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0. 실수였다고 해도 (2)
마지막 리허설까지 마무리되고 잠시 후 생방송 시작을 알리는 카운트다운이 시작되었다.
3. 2. 1. MC의 경쾌한 멘트와 함께 시작된 오프닝 무대는 작년에 데뷔해서 한창 활발히 활동을 이어 나가고 있는 걸 그룹이 주인공이었다.
‘열심히 준비하셨네.’
적당히 관객으로서의 예의를 지키는 미소를 띠고 무대 위를 바라보자 새삼 우리 무대도 다른 사람들 눈에는 저렇게 보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조명을 받을 때마다 눈부시게 반짝이는, 이 무대가 너무 좋아서 진심으로 즐기는 듯한 표정.
우리 무대도 다른 사람들에게 이런 느낌으로 와 닿았으면 좋겠는데.
준비하는 사람에게는 1분이 1시간 같았을 무대가 마무리되고, 나도 모르게 다른 청중들에게 섞여 박수를 치자 옆자리에 앉은 규민이 장난스럽게 물었다.
“뭐야? 너 컬러핀에 관심 있는 멤버 있어?”
그러고는 놀릴 거리를 찾았다는 듯 눈을 빛내기에 나는 경멸을 담아 대답해 주었다.
“무슨 헛소리야. 그냥 무대 잘 봐서 하는 예의지.”
“오호~. 리액션 박하기로 유명한 서인수 씨가 웬일로?”
웬일은 무슨. 내가 평소에 리액션이 박한 편이었나? 갑작스럽게 스스로를 되돌아보는 사이 무대 배경이 바뀌고 스크린이 내려오더니 다음 무대로 이어질 준비가 시작됐다.
“이상한 말 하지 말고 앞이나 봐. 괜히 딴짓하는 사진 찍히지 말고.”
생방송 시간만 총 3시간짜리 시상식인데 딴짓을 안 하는 것도 사실 힘든 일이지만.
저 방청석에 전문가용 카메라를 잔뜩 숨겨 가지고 들어온 사람들이 우리 팬들은 물론 다른 그룹의 팬들까지 수도 없이 많아서 언제고 방심할 수가 없었다.
잠깐 시큰둥하게 멍 때리는 사이 카메라에 포착되기라도 했다가는… 약간의 썰만 끼얹어도 생방송 3시간 내내 표정 관리 하나도 안 하고 허공만 보다가 갔다고 박제당하고 말걸.
더구나 우리는 또 제일 잘 보이는 앞자리에 앉아서 이목을 많이 받는 입장이었다.
“엔딩까지 얼마나 남았지?”
못해도 2시간은 남은 상황에 벌써부터 지치기엔 너무 일렀다. 나는 대답하는 대신 어느새 말려 올라가고 있는 스크린을 확인하고는 규민을 툭툭 쳐서 앞을 보게 했다.
“다음 무대 시작하니까 앞 보고 집중이나 해.”
앞으로 해체하기 전까지는 운명 공동체나 다름없었으니 이 정도 잔소리는 피할 수 없었다,
“네~ 네~. 알겠습니다.”
우리가 드디어 움직일 차례가 된 건, 그로부터 30분쯤 후의 일이었다.
[올 한 해 가장 뜨거웠던 루키! 신인상 결과 발표하도록 하겠습니다.]
[영광의 수상자는, 엔카운터! 축하드립니다!]
[KMC 본사 홈페이지 투표 100%, 여러분의 손으로 직접 뽑아 주신 올해의 인기상, 지금 발표하도록 하겠습니다]
[인기상 수상자는, 엔카운터! 축하드립니다!]
연달아 수상하고 나니 이제 슬슬 지금까지와는 다른 걱정이 샘솟기 시작했다.
‘이제 슬슬 그만 줘야 하는 거 아닌가… 여기에 대상까지 받으면 몰아주기라고 말 나올 거 같은데.’
이후로도 수상은 멈추지 않았다.
첫 번째 시상식에서 받았던 것처럼 웬 기업에서 후원을 받아 5팀에게 공동 수상으로 뿌리는 스타상까지.
이 정도로 주는 건 혹 대상을 안 주려고 이러는 건가? 불길한 의심이 들 즈음, 뜬금없이 생각도 못 한 부문의 시상이 출몰했다.
[올 한 해 KMC를 빛내 준 최고의 예능, 대한민국 전역을 아이돌 열풍으로 이끌었던 ‘겟 데뷔 위드 미!’ 올해 함께해 주신 모든 분들을 대표하여 엔카운터분들이 나와서 대표로 수상하겠습니다.]
“……?”
이런 상은 있다고 한마디 언질도 없었잖아?
