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500억을 상속받았다-37화 (37/200)

37. 헬스장이 너무 잘됨 (3)

돈이란 건 대관절 무엇일까?

회사에 다니던 시절, 허리띠를 잔뜩 졸라매 한 달에 모을 수 있는 돈이라야 백만 원 남짓이었다.

월급에서 소득세, 건보료, 국민연금··· 뗄 것 다 떼고 나서 내게 떨어지는 돈은 250만 원 남짓.

물론 많다고는 못해도 혼자 쓰기에 적은 돈은 아니긴 하다.

하지만 여기에 월세에 관리비, 각종 보험비, 자동차 할부금, 대출이자까지 빠져나가면 금방 통장의 숫자는 바람 빠진 풍선처럼 초라해진다.

사람은 또 먹어야 사니까 식대도 나가야 하고 가끔은 어쩔 수 없이 술자리도 해야 하는데, 경조사라도 몇 개 겹치기라도 한다면 그달은 완전히 나가리였다.

유달리 내가 사치스러웠던 것도 아니고, 열심히 살지 않은 것도 아니었다.

어쨌든 그 시절엔 그랬다.

늘 기이한 감정에 시달려야 했다.

분명히 계속 돈을 벌고는 있는데, 벌면 벌수록 가난해지는 것 같은 느낌.

그런데 지금은 어떤가?

치열하게 살지 않아도, 쓰고 싶은 대로 써도 돈이 돈을 불러오고 있다.

하려는 일은 계속 술술 잘 풀리고, 어마어마한 금전적 보상이 자연스럽게 뒤를 따라오고 있다.

영원히 마르지 않는 샘물처럼 재산이 자꾸만 불어난다.

강쇠의 유튜브에 우리 센터를 소개하는 영상이 업로드된 날, 나는 해와 달이 배턴터치를 할 때까지 쉬지 않고 센터를 안내해야 했다.

그날 하루에 신규 가입한 회원 수만 무려 80명.

센터 오픈하고 열흘 동안 등록한 회원이 고작 70여 명 남짓이었으니 단숨에 배가 넘게 늘어난 것.

장기 회원권임을 고려했을 때 일회성 수입이긴 하지만, 오늘 하루만 센터의 카드 리더기가 결제한 금액이 4천 2백만 원이었다.

여타 센터보다 요금이 다소 높게 책정되어 있음에도, 근육질의 남자들은 그저 쓱 한번 둘러보는 것만으로 우리 센터와 사랑에 빠졌다.

그들은 6개월, 혹은 1년 치 장기 회원권을 주저하지 않고 끊었다.

제기랄.

돈이라는 놈이 아주 야비한 생물처럼 느껴졌다.

없을 때는 그렇게 날 무시하더니, 생기니까 내 발 밑에 이리도 넙죽 엎드리는구나.

“저··· 대표님. 그런데, 갑자기 이렇게 사람들이 늘어나면 저희 감당 가능할까요?”

제 일할 시간을 넘겨 밤늦게까지 고생한 최예리를 먼저 들여보내고 저녁 타임 아르바이트생과 마감을 준비할 때였다.

22살 알바는 벌써부터 엄살이었다.

얼굴에 근심과 걱정이 가득했다.

편한 곳이라고 생각했는데 된통 당하기라도 했다는 듯한 표정.

우리 센터의 최대 수용인원은 어림잡아 500명.

오늘의 기세가 이어진다면 넉넉하게 잡아 놓은 그 인원을 금세 채우고도 남으리라.

내친김에 2호점까지 내볼까?

송림프라자에 4층에 조만간 임대계약이 만료되는 상가가 하나 있다.

아니야.

더는 판을 키우지 말자.

나는 고개를 좌우로 저어 생각을 떨쳐냈다.

*

유튜브 홍보로 시작된 스노우볼은 점점 가속도가 붙으며 몸집을 크게 불려갔다.

한 달 사이에 자애짐의 회원 수는 표현 그대로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전산상에 등록된 회원 수만 412명.

같은 지역 내 제대로 된 시설을 찾아 헤매던 헬스광들은 당연히 모두 흡수했고, 인근 시에서도 소문을 듣고 많은 사람이 찾아왔다.

심지어 지하철을 타고 편도 40분 거리를 움직이는 걸 주저하지 않는 사람도 있었다.

내가 생각해도 정말 놀라운 일이었다.

회원들은 ‘헬창들의 성지’를 위해 나팔수가 되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커뮤니티에 글을 올리고, 주변 운동하는 지인들에게 홍보하고···

보통 헬스장이라면 점심시간 이후라든지, 반드시 한가한 시간대가 있기 마련이지만 우리 센터는 오픈부터 마감까지 시간을 가리지 않고 건장한 사내들로 붐볐다.

