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9. 인간 개조 (2)
“구동일, 그만 자고 일어나.”
“어··· 누구야···”
구동일이 잠결에 비몽사몽하고 있자 한영수는 창문을 열어젖혔다.
겨울의 찬 공기가 살갗에 닿자 구동일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
‘아 맞다··· 나 지금 그 사채업자의 집이지.’
누웠던 자리에서 일어난 구동일은 벌떡 일어났다.
그는 팔짱을 낀 채로 노려보는 한영수의 눈을 슬쩍 피하며 휴대전화를 집어 들었다.
오전 다섯 시.
혹시나 했지만 역시나 구 회장에게서는 전화는 물론이요, 문자 한 통조차 없었다.
자신의 신세가 다시 한번 실감이 나는 구동일이었다.
그는 새벽 내내 잠을 설치다 끽해야 두세 시간 정도 눈을 붙였던 참이다.
머리는 복잡했고, 마음은 괴로웠으며, 잠자리는 불편했다.
“나와, 밥 먹어.”
구동일은 한영수를 따라 좀비처럼 비틀대며 식탁에 앉았다.
“윽.”
식탁 위에 차려진 메뉴를 본 구동일은 입을 틀어막았다.
현미밥, 브로콜리, 그리고 삶은 닭가슴살.
일단 식탁 의자를 끌어 자리에 앉았으나 뭐 하나 젓가락이 가지 않는다.
“뭐해? 난 항상 아침 이렇게 먹어. 빨리 먹어. 시간 없어.”
“...”
구동일은 한영수의 눈치를 보며 억지로 닭가슴살을 입에 넣어보았다.
‘이거 뭐 지우개를 씹는 것 같네.’
결국 그는 깨작깨작 밥만 몇 술 뜨다가 숟가락을 내려놓고 애먼 냉수만 벌컥벌컥 들이켰다.
“야.”
“··· 예?”
“정신 못 차리네. 기껏 차려준 사람 성의는 생각 안 하지?”
한영수는 구동일을 씹어먹을 것 같은 표정으로 과장되게 숟가락을 식탁에 탁 내려쳤다.
“아··· 아니요. 그런 게 아니라 원래 아침을 안 먹어서요.”
“너 발 사이즈는 몇이야?”
“··· 260이요.”
“잘됐네. 안전화 예전에 쓰던 거 있는데 사이즈 딱 맞겠다.”
‘역시 노가다였어?’
구동일은 어제 네 시간 동안 교육을 들은 결과물로 기초안전보건교육 이수증이라는 걸 받아왔다.
이수증 속 구동일의 얼굴은 세상 어색하고 불편해 보였다.
아무리 세상 물정 모르는 그라도 그게 어디에 쓰이는지는 알고 있었다.
“저기, 일자리 소개해준다는 게 노가다예요?”
“왜. 너 쓸모있는 거 몸뚱이밖에 없잖아. 그걸로 때워야지. 너 곰방이라고 들어봤어?”
“공방이요? 그거 물건 같은 거 만드는 곳이잖아요.”
“공방말고 곰방.”
‘곰방? 동물원 사육소 같은 걸 말하는 건가.’
한영수는 짱구를 굴리고 있는 구동일을 보자 피식 웃음이 나왔다.
곰방.
공사판에서 돌, 시멘트, 벽돌 따위를 인력으로 올려 분배해주는 작업.
아무런 기술 없는 잡부에게도 20만 원, 많게는 30만 원까지도 일당을 쳐주곤 하니, 단순히 단가만 따지면 최고라고 할 수 있었다.
뭐, 당연히 그만큼 몸이 축날 각오는 해야 했지만.
한영수는 대학 시절 방학 때가 되면 곰방 업체를 따라다니며 생활비를 벌곤 했다.
사실 한영수는 곰방 일을 꽤 좋아했었다.
두 달 동안 정도 빡세게 일하면 한동안 돈 걱정을 안 할 수 있었던 것은 물론이거니와, 몹시 고되긴 하지만 정직하게 돈을 번다는 느낌이 알 수 없는 충만감을 주곤 했다.
