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 장영복의 두 아들
“김 교수. 내 몸이 많이 안 좋은가?”
“예. 숨기지 않고 솔직히 말씀드리겠습니다. 정말 많이 안 좋습니다. 당장 입원하셔야겠습니다.”
이것은 지금으로부터 두 달 전의 이야기.
어느 날부터인가 갑작스럽게 체중이 빠지고 견디기 어려운 복통을 자주 느껴, 복희 할머니는 평소에 안면이 있던 대학병원의 교수를 찾아갔다.
늙은 몸이 지루한 검사들을 견디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 어려운 것을 견뎌냈으니 별 일이라도 없어야 할 텐데 며칠 남짓 시일이 걸린 조직검사의 결과가 영 좋지 않은 모양이었다.
의사의 단호한 말과 얼굴이 이미 예후를 말해주고 있었다.
“무슨 병이야?”
“췌관선암입니다. 흔히 말하는 췌장암이요. 복통이 심각하셨을 텐데 어떻게 참으셨습니까.”
“··· 그렇구만.”
여러 암 중에서도 가장 악성이라는 췌장암.
하지만 남 일을 말하는 걸 듣듯 복희 할머니의 표정은 단단했고, 또 평온했다.
“이미 진행이 많이 되어 수술이 어렵습니다. 연세를 생각하면 더더욱 그렇고요. 그래도 최선을 다해보겠습니다. 일단 당장 입원 수속부터 밟으시죠.”
“얼마나 남았나?”
“예?”
“앞으로 살날이 얼마나 남았냐는 말이야.”
“...”
복희 할머니는 애달픈 얼굴을 하고 있는 의사를 바라보았다.
무수히 삶과 죽음을 선고해왔을 저이의 얼굴에 어린 슬픔이 과연 진심일까, 아니면 직업적인 가식일까 잠시 고민해보는 할머니였다.
‘상관없는 일이다.’
복희 할머니는 아무런 쓸모도 없는 생각을 머릿속에서 내던져 버렸다.
설령 가식일지라도 지극한 것이면 진짜와 구분이 어려운 법이니 그것도 그것 나름대로 괜찮다고 속으로 말해보는 당신이었다.
“의학적인 관점에서 말씀드리자면··· 반년 정도입니다. 하지만 항암치료를 시작하시면···”
“잘 되었구만.”
의사는 자신이 말을 잘못 들은 줄 알았다.
복희 할머니의 입에서 나온 말은 상황에 전혀 맞지 않는 뜬금없는 소리였다.
김 교수는 코끝에 걸려있는 안경을 손가락으로 올렸다.
“요즘 자꾸 깜빡깜빡해서 치매라도 오는 건가 겁이 났었는데, 그래도 사리 분별 할 수 있을 때 세상 떠나는 거 아닌가. 고맙네. 김 교수, 그동안 내가 신세를 많이 졌어.”
담담한 말을 남긴 채 복희 할머니는 진료실에서 나왔다.
‘이보게, 영복이. 나도 곧 자네를 따라가겠구만.’
복희 할머니는 자연스럽게 얼마 전 세상을 떠난 자신의 친우, 장영복 회장이 떠올랐다.
아무리 높은 자리에 오르고, 많은 돈을 가지고 있어도 죽음은 모두에게 공평하게 찾아온다는 것.
참으로 서글픈 진실이 아닐 수 없었다.
남은 삶을 칙칙한 병실에서 마감하고 싶은 마음은 단 하나도 없는 당신이었다.
여섯 달.
멀쩡한 정신으로 그 여섯 달을 온전히 버틸 수 있을지 확신은 없었지만, 그래도 자기 삶을 정리하기에는 충분한 시간이라고 복희 할머니는 생각했다.
복희 할머니의 머릿속에 떠올랐던 장영복 회장의 얼굴은 제 아비가 죽고 자신을 찾아왔던 장은수의 얼굴로 어느새 바뀌어 있었다.
장은수는 얼마 전 복희 할머니의 집을 찾아왔었다.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실제로 뵙는 건 처음이네요.”
“상 치르느라 자네가 고생이 많았겠네. 고인이 가시는 길은 잘 모셨는가?”
장은수가 복희 할머니의 존재에 대해 알게 된 것은 태상 건설 그룹의 회장 자리에 오른 후였다.
장영복 회장은 태상 건설 자리를 물려주면서 대단한 비밀이라도 전수하듯이 그에게 태상이 힘든 상황이 오면 명동의 차 여사를 찾아가라고 했다.
‘노인네가 드디어 노망이 났군.’
장 회장 앞에서는 알겠다며 고개를 숙였던 장은수였지만, 속으로는 코웃음을 쳤다.
