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5. 그때의 선택이 (1)
[댓글]
[- 뭐지? 내가 잘못 읽었나 해서 다시 읽어 봤는데 이거 남돌 까 달라고 올린 거 맞는 거지?]
[ㄴ ㅋㅋㅋㅋㅋㅋㅋㅋ 나도 이 생각하고 댓로고침 함]
[ㄴ 3333333]
[ㄴ 글 읽기 전: 뭐야 어떤 새끼가 또 사고를 쳤어
글 읽고 나서: 잘했는데?????]
[- 오늘 대형 행사에서 사고 터진 거 90 보이즈 무대 하나인 거 같은데 맞으면 대체 뭘 욕하라고 올린 건지 모르겠네]
[- 생방 터져서 무대 통편집되고 현장에서 임기응변 레전드라고 난리 난 걸 이렇게 뒤통수를 치세요?ㅋㅋㅋㅋㅋㅋㅋㅋㅋ]
[- 아 악플러들아 아무튼 욕해 줘 잉잉 올릴 거면 인증이라도 하든가 새벽 3시 가지고 욕할 거면 그날 행사 몇 시에 끝나는지도 같이 올려야 하는 거 아님?]
[ㄴ 생방이 1시에 끝났으면 장비 해체하고 철거하고 하면 딱 2~3시 될 만한 듯]
[- 본문에서 욕해 달라고 쓴 남돌이 요구한 거: 행사 끝나자마자 사고 난 장비 해체해서 상태 점검
뭐가 문제지?]
[ㄴ 뭘 욕해 달라는 건지 모르겠고 진짜 뭐가 문제지? 태도가 문제면 녹취라도 풀든가]
[ㄴ 녹취 못 까면 지금 글로는 그냥 정당하게 요구할 수 있는 거 요구한 걸로 보임. 행사가 원래 늦게 끝난 거라 시간은 어쩔 수 없는 부분이고 다른 장비 철수할 때까지 기다려준 게 오히려 갓성 아님?]
[- 오늘 현장에서 방청했는데 그냥 넘어갈 만한 사고는 아니지 않나요. 3m 위에서 머리부터 떨어질 뻔했는데 오작동 원인 찾아 달라고 한 게 그렇게 억울해서 글까지 올렸어요?]
대체로 오히려 잘했다고 응원해 주는 내용이 대부분이었다.
일부는 아무리 그래도 긴 행사 끝나고 다들 지쳐서 쉬고 싶을 텐데 천천히 요구해도 되는 게 아니냐 하는 댓글이 달렸으나 곧 반박 댓글이 잔뜩 달려 삭제되었다.
[- (작성자가 삭제한 댓글입니다.)]
[ㄴ 거기 공연장 평소에 다목적으로 사용하는 홀이라서 장비 철수하면 아무것도 없는데 뭘 진상 규명을 함… 장비 다 반납하고 나면 그대로 묻힐 텐데]
[ㄴ 작성자세요ㅋㅋㅋㅋㅋㅋㅋㅋㅋ?]
장문의 댓글들이 잔뜩 쌓인 끝에 가장 많은 추천 수를 받은 댓글은 [녹취 있으면 까라. 까서 태도에 문제가 있으면 욕해 주겠다.]였다.
‘이건 또 누구 짓이지.’
뻐꾸기 퀘스트가 다시 시작된 만큼 한동안 평화로웠던 서치가 다시 혼돈이 될 건 예상하긴 했는데.
‘이전까지 악성 게시글을 주도했던 게 임희록이라면…. 지금 이 글을 쓴 사람은 누구인 거지.’
대놓고 나를 언급했던 이전까지의 악성 게시글과 달리 이번 글은 각도기를 재기에 상당히 애매했다.
나나 지원으로 대충 예상을 할 수는 있었지만 막상 고소를 하면 특정성 성립은 안 되는 내용이었다.
누가 봐도 나로 추측할 수 있는 내용이지 않으냐 지적한다면 역으로 오늘 일어난 일이라 한 적도 없고 단서라고는 신인 남자 아이돌이라는 것뿐인데 자의식 과잉 아니냐. 역으로 찔리는 게 있는 거 아니냐 발뺌하면 이쪽이 더 강하게 나갈 수가 없었다.
‘이전보다는 좀 머리를 쓴 거라고 봐야 하나….’
그러나 이런 증거 하나 없는 억지 몰이를 한 걸 보면 딱히 대단한 판단력을 지닌 건 아닌 것 같은데.
아니나 다를까 글이 올라온 지 20분도 안 돼서 반박 댓글만 계속 달리니 곧 게시글 자체가 삭제되었다.
‘이렇게 금방 꼬리를 내릴 거면 대체 왜 올린 거냐?’
