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차호영 신부님 (1)
경기도 북부의 한 작은 도시에 있는 자애 보육원.
내 어린 시절의 모태가 된 곳이다.
일전에 전화 통화로 신부님과 오늘 만나러 오겠다고 약속을 했었다.
어제는 거의 뜬눈으로 밤을 지새우다시피 했다.
제대로 잠이 올 리가 없었다.
새벽달이 힘을 잃고 떠오르는 태양에게 자리를 양보했을 때가 되어서야 겨우 까무룩 잠이 들었다.
눈을 다시 떴을 땐 이미 아침을 지나 시계가 열두 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잠시 마트에 들러 아이들에게 줄 선물을 사고 바로 보육원으로 차를 몰았다.
보육원과 가까운 곳에 차를 대고 입구로 향하는 언덕을 걸어 올랐다.
내 두 발로 걷기 시작한 이후부터 이 언덕을 얼마나 많이 올랐을런지.
보육원의 입구에 서서 바람에 닳아 도색이 벗겨진 낡은 현판을 손으로 더듬었다.
여기 입구에서 하염없이 오지 않을 부모를 기다리던 어린아이는 출생의 비밀을 품은 채 키가 훌쩍 커 이곳으로 돌아오게 된 것이다.
“어! 영수 아저씨다!”
보육원의 작은 운동장에서 저들끼리 소일거리를 하던 아이 중 한 명이 나를 발견한 모양이다.
아이 한 명이 나를 향해 뛰기 시작하자, 나머지도 우르르 그 뒤를 쫓아왔다.
“아저씨! 영수 아저씨!”
금세 나를 포위한 아이들은 어린 새처럼 지저귀며 춤을 추듯 펄쩍 뛰어댔다.
저번에 본 것이 1년 반은 된 것 같은데 아이들은 나를 기억하고 있었다.
“아저씨, 왜 이렇게 오랜만에 왔어요.”
“응. 정운이구나. 아저씨가 좀 바빴어. 미안해.”
“어? 우와! 아저씨. 어떻게 내 이름을 알아요?”
“정운이도 아저씨 이름을 아는데, 나도 당연히 정운이 이름을 알아야지.”
“그럼, 저는요?”
“저요! 제 이름은요?”
남자아이들은 경쟁하듯 자기 이름을 불러보라 외쳤고, 여자아이들은 수줍음이라도 타는지 두 볼이 빨개진 채 내 주위만 뱅뱅 맴돌았다.
나의 후배이자, 동생들.
다들 아픈 사연 하나쯤은 모두 가지고 있는 아이들이었다.
그만큼 상처가 많았으며 정을 그리워했다.
이 아이들은 다름 아닌 나의 과거였다.
“영수 아저씨! 그런데 그건 뭐예요? 저희 선물이에요?”
눈치 빠른 아이 중 한 명이 내가 품 안에 안고 있는 종이상자를 가리켰다.
“그래. 너희들 주고 싶어서 아저씨가 선물 가져왔어. 신부님께서 나눠주실 거야.”
“우와! 나이키 축구공이다!”
무리 중에 머리통이 하나 큰 놈은 상자 제일 위에 올려져 모습을 반쯤 드러내고 있는 축구공을 가리켰다.
“그래. 축구공이야. 집에 축구공이 없어?”
이곳에 살던 시절, 누구도 여기를 보육원이라고 말하지 않았다.
신부님께서 자애 보육원을 항상 하느님의 사랑스러운 자녀들이 사는 집이라고 말씀하시기도 했지만, 그것보다는 보육원이라는 단어를 입에 담는 순간 스스로를 고아로 인정해버리는 것 같아 겁이 났는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보육원을 집이라고 불렀다.
“하나 있는데, 빵꾸나서 못 써요. 근데 아저씨 있잖아요. 동일이가 학교에서 축구공 하나 몰래 가져왔거든요. 근데 신부님한테 걸려서 엄청나게 혼났어요.”
“누구야. 동일이가. 지금 여기 있어?”
“쟤예요. 쟤.”
아이들이 손가락이 금세 한 명을 찍어냈다.
“형들이 집에서 축구하고 싶다고 그랬잖아. 같이 놀아놓고선.”
동일이는 얼굴이 새빨개져 나와 아이들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새된 목소리로 제 입장을 항변하는데, 금세라도 눈에서는 눈물이 떨어질 것 같았다.
“동일아. 이리로 와봐.”
녀석은 내 부름에도 신발 끝으로 흙바닥을 비빌 뿐 제자리에 가만히 서 있었다.
