도 자기의 레벨을 밝힌 김규혁을 보고 어이가 없었지만.
그래도 저 진상이 먼저 항복했으니, 이제 게임이 제대로 진행되겠다고 생각했다.
“그걸로 끝?”
잠잠히 이를 듣던 성지한이 다시 손을 뻗을 때까지만 해도.
“……으응?”
쑤욱.
성지한은 다시 김규혁의 멱살을 잡았다.
“이야, ‘사과 안 해도 돼’라니. 누가 보면 내가 시비를 건 줄 알겠어.”
“자, 잠깐……!”
“다음엔 개념 좀 갖춰라.”
휙!
김규혁이 외마디 비명과 함께 탑 아래로 떨어져 내렸다.
“아…….”
궁수는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허공에 손을 뻗었지만, 이미 그를 잡기엔 한참이나 늦어 버린 뒤였다.
콰직!
[메이지 클래스 ‘김규혁’이 전사했습니다.]
[김규혁은 이번 게임에서 탈락합니다.]
4인 파티로 진행해야 할, 디펜스 맵에서…….
마법사가 사라져 버렸다.
* * *
좌중에 싸늘한 침묵이 감돌았다.
‘쓰레기는 치웠고.’
하지만 성지한은 전혀 신경 쓰지 않고, 업적 퀘스트 창을 바라보았다.
디펜스 맵, ‘10개의 탑’에 들어온 후 새로 갱신된 퀘스트가 있었기 때문이다.
[한정 퀘스트]
-‘10개의 탑’에서 1등을 달성하라.
[보상 : 업적 포인트 1,000]
튜토리얼 때처럼 1등을 달성하라는 퀘스트였고, 보상도 그때와 똑같았다.
‘이건 어느 정도 예상했던 바였지만.’ 성지한은 한정 퀘스트 아래에서, 금빛으로 반짝이는 또 다른 퀘스트 창을 바라보았다.
튜토리얼 때는 없었던 내용이었다.
[연계 퀘스트 - 좀비의 근원지 (1)]
-좀비 1,000마리를 홀로 제압하라.
[보상 : 업적 포인트 3,000]
-클리어 시, 좀비의 근원지 (2)로 퀘스트가 이어집니다.
‘좀비 1,000을 혼자서 잡으라니.’ 성지한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이건…… 불가능한 미션이었다.
좀비 따위야 그에게 위협이 되지는 않았지만.
‘잡기 전에 게임이 끝나 버린다.’
10개의 탑.
이 맵은 10개 중 5개의 탑이 무너지면 즉시 게임이 종료된다.
이는 결국 다른 탑의 플레이어들이 성지한이 좀비를 다 잡을 때까지 버텨 줘야 클리어가 가능하다는 소리다.
‘지금 당장은 한정 퀘스트에 집중해야겠어.’
성지한은 탑의 끝을 향해 걸어가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그워어어어.
무수한 좀비 떼가 바글바글 모여서, 탑 위로 기어 올라오고 있었다.
다만 탑의 경사가 워낙 가파르다 보니, 계속 미끄러지는 모습을 보였지만.
“그으으…….”
동료들의 몸뚱이를 짓밟으며 서서히 탑에 올라갈 각을 만들어 내는 중이었다.
성지한의 옆에서 그 모습을 보고 있던 궁수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아…… 이래서 마법사가 필요한데.”
저 좀비 무리에 파이어 볼 한 방만 터뜨려도, 저들이 셀프로 만들어 내는 좀비 언덕을 깡그리 불태울 수 있건만.
궁수는 원망스러운 눈으로 성지한을 바라보았다.
“그 트롤러가 그 정도 수그렸으면 그냥 참고 넘어가시지…… 저거 이제 어쩔 겁니까? 마법사가 없으니 이제 미친 듯이 올라올 거라고요.”
“평소보다 더 몰려올 거다?”
“그래요. 게임 한두 번 하세요? 프로 플레이어가 되려면 그런 진상들도 그냥 참고 넘기면서 게임을 해야지…….”
쯧쯧.
궁수가 혀를 차며 뭐라 뭐라 잔소리를 했지만, 성지한의 귀에는 그 말이 들리지 않았다.
‘좀비 1,000마리라. 가능할까?’
오로지 연계 퀘스트를 클리어할 수 있을지 없을지 각을 재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봐요! 내 말 듣고 있어요? 하. 일을 이렇게 만들고 사람 말을 무시하다니…… 그렇게 잘났으면 혼자 싸워 봐요!”
그렇게 궁수가 참다못해 소리를 지른 그때.
성지한이 기꺼운 기색으로 반응했다.
“오, 정말요?”
* * *
‘플레이어 성지한. 사회성이 부족함. 배틀넷 프로에 맞지 않음.’
임가영은 성지한이 마법사를 퇴장시킨 이후부터, 그에 대해 박한 점수를 매기고 있었다.
잘잘못의 선후를 떠나, 상대방이 한 수 접어 줬으면 그냥 넘어가 주는 게 임가영이 아는 올바른 배틀넷 플레이어의 처세였으니까.
‘앞뒤 생각하지도 않고 멋대로 굴다니.’
거기에 더 문제는…….
‘클래스가 서포터라고?’
누구보다도 워리어 클래스가 어울릴 사람이, 어처구니없게도 서포터를 골랐다.
대체 왜 저런 선택을 한 거지?
‘관종인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으니, 미쳤다고밖에 볼 수가 없었다.
그리고 이러한 생각은, 하나의 결론으로 도달했다.
‘이성 길드에서 영입할 가치, 없음.’
아가씨도 이번 영상을 보면, 흥미를 접으시겠지.
임가영은 그리 생각하며, 성지한 쪽으로 뚜벅뚜벅 걸어가 자세를 잡았다.
