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 이승우
2010년, 동장군의 기세가 꺾이고 막 봄이 움트기 시작한 어느 날.
“영수야. 빠트린 건 없겠지?”
“예. 신부님.”
“이리 와라. 한번 안아보자.”
차호영 신부는 이제 곧 대학생이 되는 한영수를 꼭 안아주었다.
“그동안 고생 많았다. 알아서 잘하겠지만 학교 가서도 공부 열심히 하고.”
차 신부는 둥지 밖으로 날개를 펴는 어린 새를 보는 어미의 심정이 되어 뿌듯함과 걱정이 뒤섞인 눈으로 한영수를 바라보았다.
“걱정하지 마세요.”
“그래. 믿는다. 그래도 힘든 일이 있을 땐 언제든 나에게 꼭 연락해야 한다. 알겠지?”
한영수의 어깨를 몇 번 두드려주고선 차 신부는 방을 나갔다.
“후.”
한영수는 자신의 작은 방을 쭉 훑어보았다.
고 3이 되자 공부에 집중하라며 차 신부가 자신의 서재로 쓰던 공간을 통째로 내어주었었다.
이제 세상으로 나가는 첫발을 떼었다는 생각에 절로 감상에 젖게 되는 한영수였다.
짐이라고 해봐야 커다란 상자 3개를 채울까, 말까였다.
“야. 한영수.”
마저 남은 짐을 꾸리고 있을 때, 누군가 방문턱 밖에서 한영수를 불렀다.
이승우였다.
이승우는 20살 성인이 되기가 무섭게 따로 방을 구해 이미 보육원을 나간 터였다.
“왔냐?”
한영수가 굽혔던 허리를 피고 그를 돌아보자, 이승우는 잇몸이 활짝 드러나게 웃었다.
이승우는 제 몸보다 훨씬 큰 색바랜 항공 잠바를 입고 있었다.
“진짜 가는구나. 새끼, 강원도 가서 옥수수 많이 먹어라.”
“넌 뭐 알지도 못하는 게. 거기가 여기보다 훨씬 도시거든.”
이승우는 방을 한 바퀴 돌며 이삿짐들을 슬쩍 들여다보더니 매트리스에 털썩 엉덩이를 대고 앉았다.
“그래도 대단하다. 그렇게 공부 열심히 하더니 대학을 가는구나.”
“지금이 80년대도 아니고 대학 아무나 가는 거지 뭐··· 그래봐야 지방대인데.”
말을 뱉고 나자 자기가 생각 없었음을 깨닫고 아차 싶은 한영수였다.
이승우는 고등학교 때부터 많은 아르바이트를 했었다.
자연히 공부와는 멀어졌고 졸업과 동시에 어느 중화요리 집에서 주방보조로 자리를 잡은 참이었다.
한영수는 그런 친구에게 대학, 그까짓 거 아무나 간다는 말은 상처가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퍼뜩 들었다.
“신부님한테 나도 다 들었거든. 그래도 국립대잖아. 그리고 너 서울에 있는 대학 충분히 가고도 남는데, 장학금 때문에 지방으로 간다며. 학교에서 기숙사비까지 다 내준다면서? 대박이네.”
“넌 어때? 일은 할 만해? 힘들지.”
이승우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던 한영수는 재빨리 화제를 돌렸다.
한영수의 말에 이승우는 킁 하며 코를 들이마셨다.
“지금은 꼴랑 설거지만 열심히 하는 거지. 내 손 좀 봐라, 주부습진 걸려서 다 텄어.”
한영수는 짐 상자를 잠시 뒤적거리더니 핸드크림을 하나 꺼내 이승우에게 던졌다.
“이거라도 바르면서 일해라.”
“땡큐. 그래도 어깨너머로 훔쳐보고 있어. 내가 평생 그릇이나 닦을 줄 알고? 난 있잖아. 기름에 재료 볶을 때 한 번씩 웍에 불이 확 올라오면 그게 그렇게 멋있더라. 두고 봐. 나도 언젠가 꼭 내 가게 차릴 거니까.”
받아든 핸드크림을 열심히 바르며 이승우가 말했다.
“너 가게 차리면 나 짜장면은 평생 공짜냐?”
“중국집은 짬뽕이지 새끼야.”
한영수와 이승우는 가벼운 욕설과 몸싸움을 섞어가며 한담을 나눴다.
“야, 이거 받아.”
이승우는 제 잠바의 주머니에서 하얀 봉투 하나를 꺼내더니 한영수에게 무심하게 건넸다.
“뭔데 이거? 나한테 편지라도 썼냐?”
“미쳤냐? 토 나오는 소리 좀 하지 마.”
한영수는 제법 두께감이 느껴지는 봉투를 열어보았다.
돈이었다.
족히 이백만 원은 될 것 같았다.
“너 이게 뭐야?”
“봤잖아. 돈이지 뭐야.”
한 달 내내 주방에서 고생하고 백이십 벌이를 하는 이승우에게 이게 어떤 돈일지 쉽게 짐작되는 한영수였다.