“빨리. 아저씨한테 오지 않고.”
내가 손짓까지 하며 한 번 더 부르고 나서야 아이는 시장에 끌려가는 소처럼 느릿느릿 나를 향해 다가왔다.
나는 들고 있던 상자를 땅에 내려놓고 몸을 숙여 내 곁까지 다가온 아이와 눈을 맞췄다.
“동일아. 남의 물건에 손을 대면 안 되지. 그건 잘못된 행동이야.”
동일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혼이 날까, 아니면 나에게 미움을 받을까 겁이 났던 아이는 외려 내가 다정한 목소리로 말하자 참았던 울음을 터트려버렸다.
“··· 그냥 학교 운동장에 있던 건데··· 형들이 축구공 망가졌다고 그래서···”
“알아. 동일이가 형들 생각해서 그런 거. 하지만 축구공을 잃어버리고 속상했을 학교의 친구도 생각했어야지. 앞으로 다시는 그러지 않을 거지?”
“··· 잘못했어요.”
“자, 아저씨랑 약속하자.”
내가 새끼손가락을 내밀자 동일이는 눈물을 훔치고는 자기의 작은 손가락을 내게 걸었다.
나는 아이를 꼭 안아주었다. 동일이의 가는 팔이 내 겨드랑이 안쪽으로 파고들었다.
어린 시절 같은 잘못을 해도 다른 평범한 아이들보다 더 크게 혼이 났었다.
그러다 보니 어느 순간 알게 되었던 것 같다.
대놓고 드러난 차별은 없더라도 교사도 학부모들도 심지어 동갑내기 친구들조차도 내 환경을 곱지 않게 본다는 걸.
같은 원생 중 어떤 아이들은 그런 시선을 참지 못하고 엇나가기 시작하더니 돌이킬 수 없는 탈선의 길을 걷기도 했다.
그런 친구들은 고등학교를 졸업도 하기도 전에 보육원을 뛰쳐나가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학창 시절 동안 그들과 달리 행동을 스스로 조심했었다.
그게 나를 지키는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얘들아. 아저씨랑 같이 축구 할까?”
“지금요?”
“그래, 지금.”
나는 축구공의 포장을 뜯어 운동장을 향해 발로 찼다.
아이들은 데굴데굴 구르는 축구공을 우르르 쫓아갔다.
동일이 녀석도 눈물을 뚝 그치더니 환하게 웃으며 무리의 뒤를 쫓았다.
“패스! 패스!”
“여기야! 여기!”
“슛!”
마지막으로 공을 받은 아이가 돌멩이 두 개를 놓아 만들어 놓은 간이골대 안으로 슛을 성공시켰다.
“호━우!”
골을 넣은 아이는 펄쩍 뛰어오르며 입술을 쭉 내밀고 유명 축구선수의 세레모니를 따라 했다.
천진난만한 녀석들과 같이 뛰고, 크게 웃다 보니 머릿속이 시원하게 비워졌다.
이마에 흐르는 땀을 옷소매로 닦고 있을 때 보육원 현관에서 서서 나를 바라보고 있는 신부님의 모습이 보였다.
“얘들아. 아저씨는 신부님을 좀 만나러 갈게. 너희끼리 공 차고 있어. 다치지 않게 조심하고.”
내가 가까이 다가가자 신부님은 눈가에 주름이 자글자글 잡히도록 환하게 웃으셨다.
“영수 왔구나.”
신부님은 두 팔을 벌려 나를 안아주셨다.
“신부님 머리가 왜 다 세셨어요. 이젠 완전히 할아버지네.”
“하하. 거울을 볼 때마다 세월이 흘러감을 깨닫게 하니, 이것 또한 하느님의 지혜가 아니겠느냐.”
“죄송해요. 자주 찾아봬야 하는데.”
“일없다. 그저 가끔 어떻게 사는지 연락만 주면 그만이다. 자 들어가자꾸나.”
*
원장실로 들어가자 신부님은 내 앞에 차를 내놓으셨다.
“향이 참 좋네요.”
“좋지? 도라지랑 대추를 섞은 것이야. 날이 쌀쌀해지니 목이 칼칼해져 자주 마신다.”
“건강 잘 챙기세요.”
“녀석. 넌 어째 볼 때마다 몸이 더 커지는구나. 야근이 잦다고 해서 걱정했는데 그럴 필요 없겠다.”
“운동은 열심히 하고 있으니까요. 재미있어요.”
“다치지 않게 조심하고. 그나저나 승우 녀석은 어떻게 지내니. 고놈은 통 연락이 없어.”
