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거인의 죽음
━ 태상 그룹의 장영복 회장이 어젯밤 새벽 74세의 나이로 별세했습니다. 장 회장은 지난 23일 급성 심근경색으로 쓰러진 뒤 의식을 회복하지 못하였습니다. 정?재계를 막론하고 고인에 대한 애도가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 예. 우선 저희 뉴스 채널 S도 고인에 대한 애도를 표합니다. 총수의 갑작스러운 사망에 태상 그룹 내부 분위기는 어떤가요?
━ 고인은 생전에 2남 1녀의 자녀를 두고 있었는데요. 각자 재계에서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만큼 장 회장의 후임 총수 자리를 놓고 진통이 예상됩니다.
━ 장 회장이 남긴 재산도 화제인데요.
━ 맞습니다. 한때 장영복 회장은 포브스가 선정한 세계 20대 부자에 선정되기도 했는데요. 장 회장이 남긴 재산은 총액 30조 이상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아이고야. 저거 봐라. 아무리 돈이 많으면 무슨 소용이냐. 저승에 싸가지도 못할걸.”
오명식 과장이 뉴스를 보며 탄식을 했다.
“에이, 그걸 과장님이 왜 걱정을 하세요.”
지금 목소리의 주인공은 내 건너편에 앉아 있는 김영하 주임.
“어쭈, 요녀석 봐라?”
“아니. 그렇잖아요. 장영복 회장 같은 사람이야 살아서 원 없이 돈 쓰다 갔을 텐데, 죽어서 남은 돈 못 싸간다고 아쉬울까. 아이고, 과장님. 연예인이랑 재벌 걱정은 하는 게 아니랬어요.”
“아니, 말이 그렇다는 거지··· 김 주임 너, 그건 그렇고 말이야. 내가 엑셀 뽑아놓으라고 한 건 정리해놨어?”
김영하 주임은 오 과장의 말에 금세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태상 그룹이 어떤 곳인가.
이제는 대한민국의 기업이라고 부르기도 민망한, 세계 시장의 거대한 공룡이었다.
1961년. 아직은 전쟁의 여파로 대한민국이 폐허나 다름없을 때 태상은 건설업으로 사업 기반을 다졌다.
오늘날에 이르러서는 모태인 건설은 물론이요, 자동차 같은 중공업부터 반도체와 스마트폰, 첨단 IT 기술까지.
사이즈가 크다 싶은 사업이면, 어김없이 태상의 이름을 찾을 수 있었다.
특히나 태상이 이렇게 커지는 데 크게 이바지한 것은 지금 뉴스의 주인공이자, 2대째 총수인 장영복 회장의 역량.
바야흐로 수많은 회사가 줄도산을 맞던 IMF 때였다.
장 회장은 외국은행에서 직접 달러를 공수해 와 기술력은 있으나 자본이 없어 무너진 알짜배기 회사들을 하나하나 인수하여 태상에 합병시켰다.
그 당시 태상의 고위 임원들은 장영복 회장을 뜯어말리기 바빴다고 한다.
숨 고르기를 하며 파도가 지나가길 기다려도 모자랄 때 기업의 세 불리기를 도모하는 그를 두고 혹자는 완전히 정신이 나갔다는 극단적인 표현을 하기도 했다.
“이 사람들아! 지금이 바닥이야! 코쟁이 자본가 놈들이 헐값에 경쟁력 있는 회사들은 다 집어 가는데 이 땅에서 그래도 큰 장사한다는 우리가 그걸 그냥 다 넘겨줘서야 되겠어?”
이건 먼 훗날 후일담으로 공개된 장영복 회장의 일갈.
결과적으로 장영복 회장의 승부수는 적중했다.
대한민국은 외환위기를 극복해 냈고, 장 회장이 싼값으로 사들인 기술들은 회사에 수십 배의 수익을 안겨다 주었다.
더불어 사람들은 외국자본과 맞서 한국 경제를 지킨 거인으로 장영복 회장을 칭송하기 시작했다.
태상이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브랜드로 자리를 잡은 것도 이때부터였다.
비단 이 일뿐만 아니라, 장영복 회장의 시세를 읽는 감각은 범인들의 그것을 아득히 초월했다는 것이 지각 있는 사람들의 세평이었다.
그가 왕좌에 지키는 동안 태상 기업은 항상 승승장구였다.
“당분간 시끄럽겠어요. 서열 정리 문제도 그렇고, 저 30조. 상속세 내려면 아무리 재벌가라도 쉽지 않을걸요?”
