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500억을 상속받았다-36화 (36/200)

36. 헬스장이 너무 잘됨 (2)

회의, 회의, 회의.

회사 생활은 항상 회의의 연속이었다.

어떨 때는 문제가 있어 회의하는 것이 아니라 회의를 하기 위해 문제를 만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렇다고 해서 회의가 쓸모 없다는 것인가?

그건 절대 아니다. 브레인 스토밍의 측면에서 회의의 순기능은 절대 무시되어서는 안 된다.

서로가 의제에 대해 깊은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다는 걸 전제조건으로 한다면, '반드시'라고 해도 좋을 만큼 훌륭한 아이디어가 불현듯 튀어나오기 마련이다.

마치 지금처럼.

“우선 매출부터 이야기하자. 예리 씨가 페이퍼에 정리했지만, 구두로 한번 다시 말해보자고.”

비록 여기엔 나와 최예리 단 둘뿐이지만, 과거의 영업팀 용사들이 뭉쳤다.

달라진 것이 있다면 비즈니스 룩이 아닌 운동복 차림이란 것.

그리고 더 이상 임 차장 같은 압제자가 없다는 것.

“우선 제 판단에는 우리 헬스장이 진입장벽이 너무 높아요. 우리 센터에 있는 기구들 모두 고급 장비들이죠?”

“맞아. 예리 씨가 그걸 아네?”

“그럼요. 따로 인터넷을 뒤져서 알아봤죠. 여하튼 대표님의 말 속에 첫 번째 문제점이 있어요. 저희 헬스장의 최고 장점이 기구들인데, 아는 사람만 알지 저 같은 문외한들은 그게 뭔지도 모르거든요.”

“장점이 잘 어필이 되지 않는다는 이야기군.”

“네. 그리고 수입구조가 회원권에 국한되어 있는 것도 아쉬워요. 다른 헬스장처럼 PT 회원을 받아서 창구를 늘려보는 게 어떨까요?”

우선은 맞장구만 치며 최예리의 말에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녀가 자유롭게 자기 생각을 말할 수 있도록.

하지만 최예리의 우려는 이미 헬스장을 오픈하기 전부터 나도 이미 다 예상하고 있던 것이다.

“그럼 PT 이야기부터 해볼까? 예리 씨도 알겠지만 난 얼마 전까지 평범한 회사원이었어. 운동은 취미였고. PT를 하려면 트레이너가 필요해. 그런데 트레이너들 중에 몇몇은 여러 가지 의미로 아주 몹쓸 사람들이 있거든. 믿을 만한 사람을 쓰지 않는다면 PT를 받고 싶은 생각은 없어.”

형, 동생 하며 지내는 이종탁이 있긴 하지만 제 사업을 하고 싶어 하는 녀석을 여기에 묶어두고 싶지 않았다.

“저, 그럼 이건 어떠세요? 대표님이 직접 해보시는 건. 체육지도사 자격증도 취득하셨고···”

내가?

예리야. 아서라.

네 뜻은 알겠지만 그건 내가 가고자 하는 방향이 아니야.

“일단 PT에 대해선 나중에 생각해보자. PT를 하게되면 수업 시간에는 일반 회원들의 기구 사용에 지장이 있을 수도 있어. 우리 센터가 규모 면에서 엄청 거대하다고 할 수 없는 건 알잖아. 여기는 운동 좋아하는 사람들끼리 자유롭게 교류하는 공간이 되었으면 해.”

열심히 의견을 내는 최예리에게 면박을 주는 꼴이 되지 않도록 최대한 완곡하게 이야기하였다.

“자, 회원권으로 수익구조는 통일하는 걸로 하고. 그럼 신규 회원 유치를 위해 예리 씨가 생각한 좋은 방안이 있을까?”

“일시적으로라도 회원권 가격을 낮춰보는 걸 어떨까요? 오픈 기념 이벤트로. 아직 센터 홍보를 적극적으로 하지 않았으니까 전단도 만들어서 주변 아파트 단지에 돌리고, 지역 맘까페에도 홍보하구요.”

모범적인 답안이지만 지나치게 평면적이다.

“예리 씨. 예전에 거래처 미팅 말이야. 처음으로 같이 나갔을 때 내가 해주었던 말 기억나?”

“예? 어떤···”

“상대방의 마음을 얻기 위해서는···”

“아!”

이제야 생각났다는 듯 최예리는 손바닥에 주먹을 탁 쳤다.

“가려운 곳이 어딘지부터 확인해라!”

“맞아. 예리 씨가 아까 말한 것처럼 우리 센터는 고급 기구들을 들여놓고 있어. 그럼 역으로 우리가 집중해야 할 고객은 그것의 가치를 알아보는 사람들이어야 해. 그 사람들의 특성에 대해 먼저 이해를 해야지.”

