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레벨로 회귀한 무신 4화>
* * *
브론즈 리그 - 강남 1 에어리어의 튜토리얼.
‘드디어 오늘인가.’
후우. 후우.
신입 브론즈 플레이어, 도혁규는 심호흡을 하면서 긴장을 풀었다.
‘잘될 거야. 나는 운이 좋으니까.’
도혁규는 자신의 상태창을 바라보았다.
기프트 : 민첩 A (등급 A)
-민첩이 25 오릅니다.
-이 능력은 리그의 능력치 제한을 무시합니다.
민첩 A.
능력치에 등급이 붙은 심플한 기프트였지만, 리그의 능력치 제한을 무시한다는 특전으로 높은 평가를 받고 있었다.
‘이걸 얻고 인생이 바뀌었지.’
도혁규는 아직도 18세 생일 때가 생생히 떠올랐다.
플레이어로 각성하는 그때, 극소수만이 얻게 된다는 기프트.
그걸 자신이 얻을 줄이야!
그것도 A급으로 얻을 줄은 몰랐다.
‘로또 저리가라였어.’
그날, 동네에는 -도혁규 군. A급 기프트를 각성하다!- 라는 현수막이 걸렸다.
같은 동네 형이 서울대에 입학한 것보다 더 위편에!
그리고 국내 유수 대기업과 길드의 스카우터들이 시골 출신인 그에게 찾아와 영입을 제안했고.
그는 결국 이성 그룹 산하의 길드, ‘이성’ 길드에 들어갈 수 있었다.
‘즐거웠지.’
길드에서는 강남에 오피스텔을 마련해 주었고.
길드의 유니폼으로 길드에 출퇴근을 할 때면, 수많은 사람들이 그를 돌아보았다.
18세 이후, 기프트를 받고 나서부터는 삶이 말 그대로 탄탄대로였다.
‘……어떻게든 50위가 될 거야.’
이제 남은 과제는 이 브론즈 리그 강남 1에서 버텨 내는 것.
도혁규는 검을 꾹 쥐었다.
‘할 수 있다, 할 수 있다…….’
그는 전투가 시작되기 전, 주변을 둘러보았다.
위협적인 몬스터 무리.
그리고 갑옷에 기업 마크가 새겨진, 다른 길드 출신의 플레이어들이 눈에 들어왔다.
‘쟤는 LK 출신. 쟤는 SG 출신…… 쟤는 한대 길드네. 다들 만만한 상대가 아니야.’
역시 강남 1 에어리어.
죄다 대기업 출신이군.
만만치 않은 상대를 보고, 검을 쥔 도혁규의 손에 땀이 배어 나왔다.
번쩍.
그때, 그의 근처에 한 플레이어가 소환되었다.
‘……뭐야?’
추리닝 바지에 반팔 셔츠를 입은 남자.
자고 일어난 지 얼마 되지 않은 듯 머리는 떡져 있고, 손에 무기는 없었다.
도혁규는 그 모습을 보자, 그의 정체를 한눈에 깨달았다.
‘저거…… 실수로 강남 1에 온 플레이어다!’
원래는 아무나 이 에어리어에 참가할 생각을 하지 않지만.
아무래도 사람 사는 세상, 종종 실수가 있기 마련이었다.
지금은 체계가 잡힌 한국의 리그 판에도.
저렇게 어쩌다 실수로 강남 1에서 2레벨이 된 각성자가 가뭄에 콩 나듯 나오곤 했다.
‘원래는 리그를 포기하도록 기다려 줘야 하지만…….’
실수로 들어온 플레이어가, 게임 포기 버튼을 누를 때까지 내버려 두는 것.
그게 강남 1 에어리어의 룰이고 매너긴 했다.
하지만.
‘운이 좋구나!’
킬 포인트 1개를 공짜로 얻을 수 있는데.
그깟 룰이고 매너고 무슨 소용인가.
도혁규의 눈이 흉흉하게 빛났다.
그리고.
[튜토리얼을 시작합니다.]
[50명의 플레이어가 살아남을 때까지, 상대를 처치하십시오.]
둥! 둥! 둥!
시작을 알리는 북소리가 힘차게 울리고, 굳어 있던 몸이 풀리자.
‘지금이다!’
타다다닥-!
도혁규는 빠르게 남자에게 달려가, 검을 뽑아 들었다.
게임 포기를 누르기 전에, 죽여야 한다!
민첩 A의 기프트가 본격적으로 발휘되자, 도혁규의 몸이 쏜살처럼 날아갔다.
그리고 검 끝이 남자의 가슴에 닿기 직전.
검이 움직이질 않았다.
“어……?”
꽈악.
눈 깜짝할 사이에, 검날은 남자의 검지와 중지 사이에 껴 있었다.
