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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년 차 천재 연습생의 데뷔 공략-204화 (204/224)

#204. 한 발자국 더 (4)

조금 전. 식사를 마친 후부터 이어진 강도 높은 노동 이후 오후 워크 타임이 끝나기 1시간쯤 전.

‘인수 씨, 하연 씨 잠깐 이쪽으로 좀 와 보실래요?’

땀을 뻘뻘 흘리고 있던 우리를 향해 직원분이 손을 흔들었다.

‘뭐지?’

하연과 동시에 눈이 마주쳤으나 떠오르는 이유가 없는 건 마찬가지인지 하연 역시도 어리둥절한 표정이었다.

‘저희 아직 수면실 정리 안 끝났는데요?’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설명을 기다리자 직원이 활짝 웃으며 탈의실을 가리켰다.

‘땀 많이 흘리셨을 테니까 샤워하시고 저쪽에서 준비된 유니폼으로 갈아입고 나오시면 되세요.’

또 뭘 시키려고 샤워까지 하라는 거지? 긴장하기도 잠시 배정된 캐비닛 안에 있는 건 유니폼이라기보다는 가운에 가까운 옷가지였다.

물론 그것만 있는 건 아니고 찜질복처럼 얇은 반팔과 반바지도 함께 들어 있었다.

‘가운은 그냥 넣어 둔 거겠지?’

의아해하며 나도 하연도 반팔에 반바지 차림으로 나오자 직원이 웃으며 도로 탈의실로 돌려보냈다.

‘가운도 같이 입고 나오셔야 해요!’

대체 뭘 시키려고? 그간의 중노동으로 인해 두려움이 밀려든 순간 직원이 우리를 데리고 간 다음 장소는….

‘음?’

‘어… 여기가 일할 데가 맞나요?’

아무리 봐도 우리 같은 알바들이 일할 만한 장소는 아닌 것 같은데.

의심을 지우지 못한 눈으로 묻자 직원이 대답했다.

‘저희가 다음 시즌에 새로운 스파 서비스 오픈을 앞두고 있거든요. 두 분이 먼저 체험해 주시고, 냉정한 평가를 남겨 주시는 게 오늘의 마지막 업무입니다!.’

스파 서비스라고 해도 시간이 없어서 여러 욕탕에 족욕 하는 게 전부인 것 같긴 하지만. 부담을 느낄 새도 없이 따뜻한 물에 발을 넣자 피로가 풀리며 잡념이 사라졌다.

‘살 것 같다….’

‘진짜요….’

그렇게 마지막 30분 정도를 휴식으로 보낸 덕분에 중노동으로 인한 원한은 씻겨 내려가고 보송보송 노곤해진 채로 멤버들과 합류하게 되었다.

“어쩐지 형들 쪽에서 좋은 냄새가 나는 것 같은데요?”

영인이 무슨 탐지견이라도 되는 것처럼 코를 킁킁거리자 하연은 조용히 입을 다물었다.

“그야 계속 스파존에서 일했으니까 당연하지. 입욕제에서 나쁜 냄새가 나겠어?”

“그런가?”

내 천연덕스러운 대답에 영인은 더 캐묻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자 그러면 다들 너무 고생하셨고요! 이제 저녁 먹으러 이동할까요?”

이제는 반쯤 악마나 노동 교관 정도로 보이는 매니저와 카메라 감독이 우리를 데리고 간 곳은 다름 아닌 뷔페였다.

“저희 제원 리조트의 ‘테이스트 오브 제주’는 제주 각지의 특산물은 물론 퓨전 한식의 매력을 살린 60종이 넘는 요리들이 준비되어 있는….”

직원분이 굉장히 길게 설명에 설명을 이어 가셨지만 그 설명이 귀에 제대로 들리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 보였다. 그도 그럴 게 다들 강도는 조금씩 차이가 있었어도 고생을 안 한 팀은 없었던 듯하니까.

’뭐라도 넣어야 살 것 같겠지.‘

묵묵히 빈 접시를 집어 들고는 전투적으로 한 곳을 향해 움직였다.

“고기! 육류 코너 저기 있다!”

“와!”

“우와 종류가 엄청 많네…!”

대놓고 눈을 빛내며 좋아하는 녀석들부터.

“……”

“………”

말할 기운도 없는 건지 아니면 원래 성격인지 묵묵히 고기 앞으로 가서 차례를 기다리는 녀석들도 있었다.

‘아무리 그래도 제현호도 정은찬도 평소보다 너무 과식하는 거 아닌가.’

