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레벨로 회귀한 무신 3화>
‘업적 포인트…… 이게 왜 있지? 그것도 10만?’
업적 포인트.
배틀넷 게임에서 활동을 할 때마다 주는 것으로, 각 미션의 도전 과제를 수행할 때마다 올라가는 일종의 명예 점수다.
‘그리고 쓸데없는 점수지.’
말 그대로 ‘명예 점수’.
업적 포인트는 자신이 얼마나 배틀넷 고인물인지 평가를 해 주는 척도,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이상하군. 지금 시기에는 없어야 정상인데.’
성지한은 상태창을 닫았다.
업적 점수야 그렇다 쳐도, 과거와는 달라진 점이 신경 쓰였다.
‘그럼 다른 데에서도 달라진 점이 있을까.’
“인벤토리.”
부서진 윤세진의 얼굴 위로 떠오르는 인벤토리 창.
당연하게도 저장 공간은 텅 비어 있었다.
다만.
“……이게 뭐지?”
인벤토리의 맨 마지막 칸에, 작은 종잇조각이 있었다.
[업적 포인트 교환권]
[등급 : EX]
[교환 불가]
-재도전을 택한 ‘최후의 생존자’에게 주어진 특전.
-업적 포인트를 교환할 자격을 얻게 됩니다.
‘업적 포인트 교환권?’ 쓸데없는 명예 점수인 업적 포인트.
그걸 교환할 수 있는 교환권이 있었다니.
성지한은 눈을 빛냈다.
‘거기에 등급이…… EX다.’
규격 외의 등급.
저번 생에도 단 한 명만 지니고 있던 등급이었다.
근데 아이템에서 EX급이 나오다니.
‘사용해 봐야겠군.’
쓸모없는 업적 포인트로 뭘 교환할 수 있다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교환권이 EX등급인 이상, 범상한 걸로 바꿔 주진 않겠지.
이건 무조건 써야 한다.
[‘업적 포인트 교환권’을 사용합니다.]
[시스템 창에 ‘업적 상점’이 추가됩니다.]
시스템에 추가될 정도였어?
인터페이스를 바꾸다니…… 과연 EX급 아이템인가.
성지한은 내심 놀라며, 업적 상점을 바로 열어 보았다.
[업적 상점 LV.1]
-업적 상점 업그레이드 - 20,000P
-상태창 확장 LV.1 - 10,000P
-클래스 슬롯 추가 LV.1 - 10,000P
‘이런 걸 판다고……?’
성지한은 두 눈을 부릅떴다.
업적 상점에서 판매하는 것은, 플레이어의 근간을 뒤바꿀 만한 물건이었다.
‘지금 당장은 쓸모가 없지만.’
상태창 확장이나, 클래스 슬롯 추가.
이런 건 지금은 필요 없는 것이었지만, 나중에 더 높은 경지에 이르게 된다면, 랭킹을 뒤바꿀 수 있는 중요한 변수였다.
‘그래도 지금 당장 살 건 없으니. 상점 레벨 업을 해야겠어.’
성지한은 상점 레벨 업을 눌러 나갔다.
[업적 상점이 LV.2로 올랐습니다.]
[‘인벤토리 확장’ 품목이 추가됩니다.]
‘이것도 지금 당장은 필요 없고.’
[업적 상점이 LV.3으로 올랐습니다.]
[‘칭호 슬롯 추가’ 품목이 추가됩니다.]
‘칭호도 아직은 필요 없지.’
성지한은 흥분을 가라앉혔다.
‘이것들은 적어도 골드 리그 이상으로 올라가야 쓸 만하다.’
골드 리그.
브론즈, 실버 리그를 뛰어넘어야 도달하는…….
브론즈의 레벨 2인 성지한으로서는, 까마득하게 높은 세계.
업적 상점은 그에게 날개가 되어 주겠지만, 최소한 걸을 줄은 알아야 쓸 만했다.
‘업적 상점에선 초반을 기대하면 안 되겠군.’
성지한은 그리 생각하며, 남은 업적 포인트를 바라보았다.
‘5만.’
남은 5만으로 가능한 건, 지금까지 추가된 품목을 모두 구매하던지.
아니면 4만 포인트를 들여, 상점을 업그레이드하던지.
둘 중 하나.
‘상점을 업그레이드 하자.’
성지한은 크게 고민하지 않고 후자를 택했다.
어차피 지금까지 추가된 품목을 모두 구매해 봤자, 당장은 도움이 안 되니, LV.4의 상점에는 뭐가 있는지 보기로 한 것이다.
[업적 상점이 LV.4로 올랐습니다.]
[‘긴급 복구’ 품목이 추가됩니다.]
‘긴급 복구……?’
성지한은 업적 상점을 열어, 긴급 복구에 대한 설명을 보았다.
[긴급 복구(아이템)]
-불완전한 아이템을 온전한 상태로 고칩니다.
짧은 한 줄의 설명.
하지만 그걸 본 성지한은 그 어느 때보다 눈을 빛냈다.
