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9. 반드시 알아낸다
“안녕하세요. 이쪽으로 오시죠. 저는 사건 담당 수사관인 박태환 경위라고 합니다.”
병원에서 돌아와 뜬눈으로 밤을 새우다시피 했다.
그리고 오늘, 나는 고윤아와 함께 서울의 모(某) 경찰서를 찾아갔다.
다름 아닌 이곳은 사고 현장을 담당하고 있는 경찰서.
수사관은 나와 고윤아에게 간이식 의자를 펴주며 자리를 권했다.
우선 그는 사고에 대해 안타까운 마음과 위로를 잠시 표한 뒤, 참고인 조서를 작성하기 위해 자판을 두들기기 시작했다.
“선생님, 일단은 성함이랑 주민등록번호를 좀 말씀해주시겠습니까?”
“예. 물론입니다. 제 이름은 한영수, 그리고 주민등록번호는···”
“네. 그럼 혹시 하시는 일은 어떻게 되십니까?”
“수사관님. 여쭤보시는 것에 비협조적으로 굴 생각은 조금도 없습니다. 그런데 꼭 하는 일까지 밝혀야 할까요?”
“아니요. 절차상 여쭤보는 겁니다. 원치 않으시면 말씀하지 않으셔도 좋습니다. 어디보자... 그럼 직업은 불상이고. 사고 피해자인 이승우 씨와는 관계가 어떻게 됩니까? 성 씨가 다른 걸 보니 형제는 아니신 것 같고.”
이승우.
타인의 입에서 녀석의 이름을 듣자, 내 몸 아래 저 어디선가 울컥하고 무언가 치받고 올라왔다.
지금까지도 승우는 중환자실 안에서 의식을 찾고 있지 못했다.
잠시 면회가 허락되어 병실 안에 들어갔을 때 본 승우의 모습은 정말이지 처참했다.
군데군데 피떡이 져 있는 얼굴과 머리에 둘둘 감아져 있는 붕대.
참담한 심정에 차마 뭐라 말을 이을 수가 없었다.
의사가 말하길 외상성 경막하출혈로 수술을 했다고 말했다.
일단 수술은 성공적으로 끝났고, 한고비를 넘긴 것은 맞지만 언제 의식을 찾을지는 알 수 없다고 했다.
그뿐이 아니었다.
의식을 회복한다고 해도 사고 이전처럼 운동 기능이 정상적으로 돌아올지도 장담할 수 없다는 침통한 소식도 우리에게 알려주었다.
그나마 위안이라면 복합 골절이 있었지만, 갈비뼈만은 손상되지 않아, 장기를 다치지 않았다는 것.
만약 사고의 충격으로 그런 일까지 벌어졌다면 목숨을 부지하기 어려웠을 것이라고 했다.
“친구입니다. 이승우와 저는.”
수사관이 입술 양쪽 끝을 내리며 곤란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친구라··· 혹시 이승우 씨의 가족분은 없으십니까. 아무리 가벼운 차원의 참고인 조사라지만, 친구보다는 가족분이 오시는 게···”
수사관의 말에 나쁜 뜻이 전혀 없음은 알고 있다.
하지만 나도 모르게 작게 한숨이 나왔다.
“승우는 가족이 없습니다.”
“··· 예?”
“고아라는 말입니다. 어머니가 계시긴 하지만, 남남이나 다를 게 없습니다. 그리고 제가 승우와 마지막까지 함께 있었던 사람입니다. 그 마지막 행적에 대해서라면 제가 알고 있습니다.”
크흠━
수사관은 헛기침을 한번 하더니, 나에게서 슬쩍 눈을 돌렸다.
갈 곳 없이 방황하던 그의 동공이 마침내 자리를 찾았다.
그의 시선이 이번에는 고윤하를 향했다.
“그럼, 같이 오신 이분은 누구십니까?”
“아, 저 말씀이십니까.”
고윤아는 지갑에서 변호사증을 꺼내 수사관에게 내밀었다.
“참고인 한영수 씨의 고문 변호사 고윤아라고 합니다.”
변호사증을 받아든 수사관은 생뚱맞은 얼굴이 되었다.
뭐 하는 친구길래 고문 변호사까지 있어?
아마도 그는 속으로 이런 생각을 하는 것 같았다.
하기야 사고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제삼자가 변호사까지 대동하고 경찰서를 방문하는 일이 흔하진 않을 터이니.
아무튼 고윤아의 변호사증은 나름의 효과가 있었다.
수사관은 갑자기 참고인의 권리에 대해 꽤 많은 시간을 할애해 설명한 뒤 조사를 다시 시작했다.
변호사가 동행했다니, 혹시라도 절차상의 문제를 두고 귀찮은 일이 생길까 신경이 쓰이는 것이겠지.
