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 지금이 빚을 갚을 때
“야, 한영수. 너 인마.”
이승우가 나를 찾아왔다.
쉬는 날 언제 한번 놀러 오라고, 할 말이 있다고 어제 전화를 한 참이었다.
특별히 날짜를 딱 꼬집어 말한 것도 아니었는데, 이승우는 날이 밝기 무섭게 우리 집에 찾아왔다.
녀석은 어디서 장이라도 봐 온 모양이었다.
그의 양손엔 검정 비닐봉지가 들려있었다.
승우의 팔뚝에 퍼렇게 올라와 있는 핏줄을 볼 때, 그 봉지의 무게가 상당히 묵직하다는 걸 짐작 할 수 있었다.
“뭐냐. 편한 때 오라고 했더니. 너 오늘 일 안 가?”
“오늘 쉬는 날이야, 새끼야. 그건 됐고, 너 진짜 일 그만뒀어?”
승우는 일주일에 딱 하루 평일에 쉰다. 그런데 오늘은 토요일 아닌가.
나를 위해 사장에게 아쉬운 소리를 했을 녀석의 모습이 떠올라 마음이 찡했다.
이승우는 식탁 위에 비닐봉지를 올려놓더니, 안에 들어있는 것들을 꺼내 냉장고에 옮겨놓기 시작했다.
대부분 음식 재료였다.
“뭘 그렇게 사 왔어.”
“별거 아니야. 회사 그만두면, 뭐 다른 회사로 이직이라도 하는 거야?”
“이직? 글쎄.”
“글쎄라니. 지금 그게 할 소리냐.”
승우는 바쁘게 손을 움직이면서도 입으로는 계속 잔소리였다.
“아니, 암만 다니기 더럽다고 해도 우리 같은 새끼들이 가족이 있냐, 뭐가 있냐. 한 몸 챙기려면 밥벌이는 쉬면 안 된다고.”
“나한테 너 있잖아.”
“말장난하지 말고. 새끼가.”
“너나 나나 어른이 되고 나서 한 번이라도 제대로 쉰 적이 있냐. 발바닥에 땀이 나도록 죽어라 뛰어만 다녔지. 너 비행기 타본 적 없지?”
“촌놈이냐. 비행기 타령은. 난 은주랑 제주도 가봤거든?”
“그랬나? 난 이번에 태어나서 비행기 처음 타봤어.”
“비행기···? 어디 갔다 왔어?”
“일본 다녀왔어.”
“일본? 거긴 왜?”
“그냥··· 바람 좀 쐬고 온 거지. 너 주려고 일본에서 선물 좀 사 왔어. 이따 가져가라.”
이승우는 손을 멈추더니 내 앞으로 다가왔다.
녀석은 소파에 앉아있는 나를 마주 보고 바닥에 양반다리를 하고 앉았다.
“너 나 좀 봐봐.”
승우는 세상 큰일이라도 난 것처럼 심각했다.
“너 저번에 봤을 때도 그렇고 이상해. 갑자기 비싼 데를 데려가서 소고기를 먹이질 않나.”
“징그럽게 왜 그래. 얼굴에 빵꾸나겠다.”
“너 설마··· 나쁜 생각하는 거 아니지? 막 자기 주변 신변 정리하고···”
“미쳤냐.”
“그럼, 앞으로 계획은 뭔데?”
이승우는 자기방어적인 본능이 강한 친구였다.
누구보다도 내가 가장 잘 안다.
속은 누구보다도 여리고 따뜻한 녀석이다. 하지만 그 선량함이 혹시나 남들 눈에 만만함으로 비춰질까봐 일부러 투박하고 거친 말투로 본심을 감추고 살아온 이승우다.
그런 그가 지금 내게 꽁꽁 싸매어 놓은 자신의 진심을 드러내 보이는 것이다.
“계획 없는데?”
“이 새끼가 진짜 갑자기 미치기라도 했나. 아니, 자애 복지원의 악바리가 왜 이래.”
나는 열을 내는 이승우의 모습이 재밌어서 빙그레 웃었다.
이승우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웃는 낯에 침 못 뱉는다고. 일단 밥 먹자. 너 해주려고 재료 좀 사 왔어.”
“뭘 귀찮게 요리를 해. 대충 시켜 먹자. 내가 살게.”
“야 새끼야!”
자리에서 일어난 이승우는 내게 버럭 화를 냈다.
“내가 배달 음식 빼먹는 양아치도 아니고, 지금 너한테 뭘 얻어먹을 상황이냐. 가만있어. 금방 해줄 테니까. 볶음밥 괜찮지?”
주방 앞에 선 이승우는 솜씨 좋게 요리를 준비했다.
