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당신의 아버지는··· (1)
대관절 이런 대형 로펌의 변호사가 나를 찾을 이유가 어디 있단 말인가.
나로서는 영문을 모를 일이었다.
가만,
혹시 이거 신종사기 아닐까? 나한테 뜯어 먹을 것이 뭐가 있다고···
순진하게 명함 한 장에 덜컹 낯선 이를 믿을 수는 없다.
이 여자는 도대체 내 집 주소와 연락처를 어떻게 알아낸 걸까.
“정말 변호사가 맞으십니까? 이런 명함이야 얼마든지 만들어낼 수 있는 거고.”
용의자를 앞에 둔 형사처럼 내 말투는 추궁의 형태로 고윤아에게 날아갔다.
하지만 고윤아는 이런 반응쯤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표정에 미동조차 없었다.
그녀는 다시 브리프케이스를 뒤적여 지갑을 꺼내더니 나에게 신분증 하나를 내밀었다.
변호사신분증
고윤아
대한변호사협회
“충분히 절 의심하실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예의에 어긋난다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사안이 몹시나 중요한지라 최대한 빨리 만나 뵈어야 했습니다.”
“그럼, 제 개인정보는요. 변호사라고 해서 남의 집 주소를 알 수 있는 건 아닐 텐데요.”
“영수님께선 주소를 알아낸 방법을 여쭤보시는 건가요, 아니면 이 방문의 위법에 대해 말씀하시는 건가요.”
나는 고개를 좌우로 저었다.
“됐습니다. 고윤아 씨라고 했죠? 알겠습니다. 그쪽이 정말 변호사가 맞다고 칩시다. 그럼 도대체 왜 토요일 오전부터 절 찾아오신 겁니까. 저는 법을 어긴 일이 없습니다. 교통 딱지 한 장 끊겨본 적이 없는 것 같은데요. 남들과 민사나 형사로 얽힐만한 사고는 더더욱 없고요.”
“한영수 님의 아버님에 관한 일입니다.”
“··· 뭐요?”
내 귀를 의심하게 만드는 소리였다.
고윤아의 말한 아버님이라는 단어.
고윤아의 입은 총이었고, 그녀가 뱉은 단어는 총알처럼 내 몸 안에 파고들었다.
“저는 아버지가 없습니다.”
“세상의 그 누구도 아버지가 없이 태어나지 않습니다.”
고윤아의 목소리는 담담했다.
“한영수 님의 사정에 대해서는 알고 있습니다. 저는 부친 되시는 분의 개인 변호사로서 한영수 님이 꼭 아셔야 할 일을 말씀드리러 온 것입니다.”
혼란스럽다.
그녀의 말이 모두 사실이라면, 내 아버지라는 사람은 도대체 누구길래 광월의 변호사를 개인적으로 부린단 말인가.
무엇보다 이제 와서 왜 나를 찾는단 말인가.
“이렇게 서서 이야기하기엔 말이 길어질 것 같습니다. 실례가 아니라면 제가 안에 들어가도 될까요?”
고윤아가 슬쩍 현관 안쪽으로 몸을 움직여 집 안으로 들어오겠다는 의사를 표했다.
“아니요.”
손바닥을 내 가슴께까지 들어 그녀를 제지했다.
“아파트 나가시면 근처 건물 1층에 스타벅스가 있습니다. 30분 후에 거기서 뵙죠. 생각을 좀 정리해야 할 것 같습니다.”
”사람이 많은 곳에서 나눌만한 대화는 아닌 것 같습니다.“
”그렇게 중요한 이야기라면 오히려 사람이 많은 곳이 낫습니다. 아무도 우리가 하는 말을 신경 쓰지 않을 테니.“
이 여자를 완전히 믿을 수 없다.
가령 지금 내가 거대한 음모에 휘말린 것이라면 어떻겠는가.
은밀한 장소보다는 사람이 모이는 곳에 있는 것이 안전을 담보할 수 있을 것이다.
이성의 끈을 놓지 않으려 애를 쓰고 있는 내 머리가 내린 결론이었다.
고윤아는 선선히 알겠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거기서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생각 정리되시면 뵙겠습니다.”
고윤아가 문을 닫고 나간 뒤 나는 그대로 거실에 철퍼덕 주저앉았다.
휴대전화로 인터넷포털에 들어가 고윤아의 이름을 검색해보았다.
꼭 공인이 아니더라도 법조인들은 이름을 치면 나온다는 걸 알고 있었다.
“뭐야... 이거.”
고윤아의 신분은 그녀가 건네준 명함에 찍혀있는 그대로였다.
그녀는 내가 검색한 포털의 인물 사전에 당당히 등재되어 있었다.
