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4년 차 천재 연습생의 데뷔 공략-201화 (201/224)

#201. 한 발자국 더 (1)

‘억지로 뭘 연기하거나 꾸며 낼 필요는 없어, 그냥 네가 하고 싶은 대로 해.’

본심을 숨기지 않은 채 대화를 나눠 본 유역은 마치 유리창을 들여다보는 것처럼 투명했다.

연기자로서의 모습은 어떤지 잘 모르겠지만 최소한 교류 상대로서 가까이하고 싶지 않은 불편한 타입은 아니었다.

단지 이제… 말이 너무 많다 보니 진심은 전달되는데 사람을 질리게 만든단 말이지.

그럼 정답은 명쾌했다. 말을 줄이면 된다. 소속사에서 그걸 차라리 말을 하지 말라고 해서 이 사달이 난 것 같다만….

‘대신 조건이 있어. 네가 하고 싶은 말의 딱 반만 해. 그리고 말을 하기 전에 먼저 무슨 말을 할지 생각을 하고 분량을 절반으로 줄여. 말하기 전에 좀 시간이 걸리더라도.’

지금처럼 횡설수설했다가는 나쁜 녀석이 아니라는 걸 알아도 진심으로 교류하고 싶어 하는 사람이 있을 리가….

‘있을 수도 있겠지만. 그건 아무래도 소수일 테고.’

아무튼 말하기 전에 꼭 전체 문장을 한 번 속으로 가다듬어 보기, 그리고 분량 줄이기를 제안하자 확실히 소통의 부재는 줄어들었다.

첫 회차 때부터 보여 준 이미지에서 크게 달라지지 않으면서 조금은 성장한 것 같은 모습으로 비쳐서 편집만 잘 받으면 금상첨화일 듯했다.

‘피디님한테 말씀드렸을 때 반응도 꽤 긍정적이었지.’

기본적으로 경쟁이나 경연을 다루는 자극적인 프로그램이 아니라 우리끼리 재밌게, 그리고 잘 지내는 모습을 보여 주는 힐링 버라이어티라서 흔쾌히 협조해 주겠다고 했다.

‘그쪽이 프로그램의 지향점이랑도 잘 어울리겠지.’

집을 떠나서 처음으로 자취 생활을 시작한 20대 초반 청년들의 성장기를 보여 주는 게 핵심이라고 했으니.

요리뿅은 첫인상의 편견을 지우고 달라진 동생을 받아들이는 모습을, 유역은 소통할 줄 몰라서 생겼던 오해를 풀고 자신의 문제점을 고쳐 나가는 모습을 보여 주면 서로 윈윈일 테니까.

‘나도 뭐… 마지막까지 계속 의사소통 어려워하는 동생 챙겨 주는 형으로 나갈 테니 나쁠 건 없고.’

우리뿐만 아니라 나머지 출연자들도 조금씩 얻어 가는 것들이 있었다.

일단 춤신은 요리 못 하는 걸로 웃긴 장면이 엄청나게 나와서 요리뿅을 비롯하여 요리 인플루언서들에게서 합방 요청이 쏟아질 게 눈에 선했다.

모델 씨는 자기 이미지를 훼손하지 않으면서 이미 이름이 널리 알려진 다른 출연자들 덕에 자기 홍보를 톡톡히 했을 테고. 아이돌 선배는 숙소 규정이 좀 빡빡해서 감옥이나 다름없다고 칭얼거리더니 숙소로 돌아가기 싫다고 매주 아우성이었다.

‘딱히 얻어 가는 게 없어도 그것만으로도 행복해 보였으니 괜찮겠지.’

마지막으로 제일 중요한 것이 또 있었으니….

[등장인물]

[- 현재 등록된 인물 (29)]

[▶<집 밖은 위험해> 관계자]

[▷유역]★★★★

이렇게까지 많이 오르는 건 필요 없긴 한데… 그래도 그만큼 내가 도움이 되었다는 거겠지. 미션을 달성해서 기쁜 것도 있지만 꼭 그게 아니더라도 뿌듯한 기분이 들었다.

“앞으로 내가 한 말 잊지 말고. 억지로 꾸며 낼 필요 없이 너는 말만 조금 덜어 내면 다른 사람들도 분명 좋아할 수밖에 없을 거야.”

마지막으로 한 번 더 잔소리 채찍질을 하자 유역이 가슴에 총이라도 맞은 것처럼 괴로워하며 대답했다.