능숙한 칼질 하며, 프라이팬 다루는 요령을 보니 확실히 이젠 한 식당을 책임지는 주방장이라고 불릴 만했다.
집 안에 고소한 기름 냄새가 퍼지는 듯 싶더니 승우는 금세 식탁 위에 고슬고슬한 볶음밥 한 그릇을 올려놓았다.
“정말 맛있네.”
한 숟가락을 입에 떠넣은 내가 칭찬을 하자, 이승우는 멋쩍은 듯이 고개를 돌리고 헛기침을 했다.
“왜 내 것만 했어? 너는.”
“난 아침 먹고 나왔다.”
“뭐 좀 물어보자. 승우, 넌 지금 하는 일이 재밌어?”
“일 재밌어서 하는 사람이 어딨냐. 그래도 뭐 지금 너처럼 내 음식 먹고 맛있다고 하는 손님들이 있으면 기분이야 좋지. 시팔, 좀 창피한 이야기인데 나 우리 가게 인터넷에 검색해보고 그래. 사람들이 뭐라고 평가하나.”
“··· 아직도 네 가게를 가지겠다는 꿈은 변함없지?”
내 질문에 이승우의 눈이 반짝이기 시작했다.
승우의 검은 눈동자는 우주였고, 그 우주 안에 무수한 별들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그럼. 몇 년 안에 꼭 차릴 거야.”
“가정용 주방에서도 이렇게 맛나게 만드는 거 보니까, 진짜 네 가게 해도 되겠다.”
“음식이야 자신이 있지. 그렇지 않아도 은주랑 열심히 모으고 있어.”
“제수씨가 참 알뜰하지. 좋은 여자야.”
“내가 비록 고졸이지만, 넥타이 맨 직장인들보다 훨씬 돈 잘 번다고. 은주도 애가 억척이 기질이 있어서 통장에 그래도 큰돈 찍혀있다.”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이승우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승우의 돈은 결코 쉽게 모인 것이 아니다.
모두가 잠들어 있는 새벽의 공기를 마시며 출근했고, 퇴근까지 무릎 한번 굽히기 어려웠다.
“말 나와서 하는 말인데, 넌 진짜 여자 안 만나냐. 은주 친구 중에 진짜 괜찮은 애 있어. 내가 소개팅 한 번 시켜줄까.”
“됐어. 나 이제 백수라니까. 백수를 누가 만나주냐.”
“아니. 그러니까···”
또 한 번 이승우의 입에 잔소리가 장전되었고 곧 나를 향해 무차별 사격이 시작될 것 같았다.
나는 식탁 의자에서 벌떡 일어나 다 먹고 빈 그릇을 설거지통에 넣으며 그에게 말했다.
“승우야. 잘 먹었다. 우리 나가자. 잠깐 갈 곳이 있어.”
*
“뭐야, 여기는 왜 오자고 했어?”
이승우와 나는 내가 구매하기로 마음먹은 송림 프라자 건물 앞에 섰다.
이미 계약금은 넘어간 상황.
고윤아 변호사와 만나 건물주에게 잔금을 치르고 등기만 마치면 이 건물은 내 것이 된다.
“여기 건물 어때 보이냐.”
“뭐 건물이 다 똑같은 건물이지.”
“넌 너 장사 할 거라는 놈이··· 잘 좀 봐봐.”
내 말에 이승우는 코밑을 한번 훔치더니 주변을 잠시 두리번거렸다.
“뭐, 근처에 역도 있고 사람들도 많이 오가네. 회사원 복장인 사람들 많이 돌아다니는 것 보니 식당 한다면 점심 장사도 제법 재미가 있을 것 같고.”
“그래?”
어디 그럼 이제 녀석을 깜짝 놀라게 할 긴급 발표를 해볼까.
“승우야. 이 건물 이제 내 거가 될 거야.”
“어, 그래. 대박 나서 꼭 사라.”
내 말에 이승우는 심드렁하게 답했다.
“아니. 정말로 내가 살 거라고. 이제 곧. 이미 계약금은 줬어.”
“··· 어?”
이승우는 무슨 외계어라도 들은 듯이 멍한 표정이었다.
녀석은 턱이 빠질 듯이 입을 벌린 채 나를 바라보았다.
얼었던 그의 몸이 다시 녹기까지는 한참의 시간이 필요했다.
“구라 치지마.”
“서른 넘어서 구라가 뭐냐. 진짜야.”
“··· 진짜?”
“그렇다니까 몇 번을 말해.”
“너 무슨 코인 같은 거라도 하고 있었어? 그런 거 안 좋아하잖아.”
나는 이승우에게 가까이 다가오라며 손짓을 했다.
그가 내 곁으로 다가오자 나는 귀에 대고 속삭였다.
“··· 사실 나 로또 맞았어.”
