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 한 발자국 더 (2)
[19XX년 12월 10일 최초 실종 신고 접수….]
단순히 우연일 수도 있겠지만 유 대표가 밀키즈의 일원으로 복귀하던 시기와 크게 차이 나지 않았다.
‘아예 무관한 사건이라면 그냥 시기가 비슷했던 것뿐이겠지만….’
다른 것도 아니고 시스템이 제공하는 틀 안에서 제시된 키워드인데 그냥 아무 연결 고리 없는 개별의 사건일 리 없었다.
서천향 일 때문에 복귀 날짜가 저렇게 잡혔다거나…. 뭔가 다른 사정이 있는 건가?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화면으로 빨려들어 갈 듯 서천향과 관련된 내용을 찾아보고 있으려니 매니저가 불쑥 물었다.
“뭐 재밌는 거라도 있어요? 아까부터 핸드폰에서 눈을 못 떼길래….”
별 의미 없어 보이는 질문이었으나 그렇게까지 눈에 띌 정도였나. 나는 천연덕스럽게 핸드폰 화면을 껐다.
“아, 아까 출발하기 직전에 출연진들끼리 단톡방에서 나중에 시간 될 때 모이자고 얘기가 나왔거든요. 한창 언제 시간 괜찮은지 맞춰 보느라 얘기하고 있었어요.”
행여 연락하는 사람이라도 있어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푹 빠져 있는 줄 알았나.
매니저를 안심시키고 창밖을 내다보자 슬슬 서울 근교의 풍경들이 보였다.
‘숙소 가면 한숨 푹 자고 유역한테 연락해 봐야지.’
머릿속으로 차근차근 뭐부터 할지 정해 둔 것이 무색하게도 집에 들어가자마자 폭죽 터지는 소리가 요란하게도 울려 퍼졌다.
“고생했어!”
“고생 많았어~.”
“고생했어요!”
이건 또 뭐야?
지난주에는 별일 없이 다들 얌전히 저녁 먹을 준비만 하고 있었길래 첫 주만 그동안 드물었던 리더의 부재에 다들 빈자리를 실감하고 반겨 준 줄 알았는데.
느닷없이 천장에서부터 쏟아지는 종이 폭죽 뭉치에 유지원이 커다란 케이크를 양손 가득 들고 있었다.
“뭐야 이게?”
나 뭐 축하받을 일 생겼나? 나도 모르는 사이에 새 스케줄이 생겼거나 무슨 상이라도 받게 된 건가?
영문을 알 수가 없어서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묻자 규민이 의기양양한 얼굴로 대답했다.
“뭐긴 뭐야. 촬영 고생 많았다고 막촬 축하해 주는 거지!”
‘굳이?’
나는 반사적으로 튀어나올 뻔했던 문장을 애써 집어넣었다.
“어… 고맙긴 한데….”
개인 출연 스케줄 막촬이 이렇게까지 축하받을 일이던가? 당황한 그때 영인의 시선이 어디 한 곳에 고정된 채 움직일 줄을 몰랐다.
“…….”
역시 이쪽이 목적이었군. 나는 손으로 지원이 들고 있는 케이크를 가리켰다.
“이건 내 선물로 준비한 거야?”
그러자 이 상황에서 차마 아니라고 대답할 수는 없었는지 지원이 재빨리 고개를 끄덕였다.
“응…!”
야, 너도 아주 곧 있으면 입술 아래로 침 떨어지겠다. 꽤나 기대감이 묻어나는 얼굴에 나는 아무렇지도 않게 거의 빼앗듯 지원에게서 케이크를 받아 들었다.
“나 올라오면서 멀미가 좀 나서 바로 못 먹을 것 같으니까 속 좀 풀리면 먹을게. 고마워, 다들 이렇게 준비해 줘서 정말 감동이다.”
그러자 거실에 나와 있던 전원 지금 당장 먹는 게 아니었냐는 듯 표정에 실망감이 어렸다.
‘거봐. 나는 그냥 핑계라니까.’
어쩐지 케이크가 좀 특이해 보이기는 했다. 흔한 프랜차이즈 빵집에서 사 온 게 아니라 장식도 섬세하고 재료도 더 향긋한 게 유명한 집에서 사 온 것인 듯했다.
‘평소에는 배달 음식 정도면 모를까 케이크 같은 건 식단 때문에 못 먹게 하니까.’
조금이라도 축하할 만한 일이 생기면 무슨 잔치를 벌이려고 하는 모습이 어이없기도 하고 웃음도 나왔다.
