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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년 차 천재 연습생의 데뷔 공략-217화 (217/224)

#217. 다가오는 그림자 (1)

“음….”

무슨 일인지 대충 예상은 가는데.

흐린 눈을 하고 쭉 스크롤을 올려 보자 거기서부터는 더 가관이었다.

[입금해 주신 건 확인했는데요. 금액이 왜 이렇게 나온 건지 잘 모르겠어서요. 지난번 정산 때 투자금 전액 차감된 것 아니었나요? 어디서 또 차감될 게 있는 건지 궁금해서 세부 내역을 부탁드린 게 어째서 잘못인지 모르겠습니다.]

[너 말을 어른한테 그렇게 따박따박 예의 없이 하는 게 아니다. 통화 좀 하자. 내가 다 설명해 줄게.]

[저 지금 투어 중이라서 전화할 시간 없는 거 아시잖아요. 합당한 이유가 있는 건이라면 문자로 남겨 주세요. 아니면 메일로 보내 주셔도 되고요.]

그러니까 쟁점은 간단했다.

지난 분기로 규민은 그동안의 투자금을 모두 차감하는 데 성공했다. 해서 이번 정산 때는 계약 당시의 비율대로 다른 멤버들과 마찬가지로 온전한 수익금을 받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 모양이었다.

그러나 입금 금액은 예상했던 수익에 미치지 못했고 정확히 어떤 내역으로 기타 투자금이 차감된 것인지 세부 내역을 요구했다.

깐 건 알겠는데 그래서 세부 항목이 뭐냐는 질문에 느닷없이 의리가 튀어나온 것이다.

‘뻔하지 뭐… 온갖 말도 안 되는 항목들을 이유로 들어 투자금을 부풀렸다거나….’

써머데이가 외부 감사 기업이었던가. 자기네들 내부에서는 세금 신고용으로 다 분류를 해 놓았겠지만 그 항목이 당사자가 봤을 때 터무니없을 것임이 너무도 뻔했다.

‘저런 식으로 입막음하려 드는 걸 한두 번 보나.’

아직도 이러는 회사가 멀쩡히 존재하고 있는 건 좀 의외지만 말이지.

시간이 흐른 만큼 옛 선배님들이 술자리에서나 괴담처럼 이야기할 것이라 생각한 일들이 규민에게 실제로 벌어지고 있었다.

그 타깃이 세상 물정 잘 모르고, 그저 춤과 노래를 좋아할 뿐인 어린애들이라서 그런가. 패턴이 바뀌지 않은 것이 신기하게까지 느껴졌다.

‘그나마 다행인 건….’

규민이 거기에 ‘알겠습니다.’ 하고 고개를 끄덕이는 타입은 아니라는 것뿐이었다.

구체적인 내역과 지출 증빙을 보여 주시기 전에는 믿을 수 없다. 그동안 잘해 주신 것 알고 있으니 앞으로도 대표님을 신뢰할 수 있도록 믿음을 달라, 뭐 그런 내용으로 요약해서 보내 둔 기록이 있었다.

‘말은 잘했는데…. 이렇게 몇 마디에 쭈그러들 사람이면 애초에 투명하게 정산 공개를 했겠지.’

어디 회사는 아예 홈페이지로 만들어서 세부 내역 하나하나 증빙 확인할 수 있도록 해 준다는데.

숨겨야 할 게 없다면 못 보여 줄 것도 없으니까. 반대로 아득바득 우겨 가며 절대 못 보여 준다고 헛소리를 해 대는 건 보여 줄 수 없는 이유가 분명히 존재하기 때문이었다.

‘이렇게 드러누운 게 단순히 물갈이 탓이 아니라 스트레스성도 있는 건가.’

내막은 알았으니 슥, 화면을 끄고 핸드폰을 옆으로 치우자 한숨이 먼저 나왔다.

‘무슨 일인지 안다고 내가 해결해 줄 수 있는 건 아닌데….’

최소한 하소연 정도는 들어 줄 수 있겠지. 하지만 규민이 그걸 원할지는 미지수였다. 차라리 나와 영인의 관계처럼 입장이 동일할 경우에는 어느 정도 터놓고 이야기하는 게 심정적으로는 편할 수 있겠는데.

규민과 나는 입장이 달라도 너무 달랐다. 똑같이 장기 연습생 생활을 했어도 빚 없이 계약 기간 만료로 털고 나온 나와 달리 규민은 털어야 할 비용이 어마어마했으니까.