미안해. 승우야.
한 번만 너에게 거짓말할게.
“으하하하!”
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이승우는 실성한 듯이 웃어젖혔다.
그러곤 그는 나를 덥석 껴안았다.
“한영수! 역시 너는 계획이 다 있었구나!”
제 일인 것처럼 나를 껴안고 방방 뛰는 이승우.
거기에는 손톱만큼도 시기와 질투는 조금도 묻어있지 않은 진심만이 있었다.
대낮, 거리 한복판에서 벌어진 시커먼 두 남자의 포옹을 행인들은 곁눈질로 이상한 듯이 바라보았다.
“잘됐다. 정말 너무 잘됐다.”
나를 결박하던 두 손을 푼 뒤에도 이승우의 함박웃음은 그칠 줄 몰랐다.
마치 오늘이 자기가 태어나 가장 행복한 날이라는 것처럼.
“아니, 근데 요즘 로또 1등으로 건물을 살 수 있어?”
조금 진정이 되었는지, 곰곰이 생각하던 이승우가 나에게 물었다.
“로또 된 걸로는 부족하지. 나머지는 어떻게 구했다. 걱정할 거 없으니까 그냥 그렇게만 알고 있어. 그래도 월세 받는 거에서 이자 퉁치면 직장생활을 하는 것보단 훨씬 낫다.”
이것도 하얀 거짓말이라고 할 수 있을까.
남의 돈은 1원 한장 안 들어갈 순도 100%의 내 자산.
승우를 못 믿는 건 절대 아니었다.
차호영 신부님과 승우는 세상에서 내가 유일하게 믿는 두 사람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니까.
하지만 아득한 금액의 돈 앞에서는 그 믿음의 고리도 나약해질 수 있다.
그런 서글픈 상황은 어떻게든 피하고 싶다.
내 사람들은 돕는 일은 무기명으로 자애 보육원에 5억원을 후원했던 것처럼 최대한 티나지 않는 방식으로 하려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내 출생의 비밀.
그것만은 무덤까지 가지고 가고 싶었다.
어쨌든 나의 중대 긴급 발표는 여기가 끝이 아니었다.
이승우의 말마따나 나에겐 계획이 있었다.
나는 승우의 손목을 잡고 그를 끌어 1층의 비어있는 공실로 향했다.
“야, 이승우. 너 여기서 장사할래?”
“··· 뭐?”
“네 꿈 말이야. 내가 도와줄게. 월세 안 받을 테니까 한번 해봐. 원래 식당이 들어와 있었다더라고. 그래서 인테리어 짜긴 어렵지 않을 거야. 아직 좀 남은 현금도 있으니까 가게 차릴 때 어려우면 말해.”
제기랄.
내 말을 듣더니 그 산적 같은 놈의 눈에서 닭똥같은 눈물이 뚝뚝 떨어지기 시작했다.
“야. 너 지금 우냐.”
“새끼. 울긴 무슨···”
이승우는 아이처럼 손을 들어 눈가를 훔쳤다.
“이거 꿈 아니지? 살다 보니 이런 일도 있구나···”
나는 주먹으로 이승우의 어깻죽지쯤을 툭 쳤다.
녀석은 아야야··· 엄살을 부렸다.
“아프지? 꿈 아니야.”
“그래. 헬창이 때리니까 진짜 아프다. 이 새끼야.”
손으로 공실의 벽을 이리저리 감격스럽게 더듬던 이승우가 나를 돌아보았다.
“야. 아무리 네 건물이고 임대료 받아도 너 어디서 빌렸든 이자 나갈 거 아냐. 나 돈 있어. 최소한의 도리는 해야지.”
“됐어. 사실 넌 이미 나한테 월세 미리 다 냈어.”
“뭐? 내가 언제.”
“자애 복지원에서 마지막 날 기억 안 나? 나한테 돈 봉투 던지고 간 거.”
“몰라. 내가 그랬었나?”
이승우는 기억 안 나는 척 딴청을 부렸다.
“모르는 척하긴. 그때 네가 나한테 200만 원 주고 갔잖아. 나중에 성공해서 갚으라고. 지금이 그때인 거지.”
“새끼야! 내가 열 배로 갚으라고 그랬지 언제···”
거봐. 다 기억하고 있으면서.
“승우야. 장사 시작하고 자리 좀 잡히면 제수씨랑 결혼해.”
“...”
“우리도 이제 뿌리를 내리자. 더 이상 과거에 사로잡혀 이방인처럼 헤매지 말자.”
“그거 배운 놈이라고 말도 참 더럽게 멋있게 하네···”
이승우의 눈에는 또 한 번 눈물이 고였다.
하지만 그의 입은 너무나 행복하게 웃고 있었다.
8월의 복숭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