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4년 차 천재 연습생의 데뷔 공략-181화 (181/224)

#181. 실수였다고 해도 (3)

‘만족스러운 눈치인가?’

평소와 다를 것 없어 보이는 듯했으나 자세히 보면 묘하게 다른 점을 눈치챌 수 있었다.

덕분에 역시 자회사라고 상 몰아주네 비아냥거리는 반응은 순식간에 저 뒤로 묻혀 버린 지 오래였다.

‘이 정도 반응은 원래 당연히 있는 건지… 아니면 뻐꾸기가 활동을 다시 시작해서 그런 건지 모르겠지만.’

이런 건 힌트나 단서 안 주나? 슬쩍 시스템 창을 확인해 보았으나 묵묵부답이었다.

‘하여간 필요할 때는 도움이 안 돼요.’

속으로 가볍게 투덜거리며 숙소에 도착하자 지원이 제일 먼저 쪼르르 달려가 거실의 제일 잘 보이는 곳에 오늘 받아 온 트로피를 전시해 두었다.

[신인상] [엔카운터]

[인기상] [엔카운터]

[올해의 가수상] [엔카운터]

그리고는 그 앞에서 잔뜩 신이 나서 발갛게 홍조가 올라온 얼굴로 인증용인 듯한 셀카를 찍었다.

액정 화면에까지 수줍으면서도 잔뜩 설렌 기분이 잔뜩 묻어날 것 같은 표정이었다.

“어, 포토존 만든 김에 나도 찍을래.”

“앗, 나도.”

하나둘 줄지어 가며 지원이 만든 포토존 앞에서 인증 사진을 찍는 사이 나는 재빨리 비어 있는 욕실로 향했다.

‘다들 정신 팔려 있을 때 나는 빨리 씻고 자야지.’

그리고 그 순간 매의 눈으로 내 은밀한 움직임을 캐치한 영인이 소리쳤다.

“아, 잠깐만 오늘 씻는 순서 형 첫 번째 아니잖아요!”

“이미 늦었어. 넌 천천히 인증샷이나 찍고 와.”

재빨리 달아나듯 문을 잠가 버리자 문짝이 몇 번 덜컹거리더니 이내 포기한 듯 잠잠해졌다.

잠시 후 개운하게 샤워를 마치고 냉장고로 향했다. 따뜻한 물로 씻고 시원하게 마실 생각으로 넣어 둔 바나나 우유를 꺼내기 위해서였는데….

“어?”

내 샤워 후 낙은 이미 감쪽같이 사라진 상태였다.

“뭐야, 내 바나나 우유 누가 먹었어?”

거실을 바라보며 물었지만 대답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현호에게 시선을 주자 난감한 얼굴로 슬쩍 시선을 돌릴 뿐이었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영인만 이상한 헛소리를 하기에 대충 범인이 누구일지 예상은 갔다.

“그걸 먹어서 네 마음이 조금은 나아진다면 됐다.”

대수롭지 않게 방향을 틀어 내 방으로 들어가자 내가 조금도 타격을 받지 않은 게 약이 올랐는지 영인이 애처럼 칭얼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복수당한 것에 대해 정말 조금도 타격을 받지 않았냐고 하면 그건 아니지만.

태연하게 나가는 게 복수의 복수를 할 수 있을 것 같아 내린 선택이었다.

‘가끔 보면 영리한 거 같은데 이렇게 보면 그냥 바보라니까.’

부스럭 이불을 걷고 잘 준비를 하자 현호가 곧 안으로 따라 들어와서 꾸벅 내게 고개를 숙였다.

활동 초나 지금이나 크게 달라지지 않은 태도가 오늘 보여 준 의외의 모습에도 여전히 내가 알던 제현호가 맞다는 걸 증명하는 것 같았다.

“오늘 어땠어?”

혹여 불쾌하지는 않았을까 뒤늦은 걱정에 확인차 묻자 덤덤한 대답이 돌아왔다.

“괜찮았어요.”

꽤 화제의 중심이 됐는데 그 소감이 다섯 글자가 전부라니 생략을 너무 많이 한 건지, 아니면 그것 말고는 정말 아무 생각도 없는 건지.

열 길 물속은 알아도 사람 마음속은 직접 확인할 수 없는 한 미지의 영역이었다.

“그래. 뭐 너만 마음이 편해졌으면 잘된 거지. 사람들 반응도 나쁘지 않고.”

아직도 일정이 남아 있는 만큼 잘 수 있을 때 자서 체력을 비축해 두어야 했다.

주섬주섬 이불을 끌어 올려 덮고 잠을 청하려던 그때.

“감사합니다.”