“그런데 아까 사고 피해자 이승우 씨의 마지막 행적에 대해 알고 계신다고 했지요? 거기에 대해 말씀 좀 들어 볼 수 있을까요?“
“예. 어제 저는···”
사실 알고 있는 것이라고 해봐야 많을 리가 없었다.
그러다 보니 진술에 걸린 시간은 고작 30분 남짓.
사실, 오히려 내가 수사관에게 묻고 싶은 것이 많았다.
“알겠습니다. 참고인 조서 출력할 테니 같이 확인 좀 해주시겠습니까?”
“잠시만요. 수사관님. 저도 뭐 좀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수사관은 뜨뜻미지근한 얼굴로 나를 바라보며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덤프트럭이 뒤에서 그대로 들이받았다고요. 도대체 그 차를 운전한 사람은 누굽니까?”
“인적 사항은 제가 알려드릴 수 있는 부분이 아니에요.”
“그럼 사고 원인은요. 신호대기 중인 차를 어떻게 들이받으면 이렇게까지 만들 수 있습니까.”
“뭐···”
수사관은 미간 사이를 찌푸리며 관자놀이를 긁적거렸다.
“자세한 것은 더 들어봐야 알겠지만, 본인 말로는 깜빡 졸았답니다.”
졸음운전이라니···
어처구니없고 허무하기 그지없는 사고 원인에 맥이 다 풀릴 지경이었다.
사람이 저 지경이 되었는데, 졸음운전?
“고속도로도 아니고, 서울 시내에서 졸음운전이라고요? 거기다 덤프 기사면 도로밥 먹는 사람이잖아요. 운전에 있어서는 누구보다도 잘 알 텐데.”
“조사 중입니다. 조사 중. 선생님 말씀처럼 장거리 운전하는 기사들이 졸음운전으로 사고를 내는 것이 생각보다 자주 있는 일입니다.”
“아무리 깜빡 졸았다고 해도 이불 깔고 숙면을 취한 것도 아니고 차가 완파되고 사람이 저 지경이 되는 게 정말 흔한 일이 맞습니까?”
나도 모르게 목소리가 높아졌다.
“선생님, 진정하세요. 일단 당시에 현장 출동했던 경찰관 말이 순순히 본인이 사고를 낸 것도 인정했고, 음주도 감지가 안 되었어요. 주변 CCTV도 우리가 다 확보해놨으니까, 좀 기다려주시겠어요?”
CCTV···
“그럼 그 CCTV 영상, 저도 좀 볼 수 있을까요?”
“CCTV는 개인정보 보호법 때문에 개인에게 함부로 열람시켜드릴 수가 없어요.”
수사관은 단호하게 고개를 좌우로 저었다.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내 앞에 있는 수사관이야 원칙대로 하는 것일 테니, 그에게 무슨 잘못을 물을 수야 있겠는가.
하지만 답답한 마음에 아무 죄 없는 그가 미워 보이기 시작했다.
여기서는 얻을 것이 아무것도 없겠구나.
그때, 고윤아가 입을 열었다.
“경위님. 그 화물 트럭 운전자, 무슨 용도로 차를 운전하고 있었습니까? 사적 용도였습니까? 아니면 일을 하던 중이었습니까?”
“확인하고 있습니다. 사고 낸 당사자도 지금 제정신이 아니에요. 명확하게 말을 못 하고 있다니까요.”
“만약 업무 중이었다면 단순한 교통사고가 아니라 형법 286조 업무상 과실치사상의 적용을 받겠군요. 특칙 또한 적용될 것이구요.”
“예. 뭐···”
“설령 업무와 무관하더라도 신호 위반은 교통사고 12대 중과실입니다. 특히 피해자가 전치 2개월 이상이면 구속 요건이 되는 것은 알고 계시겠지요.”
수사관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사고를 두고 우리가 자꾸 배 놔라 감 놔라 하는 것이 저 수사관으로서도 유쾌할 리는 없을 터.
고윤아가 내 귀에 대고 작게 속삭였다.
‘오빠, 그 운전기사 일단 잡아는 둘 수 있을 것 같아요. 일단 오늘은 일어나요.’
윤아의 말에 따라 자리에서 일어난 나는 수사관에게 마지막 질문을 던졌다.
“수사관님. 사고 장소가 어딘지는, 그 정도는 알려주실 수 있지요?”
* * *
사고 현장은 서울과 경기도의 경계에 있는 외곽도로였다.
치운다고 치웠겠지만, 여전히 작은 잔해물들이 갓길 곳곳에 남아있었다.
심장이 찢어지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그 참담함에 한동안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윤아야.”
나의 침묵을 옆에서 조용히 지켜보던 고윤아가 눈을 들어 나를 보았다.
