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8. 파국 (2)
“··· 으음.”
징━ 징━
머리맡에 놓아둔 휴대전화가 진동과 함께 벨 소리를 토해냈다.
“아···”
잠으로 무거운 눈을 뜨게 만드는 전화기가 원망스러웠다.
나는 실눈을 슬쩍 떠, 밉상스러운 물건이 아닌 창밖을 바라보았다.
어둡다.
지금이 밤의 절정이라는 듯 칠흑 같은 어둠.
잠들기 전 내 의식이 마지막으로 기억하는 시간이 언제던가.
밤 열한 시쯤이다.
대충 두어 시간은 지난 듯하고, 그렇다면 지금 걸려 온 이 전화는 새벽으로 넘어가는 시간을 흔들어 깨우고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보나 마나, 술기운을 이기지 못하고 전화번호부의 여기저기를 눌러보는 누군가겠지.
이런 전화는 응당 받아봐야 아무런 영양가가 없기 마련이다.
사람들은 왜 술을 마시면 이야기할 누군가를 찾는 것일까.
하기야, 그에 대한 답을 찾는 것은 지금 내 몫이 아니다.
내가 할 일은 다시 잠자리에 들어 내일을 위한 체력을 비축하는 것이다.
나는 고개를 다시 베개에 파묻은 채 손을 뻗어 전화기를 집어 들었다.
그리고 전화기 옆면에 달린 볼륨 버튼을 눌러 불청객 같은 벨 소리를 소거 시켰다.
그런데···
전화가 끊기기 무섭게 쉴 틈도 안 주고 다시 또 벨 소리가 울렸다.
“··· 오빠.”
내 옆에 누워서 곤히 자고 있던 고윤아.
그녀까지도 이제 잠에서 깬 모양이었다.
“깼구나.”
잠이 덜 깬 그녀가 무의식적으로 손을 들어 수어를 했다.
그러다 여기가 자기 집이 아니라는 걸 깨닫기라도 했는지 배시시 웃었다.
팔불출 같은 소리 하나만 하자면 민낯의 윤아는 아이처럼 말갛다.
“받아야 하는 전화 아닙니까? 급한 일일지도 모르잖아요··· 이 시간에···”
“그래.”
이쯤 되니 이 무례한 사람이 누군지, 도대체 무슨 소리를 하고 싶은 건지 궁금해졌다.
침대에서 몸을 일으키며 나는 휴대전화를 집어 들었다.
그런데.
액정 위에 떠 있는 발신자의 이름은 내 머리 위에 커다란 물음표를 띄우기에 충분했다.
“어···”
“누구입니까? 혹시··· 여자?”
고윤아도 나를 뒤에서 껴안았다.
내 등에 얼굴을 파묻으며.
그녀의 목소리에서 작은 경계심이 느껴졌다.
“여자는 여잔데···”
순간, 내 허리를 잡은 윤아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은주야.”
“은주 씨?”
고윤아가 허리에 두른 손을 풀고 내 옆으로 다가와 앉았다.
그녀 역시도 나만큼이나 이해가 안 된다는 표정이었다.
“승우 씨 여자친구, 은주 씨가 맞는 겁니까?”
“응. 이 시간에 왜 전화를 했지?”
그랬다.
은주의 전화였다.
아무리 그녀가 하나밖에 없는 절친의 여자친구이자 배우자가 될 사람이라고 해도, 나에게 이 시간에 전화할 이유가 없다.
아니, 가만히 생각해보니 번호만 있다 뿐이지 은주와 내가 개인적으로 서로에게 전화를 걸어 통화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갑자기 정체 모를 불안감에 소름이 오소소 돋아났다.
팔뚝부터 시작된 그 불쾌한 감각은 온몸으로 삽시간에 번졌다.
마치 커다란 뱀이 내 몸을 휘감고 비늘을 비벼대는 것 같았다.
··· 승우에게 무슨 일이 생긴 것이 틀림없다.
그것도 아마 몹시 나쁜 일이.