나태함을 이기기 위한 최고의 방법은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지금, 당장 몸을 움직이는 것이다.
구동일의 정신에 불을 지피기 위해 한영수는 사정없이 뺑뺑이를 돌릴 생각이었다.
*
한영수는 자신의 차에 구동일을 태우고 인근의 신축 빌라 건설 현장으로 향했다.
빌라 입구에는 산같이 쌓여있는 모래와 시멘트 포대들이 있었다.
그리고 남자들.
작업복 복장의 남자가 다섯이 모여있었는데, 한결같이 허리에 복대 비스무리한 걸 차고 있었다.
“오, 영수야!”
무리 중에서 한 남자가 한영수를 발견하고 손을 흔들었다.
이 곰방 업체의 오야시.
그는 오야시라는 말보다 반장님이라는 명칭으로 불리길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벌써 한영수가 곰방을 따라다닌 것은 수 해 전이지만, 반장에게 한영수는 좋은 기억으로 아로새겨져 있었다.
곰방이라는 일 특성상 자기 몫을 해내는 게 중요한데, 한영수는 하루도 빠짐없이 나와 항상 제 몫 이상을 거뜬히 해내는 훌륭한 일꾼이었으니까.
그래서 몇 년 만에 뜬금없이 일할 사람 필요 없냐고 묻는 한영수에게 흔쾌히 나오라고 말을 했었다.
“반장님, 갑자기 연락드려서 죄송해요.”
한영수는 구동일을 내버려 두고 반장에게 다가왔다.
”아니야. 그런데 복장이 그게 뭐야. 그렇게 입고 일할 수 있겠어?“
“오늘은 제가 일할 건 아니고, 저 친구를 좀 써주셨으면 해요.”
한영수는 저만치 멀찍이 떨어져 엉거주춤 서 있는 구동일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뭐야. 영 어리바리하고 비리비리 해 보이는데··· 영수 너 알잖아. 우린 팀워크가 중요한 거.”
구동일을 바라보는 반장의 눈은 영 미덥지 않았다.
“저 친구가 상황이 너무 절박해서 그래요. 부탁 좀 드릴게요. 대신 하는 게 어설프면 잔뜩 꾸짖으셔도 됩니다.”
“허 참···”
반장은 같이 일할 사람이 한영수가 아니라는 아쉬워 입맛만 다셨다.
“잘 좀 부탁드릴게요.”
“잘 부탁하고 말고가 있나. 우리야 자기 몫 다하면 야리끼리하는거지.”
반장은 한영수에게 일단 알겠다며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한영수는 다시 구동일에게 다가갔다.
“구동일. 너 오늘 여기서 일하면 돼. 잘해라. 이 악물고 버텨. 만약에 이것도 못 버티면 넌 네가 생각할 수 있는 최악의 방법으로 돈을 갚게 될 테니까.”
구동일은 붕어처럼 눈만 끔뻑끔뻑했다.
“그리고 이거 하나 기억해. 시련은 그 안에서 의미를 찾으면 고통이 아니야. 기회지.”
이 말을 남긴 채 한영수는 등을 돌려 공사판을 떠나버렸다.
‘까고 있네.’
한영수의 뒤통수에 대고 속으로 엿을 날린 구동일이였지만, 그래도 하루를 같이 있었다고 막상 그가 떠나버리니 왠지 쓸쓸한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구동일에게는 감상에 젖어 있을 여유도 허락되지 않았다.
“어이!”
반장이 구동일을 불렀다.
고함치듯 자신을 부르는 반장의 목소리에 화들짝 놀라 구동일은 저도 모르게 발길을 떼었다.
어느새 사람들은 시멘트를 한 포대씩 짊어지고 건물 안으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너 처음이야?“
반장이 말투는 퉁명스러웠다,
이런 대접이 익숙하지 않은 구동일은 말없이 고개만 주억거렸다.
작업반장은 한숨을 한번 내쉬곤, 다시 입을 열었다.