“니가 무슨 돈이 있다고 이걸 날 줘. 가져가. 나 돈 쓸 일 없어.”
돈 봉투를 돌려주려고 하자 이승우는 앉았던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돈 쓸 일이 왜 없어. 대학 가면 여자친구도 사귀고, 새끼야. 술도 좀 마시고 해야지. 그리고 그냥 주는 거 아니다.”
“야···”
“내가 아는 사람들 중에서 영수 네가 제일 똑똑하거든? 나중에 꼭 성공해서 딱 열 배로 갚아. 알겠지?”
*
“어머, 영수 씨.”
“사장님. 안녕하세요.”
끈적한 목소리로 나에게 다가온 여자는 공화루의 사장 정옥빈.
41살인 그녀는 6년 전에 남편과 사별한 뒤 죽은 남편으로부터 이곳을 물려받아 운영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 여자. 장사수완이 보통이 아닌지, 식당이 날로 번창했다.
물론 거기에는 이승우의 손맛도 크게 한몫했고.
이승우는 4년 전 다른 가게에서 일하다 정 사장의 스카웃을 받아 공화루로 자리를 옮기게 되었다.
몇 번 놀러 오다 보니 그게 인연이 되어 나와 정옥빈이 안면을 트게 된 것이다.
“영수 씨. 누나라고 하라니까. 정 없이 무슨 사장님이야. 왜 이렇게 오랜만에 와. 우리 주방장이랑 싸웠어?”
정 사장은 은근슬쩍 내 팔뚝을 툭 치며, 입을 가리고 웃었다.
“싸우긴요. 승우 바빠요?”
“이제 손님들 다 나가시고 주방 정리하고 있을걸? 앉아봐. 뭐라도 좀 먹을래? 영수 씨 올 줄 알았으면 예쁜 옷이라도 입고 있을걸.”
아이고, 아주 꽈배기처럼 몸을 배배 꼬는 꼴이 나름 볼만했다.
정 사장과는 이승우까지 셋이서 몇 번 따로 식사한 적이 있다.
대놓고 내게 추파를 던지는 그녀가 심히 부담스럽긴 했지만, 심성 자체가 나쁜 여자는 아니었다.
“야! 한영수!”
그때, 가게 구석 주방 쪽에서 이승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녀석은 쓰고 있던 조리모를 테이블에 내려놓곤 나에게 다가왔다.
“인마. 사장님 목소리 톤 두 개는 높아진 거 보곤 너 온 줄 바로 알았다. 말도 없이 웬일이야.”
“말도 없긴. 몇 번 전화했는데 받지도 않더만.”
“응. 오늘 손님이 많아서 전화기 볼 시간도 없었다.”
나와 승우를 번갈아 바라보던 정옥빈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
“··· 어쩜, 둘이 친구인데 생긴 게 이렇게 달라?”
“그럼 얘 데리고 장사하든지요. 얼굴로 요리하나.”
“아니, 자기는 왜 그렇게 맨날 발끈해?”
“그러니까 왜 얼굴 가지고 그래요. 사람 섭섭하게. 오늘 한번 앉아서 쉬지도 못하면서 매상 올려드렸더니.”
“어머, 그래서 내가 월급 주잖아. 자기가 이 동네 주방장 중에서 페이 제일 센 거 알지?”
“그만큼 받을 만하니까 받는 거지. 뭘.”
사장과 이승우가 툭탁거리는 모습을 보니 웃음이 슬쩍 나왔다.
앉아서 제대로 쉬지도 못했다는 말이 과언은 아닌 듯 승우의 손목에는 파스가 덕지덕지 붙어 있었다.
“야. 일은 끝난 거야?”
사장과 직원의 끝이 안 보이는 입씨름도 뜯어말릴 겸, 나는 이승우의 등에 손을 올리고 말했다.
“응. 주방 정리 조금만 더 하면 된다.”
“제수씨는? 집에 있나?”
“아냐. 오늘 부모님 댁에 챙길 것 있다고 거기서 자고 온대.”
“잘됐네. 밥도 못 먹었지? 나랑 밥이나 한 끼 하자.”
*
치이익━
불판 위에 두툼한 고기 한 덩이를 올려놓자, 바로 고소한 냄새가 코를 찔러온다.
“영수야. 너 뭐 보너스라도 받았냐. 뭘 이런 데를 오고 그래. 고기 땡기면 근처에 삼겹살집 맛있는 데도 있는데. 등심 160g에 5만 원? 이거 1인분도 안 되겠다.”
인터넷을 뒤져 찾아온 근처 고깃집.
투 뿔 한우만을 쓴다는 이곳은 가격 역시 머리에 뿔이 날 수준이었다.
“촌스럽게 좀 굴지 마라.”
“이야. 나만 빼고 세상이 참 좋은가보다. 이 가격에도 사람들이 바글바글하네.”
이승우의 말처럼 고깃집은 만석으로 발 디딜 틈도 없었다.