“역시 한 대리가 계산이 빨라. 김 주임, 저 녀석 말하는 거 단순한 것 좀 봐. 재벌이면 뭐, 돈 걱정 하나도 안 하고 살 줄 아나.”
내가 슬쩍 오 과장의 편을 들어주자, 그는 신이 나서 목소리를 높였다.
“어허! 이 사람들이. 시정잡배도 아니고 고인의 존함을 그렇게 함부로 입에 올려! 장영복 회장님이 어떤 분이야! 우리 사장님께서 모시던 분 아니야! 사장님이랑 장 회장님 안 계셨으면 지금 당신들 일하는 자리도 없다는 거 몰라?”
그때, 절로 미간을 찌푸리게 만드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카랑카랑한 쇳소리.
임홍빈 차장.
42살인 그는 우리 사무실의 팀장으로 끔찍한 상사의 표본 같은 존재.
우습게도 그는 장영복 회장과 우리 회사 사장의 인연을 유독 힘을 주어 말하고 있었는데, 나름의 이유는 있었다.
‘중식 모터스’
내가 다니고 있는 회사의 이름이다.
직원 200여 명가량에 주력 상품으로 자동차 전조등을 생산, 납품하는 2차벤더.
말이 좋아 2차벤더지 사실 하청에 하청이란 소리다.
여하튼 우리가 납품하는 물건들은 최종적으로 태상 그룹의 자회사 중 하나인 태상 자동차로 흘러 들어간다.
중식 모터스의 역사에 대해 좀 더 말하자면, 사장이 태상 자동차에서 상무로 퇴직 후 그 경험을 살려 창업을 한 것이 시작이었다.
여기서 임홍빈 차장이 자랑하는 장영복 회장과 우리 사장의 인연이 나오는 것인데,
사장 김중식 씨의 말을 따르자면 자신이 장영복 회장의 오른팔이자, 장 회장이 흉금을 털어놓는 심복이었다고 한다.
물론 그걸 진짜로 믿는 사람은 임홍빈 차장 말고는 아무도 없었다.
- 선배님, 임 차장 말하는 거 보세요. 존함이랍니다. ㅋㅋㅋ 진짜 환장하겠다.
아니나 다를까, 임홍빈 차장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김영하 주임이 메신저로 나에게 바로 말을 걸어왔다.
- 내버려 둬. 사람이 자기가 믿고 싶은 것만 믿고, 보고 싶은 것만 보면서 사는 것도 행복한 거야.
- 그나저나 대리님. 오늘 끝나고 한잔 어떻습니까?
- 술? 나 운동 가야 하는데.
- 대리님도 참. 오늘 금요일 아닙니까. 금요일에는 헬창들도 운동 쉰답니다. 자기 약속 없는 사람처럼 보일까 봐.
- 너 여자친구 안 만나? 너 여자친구가 뭐라고 안 하냐?
- 에이 ㅋㅋㅋ 여자친구도 대리님이랑 먹는다고 하면 꼼짝 못 해요. 선배님이 워낙에 이미지가 좋으셔야죠.
- 이미지가 좋기는. 알겠어, 봐서.
“그런데 말이야. 장영복 회장님이랑 한 대리랑 왠지 얼굴이 좀 닮지 않았어? 한 대리 보육원에서 자랐잖아. 혹시 알아, 한 대리가 모르는 출생의 비밀이 있을지?”
임홍빈 차장의 말에 김영하 주임의 타자 소리가 멈췄다.
“저, 차장님. 농담이라도 그런 말씀은 좀···”
오 과장이 슬쩍 내 눈치를 보며 말했다.
그래, 그래야 임홍빈 당신 답지.
왜, 아예 부모도 없는 놈이라고 말하지.
“글쎄요.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나는 임홍빈을 향해 짧고, 감정 없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임홍빈 차장은 듣기에 사장의 가까운 친척뻘이라고 했다.
사실 이런 코딱지만 한 회사에도 낙하산이 있다는 것 자체도 우스운 일이다.
어찌 되었건 임 차장은 제로에 가까운 업무능력에도 윗 사람에게는 개처럼 배를 까뒤집는 충성심을 바탕으로 차기 부장직의 유력한 후보로 거론되고 있었다.
그래, 사실 우리 팀에선 임 차장에게 많은 것을 기대하진 않는다.
그저 입이나 꾹 다물고 늘 하던 대로 유튜브나 시청해주는게 우릴 돕는 일.
하지만 임 차장은 다름 아닌 그 ‘입’이 문제였다.
상사들과 원청업체 직원들에게는 찍소리 한마디 못 하면서 부하직원들에게는 머리를 거치지 않는 말들을 스스럼없이 하는 그.
