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5. 발각 (1)
‘쓸모없는 새끼.’
장은수는 한 손으로 턱을 괸 채 최영도 대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는 최영도 대리를 들쑤셔 일을 맡겼지만, 최 대리는 값어치라고는 한 푼도 없는 쓸모없는 정보만 물어올 뿐이었다.
‘확실히 이런 점에서는 황 실장이 일을 잘하기는 하지.’
자신이 괜한 의심을 한 걸까.
아직은 조금 더 황 실장을 데리고 써도 되는가.
장은수는 최영도 대리를 보며 머릿속으로 계산기를 두들겼다.
황 실장과 비교하면 무능력하기만 한 최 대리를 보며 자신이 실수한 것은 아닌가, 회의감이 드는 장은수였다.
그런데, 오늘따라 최 대리의 표정이 평소와는 달랐다.
자기도 장은수가 원하는 것을 얻어내지 못하고 있다는 걸 알기에, 늘 주눅이 들어있던 그였는데, 지금은 제법 득의양양한 미소까지 짓고 있다.
아닌 게 아니라 어깨가 높이 솟은 것이 마치 받아쓰기 100점을 받고 엄마 앞에 선 어린아이 같았다.
‘이번이 마지막이다.’
그 태도의 차이를 진작에 눈치를 챈 장은수였지만, 큰 기대는 하지 않았다.
만약 이번에도 최 대리가 자신의 쓸모를 증명하지 못하면 저 멀리 어딘가로 내쫓아 버릴 생각인 장은수였다.
“회장님. 그동안 제가 실망만 시켜드려서 늘 송구스러운 마음이었습니다.”
“내가 특별히 어려운 일을 맡긴 것도 아닌데 결과물이 시원찮기는 했지.”
서늘한 눈을 하고 뼈가 있는 말을 하는 장은수를 보자 최 대리는 딸꾹질이 올라올 것 같았다.
“하지만, 정말 황 실장님··· 아니, 황 실장에게서 특별한 걸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심지어 자리를 비웠을 때 사내 메신저를 훔쳐보아도··· 별다를 것이 없었습니다. 회사와 오피스텔만 오가고요.”
“최 대리 말은··· 내가 생사람이라도 잡고 있다는 건가.”
장은수의 말에 최 대리가 펄쩍 뛰었다.
“아닙니다! 회장님. 제가 어떻게 그런 생각을 했겠습니까. 오히려 회장님의 혜안에 정말 놀랐습니다. 특히나 이걸 발견하고 나서는 말씀입니다···”
들고 있던 갈색 서류 봉투를 슬쩍 장은수에게 내미는 최 대리.
아마도 그것이 최 대리의 의기양양함의 비결이었던 모양이다.
“뭔가, 이게.”
“보시면 아실 겁니다.”
혓바닥을 내밀고 주인에게 칭찬받고 싶어 안달이 난 강아지처럼 최 대리가 입을 벌리고 웃었다.
장은수는 가늘고 긴 손가락을 움직여 서류 봉투를 열고 그 안의 내용물을 천천히 꺼내 들었다.
사진이었다.
그리고 그 사진을 보는 순간 장은수의 얼굴이 돌이라도 된 듯 딱딱하게 굳어졌다.
‘빙고!’
회장의 표정을 본 최 대리는 자신이 이번엔 제대로 해냈음을 직감했다.
장은수의 측근으로 승승장구할 자기 모습이 파노라마처럼 순식간에 지나가는 그였다.
한영수와 장은호.
두 사람이 함께 있는 모습을 찍은 바로 그 사진.
사진을 보자마자 누군가 자신의 역린을 건드리기라도 한 듯 불같은 분노가 치솟는 장은수였다.
“··· 설명해.”
사진을 내던지듯 책상에 내려놓고 장은수가 최 대리를 바라보았다.
“회장님께 빠짐없이 보고드렸다시피, 황 실장은 특별한 행적이 없었습니다. 정말 답답하게도요. 그런데, 생각해보니 비서실 공용차가 떠올랐습니다.”
“그래서?”
“내비게이션 이력을 확인했습니다. 놀랍게도 업무시간이 끝나고, 혹은 주말에도 누군가 차를 몰았다는 걸 알 수 있었습니다. 사실상 비서실 직원들이 그 차를 이용하는 경우가 거의 없다는 걸 생각하면 그 누군가의 정체쯤이야 짐작하는 게 어렵지 않았습니다.”
최 대리는 자기가 유능한 탐정이라도 된 것처럼 장은수에게 일련의 과정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사실 최 대리의 짐작은 거의 정확했다.
황 실장은 딴에는 흔적을 남기지 않겠다고, 자신의 차가 아닌 공용차를 이용했다.