보통 본인들이 어디에 노미네이트 되는지 정도는 사전에 알려 주는 편인 것을 감안하면 몹시 특이한 케이스였다.
‘참가자 일동’의 대표로 받는, 수상이 확정된 사실상의 감사패라 이야기가 없었나?
생각해 보니 무슨 겟 데뷔 성과를 치하하는 자리가 있을 거라는 얘기는 들었던 것 같았다. 그 공로패 수상을 우리가 한다는 구체적인 내용은 없어서 그런지.
얼결에 무대 위로 나가 마이크를 잡자 이걸 우리가 받은 상이라고 해야 할지…. 뭐라고 멘트를 하면 좋을지 정신이 살짝 아득해졌다.
‘이거 자칫하면 우리가 몰표로 또 받아 간 것처럼 보이겠는데.’
진짜로 우리가 예능상이라도 받았으면 억울하지나 않겠는데.
이건 정말 우리가 받은 상이 아니니 나는 재빨리 머릿속으로 판단을 마쳤다.
“이렇게 멋진 프로그램에 저희도 일원으로서 함께 할 수 있어서 정말 영광이었습니다. 방영 내내 누구보다 애써 주신 국장님, 예능부 곽윤석 실장님, 이경준 피디님, 축하드립니다! 이렇게 대리 수상하면서 감사 인사 전할 수 있는 기회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무튼 우리 거 아님. 우리가 받은 것도 아님. 우리는 축하해 주는 입장임. 애써 최대한의 어필을 하고 무대 아래로 내려오자 겨우 식은땀이 흘렀다.
“이거 우리가 받은 거 아니에요?”
내가 내려오자마자 트로피를 냅다 매니저에게 건넸더니 영인이 의아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슥, 멤버들을 둘러보니 다른 녀석들도 비슷한 의문을 품고 있는 듯했다. 그때 규민이 나 대신 쯧쯧, 과장된 태도로 잘난 척을 하며 대신 대답했다.
“우리가 받은 걸로 안 치는 게 더 나아. 어차피 중요한 상도 아니니까.”
“……?”
제대로 납득을 하지 못한 현호의 얼굴에 의아함이 깃들기도 잠시, 무대 아래로 내려와 아직 숨도 돌리지 못했는데 곧장 시상식의 하이라이트가 다가왔다.
[드디어 오늘의 하이라이트! 올해의 베스트 가수상만을 남겨 두고 있는데요. 과연 올해는 어떤 후보가 영광의 주인공이 될지! 지금 바로 무대로 만나 보시죠!]
기존에 여성부, 남성부로 나눠서 한 후보씩 주던 상을 전체 1팀으로 축소하면서 대상 후보 네 팀의 무대를 대상 발표 전에 편성한다는 기획은 누구 머리에서 나온 발상인지.
이것까지 눈에 띄는 순서를 주면 너무 짜고 치는 고스톱처럼 보일 것 같았는지 우리 순서는 두 번째였다.
솔로 후보 2명에 걸 그룹 하나, 보이 그룹 하나.
나름대로 밸런스를 맞춘 듯한 후보군에 객석의 청중분들도 무대 하나하나 집중이 흐트러지지 않고 즐겨 주시는 것 같았다.
‘무대는 문제없고.’
카메라와 계속 시선을 맞추면서 아래를 안 보고 꽤 오랜 거리를 걸어야 해서 혹시나 발을 밟거나 휘청거리지는 않을지 걱정했던 워킹 파트도 무사히 끝냈고,
돌출 무대의 왼쪽 사이드 끝부터 오른쪽 사이드 끝까지. 멈추지 않고 걸으며 객석의 팬분들과 인사를 나누는 시간이 유달리 짧게 느껴졌다.
물리적으로는 결코 짧은 시간이 아니었을 텐데도.
‘어쨌든 오늘 제일 하이라이트인 수상을 남겨 두고 있어서 그런가.’
어쩐지 나도 모르게 긴장했는지 떨리는 가슴으로 무대를 마치고 남은 후보들의 공연까지 모두 마무리되자 이제 정말 대상 발표와 엔딩만을 남겨 두고 있었다.
[올 한해를 가장 빛낸 주인공을 지금 발표하겠습니다!]
[올해의 가수상 수상자는, 엔카운터! 축하드립니다!]
온 시상식장을 비추던 스포트라이트가 우리 머리 위로 고정되고 카메라마저도 전부 우리에게 주목했다.
“얼른 올라가자, 얼른!”
예상했던 결과이기는 했으나 왜인지는 모르게 잠시 벙찐 채 자리에 우두커니 멈춰 서 있자 규민이 재빨리 나를 잡아끌었다.
“어? 어어….”
그리고 그 순간. 왜인지 갑자기 현기증이 일었다.
‘…뭐지?’