‘툭하면 축하해야 한다고 특별식을 먹으면 식단 조절하는 의미가 없잖아.’
그래도 이 정도는 눈치껏 알았다 하고 넘어갈 만하지만. 마냥 그 속셈에 아무것도 모르는 것처럼 넘어가 주기에는 나를 핑계 삼은 것이 괘씸해서 조금은 골려 주기로 마음먹었다.
“그럼 나 먼저 씻고 나와도 되지? 촬영하느라 먼지를 뒤집어썼더니 피곤하네.”
내가 케이크를 정리해서 냉장고 안에 집어넣으며 묻자 지원이 흔들리는 눈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어? 으응….”
그리고 잠시 정적이 흘렀다. 그 어색한 분위기에 나는 결국 웃음을 참지 못하고 어깨를 들썩였다.
“푸흐… 하하… 아니 그냥 케이크 먹고 싶으면 먹고 싶다고 말을 하지. 왜 내 선물이라고 한 거야.”
내가 웃으며 닫았던 냉장고 문을 열자 그제야 다들 표정이 화색이 돌았다.
“아 뭐야.”
“뭐긴 뭐야. 그냥 먹고 싶은 거면서 내 거라고 하니까 한번 장난 좀 쳐 보고 싶었지.”
“……!”
그러자 영인이 다시 눈을 빛내며 물었다.
“그럼 지금 바로 먹는 거예요?”
“어. 근데 나 별로 안 당겨서 얼마 안 먹고 싶은 것도 맞아. 원래도 케이크 별로 안 좋아하니까 나는 맛만 보고 씻으러 들어갈게.”
“아싸!”
당사자가 별로 안 당긴다는데 좋아하는 거 봐라. 나는 2차로 웃음이 터져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
잠시 후, 씻고 잘 준비를 마치자 방영 관련 정보가 방송사 홈페이지는 물론 각종 홍보 채널에 풀려 있었다.
‘드디어….’
팬들 반응이 어떨지 궁금했다. 그동안 각종 예능의 계스트로 출연했던 적은 많았지만 다 고정 호스트가 있는 프로그램의 일회성 게스트로 출연한 것뿐이었다.
비록 이것도 6주짜리 단기 프로젝트이긴 하지만 게스트가 아니라 고정 멤버로 출연한 건 처음이라서 반응이 기대가 되었다.
‘일단 이름부터 검색해 볼까….’
슬쩍 실시간 반응이 올라오는 SNS에 검색해 보자 다행히 기대된다는 의견이 대부분이었다.
[- 얘들아(0명) 놀라지 마라 수리더 이번에 놀랍게도 ‘동생 조’다]
[ㄴ 헐 대박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ㄴ ????????]
[ㄴ 인수가 동생 라인이라니 이게 실현 가능한 것???]
[ㄴ 출연진 전원 20대 초반이긴 한데 23 두 명에 24 한 명이라 반씩 나누면 인수가 동생 라인 맞아요(글썽거리는 이모지)]
[- 와 춤신 팔로워 100만 찍더니 바로 예능 나오네 ㄷㄷ]
[ㄴ 10만 찍은 게 작년 여름이었는데 개쩐다….]
[ㄴ 대체할 수 있을 만한 사람이 없어서 더 유명해진 듯]
[- 요리뿅 뭐야ㅋㅋㅋㅋㅋㅋㅋㅋㅋ 라인업 진짜 누구 취향인지 예상을 1도 할 수가 없다]
[ㄴ 유역은 누구야? 요리뿅이나 춤신은 좀 TV 말고 다른 데서 유명한 사람들이라 알겠는데 유역은 진짜 첨 들어 봄]
[ㄴ 신인인데 표주희랑 같이 영화 찍는 중이라더라 ㅇㅇ 영화 개봉하기 전에 인지도 홍보 차원에서 나오는 듯]
[- 서인수 말고 다 모르는 얼굴인데]
[ㄴ TV 안 봄? 인터넷 회선 끊김?]
[ㄴ 뭐래 인터넷 안 되면 이거 쓰고 있겠냐?]
[ㄴ 너만 모른다고 세상 사람들이 다 모르는 게 아니란다]
[ㄴ 아니 내가 듣보라고 한 것도 아니고 내가 아는 얼굴이 서인수밖에 없다는데 왜 와서 ㅈㄹ임?]
(24개의 댓글 더 보기)
[ㄴ 두 분 계속 싸울 거면 제발 써방 좀 해 주시면 안 될까요?]
