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레벨로 회귀한 무신 1화>
쿠웅!
산처럼 거대한 괴수가 쓰러졌다.
지구의 모든 국가가 차례차례 멸망하고.
최후까지 남은 열 개의 국가 중, 미국에 소환된 종말의 괴수가 결국 제압된 것이다.
“……좋아.”
그 광경을 지켜보던 한 금발의 백인 남자가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미국 제일의 길드, 아메리칸 퍼스트의 길드장이자 세계 랭킹 1위인 배런이었다.
털썩-
그리고.
쓰러진 괴수의 옆으로, 한 검은 머리의 남자가 떨어져 내렸다.
왼팔이 잘리고, 온몸이 시커멓게 그을려 있는 남자.
랭킹 7위, 무성武聖 성지한이었다.
배런은 짧게 한마디를 던졌다.
“수고했다.”
“…….”
성지한은 개다.
배런에게 있어, ‘코리아’ 출신의 성지한은 쓸 만한 사냥개였다.
그리고 사냥개는 오늘도 훌륭히 맡은 바 임무를 달성했다.
비록, 많이 다쳤지만 말이다.
“리제네레이션!”
랭킹 3위, 성녀가 허겁지겁 달려가 치유 마법을 퍼부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성녀의 표정은 점점 굳어만 갔다.
“안 돼……!”
본디 그녀의 힘이라면 화상 따위는 순식간에 치유할 수 있겠지만, 종말의 괴수를 상대하며 입은 화상은 유독 지독했다.
“지한! 조금, 조금만 참아요. 제발…… 그레이트 힐! 그레이트…….”
성녀는 눈물을 글썽이며 치유 마법을 퍼부어 댔다.
열과 성을 다하는 그녀의 모습에 배런은 잠시 눈썹을 찌푸렸지만, 이내 시선을 돌려 괴수의 사체를 바라보았다.
종말의 괴수, 베히모스.
놈의 거체에서는 아직도 오싹하리만큼 사악한 기운이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멀리서도 이런데. 저걸 가까이서 어떻게 견딘 건지.’
새삼 성지한의 저력에 다시 감탄하고 있던 배런은 어느 순간 눈을 빛냈다.
화아아아-
쓰러진 베히모스의 등판에서 새하얀빛이 치솟아올랐기 때문이다.
‘저건…… 보스전 보상이다!’
보스 몬스터에게서 드물게 나오는 특별 보물 상자.
그것이 등장할 때면, 저렇게 새하얀빛이 몬스터의 중심부에서 터져 나오곤 했다.
“모두 물러나!”
“예.”
배런이 손을 들자, 아메리칸 퍼스트의 길드원 수십 명이 물러나며 주변을 호위했다.
종말의 괴수라고 불리는 베히모스에게서 나온 특별 보상.
그들이라고 저것이 욕심나지 않겠냐마는, 세계 랭킹 1위 배런의 지엄한 명령을 거역할 수는 없었다.
그리고 그런 길드원들을 둘러보던 배런은 보상을 같이 받을 사람으로 성녀를 비롯한 아메리칸 퍼스트 길드 소속, 랭킹 4위와 5위를 골랐다.
“……지한은요?”
“그는 아메리칸이 아니다. 단지 사냥개지.”
베히모스를 쓰러뜨리는 데 가장 큰 공을 세운 성지한은 당연하다는 듯 논공행상에서 제외되었다.
“그도 미국인이에요! 망명했잖아요?”
“내가 말하는 아메리칸이 무얼 의미하는지는 알 텐데.”
“하지만 종말의 괴수는 지한이…….”
“큭…….”
묵묵히 대화를 듣던 성지한은 피식 웃었다.
그깟 보상, 배런에게서는 기대도 하지 않았다.
성지한은 천천히 입을 열었다.
“가라. 이 정도면 되었으니까.”
“……미안해요. 금방 올게요.”
“그래.”
성녀가 일어서자 배런은 기꺼운 기색이 되었다.
코리아의 사냥개.
그래도 주제는 알고 있군.
“가요, 배런.”
“그러지. 플라이!”
배런의 비행 마법을 통해, 베히모스의 위로 날아가는 세 사람.
성지한은 그 모습을 흐릿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나라가 잃고, 망명자가 되어 버린 자신과.
미국이라는 초강대국의 플레이어인 세 사람.
