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8. 할머니, 나의 할머니 (1)
돌아가는 차 안에서 나와 앨런은 한동안 서로 말이 없었다.
서울로 들어가는 외곽도로는 늦은 퇴근 시간과 겹쳐 차들로 붐볐다.
액셀보다는 브레이크를 더 자주 밟으며 굼벵이 걸음을 할 수밖에 없었다.
수많은 차, 그리고 그 차 안에 타고 있을 사람들.
그들 한 명, 한 명에게는 제각기 인생의 중요한 분기점이 되었을 사건이 하나쯤은 있을 것이다.
모두가 그런 것을 품고 산다.
그리고 앨런에게는 오늘이 바로 그런 사건이 일어난 날이 아닐까.
베일에 가려져 있던 비극적인 서사를 옆에서 지켜본 관객으로서 나 역시 마음의 울림이 없을 수 없었다.
여자는 약하지만, 어머니는 강하다고 하던가.
죽음에 대한 두려움조차도 이겨내는 그 모성이라는 것에 깊은 감명을 받은 터였다.
앨런을 내 사람으로 만들겠다는 욕심을 가지고 시작한 일.
하지만 거대한 슬픔 앞에서 그런 마음을 먹은 것 자체가 불순한 것처럼 느껴졌다.
“저는 지금껏 자신을 피해자라고만 여겼습니다. 버림받았다고 생각했고요.”
먼저 입을 연 것은 앨런이었다.
눈물과 함께 많은 것을 쏟아낸 그는 방금 결승선을 통과한 마라토너처럼 지쳐있었다.
수많은 기업을 냉철하게 분석하고, 해체해왔을 남자.
하지만 지금 그는 무력하기만 했던 다섯 살 그때와 다를 것이 없었다.
그에게 말하고 싶었다.
나도 당신과 똑같았다고.
보육원 언덕에 서서 부모를 하염없이 기다리던 그 아이가 바로 나였다고.
하지만 나는 목 끝까지 차오른 말을 깊게 봉인했다.
이미 진실이라는 무거운 짐을 지게 된 앨런이다.
그에게 공감이라는 핑계로 나의 이야기를 덧대고 싶지 않았다.
짐이 더 무거워지기만 할 테니.
“지금까지의 내 인생은 뭐였죠? 아무것도 모른 채로 미워하고, 원망하고··· 난 괴물입니다. 추악한 몬스터.”
아직도 흘릴 눈물이 남았는지 그의 눈가는 붉게 물들어 있었다.
“앨런. 운다고 달라질 것이 없다면 이겨내야지요.”
고개를 떨구고 있는 앨런을 나지막하게 불렀다.
“어머니께서 주신 목숨이잖아요. 지난 일을 자책하고 앞을 두려워하며 보내기에는 너무나 귀한 것 아니겠습니까.”
앨런은 손바닥으로 자기 얼굴을 쓸어내렸다.
“누구보다도 한국을 싫어했으면서도 한국어를 혼자서 열심히 배웠습니다. 어머니를 만나면 당당하게 말할 생각이었습니다. 나에게 왜 그랬냐고.”
“...”
“그리고 어떤 대답을 듣건 간에 내 할 말을 말할 생각이었습니다. 당신을 용서하겠다고. 하지만··· 정작 용서를 빌어야 할 사람은 저였군요.”
“앨런 씨, 당신은 용서를 빌 필요가 없습니다.”
“예?”
앨런이 고개를 들었다.
“이제는 모든 걸 기억하시잖아요. 살아달라는 어머니의 마지막 말, 앨런 씨는 해내지 않았습니까. 앞으로도 계속 걸으면 됩니다. 언젠가 모든 것이 끝나고 어머니를 만나게 되면 분명히 앨런 씨를 따듯하게 안아주실 겁니다.”
당신을 살리기 위해 품에 꼭 안았던 그 날처럼···
때마침 차량의 정체가 풀려 길이 뚫리기 시작했다.
“미스터 한. 내가 미스터 한에게 큰 빚을 졌습니다. 어떻게 보답을 해야 할까요.”
앨런의 결연한 말투로 내게 말했다.
큰 빚이라···
그래, 자기 인생에서 가장 인상 깊었을 순간을 함께했으니 그는 나 역시도 잊지 못할 것이다.
“Scratch my back and I will scratch yours. 받은 것은 꼭 돌려줘야 한다는 미국 속담입니다. 미스터 한이 어려운 상황에 있을 때, 제가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뭐든 돕겠습니다.”
이렇게 또 인연이 하나 이어졌구나.
단언하건대 이 인연은 물질적인 계약으로 맺어진 관계보다 훨씬 질기고 오래가리라.
무언가 내 안에 퍼즐이 하나씩 모여져 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과연 이 퍼즐들이 모두 맞춰졌을 때 완성되었을 그림은 어떤 것일까?
“언젠가 때가 되면 저랑 같이 일 하나만 합시다.”
“언젠가?”
“물론 그날이 올지 오지 않을지는 아직 저도 모르지만요.”