윽, 하며 이 꽉 깨물고 내지르는 소리라든지 쿵, 하고 바벨과 덤벨을 내려놓는 소리가 사방에서 울려 퍼졌다.

모르는 사람이 본다면 지옥 같은 풍경에 기겁하고 도망치겠지만, 적어도 우리 회원들에게 있어서 자애짐은 천국과 다름없었다.

회원이 늘었다고 해서 특별히 더 손이 필요한 것도 없었다.

“저, 죄송한데 혹시 이거 몇 세트 남으셨나요?”

“앗, 저 이거 방금 잡았는데··· 어깨 하시는 거예요? 저도 어깬데 같이 하시죠, 뭐.”

운동이라는 공통된 열렬한 취미를 가지고 모인 회원들은 자연스럽게 저들만의 교분의 싹을 틔웠다.

그들은 자신들의 놀이터를 나 못지않게 아꼈고,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었지만 사용한 자리는 원판 정리까지 알아서 깔끔하게 치우는 매너까지 보여주었다.

사실 우락부락한 헬창들은 알고 보면 누구보다도 순수한 면이 있는 사람들이다.

운동 이야기라면 눈에 별이 반짝이고, 초보자가 쭈뼛대며 운동법을 묻기라도 한다면 지나칠 정도로 신이 나서 알려주는 게 그들이다.

“대표님. 진짜 유튜브의 위력이 대단하긴 하네요. 매출이 홍보하기 전과 비교하면 3배나 올랐어요!”

“응. 그래. 정말 그렇네.“

상기된 얼굴로 기뻐하는 최예리와 달리 나는 요즘 생각이 많아졌다.

계산기를 두들겨보니 지금 상태를 계속 유지한다는 가정 아래 추정 연 매출은 대략 이억 오천만 원 정도.

그럼 직원 월급을 비롯해 이것저것 나가는 비용을 제하고 나한테 순수하게 떨어지는 돈은 얼마냐.

월 1,200만 원 정도다.

센터를 열 때 대출을 하나도 끼지 않았고, 내 건물에서 월세 없이 하는 장사니, 가능한 수익이었다.

이 기세라면 2년 정도면 기구 값에 투자한 돈은 충분히 뽑고도 남는다.

허, 세상 놀라운 일이다.

이제 내 월수입은 오천이요, 연봉은 무려 육억이다.

어쩌면 올해 내게 될 세금이 내가 오백억을 받기 전 평생 써온 돈보다 많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대표님, 무슨 고민이 있으세요?”

“응? 아, 아니야.”

내 반응이 다소 심심했는지, 최예리가 고개를 들어 나를 바라보았다.

그래, 사실 고민이 있기야 하지.

어쩐 일인지 센터의 대흥행에도 마냥 기쁘지만은 않았다.

이른 새벽에 일어나 헬스장을 오픈.

카운터에 앉아 찾아오는 회원들에게 인사를 하고, 짬 날 때마다 머신에 기름칠하고, 바닥에 청소기를 돌리는 일이 반복되는 삶.

헬스장을 차리는 건 그저 트로피를 예쁘게 진열하는 것과 진배없다고 생각했는데, 정작 장사가 너무 잘되다 보니 점점 여기에 얽매이게 되는 시간이 많아졌다.

내가 진짜 원했던 게 이런 건가?

며칠 전엔 아무리 생각해봐도 내가 배부른 고민을 하는 것 같아 부끄러워지기까지 했다.

마치 개구리가 올챙이 시절 기억 못 하는 꼴이 된 것 같아서.

하지만 가만히 앉아 진지하게 고민을 해보니 진작에 나에게 던져봤어야 하는 질문이었다.

그리고,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심장과 머리가 이구동성으로 떠들어대었다.

어차피 센터는 이제 제 궤도에 올라왔어. 알아서 잘 굴러갈 거라고.

그렇다면 네가 여기에 꼭 붙어있어야 할 이유가 없잖아?

공연히 시간을 허비하지 말고 다른 가치 있는 일을 해보는 게 어때?

“예리 씨.”

“네, 대표님.”

“우리 사람 두 명 더 뽑자. 예리 씨가 한번 구해보겠어?”

“알겠어요. 알바사이트에 구인 광고 글 올릴게요.”

“그래. 오전 타임과 오후 타임 나눠서 한 명씩. 그리고 말이야··· 나 사실 예리 씨한테 할 이야기가 있거든?”