“아, 알겠어요! 저 지금도 엄청 자제하고 있는 거거든요. 다 말하면 형이 또 뭐라고 할 것 같으니까 참을게요.”

그러고는 합 양손을 포개서 자기 입을 틀어막는데 웃기기도 하고 조금은 귀엽기도 해서 웃음이 나왔다.

“알겠으니까 얼른 들어가. 다음에 또 기회 있으면 보고! 이따 연락할게.”

다른 출연자들과도 손을 흔들어 작별 인사를 하고 나니 드디어 차에 올라탈 시간이었다.

“오늘 마지막 촬영 어땠어요?”

드드륵, 옆으로 열리는 차 문을 열고 밴 안으로 들어서자 매니저가 나를 반갑게 맞아 주었다.

“괜찮았어요. 처음엔 조금 어색했는데 헤어질 때 되니까 조금 아쉽기도 하네요.”

“아무래도 또래라서 더 금방 친해졌나?”

그런 것도 있겠지. 나는 올라가는 동안 잠깐 눈을 붙일까 하다가 내가 유역에게 했던 말이 떠올라서 핸드폰을 다시 쥐었다.

[나] 오늘 다들 고생했어! 3주 동안 같이 촬영하면서 정말 고마웠고 일정 되는 대로 6명끼리 한번 모이자. 오후 8:42

그러고는 돌아오는 대답은 조금 나중에 확인해도 될 것 같아 화면을 껐다.

‘이렇게 좀 바로바로 연락하고 미루지 않아야 인연이 안 끊어지지.’

유역과 커뮤니케이션 관련하여 조언했던 두 번째 건이 이것이었다.

연락 미루지 말기.

‘너 내 문자는 왜 무시한 거야? 나뿐만 아니라 어느 누구도 자기 연락 씹히는 거 괜찮고 아무렇지도 않은 사람 없어.’

아무렇지 않을 수 있는 건 기대가 아예 없을 때뿐이다. 내가 문자를 보내면 상대방도 으레 예의를 갖춰서 연락을 하겠지? 기대를 하는 상대에게 읽씹이든 안읽씹이든 당하면 기분이 나쁜 건 당연한 일이었다.

심지어 이번에 본인이 연락하겠다 하고 갔잖아. 그러니 더 황당하게만 느껴졌다.

내 지적에 유역이 고개를 푹 숙인 채 대답했다.

‘그게요… 형한테 잘 보이고 싶다 보니까… 그냥 몇 마디 띡 대답하는 건 너무 성의 없어 보일 것 같고. 뭐라고 써서 보낼지 계속 생각만 하다가 시간이 너무 지나 버려서… 지금 답장하면 또 이상한 사람처럼 보일까 봐….’

이게 무슨 소리냐고 진짜. 연락받고도 씹는 사람 되기 vs 짧게라도 즉각적으로 대답을 돌려주는 사람 되기 이 중에서 전자를 선택하는 게 가당키나 한 일이냐?

내 상식선에서는 용납은커녕 말도 안 되는 일인데, 회피형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들에게는 썩 공감이 가는 이야기인 듯했다.

‘……그러니까 주변에 사람이 없는 것 아니냐.’

그러고도 같이 어울리고 싶어 하는 사람이 많으면 주위가 계속 떠들썩하긴 하겠지만.

사람 대 사람 간에서 교류의 기본은 상호 존중이자 기브 앤 테이크다. 테이크만 하고 기브는 없는 사람이랑 계속 어울리고 싶은 사람은 거의 없지.

굳이 본인이 을이 되는 관계를 유지하고 싶은 게 아니라면야.

아무튼 미루기 금지! 연락 온 건 확인했을 때 바로 답장하기! 그렇게 줄줄이 경고를 해 놓고 나는 감사 인사를 미루는 것도 웃긴 것 같았다.

‘어쨌든 이렇게 방영 시작될 때까지는 한동안 별일 없을 것 같고.’

한숨 돌리며 차가 천천히 서울을 향해 출발하던 그때. 눈앞에 팟, 미션 완료를 축하하는 안내 메시지가 나타났다.

[서브 에피소드 미션 클리어!]

[▷오만과 편견]

[보상 수령]

[▷미수집 단서 1개]

[▷코인 1개]

‘드디어…!’

재빨리 단서 창에 들어가 수집된 키워드들을 확인했다, 그리고 내 눈앞에 나타난 글자는….

“……?”

뭔데 이거.

