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2. 대담 (3)
한국 경제의 거목이었던 장영복 회장.
이것은 그가 쓰러지기 며칠 전의 일이다.
장영복과 장은수, 부자(부자)는 서로를 집어삼킬 듯이 매서운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하나의 영역을 두고 물러설 수 없는 일전을 앞둔 맹수처럼 두 사람 사이에는 살벌한 분위기가 넘실대고 있었다.
“왜 그랬느냐.”
날카로운 눈매와는 달리 아들을 향한 장영복의 목소리는 그래도 차분한 구석이 있었다.
“저야말로 아버지에게 묻고 싶습니다. 경영상 필요한 조치였습니다. 저는 지금 그 정도는 결정할 수 있는 위치입니다. 회장 자리에서 물러나신 아버지에게 추궁받지 않아도 될 만큼의.”
장은수의 음성 역시 제 아비와 달리 냉랭하기만 했다.
음━
장영복은 짧은 한숨을 내뱉곤 장은수를 말없이 노려보았다.
검버섯이 핀 눈가는 세월을 이기지 못하고 깊게 주름살이 패어 있었다.
대한민국 재계의 정점에 있는 자라고 할지라도 늙음을 피할 수 없는 것은 자연이 정한 이치다.
하지만, 장영복의 눈동자만은 젊은 시절과 다름없이 형형하게 빛나고 있었다.
장영복 회장의 눈을 두고 혹자는 ‘거짓말 탐지기’라며 우스갯소리를 하곤 했다.
그것이 영 농담만은 아닌 것이, 장영복 회장의 눈은 사람들의 속마음을 훤하게 들여다보곤 했다.
노(老) 회장이 입을 다물자 두 사람 사이에 침묵이 길게 늘어졌다.
장은수는 아버지의 눈빛도, 어색한 침묵도 견디기 힘들었다.
‘세상에서 날 이렇게 불편하게 만들 수 있는 사람은 오직 저 노인네뿐이지.’
장은수는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어찌나 힘을 주었는지, 그의 볼이 파도처럼 씰룩거렸다.
한때는 그도 아버지를 진심으로 우러러보았던 시절이 있었다.
어린 장은수의 눈에 세상의 그 어떤 위인도 아버지보다 훌륭해 보이지 않았다.
닮고 싶었다.
아버지처럼 사람들을 꼼짝 못 하게 만들 수 있는 강한 영향력을 가진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리고, 점점 욕심이 커지기 시작했다.
하루라도 빨리 아버지가 앉아있는 저 왕좌 위에 올라서고 싶다는.
그는 시간이 자신의 편일 거라고 생각했다.
당연히 머지않은 미래에 아버지의 자리를 자신이 물려받게 될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 믿음이 슬슬 흔들리기 시작한 것은 장은수가 40줄에 접어들기 시작하면서였다.
장영복 회장은 도무지 물러날 생각을 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나이를 먹을수록 더욱 정력적으로 일에 매진했다.
이대로라면 아버지의 그늘 아래서 영원히 이인자로 남게 될 것만 같은 초조함에 장은수는 잠을 자다가도 몇 번씩 벌떡 일어나곤 했다.
그가 아내와 이혼을 한 것도 딱 그맘때쯤이었다.
우여곡절 끝에 태상 건설 그룹의 회장 자리는 물려받았지만 크게 변한 것은 없었다.
여전히 이 기업의 ‘온니 원’은 장영복 회장이었다.
태상 그룹에 몸을 담는지 어언 17년.
아버지에 대한 존경심이 풍화되기에는 충분한 시간이었다.
장은수는 더 이상 기다릴 수가 없었다.
그래서 아버지와 맞서기로 결정을 내렸다.
언제나 바라만 보던 눈앞의 높은 산을 이제는 정복하겠다고 마음을 먹은 것이다.
“중인 토목, 산회 건설. 태상 건설과 30년 넘게 같이 하던 협력사다. 회장 자리에 오른 지 고작 이 년밖에 되지 않은 네가 그들을 그렇게 잘라 내어서는 안 돼.”
