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4년 차 천재 연습생의 데뷔 공략-214화 (214/224)

#214. 모를 줄 알았나 (2)

‘음….’

연못이 의심스럽다고 물 다 빼 보라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이 장식을 희록의 행방에 대한 단서로 제보라도 하면 가능하려나. 그러나 경찰이 이 정도 증거 가지고 박 대표를 압수 수색할 수 있을 만큼 적극적인 행동이 가능할지가 미지수였다.

‘오히려 증거품만 빼앗기고 그냥저냥 뭉갤 것 같은데.’

말마따나 시신이 발견되거나 확실한 범죄 정황이 없으면 단순 가출이라 할 수 있는 게 많지 않다고 했으니. 가족들만, 그리고 희록과 애매하게 연관이 있는 내 속만 까맣게 타들어 갈 뿐이었다.

‘당장은 더 할 수 있는 게 없나.’

머리가 아픈 와중 괜히 사옥의 구조와 위치까지도 신경 쓰이기 시작했다.

‘뒤에 산이 있는 것도 뭔가… 꺼림칙한데.’

어디서 그런 땅을 잘도 구한 건지. 아니면 개발 가능성 같은 투자 가치를 완전히 무시한 덕에 가능했던 건지.

인근에 제대로 된 번화가가 없는 것은 물론 가까운 이웃집까지 차로 10분 이상 달려야 나오는 외딴곳인 덕분에 정말 야산에서 무슨 일이 있어도 아무도 모를 것 같았다.

‘이사 온 건 비교적 최근이라는 거지.’

그럼 그 전에 살았던 주인은 대체 뭐 하는 사람이었던 거지? 땅값이 아무리 싸다고 해도 이 외진 곳에 이만한 건물과 인공 연못을 만들려면 돈이 한두 푼 들어간 게 아니었을 텐데.

나는 누워 있던 몸을 벌떡 일으켜 책상 위에 놓아둔 노트북을 집어 들고 거실로 나갔다.

조금 음침한 방법이기는 하지만… 이 호기심을 해결할 수 있는 간단한 방법이 있었다.

어느새 다들 잠을 청하러 방으로 들어갔는지 방에는 아무도 없이 어두컴컴하기만 했다.

‘다행히 점검 시간은 아니네.’

인터넷으로 등기소 홈페이지에 들어가 비용을 결제하고 소유자를 조회해 보니 과연 현 소유자는 골든링 미디어가 맞았다. 은행에 저당 잡혀 있는 빚이 상당했지만.

‘어디 보자… 전 소유자가….’

찬찬히 내역을 확인해 보던 눈을 의심했다.

[박현민]

대표 본인의 이름 세 글자가 버젓이 빛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단순히 동명이인일 가능성은 없는지 골든링 미디어 홈페이지에 공개되어 있는 대표 명의와 대조해 보았으나 생년월일이 동일했다. 대체 언제부터 박 대표 소유였나 확인해 보니 지어진 지 벌써 25년이나 된 건물이 사용 승인 허가를 받을 때부터 박 대표의 소유였다.

‘그러고서는 말은 최근에 매매해서 들어온 것처럼….’

어쨌든 틀린 말을 한 건 없긴 했다. 법인 소유가 된 건 건물이 지어진 햇수에 비하면 비교적 최근인 건 맞으니까.

하지만 전 주인이 아예 무관한 다른 사람인 것처럼 말해 놓고 조회해 보니 박 대표라니. 어이가 없어 웃음이 나왔다.

‘내가 설마 이렇게까지 확인해 볼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아서 그냥 되는대로 둘러댄 건가. 어차피 따져 묻지도 못할 테니까.’

이제 와서 ‘제가 등기부 등본 받아 보니까 원래부터 대표님 건물이던데요? 왜 거짓말하셨어요?’ 따져 봤자 ‘왜 그렇게까지 집착하는 거예요?’ 하고 괜한 의심이나 살 것이 뻔해 보이기는 했다.

당장만 모면하면 된다 이거지.

거짓말을 한 이유를 자세히 확인하고 싶었으나 적당한 방법이 없었다.

멋대로 미팅에 따라온 것부터 트집을 잡기 시작하면 나만 점점 더 이상한 사람으로 몰아갈 그림이 명백했다.

막말로 내가 그 건물의 소유와 관련해서 무슨 직접적인 이슈가 있는 사람도 아니고.

결국 또 막다른 길이었다.

‘영인이를 계속 그 찝찝한 기획사랑 연락하게 만드는 것도 좀 그래.’