제현호야 원래 잘 먹을 때는 남들 입이 떡 벌어지도록 먹는 편이니 이해가 가지만.

은찬은 ‘형 그거 진짜 다 먹을 수 있어요?’ 묻고 싶은 마음에 질문이 턱 끝까지 올라왔으나 표정이 너무나 엄숙해 보여서 그 앞을 가로막을 수가 없었다.

‘뭐 못 먹으면 박하연이 대신 먹어 주겠지.’

나는 후, 한숨 돌리고는 묵묵히 샐러드가 있는 콜드존으로 향했다.

“엥, 뭐냐.”

그리고 한참 샐러드를 퍼담고 있는 와중 규민이 와서 기웃거렸다.

“뭐가?”

또 왜 이러지. 미간을 좁히고 규민을 바라보자 규민이 말도 안 된다는 듯 충격을 받은 얼굴로 물었다.

“너 그게 전채인 거지? 에피타이저 뭐 그런 거.”

또 뭔데? 나는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초밥이랑 연어 회 담은 거 안 보이냐?”

“헐.”

그러자 규민이 더더욱 놀람을 감추지 못했다.

“일단 회부터 먹고 그다음에 고기로 채우는 쪽?”

“이 정도 먹었으면 됐지 뭘 또 먹으라고?”

그만 귀찮게 하라는 듯 규민을 지나쳐 자리에 앉은 순간. 나는 왜 규민이 나를 희한한 사람 보듯 굴었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아, 이래서.’

나를 제외한 모두의 접시 위에 누가 보면 못 먹어서 한 맺힌 사람들처럼 음식이 가득 쌓여 있었기 때문이었다.

“음식 남기면 벌 받는다.”

어째 평소보다 무리해서 담은 것 같은 지원을 흘끔 바라보며 말하자 옆에서 영인이 한술 거들었다.

“나중에 지옥 가서 남은 음식 다 비벼 먹어야 한다던데.”

“헉…! 나 그 얘기 들어 본 적 있어…!”

화들짝 놀라 충격에 빠진 지원의 얼굴이 귀여우면서도 퍽 안쓰러웠다.

“뭘 벌써부터 지옥으로 보내. 그 정도까지는 아니야.”

그러자 지원이 결연한 표정으로 외쳤다.

“안 남기고 꼭꼭 씹어서 다 먹을게!”

“오올~. 파이팅?”

그것도 그것대로 그다지 권장할 만한 일은 아닌 것 같긴 하지만.

오늘은 다들 태운 열량도 보통이 아닐 테니 하루 정도는 고삐가 풀려도 괜찮겠지.

유명 리조트라서 그런지 밥은 확실히 맛있었고 배부르게 식사를 마치고 나니 벌써 잠들기 전까지 하나의 스케줄만 남아 있었다.

‘아까 보니까 어디 옥상에서 찍는다고 했던 것 같은데….’

옥상에서 대체 뭘 하는 거지? 의아해하고 있으려니 아까 스파 룸에서 입었던 것 같은 얇은 반팔 반바지와 가운을 건네받았다.

“……?”

다들 영문을 모른 채 주섬주섬 옷을 갈아입고 제작진을 따라 이동하자 천장이 뚫린 유리 건물이 보였다.

대체 뭐 하는 건물인가 했더니 안으로 들어서자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족욕탕이 마치 카페처럼 테이블별로 설치되어 있었다.

‘옥상에 별걸 다 만들어 놨네.’

사방을 유리 벽으로 막아 온기 손실을 줄이되 천장은 터 놔서 밤하늘의 별이 반짝반짝 눈에 들어왔다.

“우와…!”

“저기 별자리도 보인다.”

“오, 어디요?”

“저기서부터 이렇게 쭉~.”

규민이 손으로 어딘가를 향해 가리키자 모두의 시선이 그쪽으로 향했다.

“저기 저 세 개 주르륵 붙어 있는 거 보이지?”

“네네.”

“거기서부터 이렇게 쭉 올라가서, 이쪽으로 꺾으면…”

저런 건 또 어디서 배워서 저렇게 잘 알고 있는 건지. 나와 같은 궁금증을 가진 다른 녀석이 대신 물어봐 주었다.

“형은 근데 그걸 어떻게 알아요?”

“그건 말이지… 흠흠.”

또 무슨 얘기를 하려고. 궁금하긴 했지만 1절 2절을 넘어 3절 4절까지 듣고 싶은 생각은 없었으므로 나는 진행을 위해서라도 재빨리 가로막았다.

