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1. 수면 아래에 묻히면 (3)
고민을 하던 도중 하품이 쏟아져서 나는 자연스럽게 눈을 감았다.
그리고 기회가 찾아온 건 그로부터 일주일이 채 지나지 않아서였다.
***
“형 정말 갈비찜 맛집 데려가 주시는 거죠?”
눈을 빛내는 영인에게 나는 시선을 외면하며 대답했다.
“어어. 나 어렸을 때부터 갔던 맛집이라서 진짜 맛있어. 예약하기 진짜 힘든데 사장님이랑 우리 엄마랑 친분 있으셔서 겨우 지인 찬스로나 먹을 수 있는 곳이야.”
거짓말은 아니었다. 실제로 갈비찜 맛집인 것도, 엄마 친구분이 하는 가게라서 지인 찬스로나 예약을 따낼 수 있는 것도.
문제는 내가 갈비찜 맛집을 미끼로 무엇을 얻어 냈느냐였다,
‘왠지 멤버를 이용하는 것 같아서 좀 미안하네….’
그렇지만 이 녀석도 갈비찜에 눈이 돌아가서 아무렇지도 않게 OK 했으니 서로 나쁠 것 없는 거래였다.
나는 원하던 정보를 얻고, 이 녀석은 최근 무슨 유튜브 영상을 봤는지 잔뜩 꽂힌 갈비찜을 맛집에서 먹어 보고.
“아 진짜 맛있겠다…. 출국하기 전에 꼭 먹어 보고 싶었는데. 우리 집에서 먹던 거랑은 진짜 때깔부터 다르네요.”
영인네도 한인 이민 가정이다 보니 집에서 한식을 많이 먹기는 한다는데.
고향이 좀 한인이 많이 사는 동네가 아니라고 했던가. 주위에 있는 거라곤 넓디넓은 농장뿐이라서 한식 재료를 제대로 수급할 만한 곳이 없었다고.
덕분에 30분 운전해야 갈 수 있는 서구식 홀 세일 마트에 들어와 있는 재료로 한식을 흉내 낸 것에 가까운 식사를 하다 보니 한국에서 먹는 제대로 된 한식에 환상 같은 게 있었던 모양이었다.
‘굳이…?’
어쩐지 한국에 와서 이거도 먹어 보고 싶었고, 저거도 먹고 싶고 난리를 치길래 무슨 먹는 데 한이라도 맺혔나 싶었는데.
지금까지 먹은 건 사실상 그냥 동네 배달 음식 맛집 정도였고, 정말 전국에서도 차 타고 와서 먹고 갈 정도로 맛있는 집은 한 번도 먹어 본 적이 없었다.
때마침 어머니 친구분 중에 갈비찜을 메인으로 하는 한식당을 운영하시는 분이 있어서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알겠으니까 얼른 인터폰이나 눌러. 초대받은 건 너니까.”
내가 됐으니 빨리 안으로 들어가자는 듯 영인의 등을 떠밀자 영인이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영인과 내가 함께 도착한 이곳은….
‘생각보다 되게 특이하게 생긴 건물이네. 한적한 곳에 있다길래 희한하다 싶긴 했는데.’
바로 골든링 미디어의 사옥이었다.
아무리 봐도 사옥으로 보이지 않게 생겼지만.
뒤로는 저수지처럼 거대한 연못이 있고 앞으로는 한옥과 양옥을 적당히 섞어 놓은 듯한 특이한 양식의 건물이 자리 잡고 있었다.
서울 한복판에서 내비게이션을 찍고 50분쯤 걸렸나. 길이 한적해서 생각보다 오래 걸리지는 않았는데 막상 여기가 본사라고 생각하면 자주 오기 힘들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골든링 소속 연예인 대부분이 나이대가 좀 있는 중견이라서 그나마 다행인가.’
물론 젊은 나이대의 가수들도 있긴 하지만 그들이 자기 발로 여기 자주 들락거릴 일은 없어 보였다.
‘미팅 같은 중요한 일정이 있어서 매니저나 보내 줘야 오겠지.'
NO 사옥이 서울 노른자 땅 한복판에 있어서 소속 연예인들이 틈만 나면 아티스트 라운지나 식당을 이용하기 위해 드나드는 것과는 대조적이었다.
'NO가 다른 건 짜증 나도 밥은 잘 줬으니까.’
연습생들은 식단 조절해야 한다고 조절식밖에 못 먹긴 하지만 데뷔를 한 아티스트나 직원들이 이용하는 식당은 상당히 휘황찬란했다.
