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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년 차 천재 연습생의 데뷔 공략-182화 (182/224)

#182. 실수였다고 해도 (4)

그 후로도 행사장으로 이동할 때까지 제현호는 어떤 실마리도 남기지 않았다.

그저 평소대로의 제현호였다. 현호가 포커페이스를 잘 유지하는 편인 것이 이렇게까지 절망스러웠던 적이 없었다.

‘차라리 눈에 보이게 티라도 내면 무슨 일 있냐고 물어보기라도 하지.’

이렇게 평소와 다를 것 없는 상황에서는 말도 꺼내기 애매했다. 걱정은 문제가 있어 보이는 사람한테나 하는 거지 저렇게 멀쩡한데 뜬금없이 가서 고민 있냐고 해 봤자 나만 이상한 사람 되는 거 아냐.

게다가 본인이 저렇게 작정하고 숨기고 있는 걸 내가 가서 기웃거린다고 바로 ‘어떻게 내 속을 알았지?’하고 술술 무슨 사정이 있는지 불어 줄 것 같은 타입도 아니었다.

‘이제 어떻게 하지….’

공연이 시작되는 건 오후 6시부터니까 아직 점심 즈음인 지금은 시간이 넉넉히 남아 있었다.

앞으로 남은 한 번의 리허설과 긴 대기 시간 동안 놈의 진심을 캐내야 한다는 뜻인데….

‘뭘 어떻게 해야 할지 감도 안 온다고.’

틈틈이 꽤나 유용하게 사용했던 아이템은 얄궂게도 지금은 필요 없는 것들로 인벤토리가 꽉 차 있었다.

[내일은 댄스 머신]

[등급] B

[아이템 유효 시간 10분 동안, 모든 동작을 5분 내로 완벽하게 숙지합니다.]

지금 안무 5분 만에 완벽하게 따서 뭐 할 건데…. 딸 안무도 없는데.

다음 컴백 준비할 때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을 테니 새로 뽑기를 돌려 봤자 뭐가 나올지 모르는 상황에서 B등급 아이템을 굳이 땅바닥에 버릴 필요는 없었다.

‘팀 내에 제현호랑 나보다 친한 멤버가 있었던가.’

나는 잠시 눈을 감고 생각했다. 그나마 잘 어울리는 멤버를 꼽자면… 정은찬 정도인가.

그것도 서로 죽이 잘 맞거나 친한 편이라고 보기는 어려웠다. 그보다는 그냥 성격적으로 방향이 같다고 해야 하나. 타입이 같다고 해야 하나.

둘 다 모로 가나 결과가 제일 좋은 게 중요한 것도 그렇고, 결과를 위해서라면 고집도 세지만, 수용하는 것도 빠르다는 점이 비슷했다.

‘그래서인지 같은 조로 미션 수행했을 때도 의외로 트러블이 없었지.’

둘 다 성격이 꽤나 센 편이라 서로 내가 더 잘났네 하고 시비라도 붙으면 어쩌나 걱정한 것이 무색할 정도였다.

아무튼 결과를 잘 낼 수 있으면 얼마든지 나를 포기할 수 있는 실력자들이란 보는 사람들은 조마조마했을지 몰라도 본인들은 태연하기 그지없었다.

‘정은찬한테 혹시 뭐 아는 거 있냐고 물어봐도…. 딱히 없을 것 같긴 한데….’

그래도 혹시 모르는 일이니 나는 슬쩍 하연이 화장실에 다녀오느라 자리를 비운 사이 은찬에게로 다가갔다.

“……?”

대기실이 썩 넓은 편은 아니지만 널찍한 소파가 가운데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있고, 그 반대편으로는 우리가 누울 수 있게 자체적으로 들고 온 휴대용 매트를 놓아 멤버별로 뿔뿔이 자기가 편한 자리에 자리 잡고 쉴 수 있는 구조였다.

마침 제현호는 이쪽은 관심도 없이 핸드폰만 들여다보고 있으니까… 나는 슬쩍 은찬에게 물었다.

“형 요즘 현호랑 얘기 많이 해요?”

그러자 은찬이 잠시 곰곰 생각하는 듯 눈을 가늘게 뜨더니 잠시 후 고개를 끄덕였다.

‘엥? 진짜로 따로 얘기를 많이 하는 편이었다고?’

차라리 룸메였으면 아, 방에 둘만 있을 때 서로 대화 많이 하나 보다 생각할 텐데. 제현호의 룸메는 나였다. 방에서 각자 쉬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시간을 함께 보내는데 대체 언제 나 몰래 그렇게 가까이 지냈던 거지?

