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4년 차 천재 연습생의 데뷔 공략-221화 (221/224)

#221. 엇갈리는 길 (1)

“뭐야 갑자기 왜 그래?”

안 하던 짓을 하기에 걱정이 되어 묻자 규민이 입술을 삐죽 내밀며 모난 소리를 했다.

“좋겠다, 넌. 신경 써야 할 게 없어서.”

이건 또 무슨 소리야. 내가 신경 써야 할 게 왜 없어? 사람 속도 모르는 발언에 나도 모르게 움찔, 살짝 곤란한 표정을 짓고야 말았다.

그래도 무슨 생각으로 그런 말을 한 건지는 차근차근 들어 봐야겠지. 나는 침착하게 후, 숨을 들이마시고 물었다.

“신경 써야 할 게 없다니?”

“그렇잖아. 이미 유명해졌으니까 어디서 누가 널 후려치지도 못 할 거고, NO랑 계약해 봐서 조건 볼 줄도 알 테니까 눈탱이 칠 회사도 없을 거고….”

눈이 반쯤 풀려서는 언제 풀썩 쓰러져서 잠들어도 모를 것 같은 게 피곤해서 그런가 몇 모금만으로도 금세 취해 버린 모양이었다. 거기다 냅다 원샷으로 때려 붓기까지 했으니 멀쩡할 리가 있나.

겨우 한 캔 가지고 이렇게 된다는 게 조금 신기하기는 하지만…. 어쨌든 지금 그게 중요한 건 아니지.

“갑자기 그런 소리를 왜 해. 너 뭐 계약 때문에 고민이라도 있어?”

직접 본인이 본심을 털어놔 주니 굳이 돌려 가며 캐물을 필요도 없었다.

“…….”

잠시간의 침묵이 흐르기 무섭게 규민이 휙 고개를 들었다.

“몰라!”

투정 부리듯 빼액- 내지르고는 다시 고개를 바닥에 돌려 버리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별생각이 다 들었다.

‘이게 미쳤나….’

나는 순간 벙쪄서 눈을 크게 뜨다가 겨우 정신을 차렸다. 이미 만취해 버린 사람을 상대로 성질을 부려 봐야 도움이 될 게 하나도 없었다.

달리 보면 이성이 제대로 작동을 안 하는 상태일 테니 구슬리기도 쉽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하면 오히려 이득일 수도 있었다.

“아니 그렇게 말하지만 말고. 무슨 문제라도 있으면 얘기를 해 줘야 같이 해결할 수 있지. 네가 전에 얘기했잖아, 서로 숨기는 게 없어야 팀 멤버 아니냐고.”

솔직히 말하자면 그렇게까지 말한 적은 없었다. 쓸데없이 날 견제하면서 수상쩍게 여기며 비슷한 말을 한 적은 있어도 모두 터놓을 수 있어야 동료, 같은 발언을 한 적은 없었다.

‘뭐 약간의 과장이 들어간다고 전부 거짓말이 되는 건 아니니까.’

문장 하나하나를 따질 정신이 남아 있지 않은 건지 규민이 잠시 두 눈을 멍하니 끔뻑거렸다.

“응? 나는 저번에 너한테 무슨 일인지 다 얘기해 줬는데 너는 숨기면 내가 앞으로 너를 어떻게 믿겠냐. 너무한 거 아냐?”

평소의 나라면 절대 하지 않을 말이었으나 규민을 밀어붙이기 위해 서러움을 꾹꾹 눌러 담아 말하자 규민이 잠시 고장 난 것처럼 멈췄다.

“내가, 그랬나…?”

“어, 너 그랬어. 내가 무슨 일로 비안 선배님이랑 연락한 건지도 꼬치꼬치 다 캐물었잖아.”

슬쩍 사실인 것과 사실이 아닌 것을 섞어서 경계를 흐트러트리자 규민이 다시 느리게 눈을 깜빡였다.

계속 답답하게 졸고 있지만 말고 말을 해라, 말을!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규민을 보고 있으려니 규민이 불쑥 입을 열었다.

“그냥…. 다 내 마음 같지가 않아서 그렇지….”

두루뭉술하기 짝이 없는 대답이었다. 이런 걸 바라고 물어본 게 아니지요. 나는 더 자세히 말해 보라는 듯 자세를 고쳐 앉고 물었다.

“내 맘대로 안 되는 일이 어디 한두 개인가. 다들 그렇지 뭐.”