* * *
‘저번엔 이렇게 죽었군.’
성지한은 자신에게 검을 찔러 온 청년을 바라보았다.
레벨 2치고는 꽤 빨랐다.
아마도, 기프트가 민첩 관련 능력인 듯했다.
이러니 지난번엔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죽었지.
“익. 이익……!”
한편 도혁규는 성지한에게 붙잡힌 검을 빼려고 발버둥을 쳤지만.
검은 여전히 꼼짝도 하지 않았다.
‘이게 대체 무슨 힘이야……!’
자신의 힘 수치는 9. 결코 낮은 수치가 아니건만, 겨우 손가락 두개에 잡힌 검날은 전혀 흔들림이 없었다.
“로그아웃할 시간은 줘야지. 매너가 없군.”
“너. 너…… 뭐야? 어떻게 내 민첩 A보다……!”
“민첩 A? 어떻게 그딴 능력으로 강남 1에 왔나?”
성지한은 놀란 눈으로 도혁규를 바라보았다.
민첩 A라니.
그런 고대 유물 같은 기프트…….
‘아. 여긴 과거였지.’
성지한이 아차 하는 사이, 도혁규는 어처구니가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뭐? 내 민첩 A가 그딴 능력이라고?”
“음, 부정은 하지 않을게.”
스탯 증가 기프트.
이건 브론즈에서나 초반 여포가 되도록 해 주지, 골드 리그만 가도 쓸모가 없어지는 기프트다.
그런데 이런 놈이 강남 1에 참가한다니.
정말 옛날로 왔구나, 새삼 실감한 성지한은 손가락의 힘을 풀었다.
그러자 검을 어떻게든 빼내려던 도혁규가 벌러덩 뒤로 넘어졌다.
“큭……!”
도혁규는 황급히 몸을 일으켰지만, 얼굴이 시뻘겋게 물들어 있었다.
호기롭게 1킬 챙기고 시작하려 했는데, 이게 무슨 쪽인가.
“죽엇!”
휘잉!
그는 이 굴욕을 갚겠다는 듯 마구잡이로 검을 휘둘렀지만.
정작 성지한은 따분하다는 표정으로 이를 가볍게 피해 냈다.
상대는 확실히 무력 5인 자신보다 빠르긴 했다.
‘그럼 뭐 해. 궤적이 다 보이는데.’
검의 시작과 끝을 알면, 이 정도 속도의 차이는 쉽게 메울 수 있다.
‘이제 끝내야겠군.’
성지한은 슬슬 업적을 깨기로 마음먹었다.
휙!
이를 꽉 깨문 도혁규의 검이 이번에는 목표를 포착했다.
‘됐다!’
이번에는 확실히 통했다 싶은 순간.
툭!
성지한의 양손이 재빠르게 움직이며, 검을 역으로 낚아챘다.
“엇…….”
분명히 검을 손으로 꽉 쥐고 있었는데?
어느 순간, 검이 상대의 손에 들어가 있었다.
도혁규가 믿기지 않는다는 듯 눈을 부릅떴을 때.
푸욱!
성지한의 검이 도혁규의 목을 단번에 꿰뚫었다.
“검, 잘 썼다.”
뻐끔. 뻐끔.
뭐라 말을 하려던 도혁규였지만.
그의 몸은 곧 새하얗게 빛나더니 사라졌다.
치명상을 입고 사망 판정을 받은 것이었다.
성지한은 그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좋은 세상이야. 죽지도 않고.’
성지한이 쥐고 있는 도혁규의 검도 마찬가지.
지금의 배틀넷은 ‘게임’이라 그런가.
아무리 검을 빼앗았어도, 완전한 강탈은 불가능했다.
‘무기는 그냥 빼앗으면서 써야겠군.’
그런 생각을 할 즈음, 시스템 창이 떠올랐다.
[튜토리얼 최초로 킬을 달성했습니다.]
[업적 포인트가 100 오릅니다.]
“호오.”
시스템 창에 업적 상점이 추가되어서 그런가.
과거와는 다르게, 무엇 때문에 업적 포인트를 얻었는지 표시되고 있었다.
그뿐인가.
성지한의 시선이 콜로세움 곳곳의 몬스터 무리에게로 향하자.
[우르크 무리의 섬멸]
-서른에 달하는 우르크 무리는 콜로세움에서 가장 강력한 몬스터 집단입니다. 그들을 제압하고, 힘의 차이를 보여 주세요.
[보상 : 업적 포인트 500]
몬스터 무리의 위에, 업적과 관련된 퀘스트 창이 또 떠오르고 있었다.
‘좋아.’ 일반적으로, 콜로세움 맵에서 몬스터를 잡는 건 비효율적인 일로 취급된다.
