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4. 영광 산업개발
“존경하고 사랑하는 주주 여러분, 정영목입니다.”
한 남자가 삼삼오오 모여있는 사람들 앞에 서서 인사를 올렸다.
사람들은 그를 향해 우레와 같은 박수를 보냈다.
이 남자의 이름은 지금 자신이 밝혔듯이 정영목.
‘영광 산업개발’이라는 회사의 대표였다.
영광 산업개발.
이 회사는 최근 코스닥에서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었다.
베어링 부품을 제작하던 작은 회사였던 영광 산업개발을 정영목이 인수한 것이 불과 1년 전이다.
놀랍게도 대표가 바뀐 1년 동안 영광 산업개발은 주가가 무려 3배나 상승하는 기염을 토했다.
이 놀라운 성공의 신화에는 도대체 무슨 비결이 있었던 걸까?
“제가 처음 영광 산업개발을 인수했었을 때 저에게 사기꾼이라고 손가락질을 했습니다. 그리고 벌써 일 년이 지났군요. 여러분 제가 사기꾼입니까?”
아니요━
청중들의 입에서 한목소리가 튀어나왔다.
정영목은 만족스럽다는 듯 입가의 미소를 띠고 고개를 몇 번 끄덕거렸다.
“그때 저보고 사기꾼이라고 했던 사람들. 요즘 뭐 하고 있습니까? 아마 우리 회사 주식을 사들이느라고 정신 못 차리고 있을걸요?”
하하하━
세상에서 제일 재미있는 유머를 듣기라도 했다는 듯 터져 나오는 웃음소리.
정영목은 그 웃음이 잦아질 때까지 잠시 주주들을 지긋이 바라보았다.
지극히 연극적인 태도로.
“예. 우리 회사. 주가가 300% 튀었습니다. 여기 계신 분들은 둘 중 하나일 겁니다. 이미 큰돈을 벌었거나, 아니면 앞으로 벌 예정이거나. 그런데 재미 좀 보신 분 중에 이런 생각 하시는 분도 분명히 있겠죠. 이제 슬슬 내려야 하나?”
그 순간 정영목 뒤의 대형 스크린에 불이 들어왔다.
“오늘은 그런 분들에게 믿음의 씨앗을 심어주고자 자리를 마련했습니다. 화면 보시죠. 주주 여러분, 그동안 제가 입이 참 근질거렸습니다. 이제는 시원하게 말해도 될 것 같습니다.”
정영목이 손가락을 놀리자 스크린에 사진 한 장이 올라왔다.
대관절 무슨 용도로 쓰이는 것인지 모를 아주 긴 파이프가 땅속을 파고 들어가 있는 사진이었다.
“이게 뭔지 아십니까?”
주주들은 눈만 뜬 채로 정영목을 끔뻑끔뻑 바라볼 뿐 아무도 질문에 대답하지 않았다.
정영목은 인내심의 가지고 누군가의 입이 열리길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용기를 낸 청중 하나가 정영목이 듣고 싶었던 답을 내뱉었다.
“대표님, 석유 시추 아닙니까?”
정영목은 검지 손가락을 들어 좌우로 흔들었다.
“아쉽습니다. 70점짜리 답이군요.”
입을 열었던 청중은 정영목의 말에 얼굴이 붉어진 채 머리를 긁적였다.
“여러분. 셰일 가스라고 들어보셨습니까?”
정영목의 말이 끝나자 여기저기서 아━ 하는 소리가 튀어나왔다.
“저 땅 밑으로 계속 내려가다 보면 모래와 진흙이 단단하게 굳어진 셰일층이라는 게 있는데, 거기에는 많은 양의 질소와 황화합물이··· 거기 주주님, 벌써 꾸벅꾸벅 주무시면 어떡합니까? 이제 시작인데.”
또다시 터지는 웃음.
정영목의 혀는 웬만한 만담꾼의 그것에 못지않았다.
“예. 쉽게 말해서 그 셰일층에 매장되어 있는 천연가스를 말하는 겁니다. 석유 같은 기존의 화석연료를 대체할 수 있는 미래 자원이라고 할 수 있지요.”
정영목은 프레젠테이션의 사진들을 넘기며 셰일 가스의 시추 과정과 그것이 가지고 있는 가치에 대해 능숙하게 설명했다.
주주들은 시나브로 정영목의 강의에 빠져들었다.
그들 중 몇몇은 정영목의 말 한마디, 한마디를 필기하는 열의까지 보이고 있었다.
“제가 주주 여러분께 말했었죠. 영광 산업개발은 대한민국에서 미래 에너지 분야에서 조만간 1등이 될 거라고. 이 사진을 좀 봐주시겠습니까.”
사진.
그 사진 속에서 정영목은 중년의 흑인 남성과 다정하게 포즈를 잡고 있었다.