하소연하는 사람 특. 너만 그런 거 아니라고 하면 열받아서 구구절절 자기가 얼마나 힘든지 늘어놓음.

그리고 그건 이전의 나도 마찬가지였다. 최대한 상황 탓을 하기보다는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고 받아들이려 했지만 그게 어디 쉽나.

14년을 연습생으로 발버둥 치고도 성공하지 못한 괴로움에 걸핏하면 한풀이를 하려 드는 바람에 일부러 지인들과 만남도 줄이고 어쩌다 일 때문에 피할 수 없으면 절대 술자리에는 끼지 않았던 적도 있었다.

그렇게 최고의 유망주로 스포트라이트를 받아 놓고 실패한 것도 모자라서 주렁주렁 자기 변명과 한을 늘어놓는 사람은 되고 싶지 않았어서.

아무튼 어떤 심리일지는 나도 안단 말이지. 그래서 일부러 아플 만한 지점을 슬쩍 찌르자 규민의 표정이 대번 짜증으로 물들었다. 정말 솔직함이 지나친 녀석이었다.

“야, 나 진짜 엄살 부리는 거 아니거든? 진짜 너무 힘들다….”

“그러니까 왜 힘든지를 얘기해 보라니까. 뭔지 알아야 내가 도와주든 말든 할 거 아냐.”

“됐어, 너한테 어떻게 말하냐.”

또 이렇게 질질 끈단 말이지? 나는 한 번 더 쿡 규민의 정곡을 찔렀다.

“에이, 그렇게 큰 고민은 아닌가 보네. 괜찮은 거지? 아니야?”

그러자 규민이 발끈하며 목소리를 높였다.

“야, 네가 뭘 안다고…!”

“그럼 말을 해 줘야 할 거 아냐.”

“…….”

“얘기해 주면 네가 얼마나 힘든지 그래 내가 인정해 준다고. 말도 안 하고 힘들다고 징징거릴 거면 처음부터 티 내지나 마. 괜히 단체 생활 물 흐리지 말고.”

실제로 이렇게까지 생각하는 건 아니지만. 그냥 두루뭉술하게 네가 말해 주지 않으면 우리는 모른다 정도로 말했다간 계속 제자리만 맴돌 것 같았다.

이쪽이라고 뭐 사정만 알고 튀려는 것도 아니고. 누군가에게 털어놓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조금은 가벼워질 수 있다면 그걸로 좋은 거잖아.

선택은 네 자유라는 듯 팔짱을 끼고 규민을 쏘아보자 규민이 불만이 가득한 볼을 부풀리며 코웃음을 쳤다.

“흥!”

“애처럼 그러고 있을 거면 나는 간다.”

당장이라도 버리고 혼자 올라갈 기세로 자리에서 일어나자 규민이 움찔 어깨를 떨며 말했다.

“아 말하면 될 거 아냐! 대외비라서 잠깐 고민한 건데 그것도 못 기다리냐?”

어느새 기세등등해진 목소리에 웃음이 나올 뻔했다. 그래 뭐 그렇게 당당하기라도 해야 이규민답지. 나는 다시 의자에 엉덩이를 붙이고 앉았다.

“그래서 대체 무슨 일인 건데.”

이미 대강의 내막은 알고 있으면서 모르는 일인 척 묻자 규민이 한참 동안 입술을 잘근잘근 씹더니 입을 열었다.

“그러니까….”

한참의 긴 토로가 끝나고 났을 때는 어느새 캐리어에 넣어 위탁 수화물로 같이 부칠 예정이었던 여분의 캔이 어느새 하나 또 자취를 감춘 후였다.

“야 대체 그건 또 언제….”

“우읍, 웁!”

미처 말릴 새도 없이 내게 캔째로 뺏길까 봐 허겁지겁 마시는 꼴이 어이가 없었다.

“크어… 아무튼, 그래서 머리가 복잡하다는 거야. 그래도 계속 엄살로 보이냐?”

꽤나 기세등등해진 건 나름 좋은 일이다만. 나한테 기세등등해서 뭐 어쩔 건데. 나는 팔짱을 풀지 않은 채 물었다.

“그래서 앞으로 어떻게 할 거야?”

소송까지도 불사할 생각이 있는 건가 싶어 묻자 규민이 입술을 비죽이며 대답했다.

“뭘 어떻게 해. 당장 계약 무효로 돌리고 나올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나온다고 해도 대형급 데뷔가 보장된 것도 아닌데 그냥 있어야겠지.”

“음….”