설마하니 누군가 뒤에서 그 차를 뒤져볼 것이라는 생각조차 하지 못한 그의 방심이었다.
“황 실장이 출장을 가거나 하면 내비게이션 이력을 따라 되짚어 차를 몰았습니다. 그런데 목적지에 공통으로 있는 것들이 있었습니다. 소위 말하는 심부름 업체들이었습니다.”
최 대리의 말을 더 이상 듣지 않아도 모든 상황이 그려지는 장은수였다.
심지어 황 실장이 이 둘의 만남을 숨긴 이유까지.
장은수는 자신의 추측에 확신을 얻기 위해 이를 앙다물고 계속해서 최 대리의 말을 들었다.
한영수, 장은호, 그리고 황 실장까지···
마치 땅과 하늘이 뒤집혀 세상이 거꾸로 돌아가는 것만 같았다.
“업체들을 다 돌았지요. 황 실장의 사진을 들고. 그중의 한 업체가 황 실장을 안다는 겁니다. 그리고 자신들이 이 사진을 전해 주었다고··· 아, 당연히 맨입에는 안되고 개인적으로 사비를 좀 많이···”
이제는 회장과 비밀을 하나 공유한 사이가 되었다는 생각에 자만심이라도 생긴 걸까?
최 대리는 눈치를 보며 너스레를 떨었다.
그런 행동은 장은수가 가장 싫어하는 것 중 하나였다.
그래도 최 대리에게 다행인 점이 하나 있었다.
지금 장은수는 그의 말 따위가 귀에 들어올 상황이 아니었으니.
“그런데 참 이상합니다. 이 사람 고왕 건설의 한영수 회장 아닙니까? 누군지 한참을 들여다보았습니다. 왜 장은호 회장님이 한영수 회장을 만났을까요? 개인적으로 알아보았지만, 미국에서 오래 계셨던 장은호 회장님이 한영수, 저 사람과 접점이 있을 리가 없는데··· 제가 아무리 생각해봐도 그건 도무지 모르겠습니다.”
“··· 그건 최 대리가 생각할 문제가 아니지.”
“예?”
이쯤 되니 최 대리는 무언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기가 예상했던 것과 상황이 전혀 다르게 돌아가고 있었다.
‘뭐야. 내가 뭔가 제대로 물은 건 틀림없는데··· 왜 이리 쌀쌀맞아?’
“아무튼 수고했어.”
‘드디어 포상이구나.’
이어질 장은수의 말을 기대하며 최 대리는 군기 잘 든 신병처럼 차렷자세를 취했다.
그러나 장은수의 입에서는 그가 생각지도 못했던 엉뚱한 말이 튀어나왔다.
최 대리 입장에서는 마치 지옥의 선고와 같은 말이.
“그래서, 최 대리는 가고 싶은 부서가 있나?”
“회장님··· 그게 무슨···”
“원하는 부서가 있냐는 말이야. 어려운 소리가 아닌 것 같은데.”
“당연히 저야 회장님을 곁에서 수행하는···”
“최 대리는 너무 말이 많군. 입은 화(禍)의 문이라는 말, 들어본 적이 없나?”
장은수의 한 마디에 순식간에 분위기가 얼어붙었다.
“생각이 많은 인간, 그리고 심지어 그 생각을 입 밖에 내는 인간은 내 옆에 있을 자격이 없어. 가고 싶은 곳으로 가서 입 꾹 다물고 근무하도록. 회장이 보냈다고 하면, 뭐가 없어도 있는 줄 착각하고 대접은 잘해줄 테니 말이야. 최 대리 같은 직장인에게 그보다 더 훌륭한 보상이 어디 있겠는가. 안 그래?”
장은수는 가늘게 찢어진 눈으로 최 대리를 바라보았다.
최 대리는 도저히 그 시선을 감당할 수가 없어 고개를 툭 떨궜다.
“명심해. 꼭 입단속 잘하라고. 이건 그냥 하는 말이 아니야. 만약 쓸데없는 소리가 내 귀에 들어오기만 하면 최 대리는 대기업에 다니는 부모님의 자랑이 아니라, 송사에 시달리며 평생을 일해도 갚을 수 없는 돈에 짓눌리는 불쌍하고 가련한 인생이 될 테니.”
* * *
황 실장의 오피스텔.
불 꺼진 방에 오직 노트북의 불빛만이 황 실장의 얼굴을 비추고 있었다.
무언가 열심히 타자를 치고 있는 황 실장.
그때였다.
딩동━ 딩동━
타자 소리 말과는 고요하기만 하던 방 안에 초인종 소리가 울려 퍼졌다.
“누구? 올 사람이 없는데···”
황 실장의 미간 사이가 찌푸려졌다.
올 사람이 없는데 누군가 찾아왔다면, 그건 10번 중 8번쯤은 귀찮은 일이기 마련이다.