약간의 의구심을 품은 채 내가 다시 물었다.

“정말요? 그럼 현호가 형한테 뭐 고민 상담 이런 것도 하나요?”

이번에는 좀 의아하게 들릴 수도 있겠다 싶은 질문에 나는 혼자 가슴이 조마조마했으나 은찬은 또 아무렇지도 않게 고개를 끄덕였다.

“어, 뭐….”

진짜로? 나는 큰 충격을 받은 채 다시 물었다.

“무슨 고민이요? 현호가 요즘 좀 뭔가 생각하고 있는 게 있는 것 같아서 저도 좀 조심스러워서요.”

다 현호를 위한 일이라는 듯 한마디를 슬쩍 더 붙이자 은찬이 잠시 고민하는 듯하다가 입을 열었다.

“그런 건 그냥 본인한테 직접 물어보는 게 낫지 않아? 남한테 건너 들을 만한 내용은 아닌 것 같은데.”

아 물론 그것도 맞는 말이기는 한데요. 정석대로 갈 수 있으면 지금 형한테 물어보러 안 왔겠죠?

나는 답답함이 치밀어서 속으로 참을 인 자를 새기고 은찬을 설득하기 시작했다.

“아, 그렇긴 한데 현호가 워낙 말수도 적고 자기 얘기를 잘 안 하는 친구니까요. 제가 혹시나 말실수라도 할까 봐 걱정이 되기도 해서요. 심각한 문제인지 아니면 그냥 잠깐 다른 생각을 하는 건지 리더로서 조금은 알아 두는 게 좋지 않을까 싶어서요.”

그렇게 열심히 쿠션을 깔아 가며 설득해 보았으나 은찬은 요지부동이었다.

“글쎄…. 그렇게 엄청 큰 문제 같진 않던데. 그냥 가서 직접 물어봐.”

아 그러면 말을 안 해 줄 것 같은 분위기니까 제가 형한테 찾아온 거 아니에요.

나는 답답한 마음에 다시 참을 인을 그렸다. 그리고 그사이 화장실에 다녀온 하연이 투덜거리며 들어왔다.

“와, 왼쪽 화장실 지금 온수 안 나와서 물 엄청 차가워요. 손 씻다 얼어 죽는 줄 알았어요.”

“그러게 오른쪽으로 가지. 거기는 아까 온수 잘 나오던데.”

이제 시간이 정말 남지 않았다. 나는 두 눈을 깜빡거리며 답지도 않은 앙탈까지 부려 대며 물었다.

“아 형. 그냥 살짝 힌트만이라도 주시면 안 돼요?”

그러자 은찬이 질린다는 듯 표정을 찌푸리며 한숨과 함께 내게서 움찔 멀어졌다.

그리곤 꼭 먹고 떨어지라는 것처럼 대답했다.

“그렇게 집요하게 캐고 다닐 시간에 내일 공연 동선이나 꼼꼼하게 외워. 동선 틀리는 사람 나올까 봐 걱정하던데.”

“네?”

나는 순간 뭔 소리를 하는지 이해를 못 하고 바보 같은 대답을 하고 말았다.

“내일 공연 때문에 걱정하던데. 그게 궁금했던 거 아니야?”

“어….”

나는 순간적으로 시스템 창이 내게 던져 주었던 호감도 미션의 내용을 떠올렸다.

[제한 시간 안에 제현호를 특정 인물과 대면시킬 것]

특정 인물과 대면시키라고 하는 걸 보면 절대 무대 관련된 고민은 아닌데.

엉뚱한 곳을 파고 있었다는 생각에 허망한 탈력감이 밀려들었다.

“……”

“뭔데?”

그리고 그런 내게 정은찬의 싸늘한 시선이 한 번 더 꽂혔다.

“……?”

원래 앉아 있던 자리로 돌아온 하연의 영문 모를 어리둥절한 표정은 덤이었다.

“둘이 뭐 싸우고 그런 거 아니죠?”

어색한 분위기에 하연이 완전 헛다리를 짚고 물었다.

“그런 거 아니야.”

나는 괜히 은찬에게 이상한 데서 집요한 인간으로 보였다는 생각에 쪽팔리기도 하고 민망해서 얼굴이 화끈거렸다.

그럼 이제 대체 누구한테 물어봐야 하지… 잔여 제한 시간은 점점 줄어드는 와중 나는 다시 핸드폰 연락처를 뒤지기 시작했다.

제현호랑 같은 소속사 소속인 연습생 중에 아는 녀석이 있나….

