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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년 차 천재 연습생의 데뷔 공략-195화 (195/224)

#195. 모든 일에는 이유가 (2)

그러자 아까 쓰러질 때를 제외하고는 시종일관 무표정이었던 유역의 낯빛이 창백해졌다.

“어….”

그러고는 잠시 고장 난 것처럼 삐걱거리다가 푹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누가 보면 대역 죄인인 줄 알겠네. 나는 어이가 없어서 웃으며 유역을 말렸다.

“아니 그 정도로 잘못한 건 아니니까. 이번에 요리 처음 해 봐?”

남들 다 반말 쓰는데 나만 존대말 하는 것도 유역과 같은 과로 묶여서 튀어 보일 것 같아 가볍게 말을 걸자 유역이 잠시 머뭇거리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 네.”

또 나왔군. 무슨 본인이 포X몬인줄 아는 건가. 계속 같은 말만 반복하게.

그럴 거면 아주 이름도 ‘아네’로 개명하지 그러냐. 나는 속으로 가볍게 핀잔한 다음 잠시 생각했다.

오징어 다진 건 어떻게 활용해야 좋을까. 김치전은 깔끔하게 김치에 부침가루로만 바삭하게 마무리해도 되긴 하니까,

다진 오징어를 고스란히 버리지 않고 쓸 만한 요리가… 잠깐 고민하던 끝에 큰 손재주가 필요 없는 활용처가 떠올랐다.

‘아, 그거면 되겠다.’

나는 카메라 앞인데도 아랑곳하지 않고 덜덜 떨고 있는 유역에게 말했다.

“잠깐 냉장고 가서 내가 말하는 재료 몇 가지만 좀 가져다줄래? 양파랑, 당근, 파, 정도 있는지 한번 봐 주고. 아, 버섯이랑 두부도.”

“네!”

그러자 뭔가 수습할 길이 생겼다는 것이 희망을 찾은 것일까. 유역이 재빨리 냉장고가 있는 쪽으로 뛰어 들어가서 내가 말했던 재료를 잔뜩 들고 나왔다.

“그 챙겨 온 재료들 좀 이 오징어처럼 잘게 다지듯 해서 갖다 줄래? 최대한 자잘하게.”

“…네?”

조금 전 그 실수를 또 반복하라는 듯한 오더에 유역이 살짝 당황하는 듯했지만, 이내 종종걸음으로 자기가 맡은 임무를 수행하러 떠났다.

‘어렸을 때는 명절마다 음식 직접 해 먹는 거 되게 귀찮고 싫었는데.’

이럴 때 도움이 되기도 하네. 우리집의 외동아들인 이상 집 식구들끼리만 먹을 양이라고 해도 손을 안 거들고 놀고만 있을 수는 없었다.

덕분에 의도치 않게 만두나 송편, 그 외에 각종 전 요리 같은 명절 음식을 직접 만드는 데는 이골이 나 있었다.

‘보통 가정집에서는 돼지고기로 많이들 만들지만 오징어를 써서 만들기도 하니까.’

곧 유역이 오징어와 마찬가지로 거의 가루가 되도록 다진 재료들을 가지고 왔다.

“…….”

유역이 약간의 의심이 섞인 눈으로 대체 이걸로 뭘 하려고 하는 건가, 나를 유심히 바라보았다.

“이거 옆에서 좀 섞어 줄래? 거기 있는 비닐장갑 끼고 치대면 되는데.”

“네.”

그래도 시키는 건 곧잘 싫은 소리 안 하고 잘하니까 다행이네.

안도하며 요리를 마무리하고 바삭바삭하게 익도록 지지기만 하면 되던 찰나.

“와 냄새 좋다. 뭐야? 아까 김치부침개만 한다는 거 아니었어?”

여기저기서 마수를 뻗치는 젓가락들이 다가왔다. 나는 탁, 전을 뒤집는 용도의 나무젓가락으로 음흉한 손길들을 쳐 냈다.

“이따 먹어, 이따. 좀 다 하고!”

“아 거참. 원래 이런 건 지지면서 먹는 게 제일 맛있는 건데.”

“아 가시라고요.”

그런대로 친분이 있는 아이돌 선배를 투닥거리며 내쫓고나니 곧 타임아웃이었다.

“자 그럼 이제 식탁으로 모여 주세요!”

먹는 거 하나도 그냥저냥 넘어가게 하지 않겠다는 의지가 실린 것일까.

오늘의 저녁 메뉴를 메인으로 담당한 사람은 세 명이었다.

나머지는 뒷정리나 설거지, 아니면 그 외 청소를 담당하는 역할이었다.