그걸 반년 만에 깐 걸 생각하면 엔카운터가 정말 어지간히도 대박을 쳤구나 우리가 이뤄 낸 성과에 잠깐 어깨가 으쓱해지긴 하는데….

‘세부 내역을 안 주는 건 선 넘었지.’

까야 할 금액이 많은 것까지는 납득할 수 있다 이거야. 트레이닝 기간이 길었으니까.

하지만 구체적으로 어떻게 비용이 들어갔는지도 모르고 우리가 알아서 잘 공제했으니 너는 그런 줄 알라고 하면 납득이 가겠냐.

이전에 받았던 계약서와도 대치되는 부분이었다.

‘그때 금액으로 명확히 기재되어 있었던 것 같은데.’

그럼 이미 그때 자기네들끼리 계산이 끝났다는 건데… 계산은 했지만 과정은 못 보여 준다?

수상쩍기 그지없었다.

‘이거 뭐 어떻게 하냐.’

앞으로 써머데이와 완전히 척을 질 생각이라면 소송전을 불사할 수도 있겠지만. 언제나 그렇듯 세상일이라는 게 그렇게 쉬운 게 아니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회사라는 집단 앞에서 일개 개인인 규민이 불리한 것이 사실이었으니까.

규민을 적극적으로 데려가려 하는 다른 소속사가 나와 준다면 모르겠지만… 다른 회사들의 입장에서 보기에도 규민은 여러모로 적극적으로 찔러 보기 어려운 매물이었다.

‘이제 막 투자금 차감하고 돈 벌어 올 일만 남은 거위를 써머데이에서 순순히 놓아줄 리도 없고.’

최악의 경우 정말정말 운 좋게 불공정 계약으로 소송에 승소하여 계약을 해지하는 데 성공한다고 해도 써머데이에서 가만있을 리 없었다.

다른 더럽고 치사한 선례들과 마찬가지로 온갖 말도 안 되는 루머를 최측근이 고발한 것인 양 퍼트려서 못 먹는 감 터트리려고나 하겠지.

엔카운터가 해체하고 나면 새로 데뷔를 해서 자기 커리어를 다시 쌓아 나가야 하는 규민으로서는 치명적이기 그지없는 상황이었다.

‘속이 이만저만 아니긴 하겠네.’

옆에 사람이 있는데도 아무것도 모르고 기절하듯 잠들어 있는 규민을 보니 마음이 썩 편치 않았다.

내가 해 줄 수 있는 게 뭐가 있을까. 잠시 곰곰 생각해 보았으나 속이 쓰리게도 아무것도 없었다.

그저 모른 척해 주는 것만이 당장 생각나는 최선이었다.

‘다른 녀석들은 괜찮은 건가.’

곧이어 규민 외에 다른 멤버들도 비슷한 상황에 처해 있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 번지기 시작했다.

물론 이것도 마찬가지로 내가 해 줄 수 있는 건 없지만.

갑작스럽게 밀려오는 무력감에 속이 쓰렸다.

‘이럴 때….’

그리고 나는 순간 말도 안 되는 가정을 떠올리고는 스스로도 놀라 제자리에서 펄쩍 뛰었다.

‘무슨 미친 생각을 다 하는 거야.’

만약 내가 유 대표의 공공연한 아들이었다면. 그래서 유 대표가 내 든든한 뒷배로 서 있고, 다른 녀석들의 소속사 문제를 해결해 줄 만큼 나를 위해 나서 준다면.

그것만큼 감사하고 또 고마운 일이 없겠지만 안타깝게도 나는 그의 공식적인 친자조차 아니었다.

‘마음이 급하니까 별 같잖지도 않은 생각을….’

나서서 도와줄 수 있는 게 없다면 최소한 규민이 먼저 다른 멤버들에게 상의를 요청할 때까지 함구하는 것이 최선이었다.

“…….”

곧이어 내 침대로 돌아가자 옆 방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었던 현호와 지원이 방으로 들어왔다.

“불 잠깐 켜도 돼?”

“어, 괜찮아. 규민이는 아직도 잘 자고 있어.”

마지막으로 내일 입을 옷을 미리 정리해 두고 머리를 눕히기 위해 지원이 캐리어를 열고 한참 부스럭거렸다.

“규민 형 내일은 일어나야 할 텐데….”

못 일어나면 엉덩이를 걷어차서라도… 아니, 몸뿐만 아니라 정신까지 너덜너덜한 상태인 사람한테 그건 좀 너무한가. 나는 잠깐 고민에 빠졌다가 규민이 흠냐흠냐 흥얼거리는 잠꼬대를 듣고 생각을 바꿨다.