‘당장 쓸 만한 물건이 나왔군.’ 아이템을 복구시켜 준다면, 초반의 시행착오를 대폭 줄일 수 있지.
저벅. 저벅.
성지한은 익숙한 발걸음으로 윤세진의 집 안을 걸어갔다.
‘분명 여기였지.’
방 세 개를 지나, 드넓은 펜트하우스의 가장 안쪽에 있는 공간에 들어서자.
검은색의 문 옆에, 지문 인식기가 있었다.
성지한이 장치에 손가락을 댔다.
[인식 완료. 가족입니다.]
짧은 기계음과 함께 문이 열렸다.
‘가족이라.’
성지한은 입가를 일그러뜨리며, 쓰게 웃었다.
집주인이었던 윤세진과 자신의 관계는 이제 남보다도 못한데, 기계는 아직 가족이라고 인식하는군.
성지한은 방 안으로 들어섰다.
그곳에는 윤세진이 배틀넷을 플레이하던 접속 장치, 배틀넷 커넥터가 있었다.
그것은 겉보기에는 마치 레이싱 카의 운전석 같았지만, 크기는 커다란 방 하나를 가득 채우고 있었다.
‘임시 보관함이 여기였던가.’
성지한은 배틀넷 커넥터에 앉아 왼쪽 구석에 있는 버튼을 눌렀다.
그러자 그의 눈앞에 검왕 윤세진이 사용했던, 배틀넷 커넥터의 인벤토리가 나타났다.
[임시 보관함]
‘역시. 아이템은 다 팔았군.’ 플레이어의 인벤토리는 10칸이라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수많은 플레이어들은 대부분 배틀넷 커넥터에 마련된 임시 보관함에 아이템을 보관하곤 했다.
검왕 정도라면, 이 임시 보관함에도 물건이 많이 남아 있어야 했지만.
그는 일본으로 건너가기 전, 보관함을 싹 다 정리한 것 같았다.
아마도 배틀넷 마켓에서 처분했겠지.
‘하지만…… 역시 이건 남아 있어.’
그렇게 물건을 팔아서 GP(게임 포인트)를 얻고 일본으로 튀었겠지만.
그조차도 안 팔리는 물건은 차마 처분할 수 없었을 터.
성지한은 인벤토리 구석에 있는 한 물건을 꺼냈다.
[동방삭의 망가진 붓]
등급 : A
망가져서 쓸 수 없는 붓입니다.
삼천갑자를 살았다는, 동방삭의 망가진 붓.
망가졌음에도 A등급을 받은 아이템이었지만, 아무 쓸모가 없어서 팔리지 않았던 물건.
하지만.
‘나는. 이것의 쓸모를 알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동방삭의 붓이야말로 자신을 무성武聖으로 만들어 준 물건이었으니까.
“긴급 복구.”
그는 바로.
업적 상점에서 얻은 긴급 복구를 사용했다.
[‘동방삭의 망가진 붓’을 복구합니다…….]
[‘동방삭의 망가진 붓’이 복구되어, ‘동방삭의 붓’으로 변화합니다.]
동방삭의 붓에 잠시 빛이 감돌더니, 붓대의 중심에 있는 작은 홈에 붉은색과 푸른색의 보석이 하나씩 생겨났다.
[동방삭의 붓]
등급 : SS
삼천갑자 동방삭의 붓입니다.
무신과의 연결 고리를 잇습니다.
“정말…… 됐어.”
무신과의 연결 고리를 만들어 준다는 동방삭의 붓.
성지한은 아이템이 완벽하게 복원된 것을 확인하고, 붓을 든 채 상태창을 띄웠다.
힘, 민첩, 체력, 마력.
최하 스탯 5로 가득한 능력치 창에, 그는 붓의 끝을 가져다 대었다.
치이이이익-!
그러자, 붓의 털 부위에서 불꽃이 튀더니.
힘 스탯이 적혀 있는 상태창 글자 위부터 글자가 그 위에 새겨지기 시작했다.
털끝에서부터 시작된 불길은 금방 동방삭의 붓 전체에 맴돌았다.
그 열기에 성지한의 손가락이 빨갛게 달궈졌지만, 그는 눈썹 하나 찌푸리지 않고 계속해서 붓으로 문자를 그려 나갔다.
총 10획의 움직임이 끝나고, 성지한이 상태창에서 붓을 뗐다.
푸스스스-
제 할 일을 마친 붓이 먼지가 되어 사라지고.
상태창에 있던 세 가지 스탯 위에, 두 개의 글자가 이 모두를 뒤덮었다.
무력武力.
힘, 민첩, 체력이 모두 사라지고 대신해서 나타난 스탯이었다.
[‘유니크 스탯 획득’ 업적을 달성했습니다.]
[업적 포인트를 10,000 획득하였습니다.]
무력 : 5
마력 : 5
성지한은 무력이 상태창의 능력을 뒤바꾼 것을 보면서, 확신에 찬 미소를 지었다.