“세멘 한 포대씩 지고 4층, 3층, 2층 순서대로 떨어트리고 와야 해. 간단하지? 바로 시작해.”
‘생각보다 별거 아닌데?’
10층을 훌쩍 넘는 건물도 아니고 고작 4층.
저까짓 것 나르는데 뭐가 힘들까 싶은 구동일이었다.
하지만 어디 생각대로 되는 게 인생이랴.
구동일은 생각보다 무거운 시멘트의 무게에 깜짝 놀랐다.
트럭에서 등까지 시멘트를 얹는 데는 성공했으나 몸이 앞으로 쏠려 자빠져 버릴 것 같았다.
반장은 그 꼴을 보고 혀를 쯧쯧 차며 말했다.
“야! 등짐 말고 어깨짐으로 져! 너 그러다 허리 나간다.”
‘시련에서 의미를 찾아? 개 같은 소리 하고 있네.’
구동일은 한 발을 내디딜 때마다 몸이 땅으로 꺼지는 느낌이 들었다.
고작 4층이라고 우습게 보았는데 40층, 아니 400층을 올라가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털썩━
겨우 4층에 하나 떨궈놓았을 뿐인데 구동일의 이마에서 육수가 솟아 흐르기 시작했다.
‘시팔··· 밑에 시멘트 몇 포대나 쌓여있었지?’
“거기 뭐해! 길 막지 말고 빨리 내려가서 날라요. 저거 다 못 나르면 집에도 못 가는 거야!”
더운 김을 입에서 뿜어내며 씩씩대며 올라오는 일꾼 한 명이 구동일에게 소리를 질렀다.
그렇게 한번··· 두 번··· 세 번··· 네 번···
구동일은 처음 몇 번은 지금 자신이 처한 상황과 한영수를 향해 할 수 있는 욕은 모두 쏟아부으며 시멘트를 날랐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그의 머리는 표백제로 세탁이라도 된 듯 하얗게 아무 생각도 떠오르지 않았다.
그저 어서 이 영원 같은 시간이 어서 지나가기만을 바랄 뿐.
칼바람에 목 끝까지 지퍼를 올렸던 패딩은 이미 바닥에 던져버린 지 오래였다.
“세멘 끝났습니다. 식사하시죠!”
마지막 남은 시멘트 포대를 2층에 떨궈놓자 반장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살았다.’
구동일은 그대로 자리에 주저앉아 두 손으로 얼굴에 흐르는 땀을 닦아냈다.
그때, 누군가 그의 어깨를 손으로 툭툭 쳤다.
“학생. 힘들지?”
구동일이 고개를 들자 눈앞에 연세 지긋해 보이는 남자 한 명이 그를 보며 씩 웃고 있었다.
‘이 아저씨는 저 나이에도 이런 일을 하시네.’
“요 앞에 가 다복 식당으로 가면 돼. 같이 밥 들러 가자고.”
“됐어요. 생각 없어요.”
땀을 하도 흘렸더니 공복과 다름없음에도 입맛이 하나도 없는 구동일이었다.
“어허, 안돼.”
아저씨는 억지로 구동일을 일으켜 세웠다.
“밥심으로 일하는 거야. 굶으면 오후에 못 버텨.”
아저씨의 손에 떠밀려 구동일은 터벅터벅 계단을 걸어 내려갔다.
“조금만 더 참아봐. 도망치지 말고. 험한 일이지만 그래도 해내고 나면 뭔가 느껴지는 것이 있을 거야.”
‘도망치고 싶어도 갈 데가 없어요.’
구동일은 정말이지 울고 싶은 심정이었다.
*
“한시부터 작업 시작하겠습니다. 오늘은 세시엔 시마이 하시죠.”
곰방 사람들은 점심 식사 후 잠깐의 휴식을 위해 각자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
구동일도 햇볕이 잘 드는 자리에 빈 시멘트 포대를 하나 깔고 엉덩이를 대고 앉았다.
‘밥 진짜 맛있었지.’
7천 원짜리 조미료 범벅 백반이었지만, 오늘 구동일의 입에 그 백반은 세상 어떤 진수성찬보다 훌륭한 한 끼였다.