*
앨런이 묵고 있는 강남의 호텔 로비에 그를 내려주고 차를 돌렸다.
피곤함이 몰려왔다.
제법 많은 거리를 운전하고 돌아다녔다.
큰일이 끝나고 나니 야밤에 기습을 감행하는 적군처럼 피로감이 몰려들었다.
기계적으로 액셀을 밟고 핸들을 돌렸다.
이거 좀 위험한데 싶을 만큼 졸음이 쏟아지기도 했던 것도 같다.
그리고 그때, 예고 없이 비보가 들이닥쳤다.
한 통의 전화였다.
“예. 전화 받았습니다.”
“한영수 씨 맞으시죠?”
모르는 번호였다.
중력이 지구의 몇 배나 되는 곳에서 오기라도 한 것처럼 낮게 깔린 목소리.
그 낮은 목소리는 내 이름을 불렀다.
“예. 제가 한영수가 맞는데 어디시죠?”
“저는 어르신, 그러니까 차 여사님의 변호사 되는 사람입니다.”
아━
복희 할머니의 병실을 지키며 몇 번 본적이 있는 사람이었다.
이름이 유태성이라고 했던가.
몇 번 서로 고개를 숙여 인사하고 사회적으로 으레 하는 대화 몇 마디쯤은 나눴었다.
그런데 이 사람의 목소리가 이리도 음울했던가?
기억력만은 제법이라고 뻐기고 다니는 나지만, 내가 알고 있는 유태성 변호사의 목소리와 지금 그의 그것은 전혀 매치가 되지 않는다.
심장이 덜컹 내려앉았다.
그리고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앨런의 이야기로 시작된 비극이 전염병처럼 번져 이제 나를 향해 살을 겨눌 것만 같은.
“··· 할머니, 무슨 일이 있는 겁니까.”
“...”
유 변호사는 말을 아꼈다.
그 침묵 속에 숨겨져 있을 떠올리기 싫은 하나의 가정이 무겁게 나를 짓눌렀다.
숨이 턱턱 막힌 나는 입고 있던 셔츠의 단추를 가슴이 갈라지는 선까지 풀어헤쳤다.
“변호사님.”
나의 재촉에 유태성 변호사는 속삭이듯 작게 읊조렸다.
마치 누군가 들으면 큰일이라도 난다는 것처럼.
“어르신이 많이 안 좋으십니다. ··· 의식이 매우 불안하십니다. 한영수 씨가 지금 와주셔야 할 것 같습니다.”
거리에는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바닥으로 떨어진 하얀 눈은 자동차 타이어들의 행렬에 짓이겨져 금세 거무튀튀한 몹쓸 색으로 변해버렸다.
“··· 바로 가겠습니다.”
*
- 국내 최고 의료진. 국제 의료기관 평가위원회 인증
12층짜리 병원 건물 옥상에서 세로로 길게 늘어진 현수막이 눈에 들어왔다.
성글게 내리던 눈은 병원으로 도착하자 대설로 바뀌었다.
주차장에서 병원 입구까지 달음박질을 쳤음에도 내 머리와 어깨 위에는 눈이 하얗게 내려앉았다.
그 차가운 것이 살갗에 닿는 느낌이 오늘따라 유난히 거슬려 소름이 돋았다.
복희 할머니.
내 인생의 전환점에 만난 멘토.
우연이 내게 안겨준 최고의 행운.
현수막이 자랑하는 국내 최고의 의료진이 할머니의 여생을 좀 더 붙잡아주길 간절히 바라며 병원의 회전문 안으로 몸을 집어넣었다.
띠━ 띠━ 띠━
할머니의 병실을 들어서자 ECG 모니터에서 흘러나오는 비프음이 귀를 불편하게 만들었다.
의학지식이 없는 내가 들어도 불규칙하고, 아주 느린 신호음이었다.
할머니의 침대 주변에는 사람들이 모여있었다.
담당의가 한 명, 간호사가 셋. 그리고 유태성 변호사.
복희 할머니는 잠을 자는 것처럼 눈을 감고 있었다.
할머니의 손등에 꽂힌 바늘에서부터 길게 이어진 링거에서는 알 수 없는 약물이 계속 똑똑 떨어지고 있었다.
복희 할머니가 병원에 입원한 이후로 늘 보던 모습이다.
그런데도 눈물이 왈칵 쏟아질 것 같았다.
나는 정적만이 흐르는 이 병실에서 주책없는 모습을 보이지 않기 위해 입술을 꾹 깨물었다.
“오셨습니까.”
유태성 변호사의 목소리는 성대를 거치지 않고 입안에서 만들어져 입 밖으로 나오는 것만 같았다.
그는 내게 대뜸 손수건을 내밀었다.
손수건을 받아든 내가 멍하게 가만히 서 있자, 유 변호사는 내 얼굴 쪽으로 손가락을 들었다.
“영수 씨. 얼굴.”
손수건으로 얼굴이 훑자 물이 흥건하게 묻어나왔다.