“와 근데 좀 무섭다. 겉보기에는 멀쩡하긴 한데 무슨 맛이 날지 솔직히 보장이 안 돼서….”

춤신이 보면서 두려움에 떤 건 요리뿅이 만든 된장찌개였다. 원래 요리를 메인 컨텐츠로 방송을 하는 사람이니 당연히 먹을 만하지 않겠어? 라고 생각하기 쉽겠지만… 그건 요리뿅의 방송을 본 적 없는 사람이나 할 수 있는 발상이었다.

‘그 방송에서 먹을 만한 걸 만든 게 얼마 안 돼서 문제지.’

대체로 저걸 먹을 수나 있겠나 싶은 괴식을 만드는 컨텐츠가 대부분이었다.

그리고 놀랍게도 그걸 본인이 직접 남기지 않고 먹는 것까지가 컨텐츠의 완성이었던 탓에 다들 요리뿅의 입맛을 믿지 못했다.

“아 왜. 나도 된장찌개 정도는 평범하게 끓이거든?”

그 말 그대로 요리뿅이 내민 된장찌개는 무난 그 자체로 보였다.

‘저러고 안에 마시멜로 같은 거 들어 있는 거 아냐?’

두려움에 떨며 재료를 하나하나 매의 눈으로 스캔하자 표면에 동동 떠있는 건 어쨌든 무난하고 평범한 재료들이었다.

가장 좋은 호응을 받은 음식을 만든 사람에게 방과 룸메이트를 선택할 권리를 주겠다는 특전이 주어질 예정이었기에 다들 다름대로 각오를 담아 만든 저녁이니 요리뿅도 이상한 짓은 하지 않은 건가.

“자 그럼 먹어 봅시다!”

스태프와도 조금씩 양을 나눠서 우물우물 시작된 식사 끝에 정해진 승자는… 그 누구도 예상 못한 인물이었다.

“유역 씨, 축하드립니다!”

얼떨떨한 표정의 유역이 나를 바라보며 고개를 갸우뚱 기울였다. 나는 어깨를 으쓱이며 축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잘됐네. 내가 먹어도 맛있긴 하더라.”

본래 즉석 요리 대회(?) 출전자는 나를 포함하여 셋. 그리고 최종 우승자는 요리뿅, 나, 그리고 모델 이렇게 셋이 아닌 외부에서 나왔다.

이렇게 된 데에는 나름의 사연이 있었다. 뚝딱이처럼 오징어를 완전 죽으로 만들어 놓고 멀뚱멀뚱 어쩔 줄 몰라 하길래 재료를 다듬는 것부터 반죽하는 것까지 모두 시켰더니, 그걸 내가 만든 요리라고 내놓기가 썩 달갑지 않았다.

‘거의 내가 무슨 아바타처럼 조종한 거긴 한데… 만든 건 어쨌거나 저쪽이니까.’

내가 한 거라고는 지시와 언제 뒤집으면 될지 봐 준 것뿐이라서 공로를 채 가는 기분을 지울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래서 원래 후보자는 아니었지만 어쨌든 유역이 만든 요리니 유역도 후보에 넣어서 입회시켰다.

그리고 그 결과….

‘와 오징어땡 개맛있는데? 찢었다 진짜.’

‘가게에서 사 먹는 것 같다, 농담이 아니라 진짜 맛있어.’

‘여기서 무슨 20년 달인의 손맛이 느껴지네.’

그야 당연하지… 오징어땡 담당은 내 양아버지였고, 아버지는 신혼 때부터 쭉 어머니를 위해 오징어땡을 만들어 왔다고 하셨으니 20년 이상 경력자라고 하기에 손색이 없었다.

만든 사람은 다를지라도 레시피와 조리법은 동일했으니 괜찮은 맛이 나오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마침내 최종 투표 결과가 나왔을 때, 거의 만장일치로 오징어땡을 베스트로 꼽은 건 아주 살짝 예상 밖이기는 했지만 납득 안 갈 일은 아니었다.

“우씨, 내 된장찌개도 진짜 역작이었는데.”

모두의 예상과 달리 요리뿅의 된장찌개는 평범 그 자체였다. 이상한 재료도 안 들어갔고 나서는 안 될 맛이 나는 것도 없었다.

보편적인 입맛에서 벗어나는 건 하나도 넣지 않았으니 당연히 내가 1등이겠지! 자신하고 있었던 요리뿅이 절망적인 표정으로 자기 몫으로 덜어 낸 된장찌개를 밀어냈다.

“이렇게 끓이면 내 입에는 맛없단 말이에요~.”