“제가 앞에 서겠습니다. 서포터님은 뒤로 가 계세요.”
어찌 됐든, 이 파티의 워리어 클래스는 자신이니까.
그리고 전사는 전방을 책임져야 한다.
저 남자의 행동이 마음에 안 들어도, 할 일은 해야지.
하나 성지한은 태연한 표정으로 손을 휘휘 저을 뿐이었다.
“괜찮습니다. 좀비들 샐 수도 있으니, 워리어님은 궁수님이나 지켜 주세요.”
“……?”
임가영은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으로 성지한을 바라보았다.
정말 이 상황에서, 진짜 혼자 싸우겠다는 거야?
하지만 이내.
“……그러죠.”
어디 당해 보라는 심정으로, 얼른 궁수 곁에 갔다.
임가영이 다가오자, 궁수가 속사포처럼 하소연을 늘어놓았다.
“하아. 트롤 둘을 만나다니…… 저희 정말 재수 없네요.”
임가영은 그 말에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최하위는 기정사실. 레벨 다운은…… 어쩔 수 없겠네.’
기껏 튜토리얼에서 레벨을 올렸는데, 다음 게임에서 바로 하나 떨어지게 생겼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가장 먼저 죽은 게 꼬장을 부린 마법사 놈이라는 점이었다.
팀 순위는 꼴등이 되겠지만, 그 팀 안에서도 꼴등은 면했으니 최소한의 위안거리는 챙기지 않았나.
‘그래. 빨리 죽고, 새 게임이나 돌리자.’
그렇게 마인드 컨트롤을 끝낸 임가영은 성지한을 바라보았다.
부웅- 부웅-!
성지한은 준비 운동이라도 하듯 철봉을 휘휘 돌리고 있었는데, 폼이 꽤 익숙해 보였다.
‘꽤 무게가 나가 보였는데.’
하지만 얼마 못 버틸 거다.
그 어떤 무술의 고수라도, 저 압도적인 좀비 웨이브 앞에서 살아남는다는 건 불가능한 일.
더구나 저런 허름한 차림이라면?
‘1분도 못 버티지.’
이윽고.
“그르르르-.”
아무런 방해를 받지 않은 좀비가 본격적으로 탑 꼭대기에 올라오기 시작했다.
다른 탑은 마법사와 궁수가 열심히 활약한 덕에 절반도 올라오질 못하고 있건만.
이 탑은 그 어떤 저항도 없었기에 벌써부터 정상에 다다른 것이다.
한편.
“드디어 왔네.”
바글바글 기어 올라오는 좀비 떼를 보며, 성지한은 웃음을 지었다.
휭. 휭!
철봉이 허공을 가르며 좀비에게로 떨어졌다.
퍽- 퍽!
순식간에 터져 나가는 좀비의 머리.
임가영의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엄청난 속도였다.
산전수전 다 겪어 온 그녀의 눈으로도 봉의 움직임을 놓쳤을 정도였다.
궁수의 반응도 임가영과 다를 바 없었다.
그저 입을 벌린 채 극찬을 흘릴 뿐이었다.
“……실화냐?”
“…….”
“워리어님, 저 사람 서포터 맞아요?”
“……이젠 모르겠어요.”
현란하게 춤추는 성지한의 철봉은 마치 서커스를 방불케 했다.
더구나 철봉은 정확히 좀비의 약점인 머리만 노리고 있었다.
순식간에 좀비 수십 마리가 나가떨어진 상황.
궁수는 성지한이 왜 저리 자신만만한 태도를 보였는지 알 수 있었다.
작은 크기의 탑.
좀비가 올라올 수 있는 방향은 북쪽 하나.
정말 성지한 혼자서도, 커버가 가능했던 것이다.
“그, 그래도 블러드 좀비가 나타나면…… 저런 철봉으론 안 될 텐데.”
“……맞아요.”
궁수의 중얼거림에, 임가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블러드 좀비.
좀비 중에서도 특별히 강한 개체로, 약점인 머리가 핏빛 액체로 이루어져 있어, 물리 공격에 큰 저항력이 있었다.
블러드 좀비를 제압하려면, 특수한 힘이 필요했다.
그리고 브론즈 수준에서의 특수한 힘이면, 역시 마법.
‘아. 마법사 살려 놨으면 1등도 할 수 있었을 텐데……!’
궁수는 예상 외로 성지한이 잘 싸우는 걸 보자, 오히려 그가 더욱 원망스러워졌다.
한 번만 좀 봐주지!
굳이 죽여 가지고, 1등 먹을 팀을 꼴등으로 만들어?
치이이익…….
그리고 몰려드는 좀비 중, 몇몇의 몸에 붉은 연기가 피어오르자.
궁수는 안타까운 표정으로 소리를 질렀다.
“브, 블러드 좀비……!”
휙!
기어오르는 좀비들 중, 다섯 좀비가 높이 점프해 쇄도했다.
일반 좀비에 비해, 확연히 뛰어난 신체 능력.
붉은색의 피부에, 피로 이루어진 얼굴.
블러드 좀비가 순식간에 성지한에게 달려든 것이다.
이제 끝났구나.
궁수가 그리 생각하며, 절망했을 때.
“어……?”
펑! 펑!
철봉의 끝이 잠시 흔들리더니, 다섯 블러드 좀비의 머리가 일제히 터져 나갔다.
그와 동시에, 터져 나간 머리가 있던 곳에서부터 새하얀 불길이 피어오르더니.
화르르르…….
블러드 좀비의 전신을 순식간에 태워 버렸다.
‘말도 안 돼.’
성지한의 철봉 끝에 일렁이는 빛을 보고, 임가영은 두 눈을 의심했다.
저 새하얀빛의 기운은…….
“신성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