“이 사람이 누구냐. 수단 공화국의 총리 오스만 다갈로입니다. 그럼 또 궁금하시겠지요. 왜 이역만리에 있는 수단 이야기를 하느냐?”
정영목의 눈이 가늘어졌다.
그는 모두가 깜짝 놀랄 만큼 목소리에 힘을 주었다.
“수단 공화국에는 셰일 가스가, 엄청나게 매장되어 있기 때문이죠. 대한민국 국민 전체가 200년은 족히 쓸 수 있는 양 말입니다!”
짝짝짝짝━
박수 소리에 건물이 무너지기라도 할 것 같았다.
정영목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주주들은 손이 터져라 박수를 쳐댔다.
“수단 공화국은 가난한 농업 국가입니다. 자기들 땅 밑에 잠자고 있는 셰일 가스를 캐낼 기술도, 자본도 없어요. 그야말로 먼저 먹는 놈이 임자인 노다지란 말입니다.”
정영목은 왼쪽 주먹을 하늘 위로 번쩍 들어 올렸다.
더 이상 이곳은 투자 설명회장이 아니었다.
정영목은 교주였고, 나머지는 광신도였다.
그때,
“대표님. 질문 하나만 하겠습니다.”
그나마 양식 있는 한 사람이 손을 들고 앉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런 찬물 끼얹는 이야기하는 거 죄송한데, 그럼 영광 산업개발은 셰일 가스를 시추할 자본이나 기술이 있다는 말입니까? 도깨비방망이도 아니고 그게 뚝딱 나오는 것도 아닐 텐데요.”
상식적인 사람이라면 당연히 가질 법한 의문점이었다.
“예. 이 자리에서까지 저를 의심하시는 분이 계시네요.”
정영목의 너스레에 질문한 남자를 제외한 나머지들의 입에서 웃음보가 터졌다.
졸지에 그 남자는 조롱거리가 되어버린 것이다.
“대기업도 아닌 우리가 무슨 자원을 채취하느냐··· 뭐, 맞습니다. 하지만 저 정영목이 한가지 확실히 말씀드릴 수 있는 건 비전이 있다면 반드시 길이 열린다는 겁니다. 이 화면을 봐주시겠습니까?”
모두의 눈이 정영목 뒤의 스크린으로 쏠렸다.
그리고 스크린에는 정영목이 번듯한 사무실에서 웬 서양 남자와 악수하는 사진과 함께 영어로 써진 계약서 1부가 드러났다.
“저와 같이 있는 사람은 미국의 에너지 기업인 볼란코 코퍼레이션의 CEO 마크 맥다니얼입니다. 맞습니다. 우리가 하지 못하면 할 수 있는 사람을 찾으면 됩니다. 그게 저 정영목의 정신입니다. 볼란코 코퍼레이션도 처음에는 한국의 작은 회사를 의심했습니다. 하지만 결국 우리의 비전에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우리는 그들과 함께 수단으로 갈 것입니다.”
환호성이 사방에서 터져 나왔다.
“스티브 잡스도 고작 창고 하나에서 애플을 시작했습니다. 그에 비하면 저 정영목은 얼마나 좋은 환경에서 일을 시작하는 것인지요. 저는 대한민국 1등? 그런 건 관심도 없습니다. 세계를 상대로 신화를 써보겠습니다. 주주 여러분, 혼자 가는 길은 외롭습니다. 하지만 같이 가면 즐겁습니다. 저 정영목과 계속 함께 해 주십쇼. 제가 딱 하나만 약속드리겠습니다. 여기 계신 주주님들. 5년 안에 경제적 자유를 누리게 해드리겠습니다.”
* * *
“백화점이라···”
앨런 오닐이 손가락으로 안경을 올리며 말했다.
“미스터 한이 꼭 백화점을 고집해야 하는 이유라도 있습니까?”
백화점 사업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고 묻자 앨런 오닐은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글쎄요. 아무래도 전통적으로 한국에서는 백화점 사업이 대형 건설업체의 부업으로 인식되온 경향이 있으니까요.”
“그게 미스터 한의 꿈이었다면 제가 어쩌겠습니까. 다만 cost effectiveness 차원에서 추천해 드리고 싶지는 않은데요.”
앨런은 연습장까지 가져와서 왜 백화점 사업 진출에 부정적인지 열심히 설명했다.
“첫째. 부지 문제입니다. 백화점이라면 당연히 서울을 비롯한 주요 도심의 최고 중심가에 자리를 잡아야 하는데 그 대지를 팔겠다는 사람도 찾기 어려울뿐더러, 설령 어떻게 구한다고 해도 엄청난 출혈을 감수해야 할 겁니다. 또 이미 한국에서는 대기업 위주로 백화점 업체들끼리 경쟁이 치열합니다. 신규 브랜드가 비집고 들어가기가 쉽지 않을 거예요.”