어둠 속에서 짧은 한마디가 울려 퍼졌다.

“어?”

지금껏 안 들어 본 소리는 아닌데. 잠들기 직전의 타이밍에 갑자기 치고 들어온 감사 인사에 반사적으로 눈이 뜨였다.

“뭐라고?”

나도 모르게 입 밖으로 멍청한 물음을 내뱉자 제현호가 저도 민망한지 휙 건너편 침대에서 시선을 피해 고개를 돌리며 중얼거렸다.

“계속, 신경 써 줘서… 고맙다고요.”

조금은 퉁명스럽게 들리는 말투였지만 그 입에서 꽤 긴 감사 인사가 나왔다는 사실이 놀랍기 그지없었다.

내가 입이 떡 벌어져서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으니 퍽 민망했는지 현호가 재빨리 이불을 뒤집어쓰고 누웠다.

“잘게요. 안녕히 주무세요.”

그러고는 마치 어린 왕자에 나오는 보아뱀에게 잡아먹힌 코끼리처럼 듬직한 체격의 실루엣을 자랑하며 몸을 웅크리고 쥐 죽은 듯 조용해졌다.

나는 조금 웃기기도 하고 어이가 없어서 한마디를 하려다가 부끄러워서 도망친 녀석을 굳이 굳이 붙잡아서 뭐가 고맙느냐고 꼬치꼬치 캐묻는 것도 일종의 고문이겠다 싶어 얌전히 잠을 청하도록 내버려 두었다.

그리고 그 순간.

팟.

[서브 리퀘스트 미션 ▷ 불순한 동기]

[예상 수령 보상]

[▷미수집 단서 1개]

[▷코인 2개]

‘오….’

뻐꾸기 미션 2 챕터가 시작된 지금 현재까지 수집된 단서는 처참하기 그지없었다.

그동안 연말 일정이 너무 살인적이어서 다른 건 신경 쓸 틈도 없는 게 제일 큰 원인이긴 했지만.

진전도 없이 하루하루 빠듯하게 일정을 쳐 나가던 것이 고작이던 참에 미수집 단서를 보상으로 주는 퀘스트는 가뭄의 단비 같은 존재였다.

‘당연히 해야지.’

불순한 동기라는 미션 제목이 상당히 거슬리기는 했으나 내가 지금 그런 걸 따지고 들 때가 아니었다.

‘바로 수락.’

‘예’ 버튼을 눌러서 미션을 활성화하자 곧바로 구체적인 미션 내용이 떴다.

[등장인물 ‘제현호’의 호감도 미션을 수행할 것.]

응? 생각도 못 한 지시에 나는 곧바로 등장인물 도감부터 확인했다.

바로 눈에 보이는 특이 사항으로는 그동안 안면을 트거나 교류를 한 사람들 중 몇 명이 새롭게 등장인물에 등록되어 있다는 것이었다.

대표적으로는 떡볶이집 사장님이 있었다.

‘이건 나중에 삭제되거나 할 수도 있으니까 그렇게 의미를 두진 않아도 될 것 같긴 한데….’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니 멤버들 호감도부터 자세히 살폈다.

[등장인물]

[- 현재 등록된 인물 (23)]

[▶엔카운터 멤버]

[▷표영인(S)] ★★★☆

[▷유지원(A)] ★★★★★

[▷이규민(A)] ★★★★

[▷박하연(B)] ★★

[▷정은찬(B)] ★★★☆

[▷제현호(A)] ★★★★★

[▷주혜성(C)] ★★★

확실히 다들 마지막으로 확인했을 때보다 별이 한 개에서 한 개 반 정도는 늘어나 있었다.

‘그야 오만 고생을 다 같이 했으니까 아무래도….’

유지원에 이어 두 번째로 별 다섯 개를 달성하자 기다렸다는 듯 리퀘스트 미션을 보낸 듯했다.

‘누군지 모르겠지만 어지간히 제현호를 좋아하시나 본데….’

이 녀석 얼굴이 그렇게 마음에 들었나? 아니면 다른 녀석들에 비해 뚱한 듯하면서도 태도는 열심인 게 귀여워 보이기라도 했나.

어쨌든 미션은 하는 게 좋으니 겸사겸사 리퀘스트까지 겹치면 나는 이득이었다.

‘이제 문제는….’

지난번 지원이 때처럼 또 갑작스럽게 사건 사고가 발생해서 난리 나는 건 아닌지 그게 솔직히 제일 걱정되는데.

물론 미션이야 시기의 문제지 있는 시스템을 그냥 놀릴 수는 없으니 언젠가는 수행하게 되겠지만.

‘지금처럼 바쁜 시기에 일 터지면 답도 없는데.’