“닭꼬치… 치킨… 찜닭… 닭갈비… 으음….”

대체 무슨 꿈을 꾸는 거야. 닭고기가 들어간 요리를 줄줄이 나열해야 할 일이 뭐가 있는 건지 의문이었다.

“괜찮을 거야. 너무 걱정하지 말고 얼른 자자.”

지원에 이어 현호도 가볍게 안심시키고 다시 불을 끄니 심란한 어둠이 찾아왔다.

도와줄 수 있는 게 없다면 차라리 그 문자를 못 본 게 나았을까. 복잡한 심경과 달리 시간은 쏜살같이 흘러서 잠깐 눈을 감았다 뜬 사이 아침이 밝았다.

‘자기 직전까지 마음이 불편했던 것치고는 꽤 잘 잤네.’

자리에서 일어나 끙, 길게 몸을 펴고 스트레칭을 하고 있으려니 규민이 괴성을 지르며 몸을 벌떡 일으켰다.

“흐아아악-!”

“헉!”

갑작스러운 비명 소리에 자고 있던 지원이 화들짝 놀라 눈도 못 뜬 채 반응했다.

“뭐야?”

내가 대수롭지 않게 묻자 큰 충격에 빠진 규민이 경악으로 물든 얼굴로 나를 바라보았다.

“지금, 지금 몇 시야?”

나는 어깨를 으쓱이며 대답했다.

“오전 7시 반. 더 자도 되는데?”

그러자 규민이 하아-, 긴 한숨을 내쉬며 안도한 듯 가슴을 쓸어내렸다.

“아, 다행이다…. 난 또 내가 늦잠이라도 잔 줄 알고….”

일어나 보니 몸이 너무 상쾌해서 두려워졌나. 예상하는 그 시간으로부터 24시간 지난 상황이라는 걸 말해 주면 어떤 얼굴을 할지 기대가 되었다.

“늦잠 잔 거 맞는데?”

“뭐?”

아무렇지도 않게 진실을 속삭여 주자 규민이 대체 무슨 소리를 하냐는 듯 고개를 기울인 채 나를 바라보았다.

“뭔 소리야 오전 7시라며.”

“날짜를 봐, 날짜를.”

그리고 곧바로 협탁에 놓인 핸드폰을 낚아채듯 쥔 규민의 표정이 순식간에 창백해졌다.

“미친. 왜 아무도 안 깨웠어!!! 이거 관찰 카메라 같은 거야!?”

이대로 놀란 모습을 감상하다 놀리는 것도 재밌겠지만. 뒤에 속 쓰린 사연이 있는 걸 뻔히 아는데 낄낄거리고 놀릴 수 있을 만큼 성격이 독하지가 못해서 나는 얌전히 진실을 알려 주었다.

“너 너무 아파 보여서 첫 공연은 우리끼리 했어. 오늘 막공 남아 있으니까 조금 더 자 둬. 리허설은 오후부터니까.”

그러자 순간 규민이 이럴 리가 없다는 듯 의심의 눈초리로 나를 바라보다가 곧바로 다시 핸드폰 화면으로 눈을 돌렸다.

처음에는 의혹이 가득한 표정이었으나 이내 거짓말이 아니라 사실인 걸 확인했는지 곧바로 표정이 누그러졌다.

“아 정말….”

곧이어 우리가 공연 막바지에 규민이 빨리 나을 수 있도록 응원해 달라는 멘트를 남긴 영상까지 봤는지 혼자 이 세상 감동이란 감동은 다 받은 얼굴로 나를 바라보았다.

“이거 네 아이디어지?”

정답이었다. 하지만 왠지 이 녀석 앞에서 순순히 인정했다가는 ‘와 인수 보기보다 다정한 남자네~.’ 하고 잔뜩 놀림받을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나는 불쑥 혜성을 팔아먹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닌데?”

“아니긴. 너 말고 이렇게까지 해줄 사람이 어딨냐.”

“혜성 형이 하자고 한 거야.”

“정말?”

혜성이라면 꽤나 그럴듯하게 들리는지 규민의 표정이 잠깐 흔들렸다.

“됐으니까 이거 마시고 한숨 더 자.”

내가 드드득 실온에 놔둔 미지근한 온도의 이온 음료를 따서 내밀자 규민이 히죽히죽 웃으며 나를 바라보았다.

‘왠지 얄밉네.’

그러고 나서 곧바로 화장실에 틀어박히게 됨으로써 얄미운 마음은 얼마 지나지 않아 해소되었다.

저거 오늘은 무대에 설 수 있나 불안한 마음이 든 건 어쩔 수 없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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