비극적이게도 제현호는 크다고 말할 수는 없는 소형 기획사의 기적이나 다름없는 연습생이어서 내 연락처 중에는 당장 같은 소속사 출신이 없었다.

‘그럼 또 제현호가 좀 마음을 놓을 만한 인물이….’

머릿속으로 우선 모두의 큰형 같은 주혜성을 떠올린 나는 곧 제현호에게는 가족이나 다름없을 사람을 기억해 냈다.

‘아, 맞다. 그때 연락처 받았었는데.’

급히 등록된 연락처를 뒤졌다.

그때 번호 받아 놓고 혹시 지우지는 않았겠지… 한 번도 연락한 기억이 없어 걱정했지만, 다행히 연락처는 멀쩡히 남아 있었다.

‘일단 문자부터 보내 보자.’

갑자기 전화드리면 혹시 민폐일 수도 있으니까….

톡톡, 액정 위를 두드리는 손길에 조바심이 묻어났다.

[안녕하세요, 현호 보호자님. 오랜만에 연락드리네요. 저 기억하실까요? 현호랑 같이 지하실 들어갔었던 같은 그룹 멤버 서인수입니다. 혹시 편하신 때에 잠깐 통화 괜찮으실까요?]

문장을 가다듬자마자 바로 전송 버튼을 누르자 잠시 후 곧바로 그쪽에서 전화가 걸려 왔다.

“……!”

지금 빨리 받아야 하는데. 멤버들 앞에서 받기는 좀 그렇고. 재빨리 자리에서 일어나 화장실에 가는 척 대기실을 빠져나오는 내내 혹여 신호가 끊어질까 봐 가슴이 조마조마했다.

“아, 네, 안녕하세요.”

근처의 아무 빈 대기실에 들어가 핸드폰을 입가 가까이에 대고 소곤소곤 목소리를 죽여 전화를 받자 상대방의 다급한 음성이 들렸다.

- 어우 어쩜 좋아. 학생, 현호랑 같이 있어요?

역시 이쪽에서 뭔가 일이 터졌나. 나는 잔뜩 긴장한 채로 대답했다.

“네. 지금은 제가 잠깐 전화 받느라 나왔는데 방송국에서 같이 대기 중이에요. 혹시 무슨 일 있으세요?”

그러자 아주머니가 아주 애가 끓는 목소리로 되물었다.

- 현호 지금 괜찮은 거 맞죠? 혹시 이상한 생각 하고 있는 거 아닌가 나 너무 걱정돼서 속이 다 타들어 가는데 어제부터 전화를 안 받아서 내가 아주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모르겠어.

“현호가 전화를 안 받는다고요?”

아까부터 계속 핸드폰 보고 있던데? 내가 의아함을 지우지 못하고 묻자 아주머니가 답답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 으응, 그게…. 아휴, 내가 이런 말을 해도 되는지 모르겠다. 현호가 그래도 학생한테는 의지를 많이 하는 것 같던데 학생이 좀 설득해 줄래요? 내 말은 통 들을 생각이 없어 보여.

일부러 연락을 안 받는 건 뭐고 아주머니가 말하는 걸 안 듣는 건 또 뭔데?

혹여 내가 감당할 수 없는 종류의 문제는 아닌가 걱정이 앞선 그때.

핸드폰 너머에서 들려온 건 뜻밖의 소식이었다.

- 센터 통해서 현호 누나한테서 연락이 왔는데…. 그게….

“……!”

현호가 애초에 방송에 나왔던 이유. 유명해져서 누군가를 찾고 싶기 때문에.

누나한테서 연락이 와서 마음이 심란해진 건가? 하지만 그런 것치고는 지금 대기실을 이탈한 것도 아니고 잘하고 있는데… 의문을 해결해 준 건 그다음에 이어진 말이었다.

- 현호 누나가. 자기가 무슨 낯으로 현호를 만나냐고 찾지 말아 달라고….

“아….”

탄식이 저절로 나왔다.

“음….”

물론 이해는 갔다. 아무리 어리고 뭘 모를 때의 일이라고 하지만 자기 손으로 버린 동생을 무슨 낯으로 이제 와서 성공했다고 내가 그 가족이다, 하고 만나겠어.

특정 인물이 누구인지 밝혀진 순간이었다.

‘그럼 이제 문제가 더 커진 거 아닌가.’

연락처도 몰라, 이름도 몰라, 이쪽은 아는 정보라곤 없는 사람을 무슨 수로 설득을 해서 현호랑 만나게 하는데?

호감도 미션의 남은 잔여 시간이 섬뜩하게 빛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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