바로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통화 버튼을 누르고 전화를 받자, 들려오는 것은 흐느끼는 울음소리뿐이었다.
그저 둘이 무슨 싸움이 있었던 거겠지.
결혼을 앞둔 커플이라면 다들 그러기 마련이잖아.
제발···
딱 그 정도길.
나는 기도하는 심정으로 눈을 꾹 감았다.
“은주? 무슨 일이야.”
“··· 영수 오빠 ···우리 오빠 어떡해요.”
‘늦은 시간에 정말 미안해요.’ 라든지 ‘아··· 잘못 걸었어요.’ 따위의 서두는 없었다.
우리 오빠 어떡해요.
상황이 내가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심각하다는 걸 대번에 알 수 있었다.
은주는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하고 엉엉 대성통곡을 했다.
서러운 울음소리는 유난히 크게 울렸는데, 그 울림으로 보아 그녀는 지금 탁 트인, 어떤 넓은 공간 같은 곳에 있는 것이 틀림없었다.
나는 앉은 자리를 박차고 벌떡 일어났다.
갑작스러운 내 행동에 윤아가 놀라 뒤로 물러섰다.
승우와 헤어진 시간을 되짚어 보니 어젯밤 9시가 되기 전이다.
녀석은 집으로, 그리고 나는 헬스장으로.
그렇게 각자의 목적지로 손을 흔들며 헤어졌었다.
“진정해. 은주야. 승우가 왜? 무슨 일인데.”
“교통사고··· 오빠가 교통사고가 났어요.”
은주는 딸꾹질을 하는 것처럼 간신히 말을 이어갔다.
제기랄.
어제 차 키를 흔들며 환하게 웃던 이승우의 모습이 선하게 떠올랐다.
“··· 오빠.”
심상치 않은 분위기에 고윤아가 내 손목을 슬쩍 잡았다.
“많이··· 다친 거야···?”
떨리는 목소리를 감출 수가 없었다.
“어떡해요. 우리 오빠 지금···”
툭━
이어진 은주의 대답을 듣자 손에서 힘이 풀렸다.
내 손에서 바닥으로 떨어지는 휴대전화의 움직임이 마치 슬로비디오처럼 느리게 보였다.
* * *
“은주야!”
서울 시내의 한 대학병원.
그 병원의 중환자실 복도에서 은주는 몸을 쭈그리고 앉아있었다.
“영수 오빠··· 윤아 언니···”
나의 부름에 은주는 몸을 일으키며 옷 소매로 제 얼굴을 쓱쓱 닦았다.
그런데도 그녀의 두 볼에는 눈물길이 선명하게 나 있었다.
윤아는 잰걸음으로 은주에게 다가가 그녀를 꼭 끌어안았다.
누군가가 품을 내주자 은주는 또 한 번 허물어졌다.
은주는 입술을 꽉 깨물고 왕 구슬 같은 눈물을 뚝뚝 흘렸다.
고윤아는 아무 말 없이 그녀의 등을 쓸어주었다.
병원의 공기가 이렇게 공포스러웠던 적이 있는가.
이제 한 여름이 코 앞인데 나는 참을 수 없는 한기를 느꼈다.
그렇게 은주가 조금 진정되기를 기다리고 나서야 비로소 전후 사정을 들을 수가 있었다.
“승우는? 지금 중환자실에 들어가 있는 거야?”
은주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수술은?”
은주의 볼이 씰룩거렸다.
붉다 못해 온통 시뻘건 그녀의 눈은 오늘 자기 몸 안에 있는 모든 체액을 쏟아붓기라도 할 것 같았다.
아아···
나도 눈물이 고이는 것을 참을 수가 없었다.
입술을 윗니로 꽉 깨물고 나는 은주에게 다가갔다.
“은주야. 울지마. 승우는 지금 저 안에서 싸우고 있잖아. 우리가 맘 강하게 먹어야 해. 의사 선생님은 뭐라고 하셔? 생명에는 지장이 없다고 하지? 그렇지?”