“벌써 이 년이나 되었으니 이제라도 정리하겠다는 겁니다. 태상 건설과 같이 일하고 싶어 하는 하청들은 백사장에 조개껍데기처럼 널렸습니다. 우리가 죽으라면 죽는시늉까지 할 자들요. 짐승도 오래 기르면 주인을 무는 법입니다. 계속 조건을 맞춰주면서 그들과 함께 갈 이유는 없습니다.”
장영복의 미간이 좁게 찌푸려졌다.
아버지로서는 이빨을 숨기지 않는 아들의 날 선 적의가 안타까웠고, 한 명의 기업인으로서는 후계자의 근시안적인 행동이 개탄스러웠다.
그래도 장영복은 감정을 추스르고 아들을 설득해보려 노력했다.
“회장은 모든 것을 독단적으로 결정하는 자리가 아니야. 왜 너는 임원들의 조언을 무시하는 것이냐. 그렇게 귀를 닫아버리는 것은 옳지 않아.”
“아버지.”
장은수는 한쪽 입꼬리를 비죽이 올렸다.
“아버지야말로 모든 것을 혼자서 판단하고 결정하는 삶을 사시지 않았습니까. 저보고는 그렇게 하지 말라고 말씀하시니 조금 당황스럽네요.”
“나는 태상의 총수로서, 그리고 태상 건설의 회장으로서 결정이 아니라 책임을 지려고 해왔다.”
“저도 제가 책임을 다 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졌으면 좋겠습니다. 비토 세력들이 어찌나 많은지··· 아버지께서 말씀하시는 그 임원들요? 앵무새처럼 ‘장 회장님께서는 그렇게 하시지 않았습니다.’라고 공염불만 외는 늙은이들인데, 제가 귀담아들을 이야기가 뭐가 있겠습니까.”
순간 장영복의 이마에 시퍼런 핏줄이 툭 섰다.
마침내 아들의 도발이 그의 인내심의 한계를 넘어선 것이었다.
“은수, 네 이놈!”
톡, 톡, 톡━
장은수는 아버지의 호통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손가락으로 탁자를 톡톡 쳐댈 뿐이었다.
“그래. 내가 판단을 잘못했다. 너는 그 자리에 있을 자격과 소양이 없어. 아직은.”
“그럼 도대체 아버지의 자식 중에서 누가 자격이 있을까요. 제멋대로 살면서 세월을 허송세월한 은호가? 아니면 철없는 은우가?”
“내가 하겠다. 아무래도 내가 다시 태상 건설의 회장으로 돌아가야겠다.”
생각지도 못한 대답에 장은수의 손가락 움직임이 얼어붙은 듯 멈췄다.
‘이 노인네가 아직도 욕심을 버리지 못하고···’
장은수는 눈을 부릅뜨고 자신의 아버지를 바라보았다.
“그러실 순 없습니다. 아버지 연세를 생각하세요.”
“그럴 수 있어. 태상 건설의 회장에서는 물러섰지만, 여전히 나는 태상의 총수다. 내 건강은 네가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저는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네가 수긍할 필요는 없다. 이사회를 소집할 거니까. 부회장 자리로 물러나.”
장은수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꽉 쥔 장은수의 두 주먹은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아버지는 절 그렇게 인정하기가 싫으십니까.”
“애비로서 이렇게 말하는 나도 마음이 편하지는 않다. 하지만 너에겐 아직 시간이 더 필요한 것 같다.”
“아버지로서?”
웃길 것도 없는 이야기였지만 장은수는 웃었다.
그 소리 없는 웃음은 잘 버려진 칼날에 달빛이 머금어진 것처럼 한기가 서려 있었다.
‘이제는 나도 정말 늙은 건가.’
살면서 누구에게도 주눅 드는 법이 없었던 장영복.
아들의 웃음이 너무 서늘해 장영복은 자기도 모르게 몸을 움츠렸다.