웨이트 트레이닝에 미친 사람들은 도대체 어떤 사람들인가?

일상 속에서 제일 중요한 과업이 운동인 사람들이다.

수도승도 아닌데 식단을 조절해가며 퍽퍽한 닭가슴살을 하루에 1kg씩 먹고, 한 해에 근 골격량을 다만 몇백 그램이라도 늘리는데 목숨을 거는 것이 그들이다.

“운동 정말 좋아하는 사람들은 말이야, 좋은 센터가 있다면 거리는 관심 두지 않아. 우리 회원 중에서도 있었지? 차로 30분이나 되는 곳에서 넘어왔다고. 그 사람들은 심지어 센터를 두 군데씩 끊기도 해. 하루에 2번 운동하려고.”

“와··· 저로서는 정말 이해가 안 되는데요.”

그래.

최예리로서는 운동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했기에 원론적인 방법만이 나왔을 것이다.

“우리 센터는 그런 사람들의 가려운 곳을 긁어주기에 충분한 곳이라고 생각해. 그렇게 표적을 좁히고 나면 필요한 게 딱 하나 있지. 그게 뭘까?”

나의 물음에 최예리는 생각에 잠겼다.

고민 끝에 그녀는 내가 원하던 답을 내놓았다.

“··· 그 사람들에게 우리 센터를 알릴 수 있는 홍보일까요?”

“맞아.”

나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요즘 시대에 홍보라면 역시···”

“바이럴 마케팅이지.”

바이럴 마케팅.

미디어와 SNS에 의도적으로 상품을 노출해 홍보하는 마케팅의 한 방법.

사람들에게 부정적인 이미지가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제대로 이용을 한다면 비용 대비 큰 효과를 누릴 수 있는 수단이기도 했다.

실상 각종 방송매체에서 쏟아내는 PPL도 바이럴 마케팅의 일종이 아니던가.

뉘앙스는 좀 다르지만, 나와 최예리는 이미 이 바이럴 마케팅의 엄청난 힘을 체감했었다.

정식 모터스 안에서 호가호위하던 임 차장을 순식간에 나락으로 떨어트린 것도 SNS상에 올린 누군가의 동영상이 시발점이었으니까.

“바이럴 마케팅이라··· 어디 업체에라도 맡겨야 할까요?”

“그럴 필요 없어. 아까도 말했지만 내 센터에 대해선 자부심이 있다고. 정직하게 노출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해. 방법은 이미 알고 있어.”

유튜브.

굳이 내가 채널을 개설해 홍보할 필요도 없다.

유명 운동 유튜버가 영상 하나를 게시하면 적게는 몇만 명에서, 많게는 수십만 명이 그걸 지켜본다.

이름난 운동 유튜버 한 명을 섭외해 우리 헬스장을 소개하는 영상을 올린다면, 그 파급력은 그 어떤 홍보 수단보다 엄청 날 것이다.

게다가, 나는 대한민국에서 운동 쪽이라면 세 손가락 안에 들법한 유튜버에 닿을 수 있는 끈이 있다.

생각이 여기까지 이르자 스멀스멀 욕심이 생겼다.

한 번 헬스장으로도 돈 좀 벌어봐?

내 운동이야 한가한 오후 시간대나 센터 마감 후에 해도 되는 거고.

관리야 수입이 늘은만큼 사람을 좀 더 뽑아 쓰면 될 것이고.

“예리 씨. 웹소설 쓰는 건 잘 되어가고 있어?”

“네? 예··· 아직 작품 구상 단계여서··· 퇴근하고 나면 생각 정리해서 한 편씩 꼭 쓰고 있어요.”

“만약에 센터가 바빠져도 감당할 수 있겠어?”

최예리는 내 말에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네! 대표님. 저도 월급 받는 값은 해야죠.”

*

“안녕하세요. 유튜브 스트리머 강쇠입니다.”

“예. 자애짐 대표 한영수라고 합니다.”

“와, 대표님. 헬스장 분위기 진짜 빡세네요.”

“미국의 메트로 폴리스 짐을 모티브로 꾸몄거든요. 강쇠 님이 예전에 거기서 운동하는 영상 올린 것도 본 적이 있습니다.”

“아휴, 거기는 운동하는 사람들의 파이팅이 그냥··· 그런데 기구들은 전부 해머 사이언스 제품들이네요. 와, 이건 나도 처음 보는 머신인데.”

“예. 해머 사이언스 본사로부터 공식 인증을 받은 센터입니다.”

강쇠를 구독하고 있는 구독자는 120만 명.

사실, 그보다 훨씬 더 많은 구독자를 가지고 있는 유튜버도 많겠지만, 강쇠의 구독자는 90%가 남성이라는 걸 고려하면 결코 무시할 만한 숫자는 아니었다.

