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 과거와의 작별
“손님 여러분, 우리 비행기는 인천 국제 공항에 도착했습니다. 비행기가 완전히 멈춘 후 좌석벨트 표시등이 꺼질 때까지 자리에서 기다려 주시고 선반을 여실 때는···”
곱창집 사건 이후 퇴사를 한 지 어느덧 이주가 지났다.
20대 거의 전부를 보낸 직장에서 나온 짐은 고작 종이 박스 1개 분량이 전부였다.
모두와 인사를 나누는 와중에도 임 차장은 의자를 뒤로 돌린 채 입을 꾹 닫고 나를 외면했다.
내가 퇴사를 하고 난 뒤에도 며칠간은 영업팀의 누구에게도 말 한마디 걸지 않았다고 한다.
이건 후일담이지만, 임 차장은 굳이 내가 더는 손을 쓸 필요도 없었다.
그날 곱창집 사건은 아주 우습게 전개되었다.
식당 앞을 지나가던 누군가가 열려있던 가게 문 앞에서 그날의 일을 동영상으로 촬영한 모양이다.
그 영상이 인터넷상에 퍼졌고 임 차장은 건장한 내 체격과 대비되어 ‘소주병을 들고 돌진하는 잡몹’이란 밈이 되어 한동안 우스꽝스러운 유명세를 떨치게 되었다.
그리고 나와 그의 얼굴은 모자이크 처리가 되어 있었지만, 회사 직원들이 우리를 못 알아볼 리 없었다.
일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내부직원들이 임 차장에 대해 아무리 성토를 토해내도 귓등으로도 듣지 않던 정식 모터스의 사장 김정식 씨.
하지만 구체적인 일화들과 함께 그 잡몹이 악명높기로 소문난 개차반이라는 썰이 SNS상에 퍼졌다.
아마도 회사 내 누군가의 고발이었던 것 같다.
경이적인 임 차장의 행적에 사람들은 분노를 쏟아냈고, 마침내 그 소식을 알게 된 사장은 회사까지 쌍으로 욕받이가 될까 봐 겁부터 먹었다.
김영하에게 들은 바로는 정식 모터스의 사장은 꼬리 자르기로 임 차장을 저 멀리 지방의 작은 대리점으로 전출시켜버렸다고 한다.
이번 일로 임 차장이 뭔가 깨달은 게 있을까?
글쎄. 제 본성이 어디 갈까.
애초에 자기가 잘못되었다는 생각조차 못 하는 인간이니까.
그래도 이제 더는 미친개처럼 날뛰지는 못할 것이다.
회사에서 자기가 믿는 유일한 빽으로부터 손절을 당했으니.
“오늘도 저희 한국항공을 이용해주셔서 대단히 감사합니다. 저희 승무원은 앞으로도 안전하고 편안하게 여행하실 수 있도록 정성을 다하겠습니다.”
2박 3일간 나는 한국 땅을 떠나 있었다.
지금 막 짧은 여행을 마치고 인천공항에 도착한 참.
회사를 그만두고 내가 가장 먼저 한 것은 일본을 다녀오는 일이었다.
해외여행은커녕 제주도도 한번 가본 적이 없으니 여권부터 만드는 게 시작이었다.
일본에는 놀러 간 것은 아니었다.
확실한 목적이 있었다.
바로 내 생모의 묘를 찾아가기 위해.
장 회장으로부터 받은 어머니의 사진.
그 사진 뒤에는 주소가 하나 적혀있었다.
어떤 다른 설명도 없었지만, 그곳이 내 어머니가 잠들어 있는 곳이라고 직감했다.
하지만 그곳으로 가는 길은 결코 쉽지 않았다.
물리적 거리는 문제가 아니었다. 내 마음의 거리가 문제였다.
본 적도 없는 어머니의 죽음을 내 두 눈으로 확인해야 한다는 사실에 일본행 비행기표를 끊는 그 순간까지도 끝없이 번뇌했다.
생모의 묘소는 오사카 북쪽 외곽에 있었다.
야트막한 산세가 참 좋은 곳이었다.
때마침 계절이 계절인지라 단풍까지 절정이었다.
어머니의 비석이 세워진 곳은 누군가 꾸준히 관리해온 모양이었다.
주변에 잡초 하나 없이 정갈했다.
내 키의 반만 한 비석에는 읽을 수 없는 히라가나 글자 아래 작게 한글이 새겨져 있었다.
사람의 이름이었다.
강은미.
일본 땅에 발을 디뎠을 때만 해도 어느정도는 무덤덤한 기분이었다.
어쩌면 해야 할 일은 하는 것이라는 의무감이 마음 구석에 자리를 잡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비석의 그 이름을 손으로 훑자 복잡한 감정이 북받쳐 올라왔다.
울분이자 슬픔이었고, 그리움이었다.
한국식으로 소주를 비석 주변에 조금 뿌리고 준비해간 과일을 앞에 차렸다.
