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500억을 상속받았다-29화 (29/200)

29. 헬스장을 차리자!

“안녕하세요. 기구 구매로 전화 드렸던 한영수라고 합니다.”

“아! 사장님. 안녕하세요. 잠시만 저희 카페테리아에서 기다려주시겠어요? 이사님께서 상담해주실 겁니다.”

여기는 서울 마포구 합정동에 있는 해머 사이언스 한국 총판의 사무실.

내 헬스장을 채울 운동 기구들의 견적을 내기 위해 방문했다.

운동 기구를 파는 곳이니 당연히 마초적인 냄새가 물씬 풍기는 곳일 거라 상상했다.

하지만 완전히 헛다리를 짚은 게, 의외로 평범한 회사의 사무실과 다를 것이 없었다.

일하는 직원들 역시 몇몇을 빼곤 운동과는 거리가 먼 사람들처럼 보이고.

직원의 안내를 받아 별도 공간에 마련되어 있는 카페테리아로 가던 중이었다.

내 눈에 복도 구석에 진열된 해머 사이언스의 머신들이 들어왔다.

전시용이다 보니 가짓수가 많지는 않았지만, 전부 처음 보는 것들이었다.

해머 사이언스의 제품들은 국산의 그것들에 비해 가격이 2배 정도 비싸다.

그만큼 동네 헬스장에선 보기 힘든 제품이기도 한데, 나 같은 경우는 예전에 헬스 맛집이라고 소문난 곳에 일일권을 끊고 몇 번 체험을 해본 적이 있다.

굉장히 충격적이었다.

무리해서 많은 중량을 꼽지 않아도 자극이 정확하게, 그리고 제대로 먹혔다.

프리웨이트 신봉자였던 내가 처음으로 머신과 사랑에 빠졌던 순간이었다.

“오우 야···”

머신들을 바라보고 있자니 나도 모르게 감탄사가 흘러나왔다.

자동차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거리에서 우연히 슈퍼카를 발견했을 때 기분이 아마도 이렇지 않을까?

검은색으로 도색된 머신들은 나를 유혹이라도 하듯 번쩍번쩍 광을 빛내고 있었다.

떡하니 철제 판으로 새겨진 해머 사이언스의 로고까지.

헬스 마니아의 가슴은 봄바람을 만난 처녀처럼 설레기 시작했다.

“저기···”

“네, 사장님 말씀하세요.”

“카페 말고 여기서 기다리고 있어도 될까요?”

나는 손가락으로 수줍게 머신들을 가리켰다.

안내하던 직원은 잘 알겠다는 듯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요. 진열용 제품들이지만 사용해 보셔도 됩니다.”

허락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나는 먼저 숄더프레스 핀 머신 위에 앉았다.

“기가 막히네.”

같은 머신도 원판을 꽂아 사용하는 것을 선호하지, 케이블에 의해 당겨지는 핀 머신을 좋아하지는 않는다.

핀 머신 같은 경우는 중량이 김빠지듯 새는 느낌이 난달까?

하지만 이 해머 사이언스의 머신은 핀에 꽂힌 무게를 빈틈없이 근육에 전달해주었다.

이래서 미제, 미제 하는구나.

부끄럽지만 운동에 있어서는 내가 사대주의자라는 걸 자백하지 않을 수 없었다.

센터의 실내장식도 어떻게 할지 이미 구상을 다 해놓은 참이다.

요즘 새로 오픈하는 센터들을 보면 운동기구보다는 조명과 거울에 더 신경을 쓰는 것 같았다.

내가 원하는 헬스장은 그런 예쁘장한 곳이 아니다.

전설적인 보디빌더 로니콜먼을 탄생시킨 메트로플렉스짐.

그곳처럼 하드코어 한 센터를 만들 생각이었다.

그렇게 되면 분명 운동 초보자나 여성 회원들에게 접근성이 좋지는 않을 것이다.

투자 대비 수익적인 측면에서 재미를 보지 못할지도 모르고.

하지만, 애초에 돈 벌려고 장사를 할 생각이었으면 헬스장을 차리겠다는 결정을 내리지도 않았다.

전설적인 팝가수가 세운 네버랜드처럼 그저 나만의 놀이동산을 꾸리고 싶었을 뿐.

“반갑습니다. 사장님.”

“아, 예.”

이 머신, 저 머신 뜯고 씹고 맛보고 있을 때 한 남자가 내게 다가왔다.

“늦어서 죄송합니다. 최창원 이사라고 합니다. 대표님과 회의가 좀 있어서···”

“아닙니다. 덕분에 구경 잘했는걸요. 한영수입니다.”