더구나 내가 의심하고 있는 대로 박 대표가 20여 년 전 서천향을 어떻게 한 것도 모자라서 임희록까지 해친 범인이라면 나에게만 중요한 진상을 파헤치기 위해 괜히 영인까지 끌어들일 순 없었다.

‘그러다 나뿐만 아니라 영인까지 찍혀서 활동하는 데 문제가 생기면 안 돼.’

전적이 없는 사람도 아니고 충분히 가능성 있는 일이었다. 영인을 위해서라도 영인이 더 이상 골든링과 접촉하지 않도록 하는 게 안전했다.

‘자연스럽게 다른 회사 제의도 받아서 그쪽으로 넘어간 것처럼 흐지부지 기억에서 잊히도록 해야지.’

이미 내가 동행한 시점에서 어느 정도 낙인찍힌 것은 어쩔 수 없겠으나 당장은 영인에 대해 그렇게까지 필사적으로 매달리거나 적대감을 갖고 있진 않은 것 같았다.

‘일단 영인이 쪽은 그렇게 두고… 다른 방법이 또 없나….’

비안에게 다시 서천향에 대해 캐내려고 하면 비안도 위화감을 느낄 것이 분명했다.

아무리 부모님이 팬이었다고 해도 네가 무슨 탐정도 아니고 그걸 왜? 또는 옛날에 있었던 어두운 사건을 흥미 본위로 들쑤시고 다니는 것처럼 느껴지겠지. 그건 좀 원하는 방향이 아니었다.

그림 비안 말고 또 20년 전 사건이나 박 대표에 대해 잘 알고 있을 만한 사람이….

‘…….’

머릿속에 단번에 떠오르는 얼굴이 하나 있었다.

바로 비안과 같은 그룹 활동을 했던 장본인인 유 대표였다.

‘그쪽도 협조를 구하기 어려운 건 마찬가지잖아.’

협조를 구하기 어려운 수준이 아니라 접촉하는 것 자체가 꺼려지는 상황이었다. 그쪽에서 내가 원하는 대답을 들려줄 거라는 보장도 없고.

‘어쨌든 내가 박 대표에게 찍힌 원인이니만큼 본인한테도 좀 책임이 있는 거 아닌가.’

나도 모르게 볼멘 생각이 떠올라 고개를 가로로 저어 내쫒아 버렸다.

그런다고 나한테 협조해 줄 사람도 아니고 굳이 더 생각하지 말자. 지금으로서는 유 대표는 최대한 얽히지 않는 것이 최선이었다.

그럼 유 대표 말고 또 그 시절에 대해 기억하고 있을 만한 사람이 누가 있지. 잠깐 곰곰 기억을 더듬어 가며 연습생 생활을 하며 쌓아 왔던 인맥을 더듬어 보던 나는 불현듯 잊고 있었던 존재에 대해 떠올리고는 눈을 번쩍 떴다.

‘아, 어렸을 때요. 요즘 친구들처럼 막 엄청 체계 잡혀 있고 그럴 때가 아니라서 막 어느 기획사 사장이 조폭 출신이다 이런 루머 많았던 시절 있잖아요. 그때 잠깐 준비했었어요. 엄청 옛날에.’

비안 말로는 연습실 선후배라고 했었지. 그렇담 떡볶이집 사장님도 골든링 소속 연습생이었다는 건가?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연락해 보고 싶었으나 시간이 이미 늦어 버린 후였다.

‘봐서 내일 적당한 시간에….’

까지 생각하고 달력을 본 나는 어느새 성큼 다가온 출국일에 화들짝 놀랐다.

‘미친, 출국 일정이 오늘이었어?’

나사를 대체 어디까지 빼놓고 사는 거냐. 잊어버릴 게 따로 있지 어쩐지 다들 캐리어를 꺼내 놓고 있더라니.

일자를 착각하는 바람에 아직 이틀 정도 여유가 있는 줄 알았는데 전부 오산이었다.

‘일단 짐부터 싸자.’

당장 출국 시간이 오전인데 사장님에게 연락해 볼 틈이 있을 리 만무했다. 정신 빼놓고 살지 진짜. 스스로를 최선을 다해 비난하며 최대한 소리를 죽이고 짐을 챙기니 졸음이 참을 수 없을 만큼 쏟아졌다.

‘국제 전화로 연락했다가는 무슨 사고라도 난 줄 알 테니까…. 잠깐 귀국하는 타이밍 생기면 그때 연락해 봐야겠네.’