절을 한번,
그리고 두 번···
나는 두 번째 절에서 몸을 일으키지 못했다.
머리를 땅에 닿을 듯이 숙인 채 입을 열었다.
“··· 어머니라고 불러도 돼요?”
내 물음에 대한 대답은 영원히 들을 수 없을 것이다.
아무리 억눌러보아도 요동치는 마음을 진정시킬 수 없었다.
“평생 기다렸어요. 날 만나러 와주기를.”
주체할 수 없었다.
내 입은 화산이었고, 말은 용암이었다.
32년간 마음 깊이 숨겨왔던 말이 뜨겁게 올라왔다.
“미워했어요. 아니, ··· 사실은 미워하지 않았어요. 그냥··· 너무 보고 싶었어요.”
모든 체액을 흙바닥에 쏟아내기라도 할 듯 눈물이 주룩주룩 얼굴을 타고 흘러내렸다.
나는 두 눈을 꾹 감고 있었다.
시야가 거세된 어둠 속에서 환상처럼 두 사람의 모습이 보였다.
여자, 그리고 아이.
작은 아이는 아름다운 여자의 손을 다시는 놓치지 않겠다는 듯 꼭 잡고 있었다.
나는 아이를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그 작은 아이는 다름 아닌 바로 나였다.
아이는 내게 몇 번 손을 흔들어 보인 뒤 여자와 함께 멀어져 갔다.
그들은 두 무릎을 땅에 대고 있는 나를 걱정하듯 몇 번씩이나 고개를 돌렸다.
눈을 뜨자 나는 다시 세상으로 돌아왔고, 두 사람은 내 앞에서 자취를 감췄다.
나는 어머니의 비석을 향해 다짐했다.
아직 아버지를 완전히 용서할 자신은 없다고.
그리고 그게 언제가 될지도 모르겠다고.
다만 그의 마지막 부탁만은 잊지 않겠다고.
“··· 당신께서 양보해준 삶은 반드시 의미 있게 살겠습니다.”
*
“어! 행님!”
“응. 종탁이, 오랜만이네.”
나는 정말 오랜만에 헬스장을 찾았다.
그러고 보니 운동을 시작하고 이렇게까지 오래 쉬어본 적이 없는 것 같다.
명절 때도 여는 헬스장을 찾아 일일권을 끊고 운동할 정도로 웨이트 트레이닝을 좋아하는 나다.
··· 뭐, 명절 때면 마땅히 갈 곳이 없었기도 했지만.
지금 카운터에서 나를 보고 부리나케 뛰어나와 반기는 이 친구의 이름은 이종탁.
29살의 이종탁은 내가 다니는 헬스장의 트레이너이자 경량급 보디빌딩 선수로 활약하고 있었다.
“아니, 행님 요즘 하도 안 보이길래 다른 헬스장으로 옮긴 줄 알았어요.”
“아니야. 좀 정신없이 바빴어.”
“그런데 이 시간에 어쩐 일로···?”
지금 시간은 오후 두 시.
평범한 직장인이 헬스장을 오기엔 적절한 시간이 아니다.
직장을 그만두고 새삼 놀라게 된 것은, 나의 하루에 이렇게 풍족한 여유가 있었다는 것이다.
한없이 늘어지는 걸 막기 위해 회사 생활 할 때와 같은 시간에 자고 일어나긴 하고 있다.
하지만 더 이상 시간에 쫓기지 않는다.
뭘 해야 한다는 부담이 없으니 침대에 가만히 누워있기만 해도 절로 웃음이 나왔다.
“아··· 행님, 알겠다. 행님 연차 쓰시고 헬스장 오신 거죠? 역시 진정한 헬창이십니다.”
곰곰이 생각하던 이종탁이 알겠다는 듯이 손뼉을 쳤다.
명백한 오해이지만, 나는 대답 대신 웃음으로 대꾸했다.
“오늘 뭐 하시려고요?”
“글쎄다. 오랜만에 왔으니까 가볍게 하체 좀 할까?”
“제가 보조 좀 쳐 드릴까요?”
“아니야. 오늘은 그렇게 무게 안치고 할 거야. 넌 수업 없어?”
“예. 오늘 세시까지는 수업 없어요.”
간단하게 몸을 풀고 스쿼트 렉 앞에 섰다.
빈 봉을 어깨에 얹고 몇 번 앉았다 일어나니 허벅지에 피가 몰리면서 근육에 데워지기 시작했다.
웨이트 트레이닝은 나에게 많은 것을 주었다.
건강한 육체뿐만이 아니라 인내와 자제를 배울 수 있었다.
나를 죽이지 못하는 것은 나를 더욱더 강하게 만들 뿐이다.
오그라들지만, 이걸 인간이 어떻게 버티나 할 정도의 무게를 들어 올리며 항상 저 말을 되뇌었었다.
무엇보다 좋은 건 운동하는 시간만큼은 머릿속의 잡념이 모두 사라지고 일상의 고민을 떨쳐낼 수 있었다는 것이다.