‘오죽했으면 NO 직원 식당 밥 먹고 싶어서 데뷔하겠다는 농담도 돌았으니까.’
그에 반해 이 한적하다 못해 무슨 저수지 카페 같은 전경이라니.
아무리 봐도 연예인 소속사 본사로는 보이지 않았다.
“알겠어.”
내가 잠시 주변 풍경에 시선을 빼앗겨 있는 사이 영인이 차임벨을 누르자 곧 안에서 인기척이 들렸다.
“표영인 군?”
안에서부터 영인을 부르는 목소리가 들리자 영인이 산뜻하게 대답했다.
“아, 네! 안녕하세요!”
모처럼 미팅용으로 포멀하게 입고 나와서 그런가. 평소의 앳된 이미지는 어디 가고 전문 모델처럼 차분한 분위기가 물씬 풍겼다.
‘이건 솔직히 좀 사기 아닌가.’
옷 좀 단정하게 입었다고 이렇게 사람이 달라 보이나. 거기다 본인도 오늘은 너무 방방 뜨면 안 되는 자리라는 의식은 있는지 평소보다 유독 차분해서 이 모습만 보면 깜빡 속을 수 있겠다 싶었다.
“같이 오신 분은….”
아마 대표와 바로 붙어서 일하는 중간 관리자급 직원인 듯 30대 중반쯤 되어 보이는 여자 직원분이 나를 보며 당황한 표정을 금치 못했다.
나는 산뜻하게 웃어 보이며 대답했다.
“안녕하세요, 서인수입니다.”
직원이 뭐라 말을 하기도 전에 영인이 재빨리 끼어들었다.
“앗, 제가 외부 미팅은 이번이 처음인데…! 혹시 한국 문화를 잘 몰라서 실수하거나 할지도 모르니까… 친구 한 명 데려와도 되냐고 했더니 괜찮다고 하셨어요!”
그러자 직원의 애써 호를 그린 입꼬리가 파르르 떨렸다.
“아, 그게 같은 팀 멤버분을 말씀하시는 거였구나….”
“네! 인수 형도 지금 본소속사는 없으니까 괜찮을 것 같아서요. 혹시 곤란할까요?”
여기까지 왔는데 곤란하답시고 나를 내쫓을 수는 없겠지. 직원이 어쩔 수 없다는 듯 안쪽으로 향하는 자동문을 열며 나와 영인을 안내했다.
“음…. 아뇨. 괜찮습니다. 우선 안으로 들어오세요.”
드르륵, 소음을 거의 내지 않고 열린 유리문 안으로 들어가자 내부는 마치 카페나 갤러리를 보는 것처럼 깔끔했다.
“대표님은 곧 내려오실 겁니다.”
그리고 직원이 안내한 대로 잠시 후 2층으로 이어진 계단에서 나이 든 노인이 손잡이를 쥐고 한 칸 한 칸 조심스럽게 내려왔다.
“아, 안녕하세요!”
영인이 환한 미소와 함께 자리에서 일어나 인사를 건넸다. 나 역시도 어른을 앞에 두고 버르장머리 없이 엉덩이를 대고 앉아 있을 수는 없어 의자에서 일어났다.
“안녕하세요, 서인수입니다.”
영인 뒤에 가려져 있던 내가 웃으며 모습을 드러내자 박 대표의 표정이 실시간으로 일그러지는 게 아주 장관이었다.
“허, 아니… 허… 인수 군이 여기는 어떻게….”
그러자 나 대신 영인이 내 어깨를 꽉 감싸 쥐며 대답했다.
“아, 제가 이런 자리가 처음이라서 혹시 친구랑 같이 와도 되는지 여쭤 봤거든요. 괜찮다고 하셔서요!”
다만 그 친구가 같은 팀 아이돌 멤버 서인수라고 말하지 않았을 뿐. 어쨌거나 거짓말은 아니었다.
“혹시 곤란하실까요?”
아까와 같은 패턴으로 영인이 두 눈을 깜빡이며 묻자 노인이 그럴 리가 있겠냐는 듯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 괜찮아요. 일단 앉읍시다.”
내가 영인을 따라 이 자리에 오게 된 데는 약간의 행운이 있었다.
‘이 녀석 어디 이상한 소속사에 낚여 들어가서 호구 잡히는 거 아냐?’