“차라리 그냥 총수의 명령이라고 말씀하세요. 어디 여태껏 아버지와 저 사이에 부모, 자식 간의 정이 있기는 했습니까. 하긴 어디 저뿐일까요.”
비죽이 웃던 입가가 벌어지며 장은수의 하얀 치아가 드러났다.
“··· 갓 태어난 핏덩이까지 내다 버리는 것이 아버지의 방식 아닙니까.”
장영복은 순간 머리 위로 번개라도 떨어진 것 같았다.
“··· 너, 그걸 어떻게···”
세상 모르게 꼭꼭 숨겨둔 비밀이었다.
그 용서받지 못할 치부를 알고 있었으면서도 이 순간까지 숨겨온 장남의 음험함에 장영복의 팔뚝에는 소름이 돋아났다.
조금 전까지도 자신의 젊은 아들과의 기 싸움에서 한 치도 밀리지 않던 그는 순식간에 중늙은이가 된 것 같았다.
“세상 사람들 모두가 아버지의 편일 거라고 생각하신다면 그건 오만이십니다. 누군가는 이미 아버지로부터 등을 돌렸다는 말입니다. 주인을 바꾸려는 개는 입에 뼈다귀라도 하나 물고 오기 마련이죠.”
장영복 회장은 입술을 뻐끔대며 무언가 말해보려고 했지만 음 소거라도 된 듯 어떤 목소리도 나오지 않았다.
그의 그런 모습은 불구덩이에 기름을 쏟아붓듯 장은수의 기세만 더 살아나게 할 뿐이었다.
“말년에 아주 큰 추문에 휩싸이시겠습니다. 이사회를 여시겠다고요? 큰아들 자리는 빼앗고, 사생아는 내다 버리고··· 이 시대의 진정한 아버지 상으로 추앙받으시겠습니다. 어디 한번 마음껏 해보시죠. 아마 아버지는 얻는 것은 아무것도 없이 손가락질만 받게 되실 겁니다.”
쾅━
장은수는 거세게 문을 닫고 밖으로 나가버렸다.
쿵쿵━
장영복의 심장이 거칠게 박동했다.
온몸의 혈관이 좁아지고, 피가 거꾸로 역류해 머리로 쏠리는 것 같았다.
떨리는 손으로 가슴을 움켜쥐며, 장영복은 지독한 현기증을 느꼈다.
* * *
“회장님. 고생하셨습니다.”
장은수의 기사가 재빠르게 차에서 내려 90도로 인사를 박았다.
“잠깐 타라.”
여전히 나를 돌아보지 않은 채 장은수는 먼저 기사가 열어준 뒷좌석에 올라탔다.
어떻게 할까.
나는 장은수의 뒤를 따르지 않고 열린 차 문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장은수가 나에게 호의적이지 않은 감정을 품고 있다는 것은 굳이 여러 말을 섞어보지 않아도 충분히 알 수 있었다.
그의 적의를 굳이 내가 마주할 필요가 있을까?
아니다.
잠시 고민을 하던 나는 천천히 발걸음을 떼었다.
같은 목적이 있는 한 원하든, 원치 않든 장은수 회장과는 계속 마주칠 수밖에 없으리라.
만약 내가 여기서 그를 피한다면, 장은수는 멋대로 그걸 나의 나약함이라고 치부해버릴지도 모른다.
“홍 기사. 잠깐 자리 좀 비켜주겠나?”
“예. 회장님, 물론입니다.”
내가 차에 올라타자, 장은수는 기사에게 손을 내저었다.
“그리고.”
이어서 장은수는 손가락을 들어 차량에 설치된 블랙박스를 가리켰다.
“저 블랙박스 꺼버려. 메모리카드도 빼고.”
회장의 지시에 기사는 어떤 물음도 없었다.
그저 장은수의 명령이 자신의 일생일대에 사명이라도 되는 것처럼 시키는 대로 신속하게 움직일 뿐이었다.
그리고, 마침내 둘만의 시간이 왔다.