“새로 사업을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인수하는 방향이라면요.”
“그건라면 나쁠리가 있겠습니까. 백화점이라는 것이 결국 입점 업체로부터 수수료를 받는 사업인데··· 한국 내 주요 백화점들의 매출이 매년 큰 폭의 상승세를 유지하더군요. 기존 사업을 인수한다면 분명히 재미는 있을 겁니다. 다만···”
앨런은 잠시 헛기침을 했다.
“황금알을 낳는 거위를 누가 그렇게 쉽게 넘기겠습니까. 고왕 건설 때와는 상황이 아주 달라요.”
“··· 그래요. 알겠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백화점은 왜···? 지금은 에메랄드 시티에 집중하는 것 아니었습니까?”
“아··· 그냥 여러 가지로 구상 중이에요.”
앨런은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나에게 더 묻지 않았다.
그때, 내 눈에 테이블 위에 올려져 있는 태블릿이 눈에 들어왔다.
그 태블릿 화면에는 의미를 알 수 없는 선들이 잔뜩 그어진 주식 차트가 올라와 있었다.
“이건 또 무슨 종목입니까? 잠깐 봐도 될까요?”
놀랍게도 차트에는 빨간색 양봉이 무수히 그려져 있었다.
“··· 영광 산업개발?”
“아, 그거···”
앨런은 피식 코웃음을 쳤다.
“요즘 코스피 시장에서 재밌는 종목입니다.”
“일주일 동안 거의 40%가 올랐네요. 뭐하는 회삽니까?”
“그게··· 모르겠습니다. 뭐 하는 회사인지.”
앨런은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시작은 1년 전에 대표가 바뀌면서인데··· 그전까지는 그저 작은 부품이나 생산하는 약소 회사였습니다. 지금은 그때와 비교하면 주가가 3배가 올랐고요. 동기간 동안 매출도 제법 상승했는데 이 회사가 도무지 뭘 팔았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재무제표 조작까지 의심이 됩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이 계속 타고 있는단 말이에요?”
“이 회사의 대표가 자꾸 말도 안 되는 펀더멘탈을 만들어내고 있어요. 사람들을 현혹시킬만한. 잠깐 태블릿 좀 주시겠습니까?”
앨런은 나에게서 태블릿을 건네받아, 기사 하나를 보여주었다.
- K 에너지 대표를 꿈꾼다. 영광 산업개발 최근 미국 볼란코 코퍼레이션과 MOU 체결 성공.
기사 속에는 멀끔하게 생긴 남자가 무언가 호소하듯 두 손을 뻗고 있는 사진이 박혀있었다.
“정영목이라고, 이 자가 영광 산업개발의 대표입니다. 최근에는 수단 공화국에서 미국 기업과 협력해 셰일 가스 채굴에 나선다는 언론 보도를 뿌렸더군요.”
“셰일 가스 채굴요? 그게 무슨 판타지 같은 이야기입니까.”
“뭐 말이야 마음대로 떠들 수 있는 거니까요. 그런데 더 웃긴 게 뭔지 아십니까? 저 볼란코 코퍼레이션이라는 회사. 미국 텍사스에 본사가 있다는데 그 주소지가 공업용 지대로 사용할 수가 없는 땅이에요.”
몇 마디 말만 들어도 냄새가 난다.
사짜의 냄새가.
조만간 정영목이라는 자는 지분을 모두 팔아치우고 어디론가 숨어버리겠지.
휴지 조각이 되어버린 주식을 쥐게 될 주주들의 눈에서는 피눈물이 흐를 것이고.
뻔하게 보이는 결말이다.
절로 한숨이 나왔다.
“조금만 알아보면 이게 얼마나 말도 안 되는 이야기인 줄 알 텐데 왜 이런 거에 당하는 걸까요.”
“미스터 한, 그들이 바보 같아요? 사람들이 왜 주식투자에 실패하는지 아십니까?”
“글쎄요··· 자기 돈이 아닌 남의 돈을 빌려다가 한다거나···”
“예. 그것도 틀리지는 않죠. 그런데 그것보다도요, 주식투자의 원칙은 정말 간단합니다. 쌀 때 사서 비쌀 때 판다. 매수도 매도도 참을성을 가지면 되는 일입니다. 그런데 그게 절대 안 되죠.”
“욕망···”
“맞습니다. 이건 지능의 문제가 아니에요. 아무리 머리가 좋은 사람도 자기 욕망을 통제하지 못하면 이 게임에서는 이길 수가 없어요.”
앨런은 허탈하게 웃으며 말했다.
“영광 산업개발 관련해서 재밌는 사실이 하나 더 있습니다.”
정실 전자 인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