“기구가 마음에 드십니까. 저희가 수입하고 있는 해머 사이언스의 최신 M 라인입니다.”

“정말 좋네요. 저는 해머 제품은 플레이트 머신만 써봤거든요.”

“I 라인 말씀이시군요. 자 이쪽으로 오시죠.”

최창원 이사는 나를 자신의 개인 사무실로 안내했다.

“센터를 차리신다고요. 우선 저희 제품을 선택해주셔서 감사 인사부터 드립니다.”

“워낙에 명성이 높은 브랜드니까요.”

“예. 자화자찬 같아 쑥스럽지만, 운동하시는 분들이라면 다 알죠. 해머 사이언스가 진정한 명품이라는 걸. 아 참, 이건 저희가 드리는 작은 기념품입니다.”

최창원 이사는 내게 텀블러와 후드티셔츠가 들어있는 선물 상자를 건넸다.

그 물건들에는 해머 사이언스의 로고가 크게 박혀있었다.

애정하는 것의 굿즈는 언제나 옳지.

“멋지네요. 혹시 이거 구매도 가능합니까?”

“시판하는 상품은 아닙니다.”

최 이사가 웃으며 말했다.

“처음 센터를 차리는 분들이 돈 조금 아끼겠다고 폐업한 센터의 물건을 중고로 구매하는 경우가 많더군요. 그러다 크게 사기 당합니다. 누구한테 하소연도 못 하고 참 안타까운 상황이죠. 사장님께서 저희를 바로 찾아오신 건 정말 잘하신 겁니다.”

“듣기로 가품도 많이 유통 된다고 하던데 정말 그런가 보죠?”

“예. 겉으론 구분이 잘 안 되지만, 아는 사람이 보면 베어링만 봐도 티가 딱 납니다. 가죽시트도 쓰다 보면 버스 좌석 갈라지듯이 넝마 짝이 되고요.”

말을 마친 최창원 이사는 책상 위에 카탈로그를 올려놓고 내게 보여주었다.

“우선··· 센터 차리시는 곳의 면적은 얼마나 됩니까.”

“120평 조금 안 됩니다. 유산소 존이랑 샤워장에 30평 정도 쓰고 나머지 공간은 기구로 채우려고요. 프리웨이트용 스쿼트 렉도 3개 정도 놓으려고 합니다.”

“그러시군요. 그럼 같이 제품을 좀 보실까요?”

최 이사는 본격적으로 제품 안내를 시작했다.

그는 내게 제품 라인을 하나로 통일해서 쫙 까는 것이 좋다며 강하게 권유했다.

“이것저것 생각할 것 없이 저희가 센터의 미관까지 고려해 동선 배치를 다 해드립니다. 보기 좋은 떡이 먹기도 좋다고, 역시 풀 패키지로 가는 게 모양새가 제일 예쁘죠.”

하지만 나 역시 영맨밥 좀 먹은 몸.

가만히 앉아서 고개만 끄덕거리다가 사인을 하고 가는 만만한 고객이 될 생각은 없었다.

“글쎄요. 말씀하신 패키지엔 온갖 기구들이 다 들어있네요. 슈러그 머신은 공간만 차지할 것 같아요. 사이드 레터럴레이즈 머신도 빼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후면 삼각근이면 모를까, 옆면이면 덤벨로 하는 게 훨씬 나으니까요. 그리고 또···”

나이도 젊고, 헬스장 운영도 처음이라고 하니 나를 띄엄띄엄 본걸까?

보험사 약관 읽듯 기관총처럼 말을 뱉던 최 이사는 오히려 내가 조목조목 꼼꼼하게 따지자 입을 닫고 고개만 주억거렸다.

“한 라인으로 통일하는 것보다 M 머신이랑 I 머신을 섞으려고 합니다. 가슴이랑 등 쪽은 I로, 하체랑 어깨는 M 라인으로 가려고요.”

말이 술술 나왔다.

마치 최 이사가 아니라 내가 프레젠테이션을 하는 것 같았다.

“이야. 뭐 상담해드리고 말 것도 없네요. 이미 구상을 다 해오셨으니. 그런데 세트로 안 맞추시면 구매 비용이 다소 올라갈 수도 있는데 괜찮으십니까.”

“돈은 상관없습니다.”

애초에 돈을 생각했으면 여길 오지도 않았지.

가성비가 선택의 최우선 고려대상이 되던 시절은 이제 안녕이다.

“그렇다면 당연히 사장님의 의사를 따라야죠. 그럼 다음에 도면을 한번 가져오실 수 있습니까? 모델링으로 배치도 뽑아서 같이 고민해보시면 좋을 것 같네요.”