몬스터는 한 마리당 0.1킬로 쳐주기 때문이었다.
특히 한두 마리 따로 떨어진 몬스터를 잡는 건 모르되, 우르크처럼 소규모 부대를 이룬 무리는 너무나 강력해서 플레이어들도 몸을 사렸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일반 플레이어에 국한되는 이야기.
‘우르크 자식들. 인류의 복수를 해 주지.’
인류를 강등시킨 우르크를 죽이는데 업적까지 준다고?
아. 이건 못 참지.
성지한은 지체 없이 우르크 무리를 향해 달려들었다.
“쿠, 르르?”
“인간. 미쳤다!”
“죽여라! 인간!”
설마 맨몸으로 달려들 줄은 몰랐던 것일까.
나름의 장비를 갖추고 있는 우르크 무리가 코웃음을 쳤다.
“화살 아껴라!”
“쿠르르. 알겠다!”
선두의 우르크 다섯 중 셋이 손도끼를 꺼내 성지한에게 던졌다.
저 무모한 인간에게는 이 정도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한 것일까.
도끼를 내던지는 우르크의 눈에는 긴장이라곤 찾아볼 수 없었다.
그러나.
“쯧.”
착, 착착!
성지한은 날아 들어오는 손도끼들을 공놀이 하듯 한 손으로 받아 냈다.
“쿠륵……?”
어이없는 상황에 우르크들이 당황해하기도 잠시.
“도끼는 이렇게 던지는 거다.”
그가 가볍게 손을 뿌리자.
손도끼 하나하나가 광풍처럼 날아갔다.
“커…… 컥……!”
우르크의 목에 그대로 꽂히는 손도끼.
놀랍게도 도끼를 맞은 상대는 모두 다 도끼를 던졌던 이들이었다.
“미친 인간! 미친 거 아니다!”
“대비해라!”
쓰러진 우르크들을 보며, 경계를 놓고 있던 나머지는 빠르게 전투태세를 갖추려 했지만.
“늦어.”
성지한은 어느새 거리를 좁힌 상태였다.
푹!
그의 손이 한 번 움직일 때마다.
“키. 키익……!”
“아, 안 보인다!”
우르크의 목이 하나씩 떨어져 내렸다.
놀랍도록 정확하고 깔끔한 술수.
양떼로 뛰어든 늑대의 모습이 이럴까.
콜로세움에서 가장 강력한 집단, 우르크는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다.
촤악-!
한 우르크의 목이 또다시 떨어질 때.
순식간에 동료 10명의 목을 날린 손도끼의 손잡이가 뚝 하고 부러졌다.
“부러졌다. 부러졌다!”
“지금 죽여! 죽여!”
움츠러들어 있던 우르크들은 이때다 싶어 성지한에게 덤벼들었지만.
“무기 좀 좋은 거 들고 다녀라.”
성지한은 마치 이를 예상했다는 듯, 땅바닥을 발로 찼다.
그러자 죽어 나자빠진 우르크들의 무기가 우수수 허공으로 떠올랐다.
그중에서 적당한 길이의 창을 잡아 든 성지한은 덤벼드는 우르크의 목을 하나하나 꿰뚫어 주었다.
“…….”
“다음은?”
* * *
“괴, 괴물이다.”
“도망친다. 도망친다!”
우르크들이 전의를 잃어버리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순식간에 동료 반이 전멸하니 싸울 생각이 사라질 만도 했지만, 성지한이라는 전투 기계 앞에서 종족적인 차원의 공포를 느껴 버린 것이었다.
씨익.
성지한이 입가에 가득 미소를 지었다.
우르크들의 결정은 그 앞에서는 절대 해서는 안 되는 행동이기 때문이었다.
성지한은 무기를 챙기곤 추격을 시작했다.
사방으로 퍼지는 우르크였지만, 성지한은 이런 추격에 이골이 나 있었다.
순식간에 각 방위로 도주하는 상대의 숫자를 파악하고.
‘저기가 적군.’
적은 쪽의 우르크는 무기를 던져 제압한다.
휘잉!
도끼와 투창이 포물선을 그리며 두 우르크의 머리에 그대로 꽂혔다.
“크아악!”
“컥…… 컥…….”
성지한은 확인 사살도 필요없다는 듯, 남은 한 방위의 적을 뒤따라 추격했다.
그리고 이제 남은 건 일방적인 학살.
“괴, 괴물…….”
30번째 우르크의 유언을 마지막으로.
[‘우르크 무리의 섬멸’ 퀘스트를 클리어했습니다.]
[업적 포인트를 500 얻습니다.]
퀘스트가 클리어되며, 업적 포인트가 들어왔다.
그리고 이와 함께.
[레벨이 올랐습니다.]
그의 눈앞에 레벨 업 메시지가 떠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