최예리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나 이제 센터 운영에서는 한 발짝 뒤로 물러나 있으려고.”

“예? 갑자기요?”

“며칠 동안 생각했던 일이야.”

최예리는 갑작스러운 내 발언에 적이 당황한 눈치였다.

“대표님, 이제야 센터가 본격적으로 자리를 잡은걸요.”

“알아. 그래서 하는 말이야. 아예 안 나오겠다는 말은 아니야. 개인 운동도 해야 하고. 돈 관련 된 문제는 내가 계속 직접 챙길 거야. 그리고··· 뭣보다 내가 예리 씨한테 부탁하고 싶은 게 있어.”

“무슨···”

“있잖아. 내가 자리를 비워도 예리 씨가 이 센터의 매니저 역할을 해줄 수 있을까?”

최예리의 동공이 크게 열리고 입이 벌어졌다.

“내가 없어도 직원을 두 명 더 뽑는 거니까, 어떻게 보면 오히려 지금보다 더 여유가 생길 거야. 예리 씨 말이야, 와서 편하게 글도 쓰라고 했더니 사장 눈치 본다고 열심히만 하려고 하고. 이제 나는 빠져줄 테니까 그러지 마.”

“아니에요. 대표님이 많이 배려해주셔서 일하면서도 괜찮은 아이디어 많이 짤 수 있었던걸요.”

“매니저라고 해서 부담가질 필요 없어. 지금 하는 일에서 더 크게 뭘 할 것도 없고. 그냥 센터 직원들 관리만 추가로 해줘. 특별한 일이 있을 때는 나에게 연락을 해주면 돼. 대신 월급은 그만큼 더 올려줄게.”

최예리는 성실하고 믿을만한 사람이다.

그녀가 수락한다면 적어도 정식 모터스에서 받던 급여 이상을 챙겨줄 생각이었다.

그리고 나는 돈이 주는 자유를 이용해 또 다른 도전에 나설 수 있게 되겠지.

“··· 제가 잘 할 수 있을까요?”

최예리는 신입사원이던 그 시절 나에게 조심스럽게 묻던 말을 그대로 했다.

“애초에 예리 씨가 먼저 말 안 꺼냈으면, 이 센터 이렇게까지 잘 되지도 않았어.”

“대표님이 다 하신 거죠. 제가 뭘···”

잠시 생각을 하던 최예리는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네. 알겠습니다! 대표님이 믿어주시는 건데 제가 한번 해볼게요.“

*

나는 손을 뒤로 뻗어 배낭 주머니에 넣어놓은 물통을 꺼내 입을 축였다.

이제 정상이 코앞.

오전 여덟 시에 산행을 시작했는데, 시간은 어느새 정오를 향해 가고 있었다.

가을 산의 정취는 정말 아름다웠다.

잠시 물을 마시면서 휴식을 취하기 위해 돌 비탈에 기대었다.

아래를 내려다보니 빽빽하게 들어찬 나무들은 하나같이 화려한 색으로 갈아입은 옷을 자랑하고 있었다.

“절경이네. 오길 정말 잘했어.”

헬스장에서 한발 물러나자 내 손 안에는 또다시 시간이 쥐어졌다.

무얼 할까 고민을 하다 다짜고짜 짐을 싸서 아무 계획도 없이 무작정 비행기에 올라탔다.

내가 도착한 여행지는 바다도 산도 모두 너무나 아름다운 곳이었다.

이 좋은 곳을 왜 이제서야 와 봤는지 후회가 될 정도였다.

잠시 쉬는 동안 송골송골 올랐던 땀이 식고 시원한 산바람이 내 몸을 감쌌다.

하늘을 향해 기상을 뽐내고 있는 큰 키의 나무들을 보고 있자니 신기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높은 곳에서도 생명은 자라나는구나.

그것도 저렇게 거대하게.

잠깐의 휴식을 마치고 다리에 기합을 다시 넣었다.

그렇게 뚜벅뚜벅 경사진 흙길을 얼마간 밟고 올라가자···

“와···”

눈앞에 엄청난 크기의 분화구가 보였다.

그 장대함에 가슴이 웅장해질 지경이었다.

자연이 만든 압도적인 풍경에 그저 감탄밖에 나오지 않았다.

한라산.

해발고도 1,950m의 이 산은 자신의 정상을 아무에게나 보여주지 않기로 유명하다.

다행히 맑은 하늘은 내게 백록담의 전경을 선사했다.

그렇다.

나는 지금 신비의 섬, 제주에 있다.

제주도에서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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