억울함을 한껏 어필해 보았으나 승부는 승부. 룸메이트와 방을 직접 고를 권리는 유역에게 주어졌다.

나는 뭐 어차피 크게 욕심을 부렸던 부상은 아니었던 지라 얌전이 내 몫으로 따로 부친 김치전의 바삭바삭한 부분을 씹으며 유역이 어떤 선택을 할지 지켜보았다.

방 세 개 중 제일 좋은 건 아무래도 안방이었다. 크게 해가 잘 들어오는 통창이 있고 화장실이 별도로 딸려 있어서 씻을 때 복작거릴 필요가 없어 좋았다.

그리고 나머지 두 방은 솔직히 취향 차이를 고를 것도 없이 고만고만해서 거실에 더 가깝냐, 주방에 더 가깝냐의 차이였다.

모두의 시선이 유역에게로 쏠린 그 때. 딸꾹. 저도 모르게 딸꾹질을 한 유역이 드디어 결심이 섰는지 입을 열었다.

***

“그럼 내가 이쪽 침대 쓸게. 덕분에 나는 큰방 쓸 수 있어서 좋긴 한데…. 정말 나랑 같이 써도 괜찮아?”

잠시 후. 방 배정이 끝나고 30분쯤 뒤에 있을 야외 촬영 직전까지 자유시간이 주어졌다.

밖에서 세트장을 준비하는 사이 관찰 카메라만을 앞에 두고 짐 정리를 좀 하고 있으라는 뜻이었다.

나는 순순히 아까 들고 왔던 캐리어를 방으로 끌고 가서 꺼낼 건 떠내서 수납장에 넣어 놓고는 물었다.

“…아, 네…. 뭐….”

그리고 유역은 예의 ‘아, 네’에서 딱 한 글자만 달라진 대답을 들려주었다.

일부러 친해지려고 한 행동은 아니었으나 어쨌든 도움이 되었으니 다행이었다.

‘나름 나를 다른 출연자들보다는 가깝게 느끼는 건가?’

슬쩍 미션이 쉽게 풀리려나 김칫국을 마시기도 잠시.

싸늘하고 무거운 정적이 방 안에 휘몰아쳤다.

“아 뭐야~. 뭘 또 이런 걸 가져왔어!”

“이거 되게 귀엽지 않아? 저 이거 보고 와 이거 진짜 수련회 템으로 대박이다 싶어서 바로 픽했는데.”

“유치한데 어이없어서 웃겨. 악.”

하필 근처 방에서는 하하호호 떠드는 소리가 선명하게 들려서 우리 방의 적막이 더욱 두드러졌다.

“……”

“……”

어쩔 거냐고 이 정적.

그래도 방송에는 좀 웃기게 나오겠다 싶었다. 유역의 캐릭터를 아예 말 없고 어색하고 조용한데 악의는 없고 착한 애, 정도로 가져갈 거라면.

그리고 내가 그런 유역을 챙겨 주는 역할로 나오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어쨌든 우리끼리 친해지기는 해야하는 거고….’

이걸 어쩐다. 옆방과 달라도 너무 다른 분위기에 어색한 와중 스태프가 모두를 불렀다.

“자, 다들 마당 앞으로 와 주세요!”

“넵, 알겠습니다~.”

유역과 함께 어색한 분위기 속에 마당으로 나가자 야외 촬영을 위해 세팅해 놓는 천막이 보였다.

“자 그러면 여기부터 쭉 앉아 주시고요. 지금부터 할 게임은…”

그리고 여기서도 유역은 어김없이 뚝딱이기만 했다.

‘괜찮은 거냐, 이거.’

“……”

유역이 계속 어색하게 앉아 있을 때마다 뭐라도 좀 하게 시키는 건 내 몫이었다.

“유역아 그거 말고 이거! 이쪽으로 좀 와 봐.”

그리고 유역은 그럴 때마다 무슨 귀신이라도 본 표정으로 쭈뼛거리며 뒷걸음질을 쳤다.

뭐라도 하나 챙겨 먹이려는 보호자와 죽어도 안 먹겠다는 강아지 같은 구도가 몇 번 반복되자 여기저기서 웃음이 터져 나왔다.

“웃지 마세요, 저는 진지하거든요.”

대충 어떤 자막이 붙어서 나갈지도 예상이 되었다.

[낙오자를 용납할 수 없는 리더] 뭐 그런 얘기랑 같이 나가겠지.

그래 그렇게 가도 나쁘진 않겠네.

옆에서 아무튼 미션을 성공한 후에 심란한 표정으로 나를 보는 유역을 나는 애써 외면하며 카메라를 향해 승리의 브이를 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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