나야 워낙에 관심이 없는 인간이 뭐라 하든 신경 쓰지 않는 타입이라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고 있다. 하지만 임 차장의 저질스러운 발언에 상처를 입은 직원들이 한둘이 아니다.
임홍빈 때문에 도저히 못 참고 퇴사한 직원이 있을 정도.
어디 그뿐이랴, 미묘하게 선을 넘나드는 갑질부터 뿌리 깊게 박혀있는 꼰대 마인드까지.
그야말로 빌런의 종합선물 세트라고 표현하기 부족함이 없는 인물이었다.
직장 내 괴롭힘이 법으로 처벌받는 시대에 아직도 그런 사람이 있느냐 누군가 묻는다면 나는 자랑스럽게 임홍빈 차장을 소개해 줄 것이다.
중식 모터스 영업팀.
나를 포함해 ?임홍빈 차장, 오명식 과장, 김영하 주임, 그리고 지금은 자리를 비운 계약직 사원인 최예리.
이게 우리 부서의 구성원들이다.
아 참, 몇 달 전부터 비어있는 자리 2개까지.
말이 영업팀이지, 어수선한 조직체계의 회사에서 사무직으로 할 수 있는 지저분한 업무는 다 맡아서 하고 있다고 보면 된다.
하지만 어쩌랴. 목구멍이 포도청이고 밥벌이는 원래 고단한 것을.
모든 직장인이 그렇듯이 아무리 더러워도 생활을 위해 꾸역꾸역 하루를 버틸 뿐이다.
가끔은 나도 대박을 기대하며 로또를 몇 장 사보기도 했었다.
하지만 태생이 불운했던 놈에게 어디 눈먼 행운이 붙을까.
1등, 2등은커녕 오천 원 한 번 당첨되어 본 적이 없다.
이런 내가 태상의 정영복 회장과 닮은 구석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지나가던 개가 웃을 일이다.
”오 과장님, 뭐 어때요. 한 대리 MZ세대잖아요. 오 과장님은 잘 모르나 본데 요즘 애들은 말 있는 그대로 하는 걸 좋아한다고. 김 주임, 내 말이 맞지?“
”아··· 하하하, 뭐 MZ세대 그런 거 잘 몰라서요.“
”야, 너는 세상에 관심 좀 가져라. 사회 이슈에 관심을 가지는 것도 회사원으로서 의무야. 의무! 내가 너만 할 때는 말이야, 신문을 5개씩 구독하고 그랬어.“
역시나 오늘도 빠지지 않는 라떼는···
”아무튼 한 대리, 뭐 내 말이 기분 나쁘고 그런 거 없잖아. 없는 사실 말하는 것도 아니고. 우리가 남이야? 가족 같은 사이지.“
”아, 예. 가‘족’같은 사이가 맞죠.“
큭━
거친 의도를 가지고 ‘족’자에 힘을 잔뜩 넣어 발음했다.
내 진의를 알아먹은 김영하 주임은 입을 가리고 실소를 터트렸다.
”아무튼 말이야. 태상 장 회장님이 우리랑 연이 없는 사이도 아니고, 이참에 그분이 남긴 프론티어 정신! 그거 되새김질하자고. 회사 출근했다고 가만히 앉아서 시간만 때울 생각하지 말고, 알아서들 먹을거리를 좀 찾으란 말이야.“
앉아서 시간만 때운다고.
예, 자기소개 잘 들었습니다. 차장님.
“한 대리, 요번에 숭산제조에서 프런트 커버 납품 언제까지 받기로 했지?”
임 차장의 장광설이 끊이지 않고 이어지고 있을 때 불쑥 오명식 과장이 내게 말을 걸었다.
”아, 숭산이요. 다음 주 수요일까지 커버 천 개 보내주기로 했습니다.“
”그래. 업체 연락해서 일정 한번 중간 점검해보고.“
오 과장이 나를 보며 한쪽 눈을 찡긋거렸다.
차장의 라떼파티가 계속 이어지자 일부로 화제를 돌린 것.
오명식 과장은 특출난 특기는 없지만, 자신의 체형만큼이나 둥글둥글한 성격을 가진 사람이었다.
그나마 오 과장이 임 차장과 직원들 사이에 완충지대가 되어주어서 영업팀이 돌아가고 있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쯧.“
말이 끊긴 임 차장이 혀를 차며 자기 의자에 등을 깊숙이 대고 앉았다.
그리고 그렇게 사무실에 다시 평화가 찾아왔을 때.
“다녀왔습니다. 커피 사 왔습니다.”
자리를 비웠던 최예리가 양손 가득 커피를 들고 나타났다.
가족같은 회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