코넬대학교 로스쿨 졸업.
명문대 출신 미녀 변호사로 한 종편채널과 단독 인터뷰를 한 영상도 있었다.
이제는 확신할 수 있었다.
이건 어떤 사기도, 거대한 음모도 아닌 진짜라는 것을.
한바탕 폭격이 지나간 폐허 한복판에 서 있는 기분이다.
어느 정도 머리가 굵어지고 나서야 신부님이 해주신 이야기지만, 내가 보육원 앞에 버려졌을 때는 갓 돌이나 지났을까 싶은 갓난쟁이였단다.
그런 핏덩이를 버린 비정한 부모가 무슨 염치로···
코흘리개 시절에야 부모의 정을 참 그리워했었다.
신부님이 아무리 살뜰하게 아껴주신다 한들 채워질 수 없는 무언가가 있었다.
보육원에서 자라는 아이들이라고 모두가 같은 처지는 아니었다.
개중에는 어떤 사정으로 부모가 멀쩡히 살아있음에도 보육원에 맡겨진 아이들도 있다.
나는 그 친구들조차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었다.
남몰래 정말 많이 울었고, 얼굴도 모르는 부모를 애타게 그리워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그리움은 원망으로 바뀌었고, 그 원망조차도 이제는 희미해진 지금의 나에겐 부모란 그저 추상적인 낱말 중 하나일 뿐이다.
바닥에 앉아 생각에 잠겨있는 동안 시간은 어느새 고윤아에게 약속했던 30분을 향해가고 있었다.
그래. 좋다.
들어나 보자.
내 부모가 누구인지를.
내가 어떻게 태어났는지를.
그리고,
왜 나를 버렸는지를.
*
“기다리게 해서 미안합니다.”
“괜찮습니다.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고윤아는 벽과 벽이 수직으로 서로의 몸을 맞댄 구석진 곳에 자리를 잡고 있었다.
그녀는 예의 그 감정을 읽기 어려운 얼굴로 나에게 머리를 살짝 숙였다.
나는 그녀를 기다리게 한 것에 대해 우선 사과부터 했다.
반듯하고 꼿꼿한 자세로 앉아있는 그녀.
고윤아는 아무 말이 없었고 그저 눈으로 내 입을 쫓고 있었다.
칠흑처럼 검은 눈동자.
그녀는 내가 먼저 말을 꺼내주기를 기다리는 눈치였디.
“정말이야?”
“그렇다니깐. 대박이지?”
“우리 다음 주에 제주도 놀러 가는 거 말이야.”
“엄마! 나 빵 더 먹을래!”
‘스세권’이라는 말이 있다.
스타벅스가 근처에 있는 생활권.
사람들 사이에 이제는 하나의 문화로 자리 잡은 곳.
항상 붐비는 프랜차이즈 카페답게 우리의 침묵 사이로 주변 사람들이 떠드는 소리가 끼어들었다.
나는 우선 나에 관한 이야기로 운을 떼었다.
“제 사정에 대해서는 어디까지 알고 계십니까.”
“기본적인 인적 사항과 출생환경 정도는 알고 있습니다. 성인이 될 때까지 자라신 곳이 경기도에 있는 자애 보육원이라는 것도요.”
내 뒷조사를 했다는 것에 울컥하는 마음이 없다면 거짓말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게 중요한 게 아니다.
“그럼 잘 알고 계시겠네요. 저는 아버지라는 사람의 이름도 얼굴도 모르고 자랐습니다.”
“...”
“만약 뭔가 복잡한 문제가 있다면 저는 거기에 엮이고 싶은 생각이 단 하나도 없습니다. 그 점은 확실하게 말해두고 싶습니다.”
“받아들이기 나름이시겠으나, 분명 영수 님께 해가 되는 이야기는 없을 것입니다. 설령 번거로운 문제가 생긴다고 해도 제가 도와드리겠습니다. 그래서 제가 여기에 있는 거니까요.”
흠━
나는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앞에 앉아있는 고윤아의 탁월한 미모가 눈에 들어오지 않을 정도로 심경이 복잡하다.
내쉬었던 숨을 다시 크게 들이마셨다.
어디 한번 직면해보자.
나도 모르는 나의 숨겨진 이야기를.
“몇 가지 변호사님께 여쭤보겠습니다.”
“예. 얼마든지 말씀하세요. 궁금하신 것이 많을 그거로 생각합니다. 제가 대답해드릴 수 있는 것은 모두 말씀드리겠습니다.”
“우선··· 저는 언제 태어났습니까. 제 인적 사항을 알고 계신다고 했죠?”
우스운 일이다.
자신이 태어난 날을 생면부지의 타인에게 들어야 한다니.