“요점만 정리해, 요점만.”

“쳇.”

지금 뒤에서 촬영하려고 대기 중인 사람만 대체 몇 명이냐. 자각을 좀 하라는 의미로 눈치를 주자 규민이 입을 삐죽 내밀고는 대답했다.

“너도 시골에 1년에 10번도 넘게 내려가면서 친척 동생 많은 집의 형으로 살아 봐. 뭐라도 시간 때우고 애들 놀아 주다 재우려면 주위의 모든 걸 활용해야 하거든.”

한마디로 애들 봐주느라 때마침 공기도 좋겠다 잘 보이는 별을 설명해 주겠다고 따로 익혔다는 말이었다.

“우와…. 규민 형네 사촌 동생들은 엄청 좋았겠다.”

“아 당연하지, 내가 얼마나 잘 챙겨 줬는데.”

뭐 그런 거 보면 애가 아주 자기만 아는 거 같진 않지만….

“그래그래 좋은 형인 거 알겠으니까 얼른 저쪽 가서 앉아.”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고. 삼삼오오 흩어져서 자리를 잡고 앉으니 곧 동행한 PD님이 마지막 일정을 소개했다.

“지금부터 기념품 쟁탈전을 진행할 건데요. 각자 순서를 돌아가면서 진실 게임을 진행하고, 솔직하게 대답한 개수로 승자를 가려 제원 리조트에서 준비한 특별한 선물을 가져가게 될 겁니다.”

그러고는 모두가 둘러앉은 테이블 위로 거짓말 탐지기와 뽑기 상자를 올려놓았다.

“지금부터! 왼쪽부터 오른쪽으로 앉은 순서대로 공을 하나씩 뽑아 주시고요. 공에 이름이 적힌 사람이 질문을 해 주시면 되겠습니다.”

“오…! 나 이거 해 보고 싶었어.”

그러면서 다들 꽤 들뜬 느낌인 게 예능이나 방송에 워낙 많이 나왔던 물건이라 한 번쯤 실제로 써 보고 싶었던 모양이었다. 단 한 사람, 하연만을 제외하고.

“저거 엄청 따끔해요. 다들 방송이라 엄살 부리는 게 아니라 진짜 아프더라고요.”

“해 봤어?”

“오?”

모두의 시선이 하연에게로 쏠리자 하연이 조금 멋쩍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아, 네 뭐…. 친구 중에 가지고 있는 애가 있어서….”

“궁금하긴 한데 거짓말 뜨면 불리한 거니까 굳이 손이 지져져 보고 싶진 않네.”

이런저런 말을 보태는 사이 슥, 제이 왼쪽에 앉은 정은찬부터 차례가 시작되었다.

“공에 적힌 이름을 확인해 주세요!”

뭐 얼마나 대단한 뽑기를 한다고. 은찬이 한참 동안 박스 안을 뒤적인 끝에 뽑은 건, 다름 아닌 내 이름이었다.

[서인수]

“…….”

말없이 슥 보여 준 공을 확인한 나는 잠시 고민에 빠졌다. 뭘 물어보지? 딱히 물어보고 싶은 게 없는데… 진짜 궁금했던 건 이런 데서는 물어볼 수가 없고.

예능감을 살리면서 무슨 질문을 해야 은찬의 심기를 거스를 만큼 무례하지 않을까….

고민하는 사이 규민이 삐빅, 어디서 구한 건지 모를 호루라기를 불었다.

“타임아웃, 타임아웃!”

“이상한 소리 하지 마.”

나는 규민의 차단을 가뿐히 무시하고는 겨우 질문거리를 쥐어 짜냈다.

“저 질문이요. 나는 솔직히, 멤버 중에 음치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한 명은 있다.”

당연히 아니라고 하겠지. 실제로도 음치는 없으니까.

기본적으로 어쨌거나 나와 한 조가 되어 무대를 성공적으로 올리는 데 기여를 했던 멤버들이라서, 1인분 이상은 하는 녀석들뿐이었다.

‘랩 라인인 박하연도 노래를 못하진 않으니까.’

그리고 예상한 대로 은찬 역시도 당당하게 고개를 가로저었다.

“없는데?”

그리고는 탐지기 위에 손을 얹고 버튼을 눌렀다.

“두구두구두구두구.”

요란한 추임새와 함께 기계에 불이 번쩍이던 그때.

“악!”

은찬이 답지 않게 비명을 지르며 고개를 숙였다.

“엥?”

“응?”

모두가 충격에 빠진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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