커뮤니티 내에서나 방금 삭제된 글 뭐냐며 어이없어하는 반응이 좀 있었을 뿐 기사화는커녕 그 밖으로 수출되지조차 않았다.
녹취를 어떻게 조작해서 올려 봤자 문제 될 만한 발언은 한 게 없었으니 큰 걱정은 안 해도 될 것 같긴 하다만.
‘차라리 녹취가 올라왔으면 아까 현장에 있던 사람들 중 공범이나 당사자가 있었다는 뜻이니까 좀 더 범인을 잡아내기 쉬웠을까 싶긴 한데….’
잠을 자는 둥 마는 둥 설치고 새벽부터 다시 출근 준비를 할 때까지도 새 게시글은 올라오지 않았다.
‘아니면 정말 그냥 그때 관계자 중 한 명이 앙심을 품고 올린 것뿐인가.’
여러모로 확신할 수 없는 것들이 잔뜩인 와중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는 하루가 다시 시작되었다.
“흐아암~.”
“으음….”
“흠냐….”
피로가 덜 풀린 건 다들 마찬가지인지 얼굴에 그늘이 잔뜩 져 있었다.
“출발하기 전에 하나씩 마시고 가자.”
나는 재빨리 연습실 근처의 약국에서 사다 두었던 비타민 드링크를 하나씩 돌렸다.
대단한 효과는 없겠지만 안 마시는 것보다야 당연히 나을 테니까.
각자 한 병씩 개운하게 드링크를 비우고 숙소를 나서자 오늘도 샵이고 방송국이고 아이돌과 연예인이 이렇게나 많았나 새삼 놀라울 만큼 북적이고 있었다.
‘연말이니까 아무래도….’
잠시 풀어져 있을 새도 없이 오늘은 규민과 영인의 콜라보 무대가 있는 날이었다.
“잘해. 레전드 찍고 내려와. 직캠으로 한 1,000만 뷰 뚫어.”
내가 반쯤 농담으로 응원하자 규민이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차라리 나가서 천만 원을 벌어 오라고 해라.”
“그건 쉬울 것 같아?”
“천만 뷰보다는 현실성 있지.”
투닥투닥하면서도 나가면서 꼭 안 해도 될 말을 하는 게 이규민다웠다.
“오늘도 내가 무대 쫙 찢고 내려온다.”
“굴러떨어지지나 말고.”
“자기소개지, 그거?”
보컬 중심의 무대였던 나와 지원과 다르게 규민과 영인이 출연하는 무대는 퍼포먼스 중심의 댄스곡이었다.
‘사전 녹음으로 립싱크하는 거라서 안무에만 신경 쓰면 되니까 걱정은 안 되는데….’
그래도 혹시 모를 비상사태에 대비해서 긴장의 끈을 놓지 않았다.
다행히 아무런 이상 없이 리허설도 모두 종료.
이후로 이어진 단체 무대도 이상 없이 마무리되었다.
‘어제랑은 다르게 오늘은 확실히 좀 평화로운 것 같기도 하고….’
그래도 사고는 긴장이 풀렸을 때 나기 쉽다는 생각에 다시 정신을 바짝 차리자 눈 깜짝할 사이에 2부 엔딩이었다.
‘이번 행사 엔딩 무대는 생각보다 심심하네.’
어제 행사는 대선배님이 나와서 같이 노래하고 동선 짜고 이래서 다들 정신없이 자기 자리 찾아서 인사하고 해산하는 느낌이었는데.
이번 행사는 무슨 단체 기념 촬영을 한다고 앞줄부터 차곡차곡 전 출연진을 즉석에서 입장시켜서는 우리는 제일 먼저 잘 보이는 자리에 서서 객석을 바라보고 있어야 했다.
‘카메라 많네….’
전부 우리를 찍으러 온 건 아니지만 이때를 틈타 자기 어필을 해서 나쁠 건 없었다.
데이터 판매를 목적으로 찍는 분들이라도 잘 찍히면 좋은 거고. 찍다가 나한테 입덕하시면 더더욱 잘된 일이고.
아까부터 쭉 나를 찍고 있었던 팬분들께 한 번씩 포즈를 취해 드리는 것은 물론 타 팬으로 보이는 분들께도 인사를 드리고 나니 다른 멤버들은 뭘 하고 있는지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다들 잘하고 있네.’
다른 녀석들은 알아서 자기 찍는 카메라 찾아서 열심히 포즈를 취하고 있는데 유지원만 혼자 맨 앞줄의 우리 팬도 아닌 분들에게 팬 서비스를 하고 있었다.
‘…가 아니었군,’
나는 재빨리 지원의 어깨 위로 팔을 걸치며 환히 웃었다.
