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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0억을 상속받았다-81화 (81/200)

81. 나는 다시 일어나 (1)

“카타르 해양도시 건설 건과 관련해서 추가 정보가 있습니까.”

“아직입니다. 회장님. 예상컨대 내년 상반기에 있을 국제 미래 포럼에 카타르의 왕세자를 비롯해 사니쉬 가문의 고위층들이 대거 참석하는데, 아마 그 자리에서 프로젝트 임시 안을 발표하지 않을까 예상합니다.”

여기는 태상건설의 임원 회의실.

장은수 회장을 비롯해, 전략기획부장과 해외영업본부장을 비롯한 태상건설의 중역들이 모두 한자리에 모여있었다.

그리고 회의실 한편에는 장은수 회장의 수족과 다름없는 황 실장도 역시나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기업에서 회의라는 건 새삼스러울 것도 없는 일상다반사.

하지만 오늘 회의는 모처럼 장은수가 직접 소집했다는 점에서 사뭇 분위기가 달랐다.

회의에 소집된 임원들은 하나같이 긴장의 끈을 놓지 않고 있었다.

그들은 무자비하게 칼을 휘두르는 장은수 앞에 몸을 납작 엎드리고 있었다.

지우는 것이 불가능할 것 같았던 장영복 회장의 영향력을 장은수는 불도저처럼 치워버리고 있었다.

태상 건설 그룹 내에 남아 있던 장영복 회장의 충복들은 이미 갈려 나간 지 오래였다.

어디 임원들 뿐이겠는가.

태상 그룹 내 계열사 사장들도 장은수와 척을 지면 자리보전을 하지 못했다.

저번 사장단 회의에서 장은수 회장에게 공개적으로 적의를 드러내었던 태상 중공업의 김준형.

그 역시도 장은수가 내리는 단죄의 칼을 피하지 못했다.

갑작스럽게 검찰 쪽에서 태상 중공업을 치고 들어왔다.

검찰이 쥐고 있는 카드는 그들이 쉽게 알 수 없는 아주 내밀한 정보였다.

태상 그룹과 조금이라도 관련이 있는 사람들은 드러내 말하지 못했을 뿐, 그 정보가 어디서 검찰로 흘러 들어갔을지 능히 짐작하고 있었다.

안팎으로 김준형 사장을 흔들어대자, 결국 그는 압박을 이기지 못하고 사표를 제출했다.

차도살인.

제 손은 직접 더럽히지 않고 정적을 제거하면서, 그 배후에 자신이 있음을 은연중에 흘리는 것.

그것이 장은수의 방식이었다.

이쯤 되니 태상의 아래에서 밥을 벌어먹는 사람들은 차라리 한시라도 빨리 장은수가 총수에 오르기를 바라게 되었다.

그래야 이 불안정한 시국이 겨우 종지부를 찍을 수 있을테니.

여하튼 이런 살얼음판 같은 분위기 속에서 장은수 회장에 의해 소집된 태상 건설의 임원들.

그들은 머릿속으로 제각기 다른 생각을 하며 불안한 눈으로 장은수의 입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장은수 회장은 대화의 첫 마디를 ‘카타르’로 떼었다.

‘카타르 에메랄드 시티.’

세계적으로 유명한 부국(富國)인 카타르는 2035년을 시작으로 바다 위에 미래도시를 건축할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거기에 들어갈 재원만 무려 1조 달러 이상, 한화로 무려 1,500조에 가까운 돈이었다.

장은수 회장은 냉혹하고, 탐욕스러운 자일지언정 결코 아둔한 사람은 아니었다.

그 역시도 장영복 회장의 자식 중 한 명.

그 핏줄이 어디 갈 리 없었다.

예전에 한영수는 고왕 건설 윤일중 회장에게 국내 건설업계의 위기에 대해 경고를 했었다.

한영수가 아는 것을 장은수 회장이 모를 리가 없었다.

그리고 그에겐 나름의 타개책까지 준비되어 있었다.

장은수는 시선을 해외로 돌렸다.

‘더 건물을 세울 곳도 없는 좁은 땅덩어리 안에서 싸울 것이 아니라 세계 무대로 나가자.’

그런 그의 눈에 들어온 것이 ‘에메랄드 시티’였다.

태상 건설에는 장영복 회장 시절부터 쌓아온 끈끈한 중동 커넥션이 있었다.

그래서 남들보다 훨씬 빠르게 귀중한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장은수는 에메랄드 시티 수주 계약 도장을 찍는 날이 바로 자신의 대관식이 될 거라고 생각했다.

그 정도 업적을 쌓는다면 누구도 감히 자신이 태상의 주인이 되는 것에 이의를 달지 못하리라.

“우선 하루라도 빨리 사니쉬 가문의 주요 인사들과 자리를 만들어 놓으세요. 이건 되고, 안되고의 문제가 아닙니다. 어떻게든 해야 합니다. 남들보다 빨리 그들과 라포를 형성해야 하니.”