“영수 님이 주민등록상 생년월일은 91년 12월 7일이시죠. 그리고 그날은···”
그날은 내가 자애 보육원 앞에 버려진 날이다.
출생일시를 알 수 없으니, 신부님이 임의로 신고를 했다고 한다.
CCTV라는 건 꿈도 꿀 수 없었던 그때 그 시절.
신부님은 경찰서를 수시로 들락거렸지만, 끝내 나를 보육원 앞에 두고 간 사람의 정체를 밝혀내지 못하셨단다.
결국 부모 어느 쪽에도 인지를 받지 못한 나에게 이름을 만들어주기 위해 신부님은 몇 달간 시청과 법원을 오가며 많은 고생을 하셨다고 했다.
고윤아도 그날에 대해 차마 이야기할 순 없었는지, 끝말을 삼켰다.
“··· 영수 님의 출생일은 91년 2월 13일입니다.”
2월 13일.
그렇구나. 난 그날 세상에 나온 거구나.
제기랄,
적어도 위안이 되는 것은 내 나이만은 달라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제 아버지라는 사람. 살아는 있습니까?“
“··· 이달 20일 새벽 2시 15분. 임종하셨습니다.”
“돌아가셨다고요?”
죽었다고?
뭐라 말로 형용할 수 없는 기분이 심장을 조여왔다.
당신 생의 끝자락에서 무슨 죄책감이라도 느낀 거야?
그랬다면 살아서 나를 만났어야지.
변명하든, 용서를 구하든 당신 입으로 나에게 직접 뭔가 할 말이 있었을 거 아니야.
이렇게 죽어서 남의 입에서 나오는 소식으로 등장해 버리면 나보고 어떡하라는 건데.
“그럼, 제 생모는요.”
나는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고윤아는 고개를 좌우로, 아주 천천히 저었다.
“모친이 어떤 분인지는 저도 알지 못합니다. 다만 오래전에 고인이 되셨다는 것만 알고 있습니다.”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고 한숨을 내쉬었다.
살면서 나름대로 시련에는 굳건해져 있다고 스스로 믿었다.
하지만 그 믿음은 정말 허약한 것이었다.
지금 내 감정은 태풍 앞의 어린나무처럼 사정없이 흔들리고 있었다.
누군가 여기서 나를 조금만 더 흔든다면 뿌리마저 송두리째 뽑혀 나갈 것 같았다.
“영수 님. 이런 말씀을 드릴 수밖에 없는 입장이어서 그저 송구스럽고 죄송합니다.”
고개를 들어 고윤아를 바라보았다.
날 만나고 내내 무표정하던 그녀에게서 처음으로 감정이 보였다.
그녀의 얼굴엔 슬픔이 어려있었다.
이상한 일이었다.
당장이라도 여름날의 소나기처럼 눈물을 쏟을 것 같은 고윤아의 얼굴을 보자 내 마음이 진정되기 시작했다.
“아닙니다. 변호사님이 죄송할 일은 아니니까요. 15살 이후로 날 낳은 사람들은 세상에 없다고 생각하고 살았습니다.”
그래.
어차피 죽을 때까지 만날 일 없을 거로 생각했던 사람들이다.
달라질 건 없어.
“도대체 제 아버지란 사람은 어떤 사람이길래 대한민국 최고 로펌의 변호사를 이렇게 사적인 일에 쓰는 겁니까.”
“고인께서는···”
흔들리는 고윤아의 목소리가 물기에 젖어있었다.
“저는 고인께 생전에 많은 은혜를 입었습니다. 지금 이 일은 고인께서 갑자기 쓰러지시기 전 저에게 남기신 마지막 부탁입니다.“
고윤아는 그 말을 끝으로 잠시 침묵을 지켰다.
처지가 바뀌었다.
이제 어떤 말이 나올지 기다리는 것은 고윤아가 아니라 내 쪽이었다.
“목소리를 좀 낮추겠습니다. 영수 님 말처럼 아무도 저희를 신경 쓰지 않는 것 같지만, 중요한 이야기이니까요.”
말을 아끼는 동안 감정을 다듬기라도 했는지 고윤아의 목소리 톤이 원래로 돌아왔다.
그녀는 의자를 바짝 당기고 몸을 내 쪽으로 내밀었다.
“영수 님. 장영복 회장님을 알고 계시죠?”
“누구요?”
“장영복 회장님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태상그룹의.”
“그분을 모르는 사람이 대한민국에 있나요.”
“놀라지 말고 들어주시길 바랍니다.”
그녀의 입술이 천천히 열렸다.
“한영수 님의 생물학적인 아버지는 장영복 회장님. 바로 그분입니다.”
당신의 아버지는···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