“저쪽 봐, 저쪽.”
그러자 움찔 지원이 잠시 놀라더니 내 얼굴을 확인하고 재빨리 고개를 끄덕였다.
‘누가 보면 내가 삥이라도 뜯는 줄 알겠네.’
그러나 다행히 객석과 우리가 서 있는 무대 앞줄이 상당히 가까웠던 덕에 내가 무엇 때문에 지원의 어깨를 잡았는지 목격자가 상당히 많았다.
그리고 타 팬분들이 보기에도 웃겼던지 여기저기서 웃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
지원이 방긋 웃은 채로 왜 웃는지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기울이자 한바탕 또 웃음소리와 함께 셔터음이 쏟아졌다.
“너 귀여워서 그러는 거야.”
“아.”
그제야 지원이 통통한 볼살이 둥글게 부풀도록 입꼬리를 당겨 웃었다.
‘이 녀석 진짜 나중에 위험해지는 거 아닌가. 스타성은 있는데 애가 너무 맹해서 계약 사기당하기 딱 좋은데.’
뭐 내가 이 녀석의 평생을 책임져 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내가 신경 써 주는 건 한 그룹으로 활동할 때뿐이겠지만.
이용해 먹으려는 사람이 한둘이 아닐 텐데 모쪼록 잘 헤쳐 나갔으면 좋겠네.
곧 모든 출연진이 빼곡히 무대 위로 올라오고 메인 촬영을 앞둔 그때.
“저, 안녕하세요!”
등 뒤에서 익숙하지 않은 목소리가 들렸다.
‘누구지?’
의아해하며 뒤를 돌아보자 아까 1부의 애매한 순서에 나와서 무대를 올렸던 아이돌 그룹의 멤버가 나를 보며 인사했다.
“겟 데뷔 정말 잘 봤어요…! 저 진짜 팬이에요!”
신인…은 아니고. 나름대로 유명한 대형 기획사에서 야심 차게 런칭한 그룹인데 영 힘을 못 쓰는 그룹이었던가.
해외에서는 그래도 인기가 꽤 있어서 벌써부터 투어를 엄청나게 돌린다는 것 같았는데.
나와 NO에서 잠시 같이 연습생 생활을 했던 동기가 있는 그룹이라 뭐 하는 그룹인지는 확실히 알고 있었다.
“주경이 형도 숙소에서 같이 형 응원했어요. 저희 투표도 했거든요!”
“아아~.”
인기 아이돌과 인맥을 쌓기 위해 하는 아는 척이든, 아니면 정말로 내 팬이든 그건 중요하지 않았다.
‘어쨌든 먼저 선뜻 말 걸어 준 건 고마운 일이니까.’
나는 활짝 웃으며 인사를 받았다.
“감사합니다. 주경이 형은 잘 지내죠? 요즘 투어 때문에 많이 바쁘신 것 같던데….”
슬쩍 너희 그룹이 어떻게 지내는지도 알고 있다는 티를 내자 내게 스스로를 팬이라고 소개했던 인물이 화색을 띠며 대답했다.
“어, 아, 네네! 근데 저희, 얼마 전에 한국 들어와서 이제 한 3주 정도는 쉬어요!”
그리고 그 순간 그 뒤에 이어질 내용이 무엇일지 바로 예상이 되었다.
자기네 자컨이나 예능에 출연해 달라고 하거나 연락처 교환하자고 하거나 사석에서 따로 밥 한 끼 하자고 하겠지.
그리고 예상은 그대로 적중했다.
“언제 주경이 형이랑 같이 밥 한 끼 같이 드실래요? 저희 쭉 휴식기니까 인수 씨 스케줄에 저희가 맞출게요!”
솔직히 말하자면 부담스러운데… 얼마 안 되는 휴일이 있으면 쉬고 싶지 굳이 약속을 잡고 싶지는….
‘가만. 생각해 보니 그쪽 소속사 사장도 골든링 박 대표랑 연이 있지 않았나?’
나는 재빨리 표정을 관리하고는 대답했다.
“그럴까요? 그럼 제가 주경이 형 번호로 연락할게요. 지금은 핸드폰을 안 가져와서.”
“아, 네네!”
그리고 곧바로 기념 촬영이 시작되어서 다시 각자 제 위치에 서서 정면을 보고 집중해야 했다.
‘큰 도움이 될 거라는 기대는 안 하지만….’
박 대표에 대한 정보는 하나라도 많을수록 좋으니까.
이후 며칠간은 전부 비슷한 스케줄의 반복이었다. 그나마 차이가 있는 건 연예 대상의 게스트 무대 정도일까.
그리고 이제 정말 중요한 시상식이 남아 있었다.