이승우.
나와 같이 자애 보육원에서 자란 동갑내기 친구다.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일찌감치 생활전선에 뛰어든 녀석은 지금은 지역에서 제법 유명한 중화요리 집의 주방장으로 일하고 있다.
나에겐 가장 가까운 친구이자, 형제와 다름없는 놈.
“열심히 일하고 있어요. 웍질한다고 손목이 열 개여도 모자랄 지경이라던데요. 저보다 돈도 잘 벌걸요. 가끔 보면 부럽다니까요. 뭣보다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는 거니까.”
“··· 그래. 얼마나 감사한 일이냐. 그 솜털만 하던 것들이 벌써 이렇게 다 커서 사회에서 제 몫을 하고 있다니.”
“아니, 신부님도 참. 갑자기 왜 울고 그러세요.”
신부님의 눈이 붉게 충혈되어 있었다.
나는 티슈를 한 장 뽑아 신부님에게 건넸다.
“늙으니까 자꾸 눈물이 많아져. 슬픈 일도 기쁜 일도 말이다.”
“그렇게 절 무섭게 혼내시던 분이 왜 약한 소리를 하세요. 이건 애들 나눠주세요.”
나는 원장실의 책상 한쪽에 올려놓은 상자를 가리켰다.
“뭘 이런 걸 사 오고 그래. 여기, 저기서 도와주시는 고마운 분들 많다. 네가 오는 것 자체가 선물이야. 뭐 들고 오지 마라.”
“기부도 감사하지만, 제 가족 같은 사람이 주는 선물과 어디 같나요.”
“월급 쪼개서 매달 후원금도 보내주고 있으면서··· 그래, 네 말도 맞다. 아이들이 참 좋아하겠네.”
적은 돈이지만 매달 얼마만은 꼭 잊지 않고 보육원에 보내고 있었다.
사실 차호영 신부님은 예전에 ‘등짐지는 신부’라는 소개로 방송을 타신 적이 있었다.
아이들을 먹이고 입히고 가르치는 데는 많은 돈이 들어간다.
나라와 교단의 지원금, 그리고 고마운 사람들의 후원금으로만 운영하기에는 부족한 것이 많은 게 사실이다.
그래서 신부님은 종종 공사 현장에 나가서 일용직으로 일하곤 하셨다.
우리에게 조금이라도 더 나은 것을 베풀어주고 싶어서.
그게 우연한 기회로 방송을 탔던 것이다.
이제는 신부님께 힘이 되어 드릴 수 있으리라.
받은 은혜가 크니 당연히 갚아야 하는 게 사람의 도리다.
“너 무슨 일 있구나.”
호록 차를 마시며 내 얼굴을 가만히 살피던 신부님의 말이었다.
“일은 무슨요.”
나는 애써 태연한 척 손사래를 쳤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나는 못 속인다. 널 업고 젖동냥을 다니던 나다. 네 표정만 봐도 모를까. 빨리 사실대로 말하지 않구.”
“신부님.”
“...”
“예전에 신부님 TV 나오셨을 때 말이에요. 어렸던 우리는 신부님 텔레비전에 나온다고 신나서 손뼉을 막 쳤었죠. 철없는 것들이 신부님이 우릴 위해 얼마나 고생하시는 건지도 모르고.”
“내가 좋아서 한 일이야. 고생이랄 것도 없었다. 갑자기 그 이야기는 왜?”
“그냥요. 문득 생각나서요. 이렇게 좋은 우리 신부님을 만나지 않았다면 난 어떻게 됐을까 그런 생각도 들고.”
“너 정말 무슨 일 있구나. 괜히 말 돌리지 말고 빨리 말해보거라.”
뭔가 심상치 않음을 느낀 신부님의 얼굴이 돌처럼 딱딱하게 굳어져 갔다.
“신부님. 집을 나간 탕아의 고해성사도 들어주실 수 있나요?”
“영수야. 나 심장 떨어진다. 뭐가 잘못되기라도 한 건 아니지?”
“사실은···”
일부로 이렇게 분위기를 무겁게 만들려고 한 것은 아닌데.
어차피 오늘 신부님을 뵙게 되면 모든 사실은 밝히진 못하겠지만 대략적으론 말씀을 드릴 생각이었다.
“제 부모님에 대해 알게 되었어요. 절 낳은 사람들이요.”
신부님은 내 말을 듣자 두 눈을 질끈 감고 성호를 그리셨다.
“하느님 아버지···”
차호영 신부님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