비록 랭킹 차이는 얼마 나지 않지만, 길드에서의 지위는 하늘과 땅 차이였다.
‘베히모스에게서 무슨 보상이 나올까.’
성지한은 자신의 손으로 쓰러뜨린 몬스터의 시체를 바라보며 생각했다.
아무리 강등전에서 나온 몬스터라고 해도, 종말의 보스니까 좋은 걸 줄 터.
‘……됐다. 어차피 내 것도 아닌데. 사라진 왼팔이나 빨리 재생해야겠어.’
그렇게 담담히 현실을 직시하며 몸을 추스르던 찰나였다.
쿠르르르-!
갑자기 땅이 흔들리며, 모든 이들의 눈앞에 메시지창이 떴다.
[스페이스 리그 - 브론즈 리그 강등전 결과를 발표합니다.]
예감이 불길했다.
[게임 항목 - 디펜스.]
[미국 - 성공.
[중국 - 성공.]
[러시아 - 실패.]
[일본 - 실패.]
…….
미국과 중국은 성공했지만.
러시아부터, 그 아래는 모두 실패.
그걸 본 성지한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최후의 10국 중, 성공한 나라는 둘밖에 없다.
‘이건…….’
[NO. 4212.’인류’. 강등전에서 패배했습니다.]
[NO. 4773 ‘우르크’와 함께, 최종 강등 결정전을 펼칩니다.]
[전투가 즉시 치러집니다.]
지이이잉-
메시지창이 넓어지더니, 하나의 화면을 띄웠다.
그 안에는, 커다란 무대가 펼쳐져 있었다.
“기, 길드장님…….”
그리고.
화면 속에는 베히모스의 보상을 받으러 갔던 배런 일행이 굳은 표정으로 서 있었다.
‘거기에 중국 출신의 플레이어까지. 총 다섯 명인가.’
성지한보다 상위에 랭크되어 있는 다섯 명의 플레이어.
그들을 끝으로, 더 이상의 플레이어가 소환되지 않았다.
한편 무대의 건너편에는.
초록빛 피부에 외모는 돼지를 닮은 종족, 우르크 다섯이 서 있었다.
[전투를 시작합니다.]
5대5의 전투.
여기서 패배하는 쪽은, 강등이다.
“제발…….”
한 길드원이 두 손을 모으며 기도했다.
“하필 상대가 우르크라니!”
“지한도 소환되었어야 했는데!”
몇몇은 안타까워하며, 성지한 쪽을 바라보기도 했다.
5명을 선발함에도, 지한은 랭킹이 7위이기에 소환되지 못한 것이다.
하지만 길드원들은 알고 있었다.
성지한이야말로 아메리칸 퍼스트…… 아니, 세계 최강의 플레이어라는 것을.
비록 팔 한쪽이 없더라도, 그가 소환되었으면 안심이 됐을 텐데.
- 하하하! 이게 무슨 횡재인가. ‘그 괴물’이 없구나!
선두에 있던 우르크가 지구인을 둘러보더니, 광소를 터뜨렸다.
성지한은 저 우르크를 잘 알고 있었다.
‘저번 전투 때 도망친 놈이군.’
성지한의 앞에서 한껏 두려움에 질려 있던 대전사였다.
하나 지금은 그가 없다는 걸 알아차리고, 기세등등한 모습이었다.
- 강등만은 면해야 한다! 모두 죽여라!
다섯 우르크가 무시무시한 속도로 돌진해 왔다.
이에 배런이 황급히 마법을 사용하며 응전했지만.
전투를 보고 있는 성지한의 얼굴은 이미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우르크의 파티 구성이 인류의 완벽한 하드 카운터였기 때문이다.
[막아…… 막으란 말이다! 크아악!]
결과는 뻔했다.
‘끝났군.’
* * *
툭.
배런의 목이 땅에 떨어졌다.
그의 얼굴은 공포와 절망으로 한껏 일그러져 있었다.
그와 동시에, 시스템 메시지가 떠올랐다.
[NO. 4212.’인류’, 패배.]
[브론즈 리그에서 강등당했습니다.]
예상했던 결과였다.
그리고 자신의 눈이 틀리길 바랐던 결과였다.
성지한을 비롯한 인류는, 5인의 랭커가 우르크들에게 무참히 패배하는 광경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Oh, my god…….”
“이제 어떻게 되는 거지?”
아메리칸 퍼스트 길드원들이 공황 상태에 빠져 있을 때.