출연진 중 다소 지상파 채널에서 얼굴이 널리 알려지지 않은 인물들이 섞여 있어서 생소하다는 반응이 있긴 하지만. 어쨌든 컨셉이나 내 출연에 대한 반응은 좋았다.
이번에 멤버들을 떠나 다른 출연자들과 어울리는 건 처음이라서 걱정이 된다는 사람도 있었고, 엔카운터 멤버들이랑도 비슷한 기획을 찍어 달라는 의견도 있었다.
[- 첨 만난 조합으로도 이렇게 기대되는데 엔카운터도 이런 거 찍어 줬음 좋겠다 자컨 언제 나와ㅠㅠㅠㅠ]
하지만 그럼 그건 자컨이 아니라 그냥 숙소 생활 공개 아닌가.
이미 숙소 생활이라면 데뷔 직후 겟 데뷔에서 이어진 후속 특집에서 보여 준 적이 있었다.
‘자컨은….’
한창 주가를 높이고 있는 인기 그룹치고는 데뷔 초에 내보냈던 체험 특집 말고는 따로 더 내보낸 적이 없긴 하지.
그러고 보니 우리도 조만간 뭐 찍는다고 하지 않았나?
그리고 당장 다음 날.
“음?”
냅다 공항으로 끌려온 나는 이게 무슨 상황인지 잠깐 파악이 안 돼서 머리가 빙글 돌았다.
“와 대박, 나 퍼스트 처음 타 봐!”
“…….”
“우와 이거 좌석 몇 도까지 젖혀지는 거예요?”
고작 30분짜리 비행에 이게 무슨 유난이냐 싶으면서도. 상황 파악이 덜 된 채로 얼굴에 물음표를 잔뜩 띄운 내게 승무원이 다가와 물었다.
“혹시 도움이 필요하신 게 있으실까요?”
나는 재빨리 정신을 차리고 대답했다.
“아뇨, 괜찮습니다!”
그러니까 분명 조만간 어디 이동해서 며칠 묵고 올라오는 스케줄이 있을 거라는 건 기억을 했는데.
한동안 계속 유역 문제에 정신이 팔려 있느라, 매니저가 데리고 가는 스케줄만 졸졸 따라다니고 스스로 일정 정리하는 것을 살짝 미뤘더니 기어이 일이 터지고 말았다.
“와…. 아직도 눈 오는 곳이 많은가 봐. 운치 있긴 하겠다. 우리 이러다가 폭설 내려서 서울로 못 돌아가는 거 아니야?”
그 스케줄이 제주도까지 내려가는 건 줄은 몰랐단 말야.
알고 보니 원래는 강원도 쪽으로 갈 예정이었는데 갑자기 그쪽 일정으로 촬영이 어렵게 되면서 급히 다른 로케이션으로 장소를 바꿨다고 했다.
‘아고, 요즘 너무 바빠 가지고 기억을 못 했나 보다. 그래도 일정은 동일하게 가니까 너무 걱정 마세요.’
그렇긴 한데 아무래도 고속도로 타고 이동하는 것과 짧게라도 비행기를 타는 건 느낌이 다르니까요?
얼떨떨한 채로 제주 공항에 내린 우리를 맞아 준 건 촬영 업체에서 보낸 직원이었다.
“안녕하세요, 만나서 반갑습니다! 제원 리조트 유경민 매니저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그 기획이라는 게… 아무튼 놀고먹는 그런 건 아니었다는 것만 흐릿하게 기억에 남아 있었는데.
“아무래도 촬영이니까 인턴분들만큼 진행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체력적으로 쉽지 않은 일이라서 걱정이 조금 되네요. 다들 너무 무리하지 마시고 혹시 부담되시면 언제든지 저희 직원들에게 전달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대체 뭘 시키려고 벌써부터 이렇게 겁을 주는 건데…? 아니 그보다 그놈의 어디든지 가서 일해 드립니다, 컨셉 그때 기획으로 끝난 거 아니었어?
끝나지 않는 일꾼 유니버스에 머리가 지끈거렸다.
“와 리조트면 온천 같은 것도 있나요?”
규민의 태평한 질문에 직원이 웃으며 답했다.
“네! 저희 제원 리조트에는 제주도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스파 파크가 있습니다!”
“와!”
우리 지금 놀러 온 게 아니라 그 파크에 일하러 온 거거든? 솔직히 말해, 그리 웃음이 나오는 상황은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