‘큰손이든 조막손이든 이젠 일개 개인이 뭘 어쩔 수 있는 세상이 아니야. 아버지 때에나 가능했던 일이지 시장은 더 이상 그렇게 조잡하게 움직이지 않는다고. 차라리 무당을 찾아가서 굿을 하라고 하지 그래?’
하지만 그의 자만이 얼마나 우스운지.
장은수는 그리 오랜 시간이 지나지 않아 복희 할머니를 찾게 되었다.
돈이 필요했다. 그것도 엄청난 금액이.
국세청은 장영복 회장이 죽기가 무섭게 눈에 불을 켜고 태상의 일가를 지켜보았다.
언론은 고인이 남긴 재산이 얼마며, 상속세는 어쩌고저쩌고 떠들어대었고 속없는 대중들은 자기들 마음대로 이야기를 부풀렸다.
어디 그뿐이랴.
알력을 동원해 자신에게 반기를 드는 계열사의 사장들을 정리하고 그 자리를 빼앗을 수는 있었으나, 경영권 방어를 위해선 더 많은 지분을 차지해야만 했다.
이 모든 건 돈이 해야 할 일들이었다.
그래서 장은수는 명동의 한옥집에 발을 들였다.
‘눈에 사특한 욕심이 가득 끼었군.’
복희 할머니가 본 장은수의 첫인상이었다.
“하하하··· 지하 경제의 현금왕이라는 분이 이렇게 체구가 작으실 줄 몰랐습니다.”
“돈에는 눈이 없어. 사람의 겉모습을 쫓지 않지.”
“눈은 없어도 코는 있는 것 같더군요. 돈이란 놈은 성공한 사람의 냄새를 기가 막히게 잘 맡으니까요.”
“받아치는 솜씨가 제법이시구만. 그래, 태상의 적자께서 이 뒷방 늙은이를 찾아온 이유는 무엇인가?”
장은수는 슈트 상의를 두 손으로 여미곤 복희 할머니를 바라보았다.
“선친께서 말씀하시더군요. 어려운 일이 있을 때는 어르신을 찾아가라고. 예, 지금 제가 조금 사정이 그렇습니다. 도움이 필요합니다.”
장은수는 어려운 일 앞에 제 아버지가 말했던 태상이라는 단어는 쏙 빼놓고 말했다.
“큰일을 하는 사람에게 나 같은 늙은이가 무슨 도움이 되겠어?”
복희 할머니는 장은수에게 등을 돌려 깨를 털려고 마당 한편에 쌓아놓은 들깨 줄기 쪽으로 발길을 옮겼다.
장은수는 뒷짐을 진 채 그런 복희 할머리를 따랐다.
“어르신께선 홀몸이라고 들었습니다. 제가 앞으로 자식처럼 모시겠습니다. 선친과 각별하셨다니 당연히 그래야죠.”
“자네같이 이름값 높은 사람이 날 어미처럼 여기겠다니, 부담스러워서 싫어. 본론만 말하게. 얼마가 필요한가?”
복희 할머니는 걷던 걸음을 멈추고 몸을 돌렸다.
“가능한 한 많이 필요합니다.”
장은수는 마치 맡겨놓은 것을 찾으러 왔다는 투였다.
“섭섭하시지 않을 만큼 이자를 붙여 돌려드리겠습니다. 태상의 이름으로 보증하겠습니다.”
“내가 이 나이에 무슨 돈 욕심을 더 부리겠는가. 그런 걸로 노인네를 꾀어보려고 한다면 자네가 단단히 잘못 생각한 거야.”
장은수의 눈이 잠시 길게 쭉 찢어졌으나, 이내 원래의 그것으로 돌아왔다.
“어르신. 돈이라고 다 같은 돈이 아닙니다. 누구의 손에 있느냐에 따라 그 쓰임이 달라지지요. 음지에서 평생 버신 돈, 한 번쯤은 양지에서 일하게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세상을 위해 쓰게 해주십쇼.”
장은수 입가의 비릿한 미소를 보며 순간 복희 할머니는 땅과 하늘이 뒤집히는 것 같은 어지러움을 느꼈다.
‘아아··· 영복이, 저 자는 지금 여기에 날 모욕하기 위해 온 것인가? 어찌 자네의 아들이 이리 오만할 수가 있어.’
장은수는 혓바닥을 놀린 몇 마디로 복희 할머니가 평생 이룬 것을 부정(不淨)하고, 보잘것없는 것으로 만들어버렸다.
‘어쩌자고 저런 자에게 중책을 맡겼어. 자네조차도 자식새끼 앞에서는 눈 뜬 장님이었던건가?’
장영복과의 인연을 생각하면, 그 자식들에게 아무런 조건 없이 돈을 내어줄 의향도 있었던 복희 할머니였다.