[- 종달새의 실종]

왜 갑자기 시집 제목이 됐는데? 당혹스럽기 그지없었다, 종달새? 왜 종달새지?

실종이라고 하면 바로 떠오르는 건 임희록뿐이었다.

‘임희록이… 종달새…?’

이게 무슨 개소리야. 어딜 봐도 종달새와는 어울리지 않는 인상이었다. 차라리 까치 같은 거면 모를까. 까마귀인 은찬과 사이가 안 좋았던 걸 생각하면 잘 쳐 줘야 까치 아니면 비둘기였다.

‘종달새는 진짜 아니지.’

그럼 이 실종이라는 게 말 그대로 실종이 아니라 어떤 은유적인 표현인 건가.

이것만으로는 대체 뭘 캐 봐야 할지 영문을 알 수가 없어서 일단 인터넷에 검색해 봤다.

[종달새의 실종][검색]

그리고 나온 결과물들은 고만고만했다. 제일 많이 보인 건 ‘종달새의 비상’, ‘종달새의 하루’였다.

‘아 날아오르는 거 됐다고. 종달새의 daily도 안 궁금하니까 좀 가라고.’

속으로 의미 없이 툴툴거리며 검색 결과를 쭉 둘러보던 중. 웬 10년 전쯤의 블로그 글이 눈에 띄었다.

[발라드계의 종달새, 서천향을 기리며 - 서천향 10주기 기념]

개중 그나마 연예계와 관련된 결과에 홀린 듯 클릭해 본문을 읽어 내려갔다.

[90년대 말 혜성처럼 한국 가요계에 나타나 데뷔곡부터 차근차근 자기만의 노래를 불러온 서천향, 아쉽게도 지금은 고인이 되었지만 그의 노래는 아직도 우리 곁에 남아….]

흐린 눈으로 관심 없는 정보를 죽죽 훑어 내려가던 내 시선을 사로잡은 건 거의 끝 문단쯤이었다.

[그의 실종 사고 관련해서는 아직도 풀리지 않는 미스터리로 남아 있지만 비슷한 사건인 ○○○ 사건, △△ 수면제 사건 등과 달리 아직까지 어떤 추적 프로그램에서도 취재한 바 없다.]

“……!”

그리고 더더욱 충격적이었던 건 따로 있었다.

[현재 그의 음반 전체의 저작권은 사전에 작성된 부속 계약서에 따라 그의 소속사였던 골든링 미디어가 소유하고 있다.]

골든링 미디어 소속 가수였나? 유족들과의 저작권 수익 관련하여 몇 차례 소송이 있어 잠깐 화제가 되기도 한 모양이나 이것도 유족들이 결국 소를 취하하면서 흐지부지된 것 같았다.

‘실종 후 사망 신고라면 평범한 일은 아니잖아. 근데 이렇게까지 한 번도 심층 취재를 방영한 적이 없다고?’

다른 비슷한 사건들은 벌써 몇 번씩 다큐멘터리로도 제작되고 심지어는 영화로도 만들어졌는데.

그 사건들과 이 케이스의 차이점은 명백해 보였다.

‘유족이 적극적으로 나서질 않았나 보네.’

유족이 적극적으로 진상 규명을 요구하지 않는 데는 여러 가지 사정이 있을 테니 속단할 수는 없지만 나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이 보기에도 이상한 건 마찬가지인 듯했다.

[- 근데 서천향 가족들은 왜 소 취하한 거임? 저거 취하 안 하면 서천향 곡 아무리 잘 팔려도 한 푼도 못 받는 거 아닌가? 아님 따로 합의함?]

[ㄴ ㄴㄴ 누가 저작권 지분 확인해 보니까 그대로 전부 골든링에 있다고 하던데]

검색어를 바꿔서 서천향에 대해 알아보자 소문만 무성할 뿐 나오는 게 얼마 없었다.

‘발견된 건 유서 한 장… 바다에 투신한 후 시신이 유실된 것으로 추정되며 유서 내용을 볼 때 타살 혐의없음….’

간결하게 요약되는 내용이 수상쩍기 그지없었다.

‘아무래도 이게 그 종달새가 맞나 본데.’

생전 활동할 당시 작은 키에 쾌활한 음색이 인상적이라 종달새라는 별명이 붙었다고.

‘실종된 시기가 대체 언제지? 어…?’

좀 더 자세한 정보를 얻을 수 없을까 싶어 키워드를 계속 바꿔 가며 검색하던 나는 생각도 못 한 일치에 놀라 눈을 크게 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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