새로운 메시지가 떠올랐다.
[더 이상의 하위 리그가 없습니다.]
[스페이스 리그에서 퇴출되었습니다.]
[NO.4212. 인류는 무가치한 종으로 분류되었습니다. 삭제를 시작합니다.]
삭제라니?
시스템 메시지를 보고, 이만큼 등골이 오싹해진 적은 없었다.
그리고 이 메시지가 사라지자.
“어, 어어……?”
길드원들의 몸이, 하나둘씩 어둠에 잠식되기 시작했다.
“사…… 살려 줘…….”
그 누구도 예외가 없었다.
아메리칸 퍼스트에 들어온 말단 길드원부터, 길드에서 가장 든든한 랭커까지.
이 모두가 스스로의 몸에서 피어나는 어둠에 잠기더니 말 그대로 세상에서 삭제되었다.
‘…….’
5분도 채 지나지 않아, 아메리칸 퍼스트의 길드원은 전멸했다.
다만 성지한만큼은, 이상하게 몸이 지워지지 않았다.
팔과 다리는 어둠에 집어삼켜졌지만, 머리와 몸은 그 힘에 아직 버티고 있었다.
‘무명신공의 힘이 이것에도 저항하다니.’
성지한을 랭킹 7위로 만들어 준 스킬, 무명신공無名神功.
이름 없는 무공인 것치고는 스킬 등급이 SSS로 측정되어 있었는데, 이것이 시스템의 삭제에도 저항할 줄은 몰랐다.
안타까웠다.
‘신공의 이름을 밝혀냈다면 더 뛰어난 스킬이 되었을 텐데…….’
무명신공의 업그레이드 조건.
신공의 진명을 알아냈다면 이런 처참한 상황은 오지 않았을 것이다.
아니.
애초에 이 힘을 얻은 게, 너무 늦어 버렸다.
조금만 더 일찍 이 힘을 다룰 수 있었다면…….
후회가 밀려왔다.
‘그랬으면, 우리나라도 멸망하지 않았을 텐데.’
한국이 멸망했을 때는 성지한은 무명신공을 얻은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였다.
한시라도 정신을 차리고 힘을 얻었다면, 조국도 그렇게 허무하게 사라지진 않았을 것이다.
방탕했던 스스로의 과거가 너무나도 안타까웠다.
“크윽…….”
무명신공의 힘은 강했지만, 한계가 있었다.
성지한의 남은 몸뚱이가 천천히 어둠에 갉아 먹히기 시작했다.
이미 어깨까지 어둠에 잠식된 상황.
그조차도 ‘삭제’는 완전히 진행되고 있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모든 인류가 삭제되었습니다.]
[최후의 생존자가 되었습니다.]
성지한의 흐릿한 시야에, 짤막한 메시지가 떴다.
최후의 생존자라.
그 짧은 순간에 모든 인류가 사라졌단 말인가.
‘이제 나도 뒤따라가겠군.’
그래.
혼자 이대로 남겨져 봤자지.
버텨야 할 의미가, 이유가 없었다.
그렇게 성지한이 무명신공의 운용을 그만두려고 할 때였다.
[신기합니다.]
[NO.4212. 인류는 가치 없는 종이었을 텐데.]
[삭제에 저항하다니.]
시스템 메시지가 성지한의 시야에 중구난방으로 떴다.
이것은 지금껏 무감정하기만 했던 메시지와는 느낌이 달랐다.
메시지창 배경의 색깔부터가 다르다.
‘원래는 반투명한 푸른빛이었는데…….’
지금의 메시지창은 흰색과 검은색, 붉은색 등.
여러 색깔이 혼합되어 있었다.
[미약하지만 가능성이 있는 존재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의 가능성이라도 간과해서는 안 됩니다.]
[그에게 재도전의 기회를 부여합시다.]
[동의합니다.]
[반대합니다. 힘의 낭비입니다.]
[동의합니다.]
[동의합니다.]
동의 3표.
반대 1표.
‘이것들이 무슨 짓거리를…….’
성지한은 자신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투표하는 메시지창을 바라보다가, 이내 눈을 크게 떴다.
[투표가 가결되었습니다.]
[플레이어 ‘성지한’은 리그 최초 진입 시기로 돌아갑니다.]
‘리그 최초의 진입 시기…….’
그 메시지를 마지막으로, 성지한의 시야가 어두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