비록 장은수의 인상이 과히 좋지 않았으나, 장 회장의 아들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그래도 마음의 문을 조금은 열어두고 있었다.
하지만 장은수의 오만함은 문을 닫아 걸쇠까지 걸어 잠그게 만들었다.
문득 복희 할머니는 장은수가 두려워졌다.
날카로운 눈과 냉소적인 입.
오만함과 자신의 자리와 위치에 대한 확신.
이 세상이 당연히 자신을 중심으로 돈다고 믿는 저열한 낙관까지.
분명 누군가는 장은수의 그런 모습을 카리스마의 발현이라고 삐뚤게 해석할 것이다.
그에게 충성을 맹세하고 주변을 맴돌며 장은수가 흘릴 단꿀을 조금이라도 나눠 먹으려고 할 테다.
복희 할머니는 그런 자들이 모여 만들 세상이 두려웠다.
“돌아가게. 나는 자네에게 해줄 수 있는 것도, 해주고 싶은 말도 없으니.”
*
투둑투둑━
차라리 시원하게 한바탕 쏟아질 것이지, 빗방울은 영 힘이 없었다.
괜히 날씨만 우중충해졌다.
복희 할머니는 얼마간 가쁘게 숨을 내쉬었다.
“할머니, 병원에 같이 가시자고요. 사람들 부르는 게 미안해서 그러시는 거면 제가 업고 갈게요.”
“괜찮대도.”
왜 이리 고집을 부리시는지 알 수가 없었다.
그저 막무가내로 싫다고만 하시니 어쩌랴, 나로서는 그저 옆에서 지켜보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었다.
새하얗게 질렸던 할머니의 안색이 다시 원래대로 돌아온 것은 족히 한 시간이 지나고 나서였다.
“영수야. 서랍장 위에 약이 있다. 할미에게 약이랑 물 한잔 떠다 주련?”
약봉지는 사전만큼이나 두꺼웠다.
그 두께에서 알 수 없는 불길함이 엄습해왔다.
틀림없다.
할머니는 어딘가 단단히 좋지 않으신 게.
그리고 당신도 그 사실을 임 알고 있고.
“할머니. 지금처럼 쓰러지신 게 처음이 아니죠?”
작은 손 가득 알약을 털어 목으로 넘기는 할머니를 보며 말했다.
“갑자기 배앓이를 한 것뿐이야.”
“배탈이 그렇게 심하게 나는 사람이 어디 있어요. 전 진짜 큰일이 나는 줄 알았어요.”
“요 녀석아, 너처럼 팔팔한 사람들이나 배탈이 아무것도 아닌 거지. 할미 나이쯤 되면 감기만 크게 걸려도 오락가락해. 어디가 안 좋은지보다 어디가 멀쩡한지를 물어보는 게 빠를 것이다. 그래도 네가 온 덕에 살았다.”
“핸드폰은 어디에 두고 계셨어요? 전화라도 하시지 그랬어요. 집에 아무도 없는 줄 알고 제가 그냥 돌아갔으면 어쩔 뻔했어요.”
복희 할머니는 나를 보며 희미하게 웃었다.
그 기운 없는 웃음을 보고 있자니 내 어깨 위에 그늘이 내려앉았다.
떨어지는 빗소리를 들으며, 나와 복희 할머니는 잠시 말이 없었다.
침묵의 줄다리기에서 먼저 손을 든 것은 복희 할머니 쪽이었다.
“영수야. 내가 너에게 궁금한 게 한 가지 있는데 대답을 좀 해주련?”
“말씀하세요.”
“너, 네 지나온 인생을 할미에게 들려주면서 말이다. 장은호의 제안을 거절했다고 그랬지? 왜 그랬느냐.”
“예? 갑자기 왜 그걸.”
“빨리 말을 해보아.”
복희 할머니의 눈빛은 진지했다.
“··· 그때 장은호 회장은 제가 가져야 할 것이 있다고 말했어요. 그런데 왠지 그걸 가지게 되면 다시는 내가 알던 나로 살아갈 수 없을 것 같았어요.”
“겁이라도 났던 거냐?”
“두렵지는 않았어요. 누군가와 싸워야 한다면 싸워야죠. 하지만 장은호 회장이 들어오라고 손을 내민 곳은 저의 전쟁터가 아닌 것 같았어요.”
복희 할머니는 내 눈을 빤히 쳐다보았다.
“그냥 그런 예감이 들었어요. 할머니 앞에서 말하기는 좀 민망스럽지만 살면서 제 예감은 거의 틀린 적이 없었거든요. 좋은 쪽이든, 나쁜 쪽이든.”
왜일까.
할머니의 눈은 나를 바라보고 있지만, 내 안에서 다른 누군가를 찾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 네가 조금만 더 나를 빨리 찾아왔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꼬.”
실전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