장은수의 입에서 카타르의 왕족과 인연을 만들라는 명이 내려짐과 함께 장기간의 회의가 끝났다.

임원들이 한 명씩 장은수에게 인사를 하고 차례로 회의실에서 퇴장했다.

마지막까지 남은 것은 장은수 회장과 황 실장이었다.

“왜, 황 실장. 보고할 거라도 있어?”

“예. 회장님이 아셔야 할 일이 생겼습니다.”

장은수는 미간을 잔뜩 찌푸렸다.

대부분 이런 식으로 시작되는 말들은 성가심을 동반하기 마련이다.

“뭔데?”

“선재 장학회라고 알고 계십니까?”

“선재 장학회···?”

무언가 희미하게 떠오르는 것이 있는 장은수.

그는 자신의 습관대로 손가락으로 책상을 톡━ 톡━ 느리게 두들겼다.

‘가만, 그래. 그 노인네. 명동 차 여사.’

유쾌하지 않은 기억이었다.

“그래. 알고 있어. 그 장학회가 태상 건설의 지분을 좀 가지고 있다지?”

장은수는 말을 아꼈다.

굳이 황 실장에게 차 여사가 누구인지 말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회장님. 정확히 말씀드리자면 5.6%입니다. 조금이라고 가볍게 말할 정도는 아닌 것 같습니다.”

장영복 회장이 자기 소유의 주식 일부를 차 여사가 운영하는 선재 장학회에 기부했다는 사실은 이미 장은수도 알고 있었다.

입이 미치도록 썼지만, 아버지가 생전에 하신 일이니, 거기에 그는 감히 토를 달 수가 없었다.

“최근 일입니다. 선재 장학회의 이사장이 사망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뜻밖의 인물이 이사장 자리를 이어받았습니다.”

“그래?”

‘늙은이, 얼마 살지도 못하고 갈 것을···’

장은수는 차라리 잘된 일이라고 생각했다.

아니, 희소식에 가깝다.

차 여사, 그러니까 복희 할머니가 자기 손을 잡아줄 가능성이 없다는 건 이미 장은수가 직접 확인한 터였다.

“그래. 새로 이사장이 되었다는 사람을 황 실장이 만나봐. 잘 구슬리라고··· 적당한 가격에 가지고 있는 지분을 우리 쪽으로 넘기라고 하던지, 그도 아니면 최소한 우리의 우호 지분으로 만들어 놓자고.”

“그게···”

“왜? 황 실장이 그런 일은 전문가잖아. 내가 방법까지 알려줘야 해?”

“··· 한영수입니다. 선재 장학회의 새로운 이사장 말입니다.”

“뭐?”

한영수.

자신에게 있어 작은 변수에 불과했던 한영수라는 이름에 신경을 썼던 것도 잠시.

장은수는 이미 그 이름을 진작에 잊은 터였다.

한영수, 차 여사, 그리고 선재 장학회.

장은수는 이것들의 연결고리를 쉽게 찾아내지 못했다.

그는 잠시 벙찐 얼굴로 황 실장을 쳐다보았다.

“그 사생아 새끼가 왜···”

“죄송합니다. 백방으로 확인해보았지만 전 이사장과 무슨 관계인지 확인할 수 없었습니다. 장학회의 이사진들도 전혀 모르는 인물이라고 하더군요.”

장은수의 머리가 빠르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한 사람의 이름이 번뜩 그의 뇌리에 잡혔다.

‘고윤아!’

장은수는 가슴에 활활 불이 일어나는 느낌이었다.

‘네까짓 게 감히.’

장은호와 한영수의 만남에 대해 전혀 모르고 있는 그였기에, 완전히 헛다리를 짚은 셈이었다.

하지만 고윤아를 떠올린 나름의 합당한 이유는 있었다.

장영복 회장은 고윤아와 가까운 사이였고, 그녀에게 명동 큰 손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줬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고윤아가 그 한영수라는 놈에게 차 여사와 다리를 놓아주었다면···

“회장님. 이렇게 된 거, 그 한영수라는 사람을 저희 쪽으로 포섭하면 어떻겠습니까? 제가 한 번 접촉해 볼까요?”

“황 실장.”

“예. 회장님.”

“판단과 지시는 내 몫이야. 황 실장이 주제넘게 떠들 문제가 아닌 것 같은데.”

“··· 죄송합니다. 회장님.”

장은수의 성격을 아는 황 실장은 바로 꼬리를 내렸다.

‘그렇단 말이지···’

일개 변호사 주제에 아버지 옆에 붙어 자신을 냉소적으로 대하던 고윤아.

몹쓸 놈 취급하며 자신을 문전 박대하던 차 여사.

두 사람의 얼굴이 장은수의 머릿속을 차례로 스쳐 지나갔다.