결국 그렇게 하기로 한 건가. 그러나 규민으로서도 뾰족한 수가 없을 것 같긴 했다.

“데뷔 조는 정해진 거야?”

우리 활동 기간이 끝나자마자 바로 데뷔를 앞두고 있다면 지금쯤은 이미 멤버가 확정되고도 남았을 텐데. 확인차 묻자 규민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몰라 대충 리스트는 있긴 한데 대표가 계속 바뀔 수도 있다 안심하지 마라 너네 아직 데뷔한 거 아니다 헛소리해 대서 애들 분위기도 안 좋은가 봐.”

그런 와중 어쨌든 데뷔는 확실하다 못해 본인 이름으로 홍보가 나갈 규민이 어떤 입장일지 예상이 되었다. 대표가 계속 데뷔를 빌미로 연습생들에게 협박을 할 때마다 가시방석에 앉은 기분이었겠지.

나는 잠시 속으로 숨을 고른 다음 물었다.

“너는 어떤데? 리스트에 있는 애들이랑 잘 맞을 것 같아?”

그러자 규민이 퉁명스러운 목소리로 대답했다.

“너 같으면… 지금… 분위기가… 좋겠…냐아?”

그리고 그 말을 마지막으로,

“……?”

“흠냐….”

픽 뒤로 고개가 넘어가더니 그대로 눈을 감았다.

“……? 뭐야? 갑자기 이렇게 잔다고?”

이 상황이 퍼뜩 믿기지 않아 규민의 어깨를 흔들었다. 그러나 더는 참을 수 없을 만큼 몰려온 졸음에 그대로 나가떨어지고 말았는지 아무리 충격을 줘도 일어날 줄을 몰랐다.

“아니…. 이런. 야 일어나.”

체격이 큰 차이가 나진 않아서 업고 올라가는 데 무리가 있진 않… 은건 아니고.

의식이 있어서 어느 정도 균형을 잡는 걸 도와주는 것도 아니고 완전히 축 늘어져서는 발끝을 질질 끌고 올라갈 수밖에 없었다.

“널 안 버리고 데리고 올라가 주는 것만으로도 난 책임을 진 거야, 헉….”

숨을 몰아쉬며 가까스로 호텔 방에 도착해 침대 위에 규민을 내던지자 온몸에 기운이 쭉 빠졌다.

샤워 다시 하고 자야지. 슥, 거실을 사이에 두고 분리되어 있는 다른 방을 보니 나머지 멤버들은 아직 곤히 잠들어 있었다.

캔은 올라오기 전에 버리고 왔고. 내일 이 녀석이 헤롱거리면서 숙취 있는 티만 안 내면 완전 범죄가 가능할 것도 같은데.

나는 우선 샤워로 규민을 옮기면서 흘렸던 진땀을 씻어 내고 아이템 창을 확인했다.

‘아, 있다.’

[컨디션 회복 포션]

[등급] C

[피로, 숙취, 부기 등 약한 강도의 컨디션 난조를 바로 회복시켜 주는 포션.]

C 등급이라 그냥 바로 써서 인벤토리를 비워 둘까 하다가 스케줄이 강행군이니 혹 쓸 데가 있을까 싶어서 남겨 두었는데. 잘한 판단이었군,

상처를 낫게 하거나 부상을 없애 주는 등 그리 대단한 효과가 있는 건 아니라서 아까운 것도 아니니 나는 흔쾌히 규민에게 아이템을 양보했다.

‘확실히 표정이 훨씬 편해졌네.’

나한테 진짜 고마워해라. 겨우 한숨 돌렸을 즈음 미션 완료 메시지가 눈앞에 나타났다.

[서브 에피소드 미션 클리어!]

[▷믿을 수 있는 동료]

[보상 수령]

[▷코인 2개]

과연 이게 ‘믿을 수 있는 동료’라는 미션 제목에 걸맞은 해결 방법인지는 솔직히 모르겠지만.

‘그럼 이제 어떻게 한담….’

들어 주긴 했어도 내게도 뾰족한 수가 있는 건 아니었다. 다른 녀석들은 괜찮은 건가. 걱정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늘어지던 그때.

[서브 리퀘스트 미션 ▷ 각자의 사정]

[미션을 수락하시겠습니까?]

[예] / [아니오]

나를 가만히 쉬게 놔둘 생각이 없다는 듯 미션 창이 반짝 눈앞에 나타났다.

[예상 수령 보상]

[▷미수집 단서 1개]

[▷코인 1개]

이번엔 거절하기 힘든 보상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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