최악의 경우 제현호가 갑자기 무대 위에 오를 수 없는 상태가 되면 정말로 돌이킬 수 없었다.

평소라면 동선을 바꿔서 자연스럽게 빈자리를 메우고 채우면 되는데 지금은 그럴 여유도 없고.

‘지금은 최대한 몸을 사려야 할 때인데….’

내가 멈칫 주저하자 미션 안내 아래의 잔여 시간이 붉은색으로 섬뜩하게 반짝거렸다.

[잔여 제한 시간: 71:59:45]

미션이야 빨리 끝나면 하루 안에도 끝낼 수 있을지 모르겠으나… 일정 하나라도 끝난 후에 수행하겠다고 미뤘다가 타임아웃으로 기회를 날릴 수는 없었다.

‘호감도 미션으로 대체 뭐가 튀어나올지 모르니 선뜻 결정하기가….’

그러자 잔여 제한 시간이 한 번 더 깜빡거렸다. 무슨 경고라도 하는 것처럼.

불길한 예감은 언제나 빗나가지 않고 적중하기 마련이라 나는 눈 딱 감고 제현호의 호감도 미션을 활성화시켰다.

[서브 에피소드 미션(호감도) ▷ 기다리던 그 사람]

[예상 수령 보상]

[▷코인 1개]

[▷등장인물 ‘제현호’ 보유 스킬 수동 활성화 가능]

[제한 시간 안에 제현호를 특정 인물과 대면시킬 것]

[잔여 제한 시간: 48:00:00]

웬일로 잔여 제한 시간이 줄어들지 않아 의아하게 보고 있으려니 아래에 작게 처음 보는 안내 문구가 추가되어 있었다.

[*확인 버튼을 누르면 미션 시작 지점으로 바로 이동합니다.]

시작 지점은 또 뭔데? 출연 준비 중에 사용했던 빨리 감기 비슷한 기능인가?

나는 재빨리 제일 중요한 것부터 확인했다.

[미션 시작 지점으로 이동했을 때 활동에 지장이 생기거나 하는 건 아니죠?]

그러자 시스템 창이 맞다는 듯 짧은 대답을 건넸다.

[네, 미션 시작 시간까지 자연적으로 시간을 소진시킬지, 아니면 미션 시작 지점으로 바로 이동할지는 직접 선택하실 수 있습니다. 다만 수행 시간이 한정적이므로 기능 사용을 권장합니다.]

확실한 대답을 들었으니 안심이었다.

[확인]

콕, 손끝으로 버튼을 누르자 순간 눈앞에 컴컴해지더니 누군가 나를 흔들어 깨웠다.

“……?”

내가 언제 잠들었지? 놀라 벌떡 몸을 일으키니 조금 전 누워 있었던 침대 위가 아닌 이동용 차 안이었다.

“뭐 해? 얼른 내려. 네가 내려야 내가 내리지.”

안쪽 자리에 앉은 이규민이 웬일이냐고 얼굴에 써 놓은 듯한 표정으로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어? 어어….”

급히 정신을 차리고 자리에서 일어나 제현호부터 확인했다.

다행히 유지원 때와는 다르게 어디로 탈주하거나 하지는 않았는지 순순히 스태프분들의 손에 이끌러 샵에 있는 대기실로 향하고 있었다.

“현호야, 잠깐만.”

애 상태는 괜찮은지 확인해야 할 것 같아서 가까이 다가가자 평소와 크게 다를 것 없이 뚱한 표정의 제현호가 나를 내려다보았다.

‘별 차이 없는데. 아무 일도 없는 건가?’

의심 가득한 눈으로 바라보자 제현호가 할 말 있으면 하라는 얼굴로 불쑥 물었다.

“무슨 일인데요?”

오… 왜요, 두 글자가 아니라니.

예전이었으면 두 글자에서 그쳤을 질문이 여섯 글자까지 늘어난 것을 보니 참으로 감동이 아닐 수 없었다.

“어, 다른 게 아니고 컨디션 괜찮나 싶어서.”

그러자 제현호가 곧장 대답했다.

“괜찮아요.”

그러고는 뚜벅뚜벅 다시 스태프가 지정해 준 의자에 앉아 버렸고, 나는 몹시 당황스러웠다.

‘뭐지?’

지원이 때처럼 뭔가 문제라도 있어 보이면 바로 도와주겠다고 나서면 되는데.

이렇게 뭐가 문제인지도 말하지 않고 꽁꽁 숨겨 버리면….

‘내가 어디서부터 뭘 어떻게 해야 하는 거냐.’

지원이 때와는 또 다른, 새로운 부류의 역경이 예상되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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