“은주 씨 다그치지 말아요. 지금 제일 힘든 사람인데···”
고윤아가 나를 만류했다.
그녀의 얼굴도 나나 은주와 별반 다를 것이 없었다.
나는 크게 한숨을 몰아쉬었다.
“우리 오빠···”
은주가 작게 입을 벌렸다.
“수술했는데··· 의식이 언제 돌아올지 모른다고··· 어쩌면 영영 못 깨어날지도 모른다고···”
쾅━
나는 주먹으로 복도 벽을 쳤다.
중환자실을 앞에 두고 이런 내 행동이 상식인답지 않다는 것쯤은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 정도가 나의 감정을 가장 교양있게 표현하는 방법이었다.
이게 아니었다면 세상에서 가장 더러운 욕을 배설하듯 고래고래 토해냈을 테니까.
신부님.
하느님은 언제나 우리를 사랑하신다면서요.
이게 그분의 방식입니까?
이제야 행복을 향해 달려가는 내 친구를 이렇게 망가트리는 것이.
정말 당신이 있다면 뭐라고 변명이라도 해보세요.
“은주 씨. 뭐 좀 먹었습니까?”
윤아의 말에 은주는 고개를 힘없이 저었다.
“뭐라도 먹어야 합니다. 오빠 말이 맞습니다. 승우 씨··· 저 안에서 싸우고 있는데, 밖에 있는 사람이 쓰러지면 안 돼요. 우리 같이 내려갑시다. 앞에 편의점···”
고개를 끄덕여 동의하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은주는 우리의 손을 뿌리칠 힘도 없었다.
우리 셋은 바람 앞에 흔들리는 촛불처럼 휘청이며 복도를 빠져나왔다.
* * *
음식이 입에 들어갈 리가 없었다.
은주는 윤아가 전자레인지에 데워온 간편식 죽을 간신히 몇 숟갈 떴을 뿐이다.
그것마저도 연신 헛구역질이라, 나와 고윤아는 더 이상 그녀에게 뭘 먹으라 권할 수 없었다.
그래도 소량의 영양분이 몸 안으로 들어간 덕분인지 은주는 정신이 좀 돌아온 것 같았다.
“영수 오빠에게 빨리 연락했어야 하는데. 머릿속이 하얘져서 아무 생각도 안 났어요. 바보 같이 그냥 눈물만 자꾸 나고···”
“괜찮아. 은주야. 정말 괜찮아.”
“··· 영수 오빠. 그런데 미안해서 어떡해요.”
은주는 뜻밖에 나에게 사과부터 했다.
“무슨 소리야. 나한테 미안할 게 뭐가 있어.”
은주는 고개를 푹 수그렸다.
“우리 오빠가 빌려서 타고 다닌 차. 그거 폐차해야 할 것 같아요··· 엄청 비싼 차인데. 어떡하죠.”
평소의 이성적인 나였다면 보험사가 해결해줄 테니 걱정하지 말라고 말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도저히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나 역시 은주를 따라 고개를 툭 떨궜다.
“아니야. 내가 그 차 키를 승우에게 안 줬다면··· 어쩌면 이런 일이···”
두 손바닥으로 눈을 가렸다.
“아니에요. 그 차 엄청 튼튼하다면서요. 우리 오빠 살아있잖아요. 영수 오빠 덕분에 그래도···”
두려울 정도로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은주 씨. 혹시, 사고 경위는 알고 있습니까?”
손으로 다정하게 은주의 등을 쓸면서 고윤아가 물었다.
“정신이 없어서 제대로 듣지는 못했어요. 가게 공사 보러 갔다 집에 오는 길이었나 봐요. 경찰관 아저씨 말이 오빠가 신호대기 중일 때 뒤에서 트럭이··· 엄청나게 큰 트럭 그걸··· 뭐라고하지. 어떡해··· 나 말이 생각이 안 나.”
“덤프트럭 말하는 것이 맞지요?”