최근에 좀 고생을 하긴 했지만 체력적으로 그렇게 힘들다는 느낌은 아니었는데.
겨우 정신을 차리고 무대 위로 올라간 나는 재빨리 스태프가 건네준 마이크를 받아 들었다.
“오늘 이렇게 정말 뜻깊고 좋은 상 안겨 주셔서 너무 감사드리고요. 전부 저희가 데뷔하기 전부터 응원해 주시고 함께해 주시던 저희 팬 여러분들 덕분이라 생각합니다. 저희가 이렇게 무대에서 노래할 수 있도록 기회 주셔서 정말 감사드립니다. 앞으로 더 열심히 활동하겠습니다!”
회사 및 관계자분들께 감사 인사를 하는 건 신인상, 인기상 수상 발표 때 이미 다 했으니 이번에는 오로지 팬분들께 이 공을 돌리고 싶었다.
실제로도 맞는 말이니까. 오로지 내 실력만으로 이 자리에 온 것이라고 하기에는.
‘실력만으론 안 되는 세계라는 걸 이미 경험해 봤으니까.’
지금의 인기 아이돌 서인수는 나 혼자 힘만으로는 이뤄 낼 수 없는 것이었다.
그렇게 내가 약간 감격에 겨워 글썽거리며 수상 소감을 마치고 다른 멤버에게 마이크를 넘길 즈음.
“헐, 제현호 지금 우는 거야?”
“뭔 소리야, 겟 데뷔 다 봐 놓고. 제현호 멘탈 티타늄인데 울긴 뭘…. 어?”
다들 스크린을 통해 확대 화면으로 보고도 믿을 수 없다는 듯 눈을 의심했다.
겟 데뷔 데뷔 조 중, 정은찬과 쌍벽을 이루는 빌런 출신.
단체 PV 미션 당시 다른 주목받아야 할, 피디가 밀어주는 픽들의 분량에 밀려 그 눈부신 활약의 대부분이 편집되지 않았더라면 데뷔 조는 꿈도 못 꿀 비호감으로 처박힐 수 있었던 인성의 주인공.
제현호가 입술을 꾹 깨물고 눈물을 참는 척 고개를 뒤로 돌리다가 결국 충혈된 눈으로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대표로 하는 소감은 내가 했지만 다른 멤버들도 돌아가면서 두세 마디씩 짧게 소감을 말하기 위해 마이크를 돌리는 와중이었다.
“어… 현호가 그동안 함께 노력해 온 것들이 워낙 많아서 그런지 좀 감동이 컸나 봐요. 이렇게 영광스러운 기회 주셔서 너무 감사합니다.”
현호의 바로 앞 순서로 소감을 말하던 혜성이 마이크를 넘기려다 현호를 달래 주는 쪽으로 노선을 틀었다.
다른 멤버들도 비슷한 생각을 했는지 하나둘 현호를 에워싸고 어깨를 두드려 주기 시작했다.
그렇게 무슨 스크럼이라도 짜듯 멤버들에 둘러싸인 현호가 완전히 가려진 순간, 현호가 젖은 눈으로 빼꼼 카메라에 잡히지 않는 각도에서 나와 눈을 마주쳤다.
“…….”
꼭 ‘이렇게 하면 돼요?’ 하고 묻는 듯한 순진한 눈망울에 나는 속으로 혀를 내두르며 OK 사인의 의미로 미소를 지었다.
‘나중에 가수로 은퇴하고 나서 연기자 데뷔도 고려해 봐도 되겠는데?’
효과는 기대 이상이었다.
열심히 준비했던 연출의 엔딩 무대까지 마치고 숙소로 돌아가는 차량에 몸을 실으니 ‘엔카운터 상 몰아주기 논란’ 같은 건 온통 묻혀 버린 후였다.
[제목] ㅁㅊ 제현호 소감 발표 중 눈물 대방출 (+305)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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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제목 보고 믿기지 않아서 들어온 사람들 많을 듯
처음에 스크린에 오류 난 줄
[댓글]
[- 와 제현호 눈물… 이건 귀하군요….]
[- 전에 무슨 겟 데뷔 중간에 극한 미션 하는 거 줬을 때도 표정 하나 안 바꿔서 개쎄다 싶었는데 울어서 너무 놀람;;;;]
[- 소감 들어 보니까 며칠 전에 수상 논란 때문에 스트레스 많이 받았나 보더라 ㅠㅠ]
[ㄴ 수상 소감으로 뭐라고 했는데?]
[ㄴ (URL 링크) 여기서 보면 됨. 반응 같은 거 신경 안 쓰는 줄 알았는데 의외다]
예상한 것보다 훨씬 더 좋은 반응에 나는 슬쩍 제현호 본인은 어떤지 표정을 확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