“윽━”
원판을 몇 장 끼워가며 무게를 올릴수록 꽉 깨문 이 사이로 신음에 가까운 소리가 새어 나오기 시작했다.
지금 내 어깨 위에 얹어진 바벨의 무게는 120kg.
딱 5개만 채우자고 온몸의 힘을 다 짜내어보았지만, 고작 4번의 왕복 운동 끝에 바벨을 렉 위에 다시 올려놓았다.
와, 한 달 쉬었다고 무게가 이렇게 주나.
근력운동은 참 어렵다.
스쿼트 120kg쯤은 8번 9번도 뚝딱이었는데, 고작 조금 쉬었다고···
인간의 몸이라는 것은 이렇게 잠시만 긴장을 놓쳐도 금방 나태하던 때로 돌아가려고 한다.
렉 앞에 서서 호흡을 가다듬고 있을 때, 휴대전화에 알림음이 울렸다.
- 고객님의 계좌 [110-***-942413]로 5,200,000원이 입금되었습니다.
아파트 월세가 입금이 되었구나!
아무런 노동도 없이 500이라는 적지 않은 돈을 받자 묘한 기분이 들었다.
전에 샀던 시계 값은 얼추 내가 원래 가지고 있던 돈과 퇴직금으로 충분히 충당되었다.
결국 내가 받은 유산은 하나도 줄어들지 않고 오히려 늘어난 셈이다.
“행님. 누가 운동 중에 그렇게 휴대전화를 봅니까.”
카운터에서 빈둥대기가 심심했는지 이종탁이 내게 다가와 말을 걸었다.
“그나저나, 영수 형. 진짜 생체자격증 안 따실 거예요?”
생활체육지도자 2급 자격증.
이종탁은 언제부턴가 내게 그 자격증 하나 따는 게 어떻겠냐고 연신 권유를 해댔다.
자기가 이제 PT 샵을 차릴 건데, 저녁 몇 타임 수업만이라도 나에게 맡기고 싶다는 거였다.
물론 내게 운동은 그저 취미이고 자기 수양의 일종일 뿐이다.
이걸로 돈을 벌겠다는 생각은 해본 적 없었기에 이종탁의 말을 늘 한 귀로 듣고 흘렸다.
“자격증은 무슨. 나 그 정도 아니야. 그건 그렇고 넌 PT 샵 차린다는 건 잘 되어가?”
“아··· 그게.”
이종탁의 이맛살이 찌푸려졌다.
“요즘 금리가 올랐잖아요. 대출받아서 차려야 하는데 계산기 때려보니까 이자값이 감당이 안되더라고요.”
또 금리인가.
얼마 전 은행장이랑 나눴던 대화가 떠올랐다.
“얼마나 들 것 같은데? 이거 쇳값도 무시 못 할 텐데?”
“음··· 크게 할 거는 아니니까 2억 정도 생각하고 있었어요.”
“2억? 그거 생각보다 얼마···”
생각보다 얼마 안 드네?
이 말을 하려다 입을 틀어막았다.
아서라, 한영수 너 벌써 건방 들어서 올챙이 적 시절 잊으려고?
“머신은 폐업한 헬스장에서 중고로 사면 싸게 들여놓을 수 있어요. 도색만 새로 깔끔하게 하면 되니까. 신품은 아쉬운 대로 국산 업체들 잘 찾아보면 가성비 좋은 것들도 나오고.”
이종탁은 자기의 사업 계획에 대해 신이 나서 한참 떠들었다.
“그나저나 행님, 나중에라도 나 꼭 차릴 거니까 그땐 저녁때 잠깐 알바한다고 생각하고 나와서 도와줘야 합니다. 알겠죠?”
나는 이종탁을 향해 웃으며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았다.
“행님이 와서 일하면 여자 회원들이 줄을 설 거란 말이지. 어,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되었네? 영수 형, 저 회원님 오실 시간이어서 그만 가볼게요.”
문산 아파트의 월세 수익, 그리고 이종탁의 말.
두 가지가 겹치며 어떤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 건물을 하나 살까.
예전이라면 그저 어설픈 잠자리의 몽상에 지나지 않았을 생각.
하지만 지금은 마트에서 물건 사듯 얼마든지 실현 가능한 일이었다.
생각은 점점 살이 붙어갔다.
어차피 부동산은 자산으로 남아있는 거니까 월세 수익을 늘리는 거지.
그리고 그 건물 꼭대기에 헬스장을 하나 차리는 거야.
내가 좋아서 하는 사업!
머신은 국산 제품도 요즘 잘 나온다지만 아직은 미국산 못 따라오지.
해머 사이언스로 쫙 깔자.
이쪽 계통에선 명품이라고 할 수 있는 해머 사이언스 라인으로 도배가 된 헬스장을 상상하자 주책맞게도 가슴이 콩닥콩닥 뛰기 시작했다.
건물주 한영수 (수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