“네. 덤프트럭. 그게 뒤에서···”
사고 이야기를 떠올리자 은주는 다시 울컥했는지 제대로 말을 잇지 못했다.
우리 오빠 불쌍해서 어떡해···
그녀는 그저 그렇게 웅얼거릴 뿐이었다.
그런데 순간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승우에게 준 차는 강성이 좋기로 평이 자자하다.
그런데 저렇게 사람을 중태에 빠트릴 정도라면 아무리 덤프트럭이라도 뒤에서 들이박는 속도가 보통이 아니었을 것이다.
고속도로도 아니고 도심의 국도에서?
그것도 앞 차가 빨간 불에 신호대기 중인데?
“은주야. 혹시 경찰에게 연락처 받은 것 없어? 사고 조사 관련해서 진술 듣는다고.”
내 말을 듣고 은주는 주머니를 뒤져 명함 한 장을 건넸다.
OO서 경비교통과 교통조사계
tel) 02-XXX-XXXX
축축하고 잔뜩 구겨진 명함에 인쇄된 글씨였다.
나는 그 명함을 주머니에 잘 챙겨 넣었다.
“은주야. 괜찮다면 경찰관은 내가 만나봐도 될까?”
“오빠가요?”
“그래. 내가 승우랑 마지막까지 같이 있었던 사람이기도 하고.”
“그래줄 수 있어요? 나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를 것 같아서···”
“걱정하지 마. 내가 가서 이야기 잘하고, 들은 거는 은주, 네게 전부 말해줄 테니까.”
은주는 고개를 작게 주억거렸다.
“언니, 오빠. 나 잠깐 화장실 좀 다녀올게요.”
“나랑 같이 가요.”
“아니에요. 언니, 나 너무 많이 울어서 흉하다. 세수만 조금 하고 올게요.”
은주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영수 오빠.”
“응. 말해.”
“우리 오빠 꼭 깨어나겠죠?”
나는 단 일 초도 망설이지 않았다.
“당연하지. 이승우, 그 녀석은 내가 아는 그 어떤 사람보다 강한 남자야.”
“고마워요. 오빠도··· 언니도··· 이렇게 와 줘서, 내가 너무 힘이 되어요.”
느리게 발걸음을 옮기는 은주.
나는 그녀의 뒷모습을 걱정스러운 눈으로 바라보았다.
“이상하지 않아?”
“뭐가요?”
“사고 말이야.”
나는 내가 생각했던 것을 윤아에게 말로 풀어내었다.
“가능성이 너무 많아요. 음주 운전 일수도, 어쩌면 단순 졸음운전일지도요.”
“그리고 어쩌면 누군가의 사주일지도 모르지.”
아마 나와 윤아의 머릿속에는 같은 사람이 떠올랐을 것이다.
어쩌면 목적이 승우가 아니라 나였을지도 모른다.
생각이 거기까지 닿자 마음이 미어지는 것 같았다.
내 친구가, 날 대신해···
아무리 장은수가 악인이고 가진 것이 많고 힘이 있다고 해도 이렇게 사람의 생명까지···
제발 나의 이런 생각이 틀렸기를 간절히 바랐다.
만약 내 생각이 들어맞는다면 앞으로 누군가를 정말 표현 그대로 죽여버리고 싶어질지도 모르니까.
“오빠. 일단 의심은 미뤄요.”
고윤아가 테이블 위에 올려진 내 손 위에 자기 손을 겹쳤다.
“경찰서 갈 때, 나도 같이 갈게요. 아무래도 그런 일은 내가 더 익숙하니까.”
“그래. 그러자. 그리고 윤아야, 내가 부탁 하나만 하고 싶어.”
“무엇이든지요.”
“병원을 알아봐 줘. 최고의 교수와 시설이 있는 곳으로. 돈이 얼마나 들든 상관없으니까. 승우는 내게 있어 그냥 친구가 아니야. 반드시 녀석에게 삶을 돌려줄 거야.”
반드시 알아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