먼저 입을 뗀 쪽은 장은수였다.
“너에 대해서는 알 만큼 알고 있으니 필요 없는 말은 하지 않겠다. 하나만 물어보자. 원하는 게 뭐야?”
“알 만큼 알고 있다라···”
나는 쓴웃음을 지었다.
“회장님. 너무 무례하신 것 아닙니까.”
“··· 무례?”
장은수가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보았다.
모 유명 스포츠 브랜드의 로고처럼 한쪽만 올라가 있는 그의 입꼬리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굳이 숨기지도 않으시는군요. 뒤를 캐고 다녔다는 거 말입니다.”
흥.
장은수는 코웃음을 쳤다.
“원하는 게 뭐냐고요? 설령 제가 원하는 것이 있다고 하더라도 회장님께 말씀드려야 할 이유가 있을까요? ··· 아!”
나는 무언가 갑자기 생각났다는 듯이 고개를 위아래로 끄덕였다.
그리곤, 불똥이 튀는 눈을 들어 장은수를 바라보았다.
“회장님이 꼭 해주셔야만 하는 게 하나 있네요. 저를 그냥 내버려 두세요. 제 주변 사람들도 마찬가지구요.”
“그냥 내버려 두라기에는 너무 눈에 띄게 유난을 떨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아? 시위라도 하는 건가? 아버지의 유산을 좀 떼어 달라고? 그래서 에메랄드 시티에 숟가락을 들이민 거야?”
의문형의 연속.
그의 질문에는 순전히 오해만이 가득했다.
하하하━
나는 목소리를 높여 웃었다.
“왜 웃는 거지?”
장은수가 차갑게 말했다.
“만약 장영복 회장님의 유산이 탐이 났다면 진작에 세상에다 대고 떠들어댔을 겁니다. 나도 그분의 자식이라고.”
이 말을 도대체 몇 번이나 해야 하는 건지.
“그래서 절 그렇게 견제하고 미워하시는 거라면 이젠 접어두셨으면 합니다. 저는 ‘장’ 씨에 정말로 아무런 욕심이 없습니다.”
장영복의 유산과 에메랄드 시티 프로젝트를 연관시키는 장은수의 비약을 나는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웃음이 나왔다.
“에메랄드 시티 프로젝트는 이 업계에 몸담은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도전해보고 싶을 겁니다. 그걸 마치 태상이 독점이라도 하고 있는 것처럼 말씀하시는군요.”
당신은 지금 나보다 몇 발 앞서 있을 뿐이야.
쉬지 않고 뛰는 게 좋을 거야.
그러지 않으면 내가 곧 따라잡을 테니까.
그에게 이렇게 말을 해주고 싶었다.
“제가 ‘장’ 씨를 포기한 만큼, 회장님께서도 절 기업인 대 기업인으로 대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난 널 안다고 말했다. 인간에게는 정해진 그릇과 자리가 있어. 네가 나에게 기업인 대 기업인이라는 말을 할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나?”
“말씀하시는 자격과 그릇은 모르겠고, 이미 저는 기업인입니다. 오늘 회장님과 동등한 자격으로 카타르의 왕자를 만난.”
“어떻게 운이 계속해서 따랐을 뿐이지. 그런데 언제까지 그 운이 이어질 수 있을까?”
“글쎄요.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 하십니까? 어디 세상에 운만으로 되는 일이 있던가요? 회장님이 저보다 더 잘 아시겠지요. 태상 정도의 커다란 기업을 이끄시는 분이라면 당연히 그 정도의 소양은 가지고 계시리라 믿습니다.”
그때였다.
장은수는 불에라도 덴 듯 몸을 움찔거렸다.
특별할 게 없는 말에 놀라는 장은수가 이상했다.
그는 입을 꾹 다물고 떨리는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마치 나를 보며 내가 아닌 다른 누군가를 찾기라도 하는 것처럼.
그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장은수는 지금 틀림없이 흔들리고 있었다.
어디 한번 퍼부어봐라, 나는 더 강해질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