“어쨌든 이렇게 찾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니에요. 저희도 방송 촬영할 수 있는 소재도 생기고 좋죠. 이번 기회에 전국의 헬스장을 탐방하는 시리즈를 제작해볼까 고민 중이에요.”

“그거 재밌겠는데요? 맛집 탐방하는 것처럼 괜찮은 포맷이네요.”

“그렇죠? 하하, 그리고 무엇보다 고윤아 변호사님께는 제가 큰 빚을 졌거든요. 변호사님이 부탁하시는데 당연히 도와드려야죠.”

강쇠를 우리 센터에 불러올 수 있었던 건 역시 고윤아의 입김이었다.

“고 변호사님. 혹시, 일전에 말했던 유튜버 강쇠. 그분이랑 제가 연락을 할 수 있을까요?”

“예. 연락처가 있으니 가능은 할 것 같습니다. 무슨 일 있으십니까?”

고윤아에게 자초지종을 말하고는 조심스럽게 강쇠와 대화할 수 있는 통로를 물었었다.

“제가 직접 연락해보겠습니다. 모르긴 해도 그분은 저에 대한 감정이 좋은 편일 것입니다. 아마 긍정적으로 고려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아니에요. 괜한 부담 드리고 싶지 않네요. 방법만 알려주면 제가 하겠습니다.”

“잊으셨는지 모르지만, 저는 영수 님의 고문 변호사입니다. 저에게 맡겨주세요.”

고윤아와 통화를 한 지 며칠도 지나지 않아 강쇠의 매니저 쪽에서 연락이 왔다.

공손한 말투의 매니저는 우리 센터에서 영상을 촬영해도 되는지 고맙게도 먼저 말을 꺼내주었다.

거기에다 비용도 일절 받지 않고.

최근에 이슈도 있었으니 괜한 광고 논란은 피하고 싶다는 게 그들의 입장이었다.

영상 촬영은 어색했지만, 원청업체에서 납품을 따내기 위해 프레젠테이션을 했던 것처럼 최선을 다했다.

“대표님. 고생하셨습니다.”

“예. 강쇠 님도 오늘 너무 감사했습니다. 앞으로도 구독자로서 응원하겠습니다.”

강쇠는 굳은살이 잔뜩 배긴 손을 내밀어 나에게 악수를 청했다.

“그나저나 대표님. 혹시 유튜브 진출은 생각 없으세요?”

“예?”

강쇠의 뜻밖의 말에 나는 어색하게 하하 웃었다.

“그건 뭐 아무나 하나요. 오늘 손님으로 찍는 것도 영 어색하던데요.”

“대표님에게는 충분히 자질이 보입니다. 아까 라방 잠깐 30분 정도 켰을 때 댓글 반응이 장난 아니었어요.”

“댓글요?”

“네. 대표님 얼굴 정말 잘생기셨다고. 말씀도 엄청 조리 있게 잘하시고. 아까 라이브 방송 때 시청자가 3천 5백 명이었는데, 여자 시청자가 무려 800명이었다고요. 대표님도 제 채널 구독하신다니 그게 어떤 의미인지 아시죠?”

“글쎄요. 그게 뭐 저 때문이겠습니까.”

“에이, 다 아시면서.”

강쇠는 흐흐 웃으며 나를 툭 쳤다.

“아무튼 정말 진지하게 생각해보세요. 이 바닥 스타 되는 거 한순간인데··· 저도 뭐 대단한 위치에 있는 건 아니지만 불과 3년 전까지는 그냥 평범한 직장인이었거든요. 시작이 어려우시면 제가 도움은 드릴 수 있는데. 일단 종종 제 채널에 게스트라도 나와보시는 게 어때요?”

나의 사양에도 강쇠는 기어코 자신과 매니저의 연락처를 알려주고 떠났다.

*

편집된 영상은 일주일 뒤에 강쇠의 채널에 올라왔다.

“대표님. 어제 영상 올라온 거 보셨어요?”

“응, 당연히 봤지. 하룻밤 사이에 조회 수 얼마나 나왔지?”

“8만이요. 저 나온 부분은 도저히 못 보겠어서 그냥 다 스킵했어요. 살 빼야겠어요··· 진짜.”

“지금 출근하면서 보니까 벌써 10만 넘겼더라.”

“강쇠, 그분 영상들 대부분 조회 수 50만은 훌쩍 넘더라고요. 정말 홍보로는 얼마를 줘도 이 정도 효과는 없을 것 같아요.”

“그래. 한번 지켜보자고. 오픈 준비하자.”

그리고, 놀라운 일은 얼마 지나지않아 일어났다.

“대표···님···”

헬스장을 오픈하기가 무섭게 운동용 민소매를 걸친 헐크 같은 사나이들이 센터에 몰려들었다.

쿵··· 쿵··· 쿵···

근육맨들의 진군 소리가 웅장하게 들려왔다.

헬스장이 너무 잘됨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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