이건 머리 위에 눈이 녹은 것일까, 아니면 내가 흘린 식은땀일까.
“할머니는···”
유 변호사가 고개를 저었다.
“오늘을 넘기기 힘들 것 같답니다.”
아아···
바닥과 천장이 뒤집히는 것 같은 기이한 감각.
균형감각을 잃고 당장이라도 털썩 주저앉을 것만 같았다.
“불과 며칠 전만 해도 저와 멀쩡히 대화도 하셨어요.”
“병세가 워낙에 위중하셨으니까요.”
유 변호사는 자기가 큰 죄라도 지은 것처럼 고개를 툭 떨궜다.
할머니 말로는 오랜 세월 동안 그와 합을 맞춰왔다고 했다.
그 긴 세월만큼 유태성 변호사에게도 할머니는 특별한 사람일 것이다.
“조금 전까지 고통에 시름겨워하시면서도 영수 씨를 찾으셨습니다. 진통제를 맞으시곤 의식이 까무룩 멀어지셨구요.”
나는 부들부들 떨리는 다리를 주먹으로 때려가서 비적비적 할머니가 누워있는 침상 쪽으로 걸어갔다.
의사와 간호사들은 나를 위해 길을 열어주었다.
“할머니···”
침상 앞에 무릎을 꿇고 주저앉은 나는 할머니의 앙상한 손을 부여잡았다.
아직 할머니의 손은 여느 때처럼 따듯했다.
그 손을 잡은 채로 하늘에 기도했다.
하느님 아버지, 아직 할머니를 데려가지 마세요.
신에 대한 믿음을 버린 어린 시절 이후 정말 오랜만에 진심을 담아 빌었다.
세상에 기적이 있다면 이 순간 할머니에게 깃들기를 바랐다.
“영수야···”
그때 아주 가늘고 힘없는 목소리가 내 귀에 들려왔다.
“할머니, 정신이 좀 드세요.”
“우리 개호주···”
내 얼굴이라도 쓰다듬어보려는 듯 할머니의 팔이 조금 위로 움직이다 힘없이 침상 위로 툭 떨어졌다.
“예. 호랑이 새끼 여기 있어요. 할머니 말씀하세요.”
“아무래도··· 할미는 여기까지인 거 같아···”
할머니의 목소리는 안으로 말려 들어갔기에, 나는 당신의 말을 한마디도 놓치지 않으려 달싹이며 움직이는 복희 할머니의 입술에 온 신경을 집중했다.
“아니에요. 할머니. 그런 소리 하지 마요. 내가 올라오면서 봤는데, 여기가 국내 최고의 의료진들이 있는 곳이래요. 일어나셔야죠. 병원에서 나가면 마지막으로 고향 땅이 보이는 곳에 가시고 싶다고 했잖아요. 제가 모시고 갈게요. 같이 가요.”
내 말을 듣곤 할머니는 희미하게, 정말 아주 희미하게 얼굴에 미소를 띠셨다.
“개호주야··· 이리 가까이 와보렴.”
나는 얼른 이마가 닿을 듯이 할머니에게 가까이 다가섰다.
“할미가··· 영복이가 못 준 걸 너한테 주고 갈게···”
“할머니, 왜 그런 말씀 하시는 거예요. 저 돈 많아요. 다 필요 없어요.”
울컥━
마지막 유언이라는 직감이 들었다.
참았던 눈물이 여름날의 소나기처럼 투둑투둑 떨어졌다.
“나는 알아··· 너는 영복이보다 훨씬 더 큰 사람이 될 거야··· 암··· 그렇고말고. 안심하고 내가 이룬 것을 맡기고··· 갈 테니까.”
삐━ 삐━
ECG가 날카롭고 위협적인 비명을 질러대었다.
“개호주 너는··· 영수 너는··· 앞으로 하고 싶은 것··· 원 없이 하는 거야. 알겠지?”
안된다고, 그런 소리 제발 그만하고 소리를 지르고 싶었다.
하지만 하고 싶은 말은 더 이상 언어가 아니라 꺽꺽대는 울부짖음에 불과했다.
운다고 달라질 것이 없으면 이겨내라고?
이런 내 주제에 무슨 앨런에게 조금 전까지 세상에 대해 잘 아는 척 조언을 떠들었단 말인가.
삐이이이━ 삐이이이━
비프음이 아까와는 다른 소리를 내었다.
“안돼.”
할머니, 나의 할머니는 영원한 안식의 세계로 떠나셨다.
침상 옆을 지키고 있던 담당의는 나를 밀쳐내고 할머니의 가슴을 압박하며 심폐소생술을 시작했다.
힘없이 밀려난 나는 그 광경을 넋이 나간 채로 지켜보았다.
아아···
목숨이라는 것이 이렇게 허망한 것이었단 말인가.
“··· 일 21시 46분. 차복희 환자께서 운명하셨습니다.”
할머니의 소생을 위해 최선을 다한 의사는 땀으로 흘러내린 안경을 코끝에 걸친 채 고개를 좌우로 저으며 말했다.
할머니, 나의 할머니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