입맛이 없다고 할 때는 언제고 그는 김치 한 조각, 밥알 한 톨 남기지 않고 싹싹 다 긁어먹었다.
“저기 학생. 이거.”
구동일 옆으로 다가와 앉은 일전의 아저씨가 그에게 복대를 하나 내밀었다.
“남는 게 하나 있어서. 돈 버는 것도 좋은데 몸은 상하면 안 되잖아. 이거 차고 해.”
“··· 감사합니다.”
생각해보면 집을 나오고 나서 다른 사람에게 처음으로 받아보는 호의였다.
구동일은 아저씨에게 꾸벅 인사를 했다.
“그냥 집에 있는 우리 아들 생각나서 그래. 학생은 기특하지. 돈을 벌겠다고 이렇게 고생도 하고. 우리 아들놈은 언제 정신을 차릴지.”
아저씨의 말에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었던 구동일은 말을 돌렸다.
“저기, 아저씨는 이 일을 얼마나 하신 거예요?”
“나? 어디 보자··· 한 35년은 했지.”
구동일의 입이 떡 벌어졌다.
자기는 반나절만 해도 죽을 것 같은데 그걸 30년을 넘게···
아저씨가 대단하다는 생각과 함께 자기는 언제까지 이 일을 해야 빚을 갚을 수 있을지 암담해지는 구동일이었다.
“자, 오후 작업 시작합시다.”
얼마 쉰 것 같지도 않은데 반장은 사람들을 호출했다.
아저씨는 구동일의 몸에 묻은 흙을 툭툭 털어주었다.
“이제 오후에는 저 질통에다가 모래 담아서 나를 거야. 좀만 더 힘내라고.”
모래는 시멘트보다 훨씬 더 무거웠다.
그래도 그나마 어깨끈이 균형을 지지해주고 아저씨가 준 복대가 있어 버틸 만은 한 구동일이었다.
문제는 다리.
이제 후들후들 떨리다 못해 아예 이제는 하체에 피조차 안 통하는 것 같았다.
그래도 해야 한다. 아니, 할 수밖에 없었다.
‘아침마다 그 퍽퍽한 닭가슴살만 먹는 지독한 놈이야. 진짜 이거 못 버티면 나한테 무슨 짓을 할지 몰라.’
구동일은 이빨을 꽉 깨물었다.
그리고 마침내.
오늘의 과업이 모두 끝났다.
땀 범벅이 된 구동일은 만세라도 부르고 싶었다.
반장은 구동일에게 제법 묵직한 봉투를 내밀었다.
“17만 원이야. 반나절도 못 버틸 줄 알았는데. 그래도 끝까지 했네. 내일도 나올 생각 있으면 나오던지.”
17만 원!
구동일이 하룻밤에 쓰는 술값도 안 되는 돈.
하지만 지금 이 돈의 무게는 구동일에게 남다르게 느껴졌다.
그리고 그때,
“어이, 구동일.”
빌라 공사장에서 아까부터 서 있던 검은색 차의 뒷창문이 열리더니 한영수가 손짓을 했다.
‘제기랄.’
구동일은 어깨가 축 처져서 차에 올라탔다.
처음 그때처럼 운전석과 조수석에는 덩치 둘이 타고 있었다.
“고생했어.”
한영수는 이 말과 함께 구동일의 손에서 그 소중한 돈 봉투를 홱 낚아채 갔다.
허탈함에 눈물이 핑 도는 구동일이었다.
“자, 이제 일 하나 더 뛰러 가야지?”
“예에···?”
한영수의 폭탄 발언에 구동일의 눈알은 튀어나올 지경이었다.
“지금 오후 세 시 반밖에 안 되었는데 벌써 쉬려고? 그래서 언제 빚 다 갚게?”
‘악마···! 너는 진짜 악마다!’
아까 아주 잠시라도 한영수를 좋게 생각했던 자신이 원망스러워지는 구동일이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한영수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그들은 태운 차는 어디론가 출발했다.
인간 개조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