‘됐다.’
비록 무명신공은 아직 얻지 못했지만.
지금 당장은 무력만으로도 브론즈 리그 따위는 얼마든지 지배할 수 있다.
[배틀넷 리그의 튜토리얼이 곧 진행됩니다.]
[준비가 모두 끝나면, 소환에 응하십시오.]
[5분 후에는 강제 소환됩니다.]
그때, 배틀넷 리그의 튜토리얼 소환 메시지가 떴다.
성지한은 잠깐 윤세진의 배틀넷 커넥터를 바라보았다.
이때까지만 해도, 대부분의 플레이어는 배틀넷을 커넥터로 접속했다.
‘저 기종이면 통각 감소치가 99퍼센트였던가?’
아픔을 거의 느끼지 못하게 만드는 배틀넷 커넥터.
이때만 해도 이걸로 접속하는 게 필수처럼 여겨지는 시절이었지만…….
성지한은 망설임 없이 커넥터에서 나왔다.
‘윤세진 놈이 쓰던 물건은 쓰지 않는다.’
이내 성지한은 튜토리얼 참가를 수락했다.
그러자 그의 몸이 새하얗게 번쩍이더니, 그곳에서 사라졌다.
* * *
브론즈 리그 - 강남 1 에어리어.
이곳은 한국의 수많은 리그 에어리어 중에서도, 가장 특별한 곳이었다.
‘암묵적으로 평균 능력치가 9. 기프트 등급은 A 이상은 되어야 참가할 수 있다고 했나.’
국내의 내로라하는 대기업과 길드들이 가장 뛰어난 인재들을 투입시키는 개미지옥.
최고의 플레이어가 되기 위해, 유망주들끼리 치열한 혈전을 벌이는 리그.
그곳이 강남 1이었다.
때문에, 과거 능력치 평균 5에 기프트 등급 F의 성지한은 살아남지 못했던 곳이었다.
‘그때는 어리석었지. 애초에 레벨 2가 된 게 윤세진의 양주를 까다가 경험치 포션을 먹은 거였으니까.’
윤세진의 일본 귀화 발언을 보고.
현실이 믿기지 않아 윤세진의 양주 창고를 털다가 우연찮게 경험치 포션을 마셔 버린 게 죄라면 죄였다.
그렇게 2레벨이 되어 버린 장소가 하필 강남에 위치한 윤세진의 집.
결국 성지한은 강남 1 에어리어에 배정받게 되었다.
전혀 생각도 하지 않았던 리그 참가.
그 끝은 간단했다.
‘10초 만에 칼에 찔려 전사하고 탈락…… 참 답 없는 인생이었군.’
성지한은 그리 생각하며, 메시지 창을 바라보았다.
[튜토리얼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튜토리얼 미션은 서바이벌입니다.]
둥! 둥!
사방에서 북소리가 울려 퍼지고.
어두워졌던 시야에 빛이 돌아왔다.
‘콜로세움인가.’
브론즈 전용 서바이벌 맵, 콜로세움.
100명의 플레이어와 수많은 몬스터들이 같이 나타나며.
절반의 플레이어가 살아남을 때까지, 끊임없이 싸우는 투기장.
성지한은 주위를 둘러보았다.
몬스터 무리와 함께, 휘황찬란한 장비를 갖추고 있는 플레이어들이 눈에 들어왔다.
‘저 정도면 B급인가. 꽤 좋아 보이는군.’
비록 저들도 성지한과 똑같은 레벨 2지만.
각 대기업과 길드에서 유망주로 분류되어, B급 장비를 대여받고 있는 이들.
지금처럼 추리닝 바지에 반팔 셔츠 입은 성지한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 스펙을 갖추고 있었다.
하나 성지한은 전혀 긴장하지 않았다.
‘적당히 몸 좀 풀어야겠어.’
성지한은 도저히 저들에게 질 자신이 없었다.
혹여 무력 스탯이 없었다면 모를까, 이미 갖춘 이상에야.
‘그래도 내가 너무 나서면 자라나는 새싹들에게 미안하니까…….’
이들도 다 우리나라의 미래를 받쳐 줄 동량들이 아닌가.
모조리 도륙을 내서까지 트라우마를 안겨 줄 필요가 없었다.
적당히 상대하면서, 비슷한 수준에서 놀아 줘야지.
그렇게 생각한 성지한의 눈앞에.
[업적 창이 활성화됩니다.]
[한정 퀘스트가 추가되었습니다.]
전에는 없었던, 새로운 퀘스트가 추가되었다.
[한정 퀘스트]
*튜토리얼에서 1위를 달성하라.
[보상 : 업적 포인트 1,000]
업적 포인트 1,000.
이를 본 성지한의 표정이 달라졌다.
‘역시 자라나는 새싹들에겐 스파르타 교육이 제일이지.’ 전 세계 플레이어 전체 랭킹에서 7위를 달성한 성지한.
그런 그가 업적 포인트 1,000에.
‘학살이다.’
진심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