‘그런데 그것들이 그 사생아 새끼는 밀어줬다고?’

장은호가 일전에 말했듯이 장은수는 내면에 콤플렉스를 안고 있는 인물이었다.

그 콤플렉스에서 발현된 삐뚤어진 자존심은 지금 한영수의 이름 위에 붉은색 X 표시를 그었다.

‘팔다리를 잘라버리자. 그래봐야 학벌이며 직업이며, 뭐 하나 근본도 없는 놈이야. 고윤아가 떨어져 나가면 저 혼자서는 아무것도 못 할 테지.’

“황 실장.”

“예. 회장님.”

“광월에 연락해. 고윤아의 로펌 말이야. 고윤아를 거기서 내쫓아 버리도록 손을 좀 써. 대신 내가 시니어 변호사 몇을 고용하겠다고.”

“예. 알겠습니다.”

“그리고 태상 변호사단도 활용하자고. 고윤아가 다른 로펌에도 발붙이지 못하도록 말이야.”

“조치하겠습니다.”

이미 한번 장은수의 심기를 어지럽혔던 황 실장은 두 번 실수하지 않았다.

그는 그깟 일쯤 아무것도 아니라는 투로 시원스럽게 장은수에게 대답했다.

*

복희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어느새 2주가 지났다.

유태성 변호사는 빠르게 상속 문제를 매조지었다.

세금 문제가 해결되고 4조에 조금 못 미치는 재산이 나에게 상속되었다.

나에게 떨어지리라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큰 금액이었다.

어떻게 증여세를 처리했는지 나는 구태여 유 변호사에게 묻지 않았다.

언젠가 포브스에서 선정한 대한민국의 부자 순위를 본 적이 있었다.

장영복 회장이 압도적인 1등이었으며, 10등 안으로는 나의 배다른 형제들이 한 자리씩 차지를 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제 나는 그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정도의 개인 자산을 가지게 된 것이었다.

불과 반년 만에 벌어진 일이다.

월 250벌이를 하며 작은 회사의 노예처럼 살아가던 한영수가 이렇게 된 것이.

하지만 어쩐 일인지 나는 인생에서 단 한 번도 경험해본 적 없는 무기력증에 빠져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었다.

꼭 필요한 일이 아니면 밖에 나가지 않았다.

사람들의 연락도 피했다.

그 좋아하던 운동조차 나가지 않고 있었다.

- 대표님, 이번 달 정산 금액 보냈습니다! 그런데 요즘 많이 바쁘세요? 운동하러 안 나오세요?

최예리의 메시지.

나는 그저 별일 없다고만 그녀에게 짧게 답장을 보냈다.

- 새끼야. 얼굴 보기 힘들다. 다음 주에 복지원 동생들 불러서 밥 한 번 더 먹이기로 했어. 너도 시간이 있으면 와라.

이건 이승우의 연락.

이 역시도 알겠다고 건조하게 답을 했다.

고윤아에게서도 몇 번이고 전화가 왔었지만 받지 않았다.

영민한 고윤아라면 목소리만 듣고도 내 상태를 알아챌 것 같았다.

그녀를 걱정시키고 싶지 않았고, 지금 이런 내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도 않았다.

이제는 일어나야 하는데, 할머니도 내가 이러고 있는 걸 원하지 않으실 텐데···

아무리 마음을 다잡아봐도 몸은 내 마음을 영 따라와 주지 못했다.

번아웃.

지금의 내 상태를 표현할 수 있는 적절한 단어였다.

그렇게 침대에 누워 멍하니 천장을 바라보고 있을 때였다.

이미 해가 서쪽으로 지고 불도 켜지 않은 방안에 어둠이 맹위를 떨치던 시점이었다.

딩동━

누군가 현관 밖에서 인터폰 차임벨을 눌렀다.

누굴까.

이승우?

내 답장에 걱정이 되어서 찾아온 것일까?

아니다. 이승우는 지금 한창 저녁 장사를 하고 있을 시기다.

걱정만으로 날 찾아오기엔 적절한 시간이 아니다.

폐인처럼 누워있는 와중에도 내 머리는 논리적인 사고를 멈추지 않고 있었다.

할 수만 있다면 스위치를 내려 모든 생각들을 멈추고 싶었다.

딩동━ 딩동━

문밖의 방문자는 포기를 몰랐다.

내가 시체처럼 아무런 인기척도 내고 있지 않음에도 계속해서 초인종을 울려대었다.

“··· 그냥 가라.”

나는 입술을 뻐끔거리며 혼잣말을 뱉었다.

하지만 나의 소망과는 달리 방문자는 자신의 존재를 집 안에 알리려는 노력을 포기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더욱 거세게 행동했다.

쾅━ 쾅━

이제는 아예 문을 주먹으로 두드리기 시작했다.

“...”

나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침대에서 몸을 벌떡 일으켰다.

나는 다시 일어나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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