황 실장은 의자에서 일어나 인터폰을 확인했다.
그런데 이게 웬걸.
거기에는 그가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인물의 얼굴이 나타나 있었다.
장은수.
‘회장님이 지금 여기를 왜?’
머릿속에 물음표가 가득 떠올랐지만, 보스를 저대로 세워놓을 수는 없는 일이었다.
황 실장은 황급히 노트북을 덮고, 방 안에 불을 켜고선 가디건을 걸쳐 입었다.
“회장님··· 어떻게 여길.”
“황 실장. 내가 잠깐 들어가도 되겠나?”
“물론입니다.”
황 실장은 얼른 실내용 슬리퍼를 꺼내 현관 앞에 내려놓았다.
“황 실장이 사는 곳에는 처음 와보는군.”
“회장님뿐만 아니라 직원이 여기에 온 곳은 처음입니다. 워낙 누추한 곳이다 보니···”
“이렇게 좁아서는 생활하기가 영 불편할 텐데.”
“마음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혼자 지내기에는 나쁘지 않습니다.”
황 실장은 식탁 테이블에서 의자를 하나 빼, 장은수에게 권했다.
그 의자에 앉은 장은수는 고개를 돌려가며 방 안을 둘러보았다.
“역시 황 실장답군. 깔끔하게 정리하고 사는 것이.”
“감사합니다.”
황 실장은 머릿속은 지금 엉킨 실타래처럼 복잡하기만 했다.
그가 아는 장은수는 절대 목적 없이 행동하는 이가 아니었다.
더욱이 그저 자기 부하를 격려하자고 사는 곳까지 찾아올 이는 더더욱 아니었다.
“그런데, 무슨 작업을 하고 있었나 보군.”
장은수의 손가락이 책상 위의 노트북을 가리켰다.
급하게 움직이느라 반밖에 못 덮은 노트북에서는 액정의 환한 조명이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아, 아닙니다. 그냥 뭘 좀···”
“··· 그래. 내가 할 말은 아니지만, 남자가 혼자 사는 것도 영 모양새가 좋지는 않아. 멀리 가 있는 가족들이야, 기러기 아빠의 고충을 알겠나? 황 실장 딸 지금 몇 학년이지?”
“GRADE 10입니다.”
“벌써 고등학생이라고? 시간 참 빠르군. 그렇게 서 있지 말고 황 실장도 앉아.”
장은수의 말에 황 실장이 건너편에 있는 의자를 빼곤 엉거주춤 앉았다.
‘생각해라, 황상규. 생각해야 살아.’
회장의 진의를 알 수 없었던 황 실장은 말을 돌렸다.
“회장님. 가시고 싶으신 곳이 있으면 제가 모시고 나가겠습니다. 자주 가시는 바에 지금 당장 연락하겠습니다.”
“아니야. 그럴 필요 없어. 긴말하려고 온 것은 아니니까. 지금 술 마실 기분도 아니고.”
어색한 침묵.
똑━ 똑━
수도꼭지에서 떨어지는 한 방울의 물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
“명문 사립 학교지. 졸업생들 대부분이 아이비리그에 가니까. 그렇지 않나?”
“맞습니다. 모두 회장님께서 보증을 서주신 덕분입니다.”
“그렇지. 현지인들조차 절대 아무나 들어갈 수 없는 학교지.”
“항상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입으로는 감사하다고 하고 있었지만, 황 실장의 얼굴은 거의 우는 표정이었다.
그에 비해 대화가 진행되면 진행될수록 장은수의 표정은 차갑게 가라앉았다.
이쯤 되니 황 실장이 모를 리가 없었다.
장은수가 자기 모가지를 따러 직접 왔음을.
‘제기랄··· 제기랄··· 제기랄!’
“가족뿐만이 아니지. 난 황 실장에게 인생을 줬어. 원래라면 죽어도 가질 수 없는 것들을 주었고, 별 볼 일 없는 황 실장이 어깨 펴고 살 수 있게 만들어줬단 말이야.”
황 실장의 등허리에 소름이 오소소 돋았다.
커다란 뱀이 자신의 온몸을 휘감는 것 같은 공포.
“회장님. 혹시 저에 대해 오해가 있으시다면, 설명을···”
“입 닥쳐.”
꿀꺽━
황 실장의 목울대가 아래위로 꿈틀거렸다.
장은수의 차가운 눈빛에 그의 심장은 곧 멎어버릴 것만 같았다.
“네가 감히 내 뒤통수를 쳤더군. 이 개새끼야.”
쿵━
창밖에서 무언가 둔탁하게 부딪치는 소리가 났다.
교통사고라도 난 모양이었다.
그리고 이어서 사방에서 빵, 빵 거리는 자동차 클랙슨의 소리가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발각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