“일반적인 사람이라면 말이야. 죄송한 마음은 둘째치고, 이런 상황에서 감옥에 가는 걸 피하려고 어떻게든 합의를 보려고 난리겠지?”
고윤아의 고개가 위에서 아래로 떨어졌다.
“차가 많이 다니지 않는 곳이네.”
이렇게 한산한 외곽도로라면 뭔가 일을 꾸미기에는 제격이었으리라.
수상하게 바라보기 시작하니 뭐 하나 의심스럽지 않은 것들이 없었다.
나는 갓길에서 잔해물 중에 유리 조각 하나를 주워들었다.
그 유리에는 승우의 것이 틀림없을, 혈흔이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 제기랄.”
나지막하게 욕설을 내뱉었다.
“밤새 생각해봤어요.”
곁으로 다가온 고윤아가 말했다.
“오빠는 정말, 이 일이··· 그저 불운한 사고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거예요?”
“그게 뭐가 중요하겠어. 승우가 지금 생사에 갈림길에 서 있다는 게 중요하지. 하지만 만약에 이 모든 게 누군가의 음모에서 비롯된 거라면, 맹세하건대 관련된 사람들 모두를 절대 용서하지 않을 거야.”
“오빠···”
고윤아는 거의 울 것 같은 표정이 되었다.
그녀 역시 알고 있을 것이다.
만약 내 말대로 이것이 누군가에 의해 꾸며진 일이었다면, 표적은 절대 승우가 아니었을 거란걸.
지금 산소 호흡기에 의존해 숨을 쉬고 있을 사람은 녀석이 아니라 나였다는 걸.
그런 점에서 고윤아는 진심으로 이 사고가 그저 누군가의 부주의에 벌어진 참극이길 바라는 것 같았다.
“저기에 신호등이 있네. 아마 승우는 신호대기선 앞에 차를 두고 있었겠지. 한번 저쪽으로 가보자.”
“오빠. 일단 우리 너무 앞서나가서 생각하지 말아요.”
고윤아는 흉흉한 내 기세를 진정시키려고 노력 중이었다.
그녀의 마음이야 잘 알지만 지금 어찌 내가 진정을 할 수가 있겠는가.
승우는 단순한 친구가 아니다.
내 육신의 일부라고 말해도 지나치지 않다.
승우를 만약 잃기라도 한다?
심지어 그것도 나 때문에?
그럼 나는 와르르 무너져 버릴지도 모른다.
아니, 분명히 무너질 것이다.
그렇게 신호등 아래에서 잠시 생각에 잠겨 있을 때.
도로를 하염없이 바라보던 내 눈이 뭔가 이상한 것을 감지했다.
“··· 없어.”
귀신에 홀린 것처럼 중얼거리는 나를 보고 윤아가 걱정스럽게 물었다.
“오빠. 왜 그래요?”
“없잖아.”
내 손가락이 도로를 가리키고 윤아의 시선도 그것을 따라왔다.
그녀는 뭐가 문제냐는 듯 내 손가락과 얼굴을 번갈아 가며 바라보았다.
“오빠, 뭐가 없다는 거예요?”
“스키드 마크··· 스키드 마크가 없어.”
스키드 마크는 노면에 생기는 타이어의 미끄러진 흔적.
보통 브레이크를 강하게 밟았을 때 생기는 것이다.
나는 도로 주행 방향을 따라 조금 더 뛰어 올라갔다.
역시나 마찬가지였다.
스키드 마크는 보이지 않았다.
운전을 해본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알 것이다.
주행 중인 자동차에 미동만 있어도 운전자는 본능적으로 브레이크 페달에 발이 간다는 것을.
그런데 경차도 아닌 중형 SUV과 부딪치면서 브레이크를 밟지 않았다?
심지어 졸음운전이었다면서?
운전 중에 꾸벅꾸벅 졸다가 뭔가에 박으면 당연히 급브레이크를 밟는 것이 정상 아니겠는가.
그랬다면 덤프트럭의 무게를 생각했을 때, 이 자리에는 당연히 스키드 마크가 남아있어야 한다.
확신이 섰다.
이건 틀림없이 고의에 의한 사고다.
그것도 상대방을 확실하게 보내버리겠다는 악의로 똘똘 뭉친.
내 머릿속에 멈춰있는 승우의 차를 보고 힘을 주어 액셀을 밟는 누군가가 떠올랐다.
나는 떨리는 손으로 전화기를 꺼내 들었다.
뚜르르··· 뚜르르···
“여보세요?”
통화 연결음이 몇 초간 흐르고 내가 전화를 건 상대방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 일의 전말을 반드시 알아내리라.
작은 실마리라도 잡을 수 있다면 내가 가진 것들을 아낌없이 쏟아부으리라.
“잘 지내셨습니까. 저 한영수입니다.”
지금 협박하는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