키워드 추리도 좋지만 일단 아이돌로서의 활동에 지장이 없어야 할 거 아니냐.

부지런히 자리를 정리하고 눕자 옆에서 제현호가 끙, 앓는 소리를 내며 몸을 돌아누웠다.

‘시끄럽다고 눈치 주는 건… 아닌 것같네.’

겨우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잠깐 눈을 붙이자 오전부터 정신없는 일정이 휘몰아쳤다.

“악, 제 여권 본 사람 있어요?”

“호주 여권이 어떻게 생겼는데?”

“파란색이요, 찐한 파란색!”

“아까 식탁 위에서 봤던 것 같은데?”

어제 내가 먼 곳까지 끌고 나간 탓일까. 아침부터 영인이 덜 챙긴 짐 싸기를 마무리하느라 혼이 나가 있어서 전쟁통이 따로 없었다.

“여권 챙겼으면 나머진 그냥 가서 사, 가서!”

규민이 경험담에 근거하여 소리치자 영인이 애써 고개를 끄덕이며 캐리어 지퍼를 닫았다.

얼렁뚱땅 짐을 챙겨서 우르르 밴에 올라타니 다 같이 혼이 빠진 상태였다.

“누구 빠진 사람 없지?”

그 순간 하나, 둘, 셋, 넷… 한창 머리 수를 세던 매니저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

“어? 왜 사람이 한 명 모자라죠?”

그리고 다들 웬일인지 아침부터 아무 말 없이 조용했던 막내를 떠올리며 비명을 들렸다.

“…애들아 우리 막내 버리고 갈 뻔했다.”

다들 기겁한 채로 숙소로 뛰어 올라가자 지원이 쿨쿨 이불을 뒤집어쓴 채로 잠들어 있었다.

“우리가 안 깨워 줘도 알아서 일어나야지!”

“헉, 지, 지금 몇 시야!?”

놀라서 사색이 된 채 일어난 지원까지 챙겨서 공항으로 출발하니 무슨 한바탕 꿈이라도 꾼 기분이었다.

“이제 정말 빠진 거 없죠? 있어도 그냥 가서 새로 삽시다.”

“그래요. 사람이랑 여권만 있으면 됐지.”

다들 아침부터 심장이 한 번 내려앉느라 녹초가 돼서 비행기에 올라타자 좌석에 여유가 있어서 비행기 안이 굉장히 한산했다.

‘평일 오전 출발이라서 그런가?’

아무튼 비행기 안은 조용했고 짧게 숙면을 취하기 무섭게 도착지 공항에 곧 도착한다는 안내 음성이 울려 퍼졌다.

‘일본은 워낙 가까우니까 뭐….’

오늘 우리가 내릴 공항은 오사카 공항. 오사카에서 한 번, 도쿄에서 한 번 두 번의 일정을 마치고 바로 상하이로 넘어갈 예정이었다.

‘오늘 저녁에 팬 미팅하고 내일 도쿄로 이동, 다음 날 도쿄 팬 미팅하고 바로 상해로 이동이네.’

공연이 연일로 붙어 있는 건 아닌데 휴가나 관광 일정은 없어서 한시도 긴장의 끈을 놓을 수가 없었다.

‘그래도 일주일만 바짝 고생하면 되니까.’

물론 그다음부터는 시차가 벌어지기 시작하는 곳의 일정이 시작되기 때문에 여전히 쉴 수 없겠지만.

태국에서는 신규 미니 앨범 발매를 위해 화보 및 MV 촬영도 예정되어 있어 계속해서 방심할 틈이 없었다.

‘아무튼 바쁜 게 한가한 거보다는 백배 낫지.’

겨우 숨을 돌리고 공항에 내리자 생각한 것보다 많이 몰린 인파에 눈이 휘둥그레졌다.

“저희 공식적으로 사진 찍고 이동하고 그런 건 없는 거죠?”

급하게 뛰쳐나오느라 비행기 안에서 수습이 안 될 만큼 머리가 뻗친 지원에게 모자를 눌러 씌우며 묻자 매니저가 꽤 믿음직한 표정으로 외쳤다.

“네! 바로 시큐리티팀 합류해 주실 거니까 양옆으로 인사 정도만 해 주시고 바로 차량으로 이동하면 돼요!”

“넵!”

하여간 한시도 한눈을 팔 새가 없다니까. 이제 탐정 서인수는 잠깐 실직하고 아이돌 서인수가 활동해야 할 차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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