“돈 생각하지 말고 실컷 먹어.”
핏기가 가신 고기 한 점을 이승우의 밥 그릇 위에 올려놓으며 말했다.
“그래? 그럼 나 진짜 눈치 안 보고 먹는다? 여기, 소주 한 병만 주세요.”
이승우는 소주를 콸콸 잔에 따라 입에 털어 넣더니, 쌈을 하나 크게 싸 입에 넣고 우물거렸다.
“넌 안 마셔?”
“나 차 가지고 왔잖아.”
“왜, 한잔해. 대리비 줄게.”
“됐어. 그나저나 제수씨는 잘 지내지?”
이승우는 자기 여자친구와 햇수로 8년째 연애 중이었고, 3년 전부턴 동거를 하고 있었다.
잘 지내냐는 말에 승우는 그저 고개만 끄덕 끄덕이었다.
“결혼 안 하냐? 정 사장 말마따나 너 돈도 제법 벌잖아. 그러다 제수씨한테 차인다.”
“몰라. 너나 나나 결혼하면 뭐 부를 사람이나 있냐. 나중에 혼인신고라도 하든지.”
“어휴, 이 무책임한 새끼야. 술이나 마셔라.”
나는 이승우의 잔에 소주를 가득 따라주었다.
“넌 좀 어때. 그 차장인지, 과장인지 하는 새끼는 아직도 계속 지랄해?”
“··· 조만간 나 회사 그만둘 수도 있을 거 같아.”
“왜? 야, 그 새끼 내가 몰래 가서 뒤통수라도 한 대 까줄까?”
“넌 애도 아니고··· 직장 상사 때문 아니야.”
이승우는 바쁘게 움직이던 젓가락질을 멈추고 나를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너··· 무슨 일 있는 거 아니지?”
“날 그렇게 모르냐. 그 눈은 뭔데? 내가 무슨 사고 칠 사람이야?”
“...”
소주를 한잔 더 들이킨 승우는 혼잣말처럼 나지막하게 말했다.
“뭐든 힘들면 나한테 말해. 우린 피를 나눈 형제나 다름없으니까···”
소주가 두 병을 넘어가자 이승우의 몸이 시계추처럼 흔들리기 시작했다.
새벽부터 재료를 손질한다고 가게에 나갔을 텐데 취기까지 올라오니 몸이 못 버티는 건 당연지사.
“야, 일어나자 이제. 나도 내일 출근해야 하고. 내가 차로 너 집까지 데려다줄게.”
“응, 응··· 그럴까.”
차에 올라타자 승우의 몸에서 고기와 술 냄새, 그리고 어린 시절 내내 같은 방을 썼기에 익숙한 녀석의 살냄새가 섞여 풍겨왔다.
“야··· 다음에 여기 은주랑도 와봐야겠다. 고기가 입에 들어가면 살살 녹네···”
술기운에 이승우의 혀가 꼬이기 시작했다.
“그래. 잘해줘. 내가 봤을 땐 제수씨만 한 여자 없어.”
“잘해야지. 진짜 잘해야지 내가··· 근데, 있잖아. 영수야.”
“왜?”
녀석은 한참 동안 말이 없었다.
“아까 결혼 이야기했잖아.”
“그래. 했지.”
“··· 나 사실 겁나.”
자동차는 빨간 신호에 걸려 멈춰 서 있었다.
나는 고개를 돌려 이승우를 바라보았다.
어둠 속에서도 분명히 볼 수 있었다.
승우의 눈가가 불그스레한 것을.
“나도 내 부모랑 똑같으면 어떡하나··· 그 피를 그대로 물려받았는데 뭐가 다르겠냐고.”
어린 시절의 아픈 기억은 쉽게 잊히지 않는다.
승우, 너도 아직 그때의 아픔이 발목을 잡고 있구나.
“가끔 은주가 몸이 이상하다고 하면 겁부터 덜컥 나. 혹시라도 애라도 생기면··· 나도 자기 자식을 개처럼 패던 그 사람처럼 되는 거 아닌가.”
“...”
“나 은주 정말 사랑하는데. 나랑 결혼하게 되면 은주가 불행해질까 봐···”
이승우는 손을 들어 제 눈가를 훔쳤다.
“에이, 시팔. 취했나 보다. 나 저 앞에서 내려줘. 집 다 왔으니까 걸어서 들어가련다.”
차를 갓길에 대자 승우가 안전띠를 풀고 내릴 채비를 했다.
“야, 이승우.”
“응?”
“우리 행복해지자. 그럴 자격 있어. 꼭 그렇게 되자.”
“··· 새끼.”
이승우는 날 보고 씩 웃어 보이곤 손을 흔들며 차에서 내렸다.
자동차의 앞 유리로 녀석이 잠바 주머니에 두 손을 찔러넣은 채 휘적휘적 걸어가는 모습이 보였다.
마치 나에게 무심하게 돈 봉투를 던지곤 뒤돌아 방을 나서던 그 날처럼.
나도 명품 하나 사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