다른 녀석들이야 다 본소속사가 있으니 알아서 돌아가겠거니 하더라도 소속이 없는 영인인 불안하기 그지없었다.
‘가뜩이나 능력치는 좋은 데 비해 비즈니스적으로는 밝지가 못해서 믿을 수가 있어야지.’
반쯤은 나도 어떻게 갈피를 잡아야 할지 참고하려는 의도도 있었고 잘하고 있나 걱정이 되는 마음도 있었다.
여덟 명이나 되는 인원 중 같은 입장인 건 나랑 이 녀석밖에 없으니까. 혹시나 고려하고 있는 회사가 있는지 물을 겸 따로 이야기를 해 봤다가 생각도 못 한 소식을 들었다.
‘어… 저 모르는 사람들한테서 문자가 오기는 하던데요?’
모르는 사람? 연락처야 사실 겟 데뷔 촬영 중 연습생들끼리 주고받은 것도 있고 사실상 겟 데뷔 제작진들에게는 공공재나 다름없을 만큼 뿌려져서는 알려질 대로 알려진 상태였다.
회사 쪽에서 연락을 하려거든 관계자들을 통해 건너 건너 얼마든지 연락처를 구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메시지 한번 보여 줄 수 있어?’
그러자 영인이 조금도 거리낄 것이 없다는 듯 내게 흔쾌히 핸드폰을 내밀었다.
아니… 좀 이렇게까지 다 오픈할 필요는 없고 조심 정도는 해라.
나를 너무 믿는 건지 아니면 사람에 대한 경계심이 없는 건지.
핸드폰을 받아서 메시지 함을 쭉 내려 보자 과연 읽지도 않은 연락들이 쌓여 있었다.
‘이거 그냥 이대로 놔두려고?’
내가 의아한 얼굴로 묻자 영인이 어깨를 으쓱였다.
‘당장은 굳이 막 전전긍긍할 필요 없지 않아요?’
뭘 모르는 소리. 공백기가 얼마나 무서운 건지 몰라서 할 수 있는 말이었다.
‘무슨 소리야. 누구는 프로젝트 그룹 해체하자마자 다음 달에 데뷔하기도 하고 그러는데.’
물론 그건 내 생각엔 좀 빠른 게 아닌가 싶긴 하지만.
말이 좋아서 쉬는 거지 앞으로 계속 연예계 활동을 할 거라면 대중에게 잊히는 건 순식간이었다.
느긋하게 쉴 때 쉬더라도 계속 방송에 얼굴을 내비치고 앞으로 어떤 활동을 할 것인지 팬들이 예상할 수 있도록 떡밥을 뿌려 두지 않으면 순식간에 밀려나기 마련이었다.
‘내가 그랬으니까.’
쭉 메시지를 내리다 보니 NO는 물론이고 NO와 비슷한 수준의 대형사부터 처음 들어 보는 이름의 신생 회사까지. 여기저기서 혹시 시간 되면 연락 좀 줄 수 있겠냐고 아우성들이었다.
‘이걸 지금까지 다 씹어 온 거냐.’
나는 기함을 토하던 중 익숙한 사명을 하나 발견했다.
[안녕하세요, 골든링 미디어 캐스팅 디렉터 최승희입니다…. (더 보기)]
오? 기대하던 이름을 발견한 순간 두 눈이 빛났다. 그리고 이어서 메시지를 클릭해 전문을 확인하자….
‘이거 대체 언제 받은 메시지인데?’
수신일이 무려 2달 전이었다.
‘뭐 이런….’
이걸 아직도 안 읽었어? 그쪽도 연락했던 사실을 까먹은 건 아닌가 모르겠네.
갈비찜으로 영인을 회유하고 한번 미팅만 나가 봐 줄 수 있냐는 부탁에 영인은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보통 미팅 때 나가면 무슨 얘기 해요?’
본인도 큰 기대를 하진 않는 것 같지만 이런 자리에서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궁금하기는 했었다고.
앞으로 진짜 소속사를 찾아가기에 앞서 추천하고 싶지 않은 소속사는 어떤 뉘앙스를 풍기는지 직접 경험해 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혹시라도 영인이 대표의 사탕발림에 넘어갈 뻔하면 내가 생각해 보고 연락드리겠다고 적절히 차단할 생각이었다.
“음…. 그래, 영인 군이 지금 정확히 몇 살이죠?”
비자 문제나 앞으로의 활동 반경 때문일까. 잠시 놀란 듯한 표정을 짓던 대표가 마침내 입을 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