“만약 주문하면 물건 받기까지는 얼마나 걸릴까요?”

“저희가 따로 재고를 가지고 있진 않고, 미국 본사로 주문 제작을 합니다. 일단 주문대기가 한 달 정도입니다. 그리고 제작에 2주 정도 걸립니다. 세관 통과하고 사장님 센터에 들어가기까지 석 달 정도는 기다리셔야 될 겁니다.”

“생각보다 오래 걸리네요.”

“이건 어느 분이 주문하셔도 마찬가지입니다. 태상 자동차의 장은호 회장님 아시죠?”

“...”

예상치도 못한 곳에서 뜬금없는 이름이 나왔다.

아무리 나와 상관없는 일이라며 관심을 끄려고 해도 태상은 어디서나 찾을 수 있었다.

TV 광고에서도, 길거리의 자동차에서도, 뉴스와 신문에서도.

하지만 여기에서까지 장영복 회장의 차남의 이름을 듣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내 출생의 비밀을 알고 있는 사람들.

나와 고윤아, 그리고 배다른 형제와 남매.

고윤아의 우려와 달리 태상의 이복형제들 쪽에서는 아직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한동안 예민하게 촉을 세우고 다녔지만, 일상에서 어떤 위협도 감지하지 못했다.

풍문에 떠도는 이야기로는 장 회장이 남긴 막대한 유산은 절반도 승계가 되지 못했다고 한다.

이미 제 이름으로 커다란 기업체를 하나씩 가지고 있는 장 회장의 자식들조차도 세금으로 낼 총알이 준비되지 않아 대출까지 받고 있다는 기사도 읽은 적이 있다.

그런 그들에게 분명히 나라는 존재는 목 안의 가시일 것이다.

그들은 내가 모든 진실을 알고도 여태껏 입을 다물고 있으니 안심이라도 하는 걸까.

아니면 나 따위는 신경 쓸 필요도 없다는 오만함과 자신감일까.

아니다.

나는 고개를 저어 생각을 떨쳐냈다.

누구보다도 그들과 어떠한 형태가 되었건 엮이고 싶지 않은 게 바로 나다.

그저 남은 생을 행복들로만 채워가고 싶을 뿐이다.

유산과 후계자 자리를 두고 그들이 벌이고 있을 암투, 거기는 나의 전쟁터가 아니다.

최창원 이사가 복잡한 내 머릿속의 생각을 알 리 없었다.

그는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여담이지만, 장은호 회장님이 미국 생활을 오래 하신 분이다 보니 웨이트 트레이닝에 굉장히 관심이 많으십니다. 가정 내에 홈 짐을 차리실 때도 제가 전부 디자인해 드렸습니다. 물론 그분도 주문하시고 한참 기다리신 건 마찬가지였고요.”

“··· 알겠습니다. 어차피 아직 인테리어 공사가 시작되지도 않았으니, 오히려 잘되었네요. 그럼 이대로 한다면 비용이 얼마나 들까요. 견적 한 번 내주시겠습니까?”

“예. 그럼 어디 한번 볼까요?”

최 이사는 계산기를 꺼내 들었다.

*

주차장에 세워둔 차에 올라타 시동을 걸었다.

견적가는 총 2억 4천.

머신과 스쿼트 렉, 그리고 덤벨과 바벨까지 모두 포함한 가격이었다.

추가로 다른 업체를 통해 유산소 운동용으로 쓸 스테어 클라이머를 6대 정도 구매할 예정.

헬스장을 차리는데 소요될 예산으로 최대 5억까지 생각하고 있었는데, 실내장식과 부자잿값을 모두 포함해도 그 안에서 충분히 창업이 가능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나저나 직원도 뽑아야겠네.

헬스장의 수입은 회원권과 PT 수업으로 나뉘어 있다.

PT 회원을 받으면, 트레이너와 센터가 비율로 계약을 맺어 수업료를 나눠 가지는 구조.

그만큼 믿을만한 사람과 같이 일을 해야 하는데, 내가 그나마 알고 지내는 트레이너라고 해봐야 이종탁 한 명뿐이다.

당분간은 회원권으로만 운영을 해보자.

일단은 인포를 볼 직원 2명 정도만 뽑고.

피식 웃음이 나왔다.

한영수.

월급의 노예나 다름없던 네가 이제 사장님이 되게 생겼네.

그나저나 헬스장을 오픈하기까지는 아직도 한참 남은 셈이다.

그동안 뭘 하면 좋을까.

여행이라도 한 번 다녀올까?

무엇을 해도 좋을 것이다.

아직도 내 통장에는 450억이라는 돈이 남아있다.

태상의 회장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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